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의 문장 (신유한 평전)

천하제일의 문장 (신유한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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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지방 서얼로 태어난 비운의 문인
천하제일의 문장을 꿈꾸며
조선 문단에 파문을 일으키다

길이 남은 통신사행록 『해유록』의 저자 청천 신유한
논란의 중심에 선 정통 바깥의 문장과
시대의 제약을 넘어 새로운 경계를 열어젖힌 문학

“어떤 이들은 자네더러 구양수, 소식과 같이 절실하고 상세한 문장을 하지 않고, 왜 일부러 읽기 어려운 문장을 쓰는가라고 하지. 또 어떤 이들은 삼당三唐의 아리땁고 정이 가득한 시를 쓰지 않고 왜 일부러 싱겁게 맛없는 시를 쓰는가라고 하지. 그런 이들은 세상의 변화도 문체도 알지 못하는 걸세. 시대에 따라 문장은 변하기 마련이네. 옛 문장가들은 자기만의 의장意匠을 세웠지. 왜 자네한테만 그리 의심하는지 모르겠네. (…) 그대의 문장과 시는 읽기 힘든 곳이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있긴 하네. 아무 맛이 없는 중에 씹으면 씹을수록 더욱 빼어나지. 애당초 절실하지 않고 정이 가득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네. 옛사람이 적는 대로 써 내려가고 눈앞에서 읊조리는 것과는 다르지. 어찌 그대의 병폐라고 할 것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원래 다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길 좋아하지. 너무 개의치 말게나.” _손명래, 「신유한의 문장을 논하는 말論申周伯文章說」
저자

하지영

세종대학교대양휴머니티칼리지초빙교수.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에서조선후기한문산문론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조선후기사유와글쓰기방식에나타난변화에관심을가지고연구를진행하고있다.「18세기조선과일본문단에서의상고적문학론의배경과그추이」「혜담집蕙?集에나타난19세기사랑과욕망」등다수의논저가있다.

목차

머리말

1장밀양에서다시가야산까지
1.시골유생신유한
가야산,내가돌아갈곳|대나무골에서태어난아이|서얼이라는굴레|특이한문장수업
2.서울나그네살이
서울가는길|촉석루에서다|임춘을다시세상에부르다|장원급제하다|오랜기다림|봉상시관원으로서의삶|남산에서서울을내려다보며
3.지방고을을전전하며
척박한고을의수령|지나치게부드러운원님|어쩌면삶이이리도고달픈가
4.가야산기슭에서운명하다

2장바다건너일본으로
1.멀리일본에서노닐다
2.오랑캐가사는신선의땅,일본
신선의땅|화려한도시|긴장과갈등속사행길
3.일본문사와의만남
사행의동반자아메노모리호슈|겟신쇼탄과의신교|일본문사와의수창|도리야마시켄의시를읽다
4.통신사행,그후_

3장나를알아줄이누구인가
1.마음이같은벗,최성대
진정한지기|필원에서의밤|평생을함께하다|부부로기억되는우정
2.불우함을위로받다
눈오는밤의시회|서얼차별을철폐하라
3.문예에노닐다
김창흡의조언|이병연과의시교|적벽부를모의하다|함께옛것을이야기하다|영매의해산금연주
4.마음의스승
연천에서만난허목|최치원을사모하다

4장경계밖을노닐다
1.옛글에서길을찾다
문장으로논란을일으키다|선진양한의문풍을꿈꾸다|천기에응하고마음의소리를담아라|글은글일뿐
2.나는방외에서노니는자
『산해경』을펼치며세상밖을신유하네|모든것은물거품이다|노승과의이야기
3.천하제일의문장
홀로가는나그네|한계없는용문|정신까지모사하다|허와실이공존하는문장|참을얻는놀이|현실을향한날카로운시선

