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은어

사랑의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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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랑의 은어』는 지난 몇 해간 쓰인 산문들을 엮은 서한나의 첫 단독 저서다. 대전에서 잡지 『보슈BOSHU』를 만들며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공저 『피리 부는 여자들』(BOSHU, 2020)과 『한겨레』 칼럼 ‘서울 말고’, 메일링 서비스 ‘잡문프로젝트’를 발행하는 동안 써온 글들이 그렇게 읽혔다. “몇 번이나 울면서 읽었”고(임승유), “잠을 못 잤다”(이슬아)는 추천의 말들이 증언하듯, 독자는 어떤 열렬함 속에서 그의 글을 만나왔다.

글이 된 삶이 재현이자 환상이라면, 독자가 글을 읽는 동안 글이 독자를 응시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어떤 마음을 먹게 하는 일도. 『사랑의 은어』에는 많은 장소와 인물이 등장한다. “아, 여기는 한국이다”(25) 싶은 장소들의 무서움, 추함, 광기. 이해되지 못한 채 견디어진 세계를 기어코 살아내고야 마는 사람들. 그 잡스러운 세상에서 한없이 무거운 것이 어떻게 한없이 가벼워지는지, 한없이 가벼운 것은 또 어떻게 모든 것을 짓누를 수 있는지-다시 말해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탄생하고 지속되는지를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상함 거대함 지난함에 부딪혀 간과되고 포기되고 망각될 뻔한 사랑을 건져 올린다. 사라지려는 것을 사라지지 않게 하고, 보이지 않게 됨에 저항한다. 일순간의 위력에 제압될 뻔한 오래된 진실, 허술한 장면 아래 잠재하는 과정의 견고한 힘을 드러냄으로써. 단지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기에 이 책의 사랑은 내 것이 아닐 이유가 없고, 우리가 아닐 이유도 없다. 구체성은 은어일지언정 사랑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언어를 통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저자

서한나

1992년대전에서태어났다.대전페미니스트문화기획자그룹보슈BOSHU에서활동한다.[한겨레]에‘서울말고’칼럼을연재중이다.글을쓰다보면친구를만날수있을것같다.친구에게보여준다고생각하면글이잘써지기도한다.엄마에게보여준다고생각하면아무것도안써진다.애인과엄마,그리고친구가주제이자숙제다.여성전용요가원에다니며거기서대화엿듣는것을즐긴다.친구가별로없고시간이많아서혼자있을때는입술이세모가된원인을밝히기위해노력한다.동료들과함께『피리부는여자들』을썼고『사랑의은어』를혼자썼다.『나의복숭아』에도글을썼다.

목차

프롤로그

이국정취
서울을돌아다니며한생각
너는내가아닌것같다
은밀한관심사
타인의방
납골당에가면
분지사람이라고바다를모르겠냐만
번개
착각하지않고서어떻게
산책
벚꽃피는계절
다음계절을기다리는마음
계곡에갔어
놀이터에서
식물원옆카페
바람부는날이면
유성
손가락마디마디분홍색
진실게임
수업
밤이너무크고무거울때생각나는것


겨울에는봄얘기하게된다
맛있는것앞에서환장을하고먹지
항상유머를잃지말자구
길위의엄마
꽃님이의자식농사
삼한사온
이사랑을고백하려다사람들은나가떨어졌다
사랑이그리워?
네가기다리니까집에가야지
저녁은밖에서먹을까


초성
나하고유원지에갈까
우리의시간
말이통하는사람
왜냐고물었다
어깨가건강한사람
우리는그렇게될것이다
랠리
여행
워싱턴김치찌개

수박

오렌지
오렌지기분


버터플라이라넌큘러스
가을하늘
편지
맨얼굴
호텔메모지에적힌말들
친구는동료가된다
동료는친구가된다
우정테스트
샤이닝
위스키바닐라아이스크림


쓰기의즐거움
장면들
김남순의필적
멜론
벽돌로만든집
책상에모과를두고앉으면생각보다향이자주난다
커튼콜
희곡의삼요소
꿈을꾼다
계속시작하기만한다
사랑은감미롭게혁명은치열하게
예스
나를떼어놓고멀리가고싶어
나요즘행복해서글이안써진다
즐거운일기

