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길 (유한준 평전)

저마다의 길 (유한준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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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각자의 길을 추구하는 각도기도론을 바탕으로
나 자신을 응시하는 자기 서사의 문학과
서로 다른 개인의 취향을 긍정하는 문학관을 정립하다
살아생전 스스로 묘지명을 써내려간 저암 유한준
그의 붓끝은 사대부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중서층 여항인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각별하게 그려내다

“여성汝成(유한준의 자)은 뛰어난 재주가 있지만 시대를 만나지 못해 문장을 통해 자기의 견해를 드러냈다. 그 말은 넓고 크며 분방함이 넘치면서도 법도가 있었다. 사람들은 문장의 높고 낮음이 그 시대의 풍기에 제한받는다고 말하는데, 그는 금세에 살면서도 고인의 문장에 능하니, 어찌 또한 위대하지 않겠는가?”
박윤원이 쓴 『자저』 서문
저자

박경남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교수.서울대학교인문대학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에서한국한문학전공으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유한준의도문분리론과산문세계」(2009)로박사논문을쓴후,유한준연구를지속하면서그와관련된연구과제를심화·확대하는과정에서개인의발견,명대복고파의재해석,문학속상인형상연구를진행하고있다.저서로는『중국문학속상인세계』(공역,2017),『동아시아문학속상인형상』(공저,2017),『정조와정조이후:정조시대와19세기의연속과단절』(공저,2017)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장나는나를기록한다
1.스스로묘지명을짓다
나의묘지명|나의이름은|나의선조는
2.그가평생머물렀던곳
나의문학은|나의관직은|나란사람은

2장나의벗,친구이자적인
1.스승이자지기였던:김이곤과남유용
한가지기예라도|시선생김이곤|문장지기남유용
2.절차탁마,괄목상대:박윤원과유한준
도문분리서신논쟁|도문일치론과각도기도론|논쟁그후
3.싸우거나흠모하거나:유한준과박지원
두아들이전하는말|묫자리분쟁의진실|창애에게보낸편지|그리움의헌사

3장각자자신의길을가라
1.각자스스로의길을찾아
보편적도는없다|자기만의완성
2.나자신을응시하는문학
자기서사의문학|우려공보의운명|내삶의화두는문학
3.내천성과기호대로
진한고문을좋아하다|모든문장에능통하라|문장은음식과같다

4장타자와의전면적소통
1.노장의유가적수용을넘어
유학자들의노자이해|인의의절대적가치부정|노장적자아로의변신|차별은권세가의일일뿐
2.당파적편견을벗어나진실을
당파적인물,유한준?|『반계수록』의국가적선양|개혁안에대한찬반론|『반계수록』독서와공감|「유형원전」을창작하다|당파적편견에서벗어나
3.신분을넘어귀감이된사람
본분을망각한사대부|신분은낮지만기억되어야할|유한준이만난중인과서얼들|재능은뛰어났으나불우한|역병을고친민중의,홍익만|그림을사랑한사람,김광국

5장나만의문학,개인의발견
1.분방한사유가담긴자기만의문장
동시대인들의증언|말년의충격과침잠
2.18세기조선문인과개인의발견
나만의문학:조귀명·이용휴·이언진|개인과개체에대한자각:유만주·이옥


저암유한준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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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8세기개인의발견’시리즈는신유한,조귀명,이용휴,유한준의생애를비평적시각으로조명한다.동아시아에서‘개인’에대한사유는전국시대양주이래로시대전환기마다출현해왔다.당대의지배적가치관에동의못하거나이질감,소외감을느끼는순간개인은공동체와거리를두며자기만의느낌,감정,생각을일구어나갔다.이시리즈는그중에서도자주거론된북학파가아닌,또다른방향에서새로운사유를모색한네인물을다룬다.특히유한준兪漢雋(1732~1811)은각자의길을가는개인의삶을가치있게모색하며스스로를응시하는자기서사작품을다수남겼다.그가내세운각도기도론各道其道論은‘각자자신의도를도로삼는다’는것으로,도의정점은일괄적이지않고각자의원칙과방법을하나의도로삼아자신의이상을추구해야정점에도달한다는것이그핵심이다.당파적이념을넘어유형원의삶과사상을긍정하고,절친한친구와의논쟁에서허심탄회하게토론을펼치며,그자신이사대부였음에도사대부계층의잘못된행태를꼬집고주목받지못하는중서층의삶을재조명하고자힘쓴데서그의신념이얼마나뿌리깊게내면에자리잡았는지확인할수있다.
저자는크게알려지지않은인물유한준에대해박사논문을쓰게되면서유한준의삶에관심을갖게되었고,이후유한준연구를지속해오고있다.이책은저자의박사논문「유한준의도문분리론과산문세계」를토대로그후에차곡차곡쌓인글들을이평전의기획에맞게새롭게쓰고다듬어배치한것이다.개인의가치가더욱주목받는오늘,200여년전세상을떠난유한준에게서스스로에집중하고탐구하는힘과더불어어떻게개인의도를도로삼아살아갈수있을지,또한사회가주목하지않는개인의삶을조명하는일의중요성에대해서도배울수있으리라기대된다.