5장.일대의문호
1.후학을양성하며
신유한의특이한교수법|신유한과그의문도
2.청천신유한,그후
30년동안도성의문단을주도하다|경계밖새로운경계를열다

주註
청천신유한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18세기개인의발견’시리즈는신유한,조귀명,이용휴,유한준의생애를비평적시각으로조명한다.동아시아에서‘개인’에대한사유는전국시대양주이래로시대전환기마다출현해왔다.당대의지배적가치관에동의못하거나이질감,소외감을느끼는순간개인은공동체와거리를두며자기만의느낌,감정,생각을일구어나갔다.이시리즈는그중에서도자주거론된북학파가아닌,또다른방향에서새로운사유를모색한네인물을다룬다.그중이책이조명하는청천靑泉신유한申維翰(1681~1752)은뛰어난문재를가졌음에도불구하고서얼로태어난비운의문인이며,당대의신분적·계급적한계와부딪히는과정에서독창적인문장과문학론을펼친인물이다.
신유한은우리에게흔히통신사행록『해유록海遊錄』의저자로알려져있다.하지만『해유록』못지않게빼어난신유한의다른많은작품은그간알려지지않았다.이책은신유한의문집『청천집靑泉集』을포함해그가남긴독자적인문학세계를충실히복원하며,그의문학에서삶을읽어내고삶에서문학을읽어내는방식으로신유한이라는인물을입체적으로조명한다.그과정에서드러나는것은사회가부여한한계때문에좌절해야만했던선비의포부,그렇게수십년을살며벼려낸경계밖주체로서의감성과사유,그리고그모든것이뒤섞여만들어진‘천하제일의문장’에대한애착과문인으로서의기상일것이다.이로써독자들은당대와불화한개인이어떻게자기를만들어나갔는지에대한구체적인사례하나를볼수있다.
이책의장점은방대한자료를참조하면서도딱딱하지않은서술로대중에게다가선다는데있다.저자는신유한의문집『청천집』과통신사행록『해유록』은물론이거니와조선왕조실록과승정원일기,신유한을언급한적있는여타인물의기록까지도충실히끌어모았다.그러면서도단순히자료모음에그치지않고,‘경계바깥에서자기를찾아나간인물’이라는관점으로그의삶에서사를부여하고있다.인물들간의서신이나대화를따라가다보면독자들은마치긴옛날이야기를읽는듯한경험을하게될것이다.
더군다나신유한이직면했던문제는지금의우리와도멀리있지않다.정통을따르지않는문장때문에중심부로부터배척당하고고민했던그의모습은,자기가일반적인기준에맞는지아닌지를고민하고두려워하는현대인의모습과도겹쳐진다.하지만신유한은남들에게자기를맞추기보다자기만의길을개척했으며,그런그의삶은저마다다른개성을가지고살아가는지금의우리에게도위로와귀감이될수있을것이다.

뛰어난문재를가진지방서얼

“구구하고비루한곳에거처하는선비는밭두둑사이에서몸을일으켜보아도그재주가미관하나에도얻을수없는지라,발바닥에물집이잡힐정도로천리먼길을오지만벼슬길에서는아무런뜻을얻지못하고물러날적에는또황황하게물러난다.아,슬프다.”(「목멱산기木?山記」)

신유한은어릴때부터문학에남다른재능을보였다.연보에따르면신유한은돌잔치날『효경』을집어들고어머니에게배우기를청했다고한다.5,6세쯤에는서당선생에게굴원의「이소」를가르쳐달라청하기도했는데,선생이그작품은어른들도잘이해할수없다고하자신유한은뜻을알지는못해도혀가있으니소리를배울것이라고말했다고한다.여기서신유한의독특한문학적감각이드러난다.바로글의내용보다글의이미지와음률자체에매료되었다는것이다.게다가일반적인서당교육을따르지않았다는기록도남아있는것을보면,이후남들과다른문장으로논란의중심에서게되는것은어릴때부터예견된일이었을지도모른다.
하지만일반적인문장이아닐뿐,신유한의글은틀림없이명문이었다.평균합격연령이34.4세였던당시의진사시에신유한은25세의젊은나이로합격했다.그리고30대초반에이미자신의문명을세상에떨치게한시「촉석루에제하다」를내놓았다.이시는많은이에게회자되어300편에가까운차운시를남겼으며,중국에까지전해져좋은평을받았다는기록도있다.그리고33세의나이에장원급제했으며이때쓴「작고석탕참부」는당시의일반적인안목에부합하지않았음에도불구하고사람들사이에서명작으로인정받았다.
하지만그는4년가까이마땅한직책에임명되지못한채기다려야했다.지방출신이라기반이없었던데다서얼이라는신분적한계가작용했던것으로보인다.기다림끝에봉상시에서일하며나라의중요한의례를담당하게되었으나그마저높은직책으로올라가지는못했고,어디까지나실무를담당하는하급관리이상으로는대우받지못했다.지방현감직책과봉상시업무를오가는동안일부문인과관료가그의억울함을논하기도했지만아직출신과신분의한계는공고했고,그는끝내나라의신하로서출세하지못하고고향으로돌아가게된다.이에대한억울함은남산에올라서울을내려다보고지은글「목멱산기」에구체적이고도절절하게드러나있다.

『해유록』으로문명을떨치다

“왼쪽으로바라보니큰바다가푸른하늘에맞닿아천하에아무것도내눈을가리는것이없었다.아늑하게그끝을알수없고드넓어한계를알수없었다.생각해보면구주九州안의백공百工만물,고금의서적,사마천이구경했다는것과초나라좌사左史가읽고기록한것이탄환처럼조그마한것이었다.”(『해유록』)