어떤담배냄새
생각
뺨의총체
데이트
연애를하면서도짝사랑노래를듣는다
나는알고싶은것같다
나는모르고싶은것같다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굳이……싶은모든것을하게하고”(231)

글이된삶이재현이자환상이라면,독자가글을읽는동안글이독자를응시하는일도가능할것이다.독자로하여금어떤마음을먹게하는일도.『사랑의은어』에는많은장소와인물이등장한다.“아,여기는한국이다”(25)싶은장소들의무서움,추함,광기.이해되지못한채견디어진세계를기어코살아내고야마는사람들.그잡스러운세상에서한없이무거운것이어떻게한없이가벼워지는지,한없이가벼운것은또어떻게모든것을짓누를수있는지―다시말해사랑이라는것이어떻게탄생하고지속되는지를저자는이야기한다.그렇게이상함거대함지난함에부딪혀간과되고포기되고망각될뻔한사랑을건져올린다.사라지려는것을사라지지않게하고,보이지않게됨에저항한다.일순간의위력에제압될뻔한오래된진실,허술한장면아래잠재하는과정의견고한힘을드러냄으로써.단지결과이기만한게아니기에이책의사랑은내것이아닐이유가없고,우리가아닐이유도없다.구체성은은어일지언정사랑이라고밖에부를수없는언어를통해서보편성을획득한다.

“이똥집에서우러난경험!”(177)

그리고저자자신의이야기가시작된다.그는독자를부추겼던바로그방식으로익숙한순간들을다시살아내며자기를발견하고사랑을혁명으로서경험하는과정을적어내려간다.“나를제때변호하지못했다는생각과말없이웃던시간이모여”(12)쓰게되었다는글은,“신이나면서도당혹스러웠”(12)던이세계와의불화를돌파해나간다.어려움과불가능함의차이를분명히인식하면서,화해가필요없는세계와결별하고당연한세계를재창조함으로써.
‘죽은자들이깨어날때’글은독자의삶에작가의이름을등장시키는동시에이세계에그의독자를등장시킨다.사랑하는두여자는내밀한둘만의세계로고립되는것이아니라,둘이서세계를부수고나온다.혼자서느낀위화감의맥을끊고그안에흐르던것을밖으로넘치게한다.만나고스며들며여기쓰인이야기를보라고말하는대신,이것을경유해홀로내면을들여다보았을때나타나는그것이바로우리각자의진실임을굳게믿어준다.
바로여기서어떤독자는자기를발견하는것을넘어스스로서한나가될것이다.생각이읽힌다는감각에서생각을내맡긴다는감각으로이동할것이다.그가살고싶어할때우리도살고싶어지고,그가사랑에빠져들때우리도사랑에빠지며,그가허벅지에번지는황홀의극치를라듐이라고말할때우리도그것에피폭된다.작품에독자적인생을부여한다.

“우리의믿음은아주조금씩생겼다”(162)
“시간들을뚫고”(195)

