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 (맛있게 읽는 57년 전의 일기)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 (맛있게 읽는 57년 전의 일기)

$16.00
Description
57년 전 시골 국민학생의 일기 복원
흙 먹고 소꼴 먹이며 자란 아이의 나날의 기록들
어린이의 경험은 어떻게 어른의 기억이 되고
기억 속 아이는 노인의 삶에 어떤 온기를 불어넣는가
1954년생인 저자 이종옥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현재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을 기록해왔다. 이번에 책으로 나온 유소년 시절의 일기는 산골에서 태어난 가난한 아이가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 꿈을 이루기 위해 전전반측하는 세밀한 심리 묘사가 일품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대필을 의심할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나 글짓기 대회에도 나갈 뻔했지만, 난생처음 버스를 타고 대회 장소로 이동하던 중 멀미가 일어 기절하는 바람에 무산되기도 했다.

이 책은 저자가 1963년부터 군 입대하는 1975년까지 쓴 일기 중 60편을 골라 그대로 복원한 것이며, ‘아주 보통의 글쓰기’ 시리즈 제5권으로 나왔다. 글은 그 시절의 것 그대로이지만,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칠십대의 화가 이재연이 글을 읽고 1960~1970년대 시골의 장면 장면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이재연은 전작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를 펴내 할머니 작가의 독특한 그림들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둘 다 시골 출신으로 서울행을 꿈꿨던 게 공통점이며, 글과 그림으로 처음 만난 터라 그 앙상블을 감상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한 가지 포인트다.

여기 실린 일기들이 아주 낯선 내용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의 당연한 밑그림이었던 20세기 한국의 가난한 풍경이 지금은 꽤 많이 잊혔다. 그걸 다시 단단하게 우리 기억에 이어붙이는 독서의 기회를 이 책은 제공한다. 기성회비를 가져가야 하는 아이와 그걸 못 주는 부모 사이의 실랑이, 배가 고파 술지게미를 먹고 온 가족이 널브러져 자다가 먹은 걸 그대로 게워내는 이야기, 귀신 나올까봐 뒷간에 혼자 못 가서 용을 쓰다가 결국 뒷간에 빠지는 이야기, 자기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판국에 노름으로 논밭을 수천 마지기나 날려먹은 큰아버지의 야속한 이야기, 강냉이죽을 배급받고 돼지죽이라며 놀리는 친구들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먹지 않고 수돗물로 배를 채운 이야기, 산자락에 불을 내고 혹시나 징역살이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동심, 서울 사는 친척 아줌마의 딸인 이쁜 애가 방학 때 놀러 와서 알콩달콩 기 싸움을 하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이야기 등 시골의 일상이 아이의 눈으로 맑게 그려진다.

일기는 한 시대를 복원하고 기록하는 데 1차 사료가 된다. 가장 개인적이고 날것인 데다 성인이 되기 전 사회라는 틀에 자기를 맞추지 않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기에 가장되지 않은 투명함이 존재한다. 저자가 68세가 되어 57년 전 일기를 꺼내놓는 이유는, 이것이 평생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자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며, 동시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

이종옥

1954년충북괴산군청천두메산골가난한농부의칠남매중둘째아들로태어나어렵게자랐다.중학교도다니지못하다가뒤늦게재건중학교1학년과정만마친채배움의꿈을키우고자서울로가출해모진고생을하며어린시절을보냈다.이후공장생활을하면서검정고시로중학교과정을마쳤다.
나이를먹으면서공장직공으로만살아서는안되겠다싶어공장동네의아랫집부부가목장꾸리는모습을보며향후목장을운영하겠다는꿈을키웠다.군복무를마치고인천에서잠깐회사생활을했고,고향으로내려와농사지으면서젖송아지두마리로목장을시작했다.농민후계자로선정돼저리자금을받아착유우50여마리의중급목장으로운영하던중아버님이돌아가셨는데도쉴틈없이젖짜고사료를줘야하는통에목장일을그만두고한우비육으로바꿨다.IMF때소값폭락으로큰손해를본뒤인삼농사를함께시작했다.
독재정권시절에는가톨릭신자로서민주화운동에앞장서기도했다.노후에조용히산속에서살기위해경북상주시화북면속리산문장대부근에속리산산골짝펜션을지어10여년간운영하다건강이안좋아져그만두었다.
어려서부터글쓰기를좋아했고,2006년『창조문학』에서입선을해틈틈이써온글을모아회갑기념으로수필집『농부일기』를출간했다.지금은두아들을분가시키고아내와함께아흔이넘은노모를모시고텃밭을가꾸면서고향땅에서살고있다.

