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방의 부처 (김영민 시집)

옆방의 부처 (김영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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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조차 할 수 없다不學詩無以言”
철학자 김영민이 첫 시집 『옆방의 부처』를 출간했다. 인문서를 꾸준히 출간해온 저자가 갑자기 낸 시집에 대해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 법도 하나, 그는 오래전부터 시를 써왔고, 얼마 전 한 매체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 시집에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유의 편린들이 시의 언어로 정제되어 실려 있으며, 매 편의 시마다 ‘시작 노트’라 할 수 있는 짧은 글이 덧붙여져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이드 역할을 한다. 저자는 “말없이 어늑해지는 자리에서 새 말이 돋는 작고 귀한 체험들을 모아 공부의 경위로 삼곤” 했기에, 말-길을 낸다는 의미에서 시와 철학은 그에게 한 켤레를 이룬다. “이제사 시를 낳도록/ 네 소란한 이론들이 사위는 자리에서 맨발로 따라와줘 제발.”(「詩가 되게 해줘」)
시 다음에 덧붙이는 말을 병치한 이유는, 필자의 정신사적 내력에서 시와 산문이 그다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며, 워낙 인간이라는 언어적 의식 속에는 오직 좋은 말의 기억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만들어가는 집에서 시와 철학은 다른 문門을 쓰고 있을 따름이다.
저자

김영민

시인,철학자.『집중과영혼』등을썼으며,이책은등단후의첫시집이다.

목차

자서自序

1부차마,깨칠뻔하였다
세번
더낮게흐를수없는물도
차마,깨칠뻔하였다
차마깨칠뻔하였다(2)
불이(不移)
사람아
옆방의부처
흰나비날아간길엔멧돼지도걷는다
잉어가없다고했다
바다를처음본것은멍게들이아니지
욕(慾)의계보
개들의슬픔을
유성처럼빠른네죄가새벽의흰눈을밟았어

2부말로써말밖을볼까
詩가되게해줘
말로써말밖을볼까
도울수있어요나는
그는말을잘하지요
이해되지않을리가있나요
사전(辭典)을펼치는시간
말을그치고말을기다려요
말이들리지않아,아귀같은주둥이
오해로살이붙어요

3부좋아해요사랑해요지랄(知剌)이에요
동무여
아이러니를부려봐
좋아해요사랑해요지랄(知剌)이에요
그연놈들이부처가될때까지
네가누구인지알아채면
괴물이다
네창밖을염불해봐
네사생활의깊이를말해줄까
밀양
눈밝은노예처럼
인간만이절망이다
지친하루의무게를털고
일꾼들의자리
좋아하면망한다
당신이살아가는지금은언제일까요
낮은곳이말한다
사람이었다
금수강산

4부대숲이반달을쓸듯
대숲이반달을쓸듯
봄의비밀
가을소리
예림서원(藝林書院)
제비
이름이좋아,진달래
남의땅을지나거든

5부사창에동살이돋기전이면
정오의건널목
첫사랑이라이제사조용할까
사창(紗窓)에동살이돋기전이면
연인을잃고스승을찾다
젊은네가죽었다
첫사랑(2),남의여자
고양이를묻는다
나는자객(刺客)이었지
우체부가죽었다
그녀에대하여

출판사 서평

잡담과타락과늙음

“바보들의혀는주저함이없는기하학(…)역사의연금술을증명할때까지/산죽처럼붙박은그자리/바뀌지않는다.”(「불이」)
이시에대해저자가덧붙이는말중“하우下愚는변함없이불이不移한다.불이는어리석음의표상이다”라는문장이있다.바보들은한자리에붙박여혀를놀리며말을많이내뱉지만그것은‘말’이되지않는다.말은언제나안타까운틈사위라는진인사盡人事의역운을선결과제로삼고있기때문이다.주둥이가한없이길어진사람에게도말은얹히지않는다.그들의말은기절한값싼소리일뿐이다.그러니시를찾아가는길은‘기다림’에다름아니다.말을그치고,말을기다려야한다.
나아가말본새는‘늙는’것과어느정도관련지을수있다.늙는것은대개타락이라할수있는데,그것은듣는귀없음과더불어어리석은말들의쏟아짐이기때문이다.

죄에서벗어나는공부

죄없는순간이자신에게오길기다린다면당신은사전을펼쳐야할것이다.사전을찾는다는것은‘모른다’는것을드러내는행위이기에그틈에무죄의빛살이깃들기때문이다.그리하여“죄없는삶을묻는다면/사전을찾는시늉으로/책속의빈곳을/오체투지五體投地로끌어안는항복의몸짓으로”(「사전을펼치는시간」)나아가야한다.
‘죄’는시인의평생화두이기도하다.죄없는순간은유토피아나마찬가지인데,그것은되려손쉽게우리일상에,내손발곁에다가와있다.사전을찾아손을내미는순간은자신이모른다는것을깨달아타자를찾아가는순간이다(바로그때에고는자신의기동을알아채지도못한다).
시인에따르면,죄에서벗어나는길은공부다(그리고생각에서벗어나는것이다).자기골몰에서빠져나오는길은타자들의운신을깨치는것이다(혹은이웃이나를흠씬지배하도록내버려두도록하는것이다.자유는어떤형식의복종을통해서만가능하다).이런식으로‘도움’은우리삶의화두가된다.돕지못하면자기존재를증명하지못하는것이며,이는동물의‘생존’과다를바없다.다시말해지금자신의손발이무엇을하고있는지살펴야하며,인간관계는오직‘도울수있는가’라는화두로재구성되어야한다.

사람이라는행行:개입(비평)과오해의윤리학

“오해로새살이돋고/비방으로피가돌아요/괜찮아요(…)닭보다낮게날고/시체보다조용하세요.”(「오해로살이붙어요」)
시인에게‘오해’는오랜화두여서어느새삶의반려가돼버렸다.여기서그의공부길이열리기도해그는‘오해의윤리학’을견인한다.사회속에서‘어긋남’을피할수없듯사람사이에서오해는피할수없다.그런데흔히말하듯이오해는미스커뮤니커이션이나인식론의문제가아니다.이것은행함行과관련된,전적으로수행성의문제다.시인은오해가‘죄’라고말한다.즉우리는흔히지행知行이라는말을쓰지만시인은행지가맞는말이라며이를바로잡는데,지知가행行이라는총체적수행성의여건속에서잠시이루어지는것처럼,오해역시사람이라는행行의총체성과함께생긴다고본다.오해에살이붙지않게하려면어떻게해야할까?‘시체보다조용하게’있어볼것을권한다.시인은그의책『집중과영혼』에서“변명을내뱉는것의아주저편에있는것이오해를삼키는일”이라고말한바있다.오해를피한답시고변명에나선다면죽도밥도안된다.“무릇영혼을돌보려는자,변명에무능해야한다.”

옆방의부처

“내정신을베낀놈은수백명이지/내돈을꿍친년도열은넘지(…)아뿔싸/그만그말을늦게삼키고말았지/왼손이하는일을왼손조차모르게하랬는데.”(「그연놈들이부처가될때까지」)
시인이이해하는부처란자기개입의한없이무거운극한에이미,언제나가닿은존재를일컫는다.하지만“부처의음성이라도/옆방이라면이미아득하”(「옆방의부처」)다.그리하여인간은언제나어긋나고어리석은존재다.비평(개입)이있어야바쁜에고를죽이고변명에도무능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