이특별한이중동일시는조건을탁월하게조명하면서도조건을초월할때가능해진다.무엇이거부되는지,어떻게부정되는지는거부하고부정해야할것자체보다그것을거부하고부정하는세계를더드러낸다.어떤성별,어떤계급을가진이들은의심도불안도없이누려온것들이어떤이들에게는삶의목적을압도하는선택으로나타나기도한다.그러나그런날것의현실을잡아다앉히고말을퍼다부으며저자가발디딘곳은그같은현실이주어지기전부터존재했고사라진이후에도존재할자기삶,그만의고유한세계다.
그세계는동세대감수성이나로컬의구수함같은범주에는오롯이담기지않는다.청년여성의삶과중노년여성의삶,태어나지않은여성과죽은여성의삶이다르면얼마나다른가?1960년대와1990년대,2000년대와지금은무엇이어떻게바뀌었나?서한나를다른많은작가와구분짓는글의인상은이런차이를날카롭게인식한상태에서공통을꿰어관통할줄알고,그안에서“천당도지옥도다여기에있다고재미있지않냐고”(231)말할수있을만큼많은것을발견할수있으며,읽는사람들이동참할수있는언어로그발견을활자화할수있기때문에얻어지는것이다.
조명된현실을초월하기위해저자가내어놓는것은글이된삶이다.그가놓인삶의조건들,그것이표현된방식,그리고이책이소설아닌수필이라는사실을통해서독자는세상에없는책이무엇인지를가늠하고,비어있는곳이어디인지를알아차릴수있을것이다.칼로베고살로안아낸현실이미혹보다아름다울수있는것은,그현실이사랑자체이기때문임을다시확인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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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다읽고조금부러웠다.‘조금’이라고적었지만그조금이점점확대되면서,다시살아보고싶다는생각이들었다.서한나는내가살았으면했던그질감으로한시절을살아내고있었다.자기가자기를보살피는게뭔지아는사람처럼말이다.입술을깨물며삼킨감정이자리할시공간을공들여구축해내는작가의문장은,내가놓쳤거나일부러삭제해버린존재들을떠올리게했다.“미로는좋은애가아니었다.하지만언제나좋은사람을좋아하게되는것은아니다”라는문장으로시작되는「손가락마디마디분홍색」은좋아서몇번이나울면서읽었는데,지금부터라도‘미로’를놓치면서는살지않겠다고다짐하고나서야울음을멈출수있었다.
이책에는사람도나오고장소도나오고음식도나온다.색깔도나오고손목을타고흘러내리는과즙도나온다.뭐가나오든작가의사려깊은시선을듬뿍받은후라서어떻게든지살아서나온다.하지만이책이좋은이유가모든존재에공평하게내어준시선때문은아니다.작가는오히려이미충분히관심받는존재들은살짝밀쳐놓고,우리삶에배경처럼존재하는것들을전면화한다.버려진공터에쓰레기를버리는게아니라꽃을심는생활,쟤정말이상해말해버리기전에나의이상함을떠올려보고는이상하게웃음이나버리는생활,견딜수없다는생각이드는저녁에몸을일으켜공들여만든음식을먹는생활.나와너를소외시키지않으면서구체적으로,또박또박살아가는방법을알려준다.이책어디를펼치든살고싶다는마음을챙기게되는것도그래서다.

_임승유·시인

서한나의글을처음읽은밤에는잠을못잤다.못잔이유는많지만지금말할수있는건이것뿐이다.너무커다란반가움때문이었다는얘기.신문에그의칼럼이실리는날이면눈뜨자마자찾아읽는다.도대체매체들이서한나에게더많은지면을할애하지않고뭐하는지답답해하면서.이렇게까지말맛있게쓰는작가가우리또래에또있던가.나는대체불가능한서한나를따라브루클린에가고가수원과유성을배회하고천변을걷고술집에앉고낯선냄새를맡고아직안먹어봤지만알것같은맛을보고더볼것도없이지긋지긋한장면에서환장하게좋은사유를건져올린다.그러다만나보지못한사람들을아끼게되고가보지않은장소들을그리워하게되고야해지고명민해지고서울을이상하게여기게된다.서한나가서울아닌장소에서모아온보물들을궁금해하며이렇게부탁한다.더말해달라고.더가르쳐달라고.그는지금내가가장기다리는작가다.

_이슬아·작가,헤엄출판사대표

레즈비언의경험은언어의부재라는역사가누적된끝에전인지적차원에머무르곤한다.다르게말하자면언어외적차원에서라도―서한나식으로말하자면표현할단어가있기전부터존재해왔다.존재감뚜렷한그물질은우리로하여금굳이,싶으면서도위반을감행케하고언어없이말하기라는모순을저지르게하여레즈비언의공통언어를시어라일컫게한다.명확함에도사라져버리고사라졌어도명확한그시의역사가서한나의삶으로활자화되었다.『사랑의은어』라는제목은시의역사와그의삶을한데요약한다.같은환경에서같은운명에놓인이들이서로비밀을유지하기위하여독특하게사용하는말,은어를발명해서라도사랑을표현하고마는시도들.
내가한나를,그의빛과윤곽을처음알아본,그래서본의아니게아우팅을해버린날은평소에도놀림을받는데책에도놀림가득한어조로등장한다.이책에는그의모습이그대로담기어있으니독자들에게그럴만하지않았는지드디어물을수있게되었다.서한나의은어를알아듣는사람들은“어떻게몰라!”라는내말에호응해줄지모른다.내가서한나를처음만난그날처럼,더많은사람이그를발견하게될순간이왔다는게마치내일인양뿌듯하다.그보다이책이은어로라도표현하고싶었던사랑과그것을발명할줄아는더많은사람을발견해낼일이기대된다.

_이민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