목차

머리말

1.기성회비
2.술지게미
3.중학교입시
4.가을소풍
5.뒷간
6.노름
7.장마와낚시
8.강냉이죽
9.은자의가방
10.글짓기대회
11.산불
12.타이야표꺼먹고무신
13.이쁜애
14.이쁜애2
15.이쁜애3
16.이쁜애4
17.이쁜애5
18.덕구
19.십바리차
20.상감
21.지게
22.누렁이
23.진학시험
24.꽁치한마리
25.교복입은은자
26.형아의껌
27.닭고기
28.거지
29.좋은친구명구
30.명구2
31.살구
32.재건중학교
33.여자동창
34.참새구이
35.눈이펑펑쏟아지던날
36.행상집
37.영숙이
38.영숙이2
39.이쁜토끼
40.영숙이편지
41.서울행
42.다시농사꾼이되어
43.서울행2
44.서울행3
45.서울1
46.서울2
47.서울3
48.서울4
49.일기
50.그리움
51.귀향
52.목욕탕
53.목욕탕2
54.고무줄공장
55.공장장이되다
56.검정고시
57.우유배달
58.귀향
59.고등학생
60.마지막인사

친구의추천_산골짝촌놈의이야기

출판사 서평

가난한시절,가장가난한이들의풍경

가난의풍경은소풍날가장두드러진다.봄소풍때도시락을싸들고신나게아랫고개를내려가다가이슬내린풀밭길에미끄러지는바람에검정고무신코빼기가쭉찢어졌다.우선급한대로칡넝쿨을끊어고무신과발을고정시켜학교로갔다.하지만“보물찾기시간에도난아무것도찾지못했으며,이쁘게싸온김밥이며도시락에너무나기가죽고,나의초라한꽁보리밥에짱아찌도시락이부끄러워바위뒤에몰래숨어서퍼먹어야했다.”창피함이극에달한것은저자의집이어우리로기르는소의주인집달은자의한마디말때문이었다.“거지야!”이단어가가슴에콕박혀지워지지않았다.몇달후가을소풍날놀림당한기억때문에소풍을포기한채누렁이를데려가소풀을뜯기고있었다.그런데하필반동무들이그길을지나간다.“이런몰골을반동무들에게보일순없지.”그는“부지런히소를몰고개울을건너보이지않는산속으로들어가소풍이끝나모두돌아갈때까지숨어있었다.”아이의부끄러움은그해뿐아니라어린시절내내장면을바꿔가며문득문득스며나왔다.
학교를파하고가끔들르는외가에는언제나반겨주는외할머니,외삼촌내외가계셔늘가고만싶다.특히외숙모님은보리밥을한사발눌러담아상을차려주신다.그날은뜯어진바지도벗겨서꿰매주시고머리온군데난부스럼에고약을붙여주시기도했다.그러곤집에가는길에외삼촌이이쁜토끼한마리를들려주셨다.“매일같이학교갔다오는길엔토끼가좋아하는풀을골라서뜯어다주고,똥도치워주며이쁜이가나날이잘크는즐거움에푹빠졌다.”어느날빨간눈알로날반겨주던이쁜이가갑자기보이질않았다.고개를푹숙이신엄마가나한테와‘아랫집개가물어죽였어’라고말하셨다.저자는그만풀썩주저앉아목놓아울었다.“안돼유.그놈내용서못해유.꼭두들겨패서이쁜이원수를갚을거유”하며발버둥쳤으나엄마의말림에영영가질못했다.진실은밤에,그것도소곤소곤거리는말들속에서밝혀지는법.“‘저애가그렇게예뻐하는걸.’아무리약할려했어도잘못이라는아버지의말.그래도당신이이거라도먹고힘을내야우리가잘살거아니냐는엄마의말.”사실의전모를알게돼이제원수도갚을수없지만,저자는기운없어하며자주누우시던아버지의모습이떠올라밤새이불을뒤척이며잠을못이뤘다.