그런신유한이기해년조선통신사파견에제술관으로서동행하게된것은그가문인으로서만큼은널리인정받고있었다는증거다.제술관의주요임무는통신사행때필요한글을작성하고여러일본문사의시문수창에응하는것이었다.17세기후반부터일본문인들의수준이높아지면서조선의문학을대표하는제술관의중요성은더중요해졌다.그는약7개월의사행기간에6000여수의시를창화했을뿐만아니라,일본의길위에서보고듣고느낀것을기록한통신사행록『해유록』을저술했다.
『해유록』은아름다운일본의자연에대한감상외에도일본의풍속,문물,정치·사회적정황등을치밀하게기록하고있어통신사행을떠나는후대문인들에게일본에대한필수참조자료로활용되었다.『해유록』은그중요성과문예적성취면에서박지원의『열하일기』와함께‘기행문자의쌍벽’이라는평을받았다.게다가조선후기에는집집마다소장하고애송했을정도로활발하게유통되었다고한다.또한이전시기의통신사문학이일본의물건이나풍습을객관적으로기록하고정보를전달하기에만그쳤던것에비해,신유한은호기심가득한시선으로순수하게일본의산천과사람들을관찰하면서거기에매혹되기도하고감탄하기도하는등통신사문학의새로운가능성을보여줬다.
통신사행이후신유한의문명은더욱높아졌다.정6품성균관전적에올랐으며,그의시구를일본사람들까지외우고있다는기록도있다.더군다나신유한은재능에도불구하고큰뜻을펼칠수없는좁은땅바깥에끝없는바다와넓은세계가있다는사실을깨닫게되었다.상상의세계를유람하며자기안팎의경계를넘고자하는신유한의욕망은통신사행을계기로더강렬해졌다.

논란을불러일으킨문장

“부귀와공업은남에게달려있는것이지나에게달려있지않으며,오로지문장만이남에게달려있지않고나에게달려있음을알겠도다.나에게달려있는것은본분이아니겠는가.”

신유한은이름난문인이었지만,그이름만큼수군거림이따라다녔다.조선의문사들은신유한의문장이괴이하고난해하며정도를따르지않는다고비판했다.그는왕세정,이반룡등의전후칠자를연상케하는문장을구사했는데,이는조선문인들에게전범으로받아들여지던당나라의시와송나라의산문과는달랐다.최창대나윤순과주고받은서신을보면신유한이특이한문장을구사하게된이유를알수있다.신유한은어릴적일반적인학습과정을따르지않았으며육경과진한고문을좋아하여주로읽었는데,이런취향이진한시대의미감을추구하던전후칠자의문풍과맞아떨어진것이다.
신유한은도와문이별개라고주장하는것으로도구설수에올랐다.당시문인들은성리학적관점에따라,유교적도를보완해주는의미로서만문학을인정했다.그러나신유한은문학이세상에어떠한역할을해야하는지와는상관없이문학에는독립된가치가있다고주장했다.더나아가,그는문장이야말로개인이온전히성취할수있는유일한것이라정의하기에이른다.이는신유한의삶에서비롯된것인데,지방서얼이라는한계와상관없이그가성취할수있는유일한것이바로문장이었기때문이다.
이처럼신유한의문학은그의삶과떼놓을수없어서,그의작품에는강한자의식을드러내거나자신의문학세계를해명하는대목이많이등장한다.신유한에게중요한주제는바로‘나’였고,이는나그네의모습으로자주형상화된다.그의시에는억울함과분노,서글픔등이공존했으며후기로갈수록점점그길이도늘어났다.하지만신유한은스스로를‘용문’이라명명하고자기내면을광대한‘운몽호’라고칭하는등,불우함을토로하는것에서그치지않고삶과문학적지향을확실히했으며문학에대한자부와포부를드러내는데까지나아갈수있었다.

많은후학을양성하고명성을남기다

신유한은특이한교육법으로도유명했다.그는당장의과거시험에연연하거나정해진과정을따르지않고,제자들의부족한점과보완해야할점을세심하게살펴각각에게맞는방법을찾아주었다.이는기존의형식이나관습보다‘진眞’,즉세계와사물의참된모습을발견하고추구하는것이진정한문학의길이라는그의입장과도관련된다.박이곤,정원시,원경하,정란등,신유한의문하에서배출된문인들은요직에진출하고글과공적으로이름을남겼다.
신유한개인의삶은불우했지만그의문장만은불우하지않았던것이다.그의문집『청천집』의서문을쓴이미는신유한이뛰어난문장으로시대와한계를극복했다고평가했으며,『청천집』속집의서문을쓴권연하역시신유한을두고몇세대에한번나오는영재라며극찬했다.훗날성대중은신유한이남쪽땅의일개선비로태어나30년동안문단을주도했다고그를소개하기도했다.실제로그의『청천집』은수없이인쇄하는바람에목판이금방닳아버렸다고하며,이를적극적으로향유하기위해후대문인들이필사한판본이현재까지다수남아있다.
그의삶은결국이질적인개인들이하나둘씩나타나던조선후기에서‘나’라는존재와욕망을이야기하려는일군의흐름에위치한다.쉽사리인정받지못하는현실속에서그는종종좌절하기도했고경계바깥을서성였으나,문학으로그단단한벽을넘어서는데성공했다.그의문학은주류가되지는못했지만자신만의새로운경계를열었다고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