억척의 기원 (나주 여성농민 생애사)

억척의 기원 (나주 여성농민 생애사)

$19.59
Description
억척스런 농촌 언니들의 얽히고설킨 생애사
가난과 갈등 사이에서 피어난 주체성을 발견하다
여자가 집에만 있기를 바라잖아요 다들.
근디 나는 집이 제일 싫었던 거야.
집을 나가서 내 돈을 벌어서 독립하고, 내 하고 싶은 활동을 하고
그걸 나는 더 좋아하고 더 신이 나는 거예요.

10여 년째 노년, 중장년 여성들과 만나며 밀도 높은 구술생애사 작업을 보여온 최현숙 작가가 이번에는 나주의 두 여성농민을 찾아갔다. 이들은 작가의 전작 〈할매의 탄생〉의 우록리 할매들보다 한 세대 아래로, 무학無學과 시집살이, 남편의 외도 혹은 폭력과 자식들 뒤치다꺼리 등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혼 선택, 경제적 자립의 경험, 농민회 활동 등으로 좀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 60년 남짓의 생애를 가득 채운 역경과 애증과 열정을 듣다 보면 그들이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개인사를 넘어 한국 사회가 아직 청산하지 못한 문제들과도 맞닿아 있다.

개별적 삶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는 보편으로 통하곤 한다. 그게 구술생애사가 갖는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가정 폭력, 돌봄 노동,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 등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농촌 이야기’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된다. 나주의 여성농민 김순애와 정금순은 세상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 억척스러워져야 했으며, 이 억척스러움은 그게 어떤 세상이었는지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다. 그리고 그들의 세상은,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

최현숙

구술생애사작가.저서로『작별일기』『할매의탄생』『할배의탄생』『막다른골목이다싶으면다시가느다란길이나왔어』『천당허고지옥이그만큼칭하가날라나』『삶을똑바로마주하고』가있고,공저로『이번생은망원시장』등이있다.
천주교로인해사회운동을시작했고,민주노동당여성위원장과성소수자위원회위원장을지냈다.이후요양보호사와독거노인생활관리사로서노인돌봄노동에몸담아왔다.
노인들을만나면서구술생애사작업을본격적으로하게되었다.2020년부터홈리스현장에서활동하고있으며,홈리스에관해다양한글쓰기를하고있다.

목차

1부상처와고난에서자긍심을싹틔우다:김순애의반은좋고반은안좋았던삶

원가족
아버지,술만춰가지고오면뚜드려패고│잘좀살지왜다들이혼하냐구요

서울식모살이와공장생활

시집살이의고됨과부부생활
쌀많은집이부러웠는데말이씨가돼서│남편의외도를계기로경제적자립을하다│싫지만남편에대한포기는안되고│부부간에엎치락뒤치락하는성생활│아들이두부랑축사받아서하고

삶을바꾼여성농민회활동
농민회안했으면이렇게강단있겠어요?│못배운서러움과울화│쉬다보면길이또나온다고│현재의농사,퇴임후의계획│학교와교회에대한양가감정

운동과죽음에대한성찰

아직풀리지않는모녀관계

후기_진심과열정이상처로주저앉지않기위하여

2부가난이씨뿌린예민한삶과농촌에서일군보람의나날들:정금순이말하는생애

원가족에대한애환
순종요물로만자랐어요│부모가사랑줬는데도형제간우애롭지않아│1970년대,광주여고시절

첫결혼그리고이혼

세신노동,골병과당당함

농부와재혼하며시작된나주생활
농을병행하며대농을꾸리다│나락농사하는과정│청각장애신랑이이장을열심히하고

농민회와부녀회활동,고생과재미

새엄마,새가족되기
‘할머니,왜이모하고엄마하고성이틀려요?’│성질급한남편하고함께살기

농민수당이좌우할농촌의미래

내가겪은광주항쟁

후기_시행착오는제대로직면하면힘의원천이다

출판사 서평

평생억척을떨고살았지요

“나는시골서반듯한집에,배안곯는집에사는게꿈이었어요.엄마도그래서나를그런집에시집보낸거고,나도좋았던건데……뒤주큰집찾았더니만하나도안틀리게그대로된건데,그집에서종살이만한거지.”(김순애)

1959년생김순애의삶은반은좋고반은안좋았다.아내와자식들에게폭력을휘두르는아버지밑에서큰딸로자랐으며,아홉살때부터는가난한살림까지도맡았다.그는아버지때문에자기가독한사람이된것같다고회고한다.집에서벗어나고서는서울에서1년간배곯는식모살이를거쳐양말공장에서7년간일했다.그공장시절이평생제일로신나고즐거운때였다고한다.길가에서하꼬방(판잣집)생활을하던엄마에게동네가운데집도사주고,자기손으로돈벌어서자기를위해썼기때문이다.
고향에돌아와시집살이를하면서부터는다시고생이시작됐다.드센시어머니를만나험한욕을말끝마다듣고두드려맞기도하는등구박을받으면서도시집식구를위해농사짓고가사노동을했다.남편의외도는서럽다는말로는부족하다.한두번이아니었고,심지어시어머니가와병중일때도남편은다른여자를찾곤했다.마음을가누기힘든일이었지만,김순애는남편의외도를계기로장사를시작해자립하게된다.‘이혼해줄래,장사를하게해줄래’라고승부수를띄운것이다.이후그는순두부백반집을차리고버섯장을짓고두부공장을하는등자기손으로농촌에서의삶을일구게된다.
그러면서김순애는복잡한마음을가지게됐다.남편과일찍이혼하지못한게한이라고하면서도친정남매들의이혼은인정하지못하는모순된모습을보인다.시어머니와그렇게갈등을겪었는데도마지막에는정성스럽게병수발을들었다.그덕에자신이좋은며느리로기억되고사람들입에도오르내린다는사실에고마워하기도한다.남편때문에속을그렇게앓았는데도‘잘해봐야지’라는생각을남겨두고있다.어릴적의가난이서러워남들이보기에도좋은삶을살고싶었기때문일것이다.온갖아픔과서러움에서그의열정이나왔고,그힘으로김순애의삶나머지반쪽을채울수있었다.