아이가본어른들의삶

“에구,고얀인간.”엄마가큰아버지를부르는말이었다.동네문전옥답은다소유한데다고래등같은기와집에서양반입네하고살던가문에서는꼭자기삶하나간수못해집안을풍비박산내고,동네친척과주민들입방아에오르는자식이꼭한명씩있었다.저자의아버지는작은할머니소생이라늘천대만받았고일제강점기에는보국대에까지끌려갔다.게다가아버지는큰댁머농사를다지어주며가난속에서기죽어살았건만,큰아버지는“그많은재산다소유하시곤,겨울이면노름판에서이곳저곳다날려보”내“그럴때마다엄미와아버지께선한숨을지으며욕을해댔”던일을목격한게아픈기록으로남겨졌다.
시골에서는과부와이웃집유부남의이불속장면이어린아이의눈에도쉽게목격되곤했다.그날도어김없이학교에서돌아와풀뜯기러소를몰고나갔다.“외딴집쪽으로소를몰아풀을뜯기다보니누렇게탐스레잘익은살구열매가나를유혹한다.소꼴비를소등에얹어놓고는살금살금살구나무에올라잘익은살구알을따서입에넣으니우와맛좋다.”이때다!“위방문사이로과부아줌마가끙끙대는소리와함께보인다.최목수아저씨랑옷을홀랑벗고열심히방아를찧고있다.잘못하면들켜혼구녕이날텐데.”나무에서내려가자니들킬것같고,다리는점점저려오고,게다가누렁이는어느새남의집옥수수밭에들어가옥수수를모조리뜯어먹고있었다.대략난감의상황에서저자는나무에서내려오는데그만주머니속살구들이떨어지는소리에최목수아지씨가쫓아나와멱살을움켜잡았다.목수아저씨는“아무에게도말하지마,하고겁을주며돈십원을준다.겁에질린나는절대아무에게도말하지않기로약속하고는십원을받아들고안심을했다.허어,살구몰래따먹고도혼도안나고거기다돈까지얻었으니오늘횡재했다.”

공장노동자로시작하는첫서울살이와그후의나날들

꼬끼오,새벽닭이드디어운다.짝사랑하던영숙이는서울로간지오래다.서울삼청동고둥학교선생님집에식모로살며독학한다고편지를보내왔다.저자역시농사일의지긋지긋함에몸서리치며서울행을결심했다.“서울은공부도할수있는천국이구나.”거기가서영숙이도만나고,공부도하고,꼭출세하리라.때마침서울사는한동네형이고향에다니러왔다.저자는밤중에몰래형을찾아가나도서울로데려가달라고부탁했다.반드시이곳을떠나리라는결심으로누나의숨겨논돈을훔치고,형아수학여행갈때산가방도몰래꺼내옷몇가지챙겨서헛간볏짚속에숨겨두었다.
“지긋지긋힘든지게질도,농사일도이젠안녕이구나.서울가공부도많이하고돈도많이벌어,꼭출세해서돌아오리라.누나야,동생들아모두잘들있거라.”하지만첫번째서울행시도는엄마한테목덜미를붙잡히면서처절하게실패했다.“붙잡혀집에오니서럽기만하다.서울가공부하고출세하려는데왜못가게하느냐.내가머슴이냐.부지깽이를휘두르는엄마의손목을잡고대들었다.그래차라리죽자!평생을지게질로살바엔죽는게낫겠다.광구석의양잿물을찾아들고나오는데,누나가비명을지르며가로챈다.”
그후로도망가는데실패하길몇차례였다.하지만틈틈이칡넝쿨을끊어다시장에가서열심히판덕분에다시서울갈차비를몰래마련할수있었다.온몸은풀에스치고베여독이올라상처투성이가됐지만신이났다.그러곤마침내서울에입성하는데성공한다.그런데……
저자가처음도착한곳은마포공덕동굴다리밑이었다.하지만기대와달리“화려한서울의모습은간곳이없고,판자로얼기설기지은집들과꼬불꼬불이어지는골목길은질척이는흙길로고향의촌길만도못한다.”동향출신의형이있다던알루미늄공장을찾아갔건만“허름한문을열고들어서니코를찌를듯한독한냄새가풍기고,고막이찢어질듯한소음속에들어선나를아무도바라보지않”는다.형은그곳을이미떠난터라저자는공장바깥에하루종일앉아있다가밤에공장바닥에박스를깔고잠이들었다.첫날공장의밤을시작으로저자의파란만장한서울살이일기는계속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