나를기록하는삶:스스로묘지명을남기다

어느날문득죽음이임박했다고느낀77세의노인유한준은자신의삶을기록해야할필요성을느낀다.정직한글쓰기,그것은평생유한준이견지했던삶의태도였고,이는거짓없는삶에대한열망이었다.어린나이에부친과형을잃고가장이된기억,훌륭한글을읽고불후의문장을남기고자밤을지새웠던날들,느지막이시작했던관직생활의보람과후회……이모든순간이주마등처럼머릿속을스쳐지나갔다.묘지명이란자식이부모의생을기록해그삶을기억하고찬양하는것이었고부모의죽음앞에서자식된도리를다하는마지막방법이었다.유한준은이러한묘지명을신뢰할수없었다.

쓰지않는것이없는행장의신뢰할수없는말에기대어무궁함을도모하느니,차라리나의일과나의행실을내가묘지명으로쓰면진실하고확실하며간략하고과장되지않아오히려믿을만할것이다.이에스스로묘지명을짓는다.

그가스스로묘지명을남긴데는그가아끼던아들이그보다먼저세상을뜬까닭도분명있을것이다.하지만바로그랬기때문에오히려그는자신의일생을스스로기록할기회를얻었다.유한준이남긴묘지명은간략하다.유한준은과거경화세족기계유씨선조들의일생을세세하게기록해1만자에가까운「자전」이라는기록을남겼음에도,자신의묘지명에는이를단40자로요약해실었다.
묘지명마지막에그는자신의문학이껍데기에불과하며,후세에도알아줄이없음을통탄해한다.명예와지위도얻지못하고,뜻을계승할자식도없으며,평생업으로삼아왔던저술도한낱껍데기일뿐이라고말이다.하지만‘금세의거장’으로불렸던저암의문학에대한당대인들의높은평가를볼때,이는사실이아니다.이자조적인말들은오히려타인들의평가기준보다높았던저암의평가기준이가져온자기겸허에가깝다.그럼에도그는마지막구절에서한가닥희망을버리지않는다.비록쓸쓸하게생을마감할지라도만약자신의문학이후세에까지빛을발하고있다면,언젠가자신을알아줄누군가를기다리며명사銘辭를짓는다.

유한준이만난사람들,친구이자적

이책에서또한주목하고있는것은유한준이사귀었던지기知己들과유한준의관계다.그중에서특히눈여겨볼만한인물은근재박윤원(영숙)과연암박지원이다.
박윤원朴胤源(1734~1799)은유한준과는죽마고우로고문을함께연마했으나도학공부에전심하게되면서유한준과서로한치의양보도없는‘도문분리논쟁’을벌였던학자다.그들이30대중반주고받았던편지를보면두사람은친구라기보다마치상대의논리를깨부수려는적으로보인다.박윤원은서신을통해유한준에게몇차례도학에힘쓸것을권하며유한준의잘못된생각을일일이짚어내는장문의편지를쓰기도한다.하지만유한준은이에굴복하지않고논리적인태도로둘의차이가도문관계에대한관점차이라며,도문일치론의허상을밝히는데힘쓴다.박윤원의그칠줄모르는설득에도유한준은끝까지자신의주장을포기하지않는다.그러나이후에도둘의교유가지속되었다는것은문집을통해쉽게확인할수있다.박윤원과유한준은서로의차이를인정하면서도서로를끝까지존중하는모습을통해,벗이란뜻을같이하는동지가아니라길이다른두사람이상대방을존중하면서끝까지소통을이어가는것이진정한우정임을보여준다.

박지원의둘째아들인박종채가쓴『과정록』에근거해연암박지원朴趾源(1737~1805)과유한준의사이가좋지않았다고알려져있다.박지원에게인정받지못한유한준이평소반감을갖고『열하일기』를노호지고虜號之稿(오랑캐의연호를사용한원고)라비난하고,만년에‘묫자리분쟁’으로두집안이원수지간이되었다는것이다.하지만둘의문집과유한준의아들인유만주兪晩柱의『흠영』,그외주변인들의문집및실록을『과정록』과비교해볼때이를온전한사실로받아들이기는어렵다.두사람이서로다른문학관으로긴장관계에있었던것은분명해보이지만,그로인해상대방을해코지하거나불구대천의원수로여길만큼사적인감정이깊었다고보기는어렵다.박지원의『연암집』과유한준의『자저』어디에서도서로에대한원망이담긴글은찾을수없으며,다만박지원이남긴「답창애」라는편지에서연암이‘사물의명칭이빌려온것이많고끌어온근거들이딱들어맞지않는다’고유한준을지적한것은사실이다.그러나앞서박윤원과의서신논쟁에서유한준이자신의문학관을포기하지않았듯이,유한준은「답창애」에적힌연암의비판을경청하는동시에묵묵히자기의길을갔을거라고생각된다.그는박윤원과박지원에대해아래와같은헌사를남겼다.