이혼과재혼을선택하다

“저는어려서는아주순했는데,나이들면서풍파에부딪히다보니세진거예요.근데도내면에는아직순함이있겠죠.어려서부모님사랑을많이받았지만너무갇혀서화초처럼약하게자란거지요.그러니까첫남자의사람됨도잘구별하지못했고,남자랑잠자리만해도꼭결혼해야되는걸로알았고,너무어리석었던거예요.”(정금순)

정금순의어려움은결혼때부터시작됐다.광주에서고등학교를나와회사를다니던그는남편과함께한첫외출부터강제로성관계를가졌다.무서운마음에누군가에게털어놓지도못했고,임신해서가족들에게밝힌뒤에도상황은별반달라지지않았다.되려한번관계를가졌으면같이살아야한다는당시의시선때문에결혼까지해야했다.남편은임신3개월부터외도를시작했고생활과양육에경제적인도움을주지도않았다.자식들에게이혼가정을만들어주지않으려는마음에오랫동안이혼할결단을내리지못했다.그런결혼생활을16년이나하고나서야비로소이혼할수있었던그는‘일찍끝내지않고그꼴을당하게해서’자식들에게제일로미안하다고한다.
이혼하고나서는화장품외판원,피부관리사,세신사등의일을거치며혼자힘으로자식들을부양했다.특히세신사일을하면서는불면증에피부발진,허리디스크까지얻어몸에안아픈데가없었다.그래도정금순은그시절이좋았다고회상한다.잘못만난남편에묶여제대로된삶을살지못했던때보다는,몸이고단하더라도자기힘으로돈을벌어스스로와자식들을먹여살리는일이보람차고신났다는것이다.
자식들이다자라고건강문제로일을계속할수없게되자그는재혼해나주로들어갔다.새로만난남편은청각장애3급이고,정금순과마찬가지로재혼이어서전처의딸이한명있었다.딸의분리불안때문에갈등을종종겪는등,새엄마역할은만만찮았다.더군다나해본적없던농사일에적응하는것도쉽지않았다.하지만전남편과살때를생각하면즐거운일이훨씬더많다고한다.특히친자식들에게미안한게많은그에게는새로생긴딸의의미가각별하다.

농민회안했으면이렇게강단있겠어요?

“동강면여농에서시작해서전여농까지,생각해보면너무너무즐겁고행복했어요.상처도많이받았지만,농민회아니었으면내인생이어떻게되었을지……그저식구들이랑집에묶여서바글바글대다말았을거잖아요.”(김순애)

두사람의이야기에서알수있듯지금의농촌여성들은자기손으로삶을일구고있는주체다.쌓인한만큼많은열정으로살아온터라,여성농민회활동을통해농촌의변혁을주도하고있는것도놀랍지않은일일것이다.특히김순애는제대로된교육을거의받지못했음에도불구하고전국여성농민회회장을맡아특유의강단으로한동안농민운동을이끈바있다.정금순도마찬가지로여성농민회총무로활동하며농촌의미래를고민하고있다.늦게서야농촌에들어왔지만,농촌에대한그의진지함과애정은각별하다.
농민들의이야기를다루고있음에도이책이기존의농민운동사와궤를달리하는것은,농촌이나농민회의족적을쫓는게아니라그안에서분투한이의사연을담았기때문이다.이를테면김순애에게농민회활동은결국사람과의일이었다.그는농민회의활동내용보다는그과정에서사람들과겪은갈등을가슴치며이야기로풀어놓는다.더군다나그에게농민회활동은열정을분출할수있는자아실현의장이기도했다.

열정의소용돌이를넘어

“한치앞도모르는삶과스스로선택하여살아가는삶사이의길항속에서,무엇을추구하며수긍하고저항하는지에따라정체성이형성되고계속변태하며나아가는게인생이다.”

저자는작업내내두여성농민의삶에공감하기도하고거리를두기도하면서나름의주석을붙인다.김순애와의인터뷰후기에서는‘주인공의힘과열정,상처와분노가나를붙들기도하고안타깝게도했다’고고백한다.가족과의관계,가난의설움,남들의시선속에서자기삶을피워낸치열함은주변사람들을찌르기도하고그들스스로를소모시키기도했다.김순애가친남매들의이혼을비난하는것이그렇고,정금순이친자식들에게갖는죄책감이그렇다.
이들이보여주는한과열정속에는돌봄노동,여성에대한사회적관념,가부장제에갇힌욕망등좀더눈여겨보아야할문제들이얽혀있다.저자의말대로‘억척이고열정이고는많은경우아픔때문’이며,그아픔은결국세상과직결되어있다.타인을돌본다는것은좋은일이지만김순애와정금순이겪은돌봄노동은사회가여성에게떠맡겨버린일종의족쇄이기도하다.혹은정금순의첫결혼이야기나남들시선이두려워이혼을꾹꾹참는모습은여성억압적인사회구조와떼놓고설명할수없다.
그러나이책의두여성농민은끝끝내자기삶을일구는데성공했다.그들의회고는단지지난날을기술하는데서멈추는게아니라,그날들을돌아보고다음농사를준비하는거리두기의과정일것이다.저자는각인터뷰의후기에서그들의삶에지지와존경을보내며,계속해서흔들리지않고걸어나가기를응원한다.김순애와정금순은앞으로도억척스럽게스스로를지키고피워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