막그뜻을세울때외람되게도근재박영숙과연암박미중이좋은벗이되어주었으니,모두가한창젊은나이였다.영숙은처음에는고문에뜻을두어문장이전아하고법도가있었는데중년이되어문장을통해도에입문하여뛰어난유림의표준이되었다.미중은재주와기품이특히높아문장으로스스로경지에올라규범을따르는것을부끄러워하여투식에서벗어나조소하고풍자하며문장을유희로삼았다.대체로모두고아하면서도의기로운사람들이다.

자기서사작품으로표출한유한준의내면

「우려문수右閭問數」는유한준이30대중반에창작한문대체자기서사작품이다.「우려문수」에서유한준은우려공보와동곽고사라는가공의인물을만들어자신이느끼는갈등과원망을토로하면서자신의불우한삶을긍정한다.우려공보는자신의고달프고가난한삶에한숨짓는사람이며동곽고사는신통한점쟁이도사다.3일동안목욕재계를한우려공보는동곽고사를찾아가자신의운수를묻는다.그러면서우려공보는자신의포부와현실의어려움을토로하며이야기가전개된다.
우려공보를자신의분신으로삼은유한준은「우려문수」에서문학에대한자신의포부와문학관을밝힌다.우려공보는동곽고사에게사대부들에대한비판을쏟아내면서호의호식하는삶,자신처럼끊임없이정진하지만궁핍함에시달리는삶을대조적으로기술한다.하지만동곽고사가해주는말은‘가난한운명을타고났으니그것을벗어날수없다’는것이다였다.동곽고사는산중에버려진소나무와제물로선택되어우리에갇혀호의호식하는소의운명을대비적으로제시하며,소처럼분수에맞지않는과도한영예로움이오히려재앙으로가는지름길임을일깨워준다.

사람들이모두황망할때
그대홀로마음여유롭네.
가난이그대에게
넉넉히줌이이미도타우니
그대어찌다시원망하리
가난과함께휴식할지어다

유한준은이처럼동곽고사와우려공보의입을빌려자신의불만과내적갈등을거침없이표출하며결국문장가로서의운명을받아들인다.문대체형식을빌린이작품은현실의갈등을감추고화자의삶을이상화하는규범화된문법을따르지않았다는특징이있다.유한준은훗날「자전」에「우려문수」의중요한부분만을발췌요약했는데,여기서우려공보를‘한준’이라는실명으로모두바꾼다.이를통해30대중반의문학가유한준이실제로자신의문학이세상에쓰임이되지못해갈등과고민에휩싸였다는것을재차확인할수있다.

사대부를비판하고중서층과교류하다

‘각자자신의길을가라’는각도기도론을펼치고그자신의정치적입장과는정반대에있는사람의업적을높이평가할줄알았던유한준이가장용납하기어려웠던것은바로타락한사대부의삶이었다.박지원의「양반전」처럼소설의형식을빌려사대부들을비판할수도있었지만유한준은어떠한장치도없이거침없는직설로사대부의잘못을낱낱이지적한다.

세상의소위사대부가에주색잡기에빠진이들이많습니다.(…)그들은부모형제들이출세해서신분이높은친족들이많고집은부유해서돈을산처럼쌓아놓고호의호식하며그속에서자라났지만배우지못해무식하기까지하니괴상하고망측함이이와같이심합니다.

그자신이사대부계급에속했음에도사대부의타락과몰락을바라보며감춤없이비난했던이유는그가지식인으로서의자기역할을수행하고자했기때문이다.한편중서층과는깊고넓은교유를했는데,특히신분제사회에서불가피하게소외될수밖에없었던서얼과중인계급의삶에각별한애정이있었다.김광국이바로그예다.조선후기서화수장가였던석농김광국金光國(1727~1797)이백발의노인이된후에야유한준은비로소그와교유하게된다.김광국은대대로내의를역임한중인의명문가로,그는자신의서화컬렉션인『석농화원石農?苑』을유한준에게가져다주며발문을요구했다.

그림을알면진정사랑하게되고사랑하면진정보고싶고,보면그것을모으게되니이는모으기만하는것이아니다.

유한준은김광국이비단그림을수집하기만하는사람이아니라그림으로사람을만나고,또깊게사색하는사람이라는것을알고,그림을모으기만하는사대부들과김광국을선긋는다.유한준은부패하고무능한사대부를거침없이비판할수있으면서도,힘겨운처지에도자신의삶과열정을가꾸어나가는중서층여항인들의삶에우호적이었다.이는이념이나신분적편견없이오직실제적사실에입각해모든개인의모습을드러내고자하는유한준을살펴볼수있는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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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은하나라도배울점이있는사람이라면나이와지위고하를막론하고선생으로모실줄아는사람이었다.모든개인의삶을가치있고아름답게여겼기때문에벗과의서신논쟁에서도허심탄회하게의견을나눴고,사대부를비판할줄알았고중서층과깊이교류했다.비록근대이전지식인이었던그가신분질서자체를문제삼는데에는도달하지못했지만,각자의서사를긍정하는각도기도론,각자의재주와덕행만으로능력에따라존중받는질서를염원했던그의작품에서는계속해서평등사회를실현하려노력했던그의모습이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