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키기 연습 (스무 해를 잠식한 거식증의 기록)

삼키기 연습 (스무 해를 잠식한 거식증의 기록)

$16.00
Description
우울, 불안과 공존하는 치열하고 자세한 감수성
환자가 아닌 화자로서 거식증을 재발견하다
“거식증의 회복re-covery을 넘어 발견dis-covery으로”_정희진
“거부와 결핍에 관한 용감하고도 놀라운 기록”_최지은

드러난 갈비뼈와 가느다란 손목, 푹 패인 눈두덩과 튀어나온 광대뼈. 거식증 환자는 앙상한 해골 같은 여자의 이미지로 간편하게 대표되어왔다. 여기에는 환자를 미성숙하고 한심한 여자들, 갱생이 필요한 중독자들로 규정하는 힘이 있다. 이때 거식증은 비정상적인 것, 금기시해야 하는 것, 어서 빠져나와야 하는 구렁텅이 같은 것 이상으로는 사유되지 못한다. 환자를 환자로만 규정짓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자’가 어떤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지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삼키기 연습』은 20년가량 거식증을 겪어온 저자가 ‘환자’가 아니라 ‘화자’로서 써낸 수기다. 소설 같기도 일기 같기도 한 이 책에 회복과 치유의 감동적인 서사는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난한 싸움, 거식증과 저자가 함께 만들어낸 위태로운 삶이 있을 뿐이다.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있어, 거식증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내야만 할 깊고 본질적인 진실, 좀더 많은 지식으로 번역해내야만 할 경험이다. 무엇 때문에 거식증이 찾아왔는지, 어떻게 나을 수 있을 것인지보다, 다만 ‘이게 무엇인지’를 저자는 오랜 시간 공들여 탐구하고 기록했다. 여기에 정신 질환을 이야기하는 새롭고 중요한 방법 하나가 있다.
저자

박지니

1980년생.서울대학교를졸업한뒤콘텐츠기획,홍보,제약광고,출판편집,번역등다양한업종을오가며일했고,최근에는디지털헬스케어분야를탐구중이다.가장바라는것은지금이해하지못하는것을이해하는것,내비좁은머릿속의벽을넘어뜨리고넘어뜨려바다같이생각할수있게되는것이다.『99%페미니즘선언』등을번역했고,『데이비드보위:그의영향』등의책을기획했다.

목차

머리말

1장슈퍼바이즈드테이블
2장주택가의입원병동
3장엘리제를위하여
4장사라져가다
5장아스피린과참치통조림
6장셀린디옹의겨울
7장엘렌베스트

동기강화치료작업지

8장다비
9장트라우마
10장데이비드보위
11장훈습
12장20년전에한말을기억하는군요
13장사이언티픽인터벤션
14장직접겪은경험

감사의말
주註

출판사 서평

회복?된건지는잘모르겠지만

“‘그것’은병이지만,내생존방식,내존재방식이기도했다.‘그것’을버리고도살수있다는게믿어지질않는다.”_175쪽

16년만에식사치료를재개하는장면으로이야기는시작된다.하루에여섯번씩폭식구토를하고일상이무너지는등,청소년기에찾아온거식증이서른여덟살이될때까지여전히남아있었다.거식증환자의30퍼센트는부분적으로만회복되고,20퍼센트는고질적인환자로남는다고한다.그중30퍼센트로서계속증상과함께살아가는중인저자는다시찾은‘슈퍼바이즈드테이블’에서처음입원했던때를떠올린다.그리고20년간의생생한경험을숨기지않고풀어내기시작한다.
책에는거식증환자의증상과심정이자세하게드러난다.안방이불속에있다가동생에게밟혔을때는‘아무것도아닌것’이될수있음에가슴이벅차오르고,거울속야윈몸에서는‘기둥과들보,서까래처럼아름다운구조’를발견한다.몸에밴절차에따라위장을준비시키고,4인분의음식을삼키고게워내고,깔끔하게입을헹구고현장을정리하는등폭식구토의‘베테랑’이된것은당연하다.약물남용으로자살을시도한것도몇번씩이나된다.
그러나‘나는글쓰는사람이되어있을지도모르겠다’는20대초반때의예견처럼저자는오랜시간흔들리면서도끝내이모든것을글로써냈다.‘살아남았다’혹은‘극복했다’는말보다는그저‘살아냈다’는말이어울릴것이다.투쟁의대상이아니라탐구,이해의대상으로서거식증과관계맺은결과다.거식증은일상을고통스럽게만든원인이기도했지만정체성의일부가되어계속해서저자와공명하면서,역설적이지만삶의동력이되기도했다.이지난한과정은그야말로‘삼키기연습’의반복,거식증을지워버리는연습이아니라거식증을끌어안고도나름의삶을지속하기위한연습의반복이었다.

입원병동의아이들

“그러나하트모양크로켓은그반대편에있다.외양은겸손하지만속은알수없다.‘사랑’은그어떤말보다다의적이기때문이다.자기희생,눈물,종속,침이그렁그렁한치아를드러내며집어삼킴,식인,무경계,무치無恥,타의적인함구緘口와실어失語,긁을수도없는뼛속이간지러워실실웃는웃음,붉어진살갗,허벅지안쪽의장밋빛살갗,과식,뒤엉켜물고뜯는싸움……내가먹어야했던것은바로그런것이었다!”_65쪽

저자는섭식장애전문입원병동에여러번입원하고퇴원했다.치료자와환자사이의따듯함과긴장,10대에서20대인어린환자들의날선마음,그곳병동에가득했던묘한공기를그는모두놓치지않고자세한문장으로기록한다.‘너희가말하는게아니라거식증이말하는것이니참겠다’는식으로속을긁는원장과‘난우리가정신과환자라고생각하지않아’라고소리치는아이들이있었다.환자라는사실을부정하려는마음보다는무엇이되었든규정당하지않으려는마음,함부로해석당하지않으려는마음에가까울것이다.
병동의아이들은‘어떤음식도숫자로번역해낼줄알았다’.음식하나하나의칼로리를외우고다니고,식사시간에는서로의음식을바꿔먹기도했다.지하주방에서식사를준비하는소리와음식을올려보내는승강기의소리는괴수가그르렁대는것과도같았다.식탁에앉으면금방이라도불붙을것만같은기류가생기곤했다.누군가는먹고누군가는먹지않으면무슨일이벌어질지몰랐기때문이다.
먹음직스럽게만든큼지막한하트모양크로켓앞에서아이들은선뜻젓가락을들지못했다.씹어삼킨다는것을전혀다르게받아들이는아이들과어떻게든음식을먹이려는어른들간의격차가병동의식탁위에있었다.저자가써내려간입원병동의풍경은거식증환자들의자세한내면을스스로재현하고있다.치료의대상이아니라오롯한주체로환자들을묘사하면서,동시에그일원으로화자가되어직접말하면서,거식증환자의리얼리티를강렬하게구축해내는것이다.

상처입은치료자

실비아플라스,루이즈글릭,피오나애플,데이비드보위,마샤리네한,베르타파펜하임,엘렌베스트……이책에는저자에게강렬한영향을준이들의이름이빼곡하다.저자는도서관과인터넷,트위터등을통해거식증과관련된인물,정보,커뮤니티를열정적으로찾아다녔다.대학시절엔‘펍메드’라는의학논문데이터베이스에서논문초록을수집했고,「그것이알고싶다」가다큐멘터리최초로섭식장애를다뤘을때는기사와논문등을모아100페이지가넘는자료를제보한적도있다.
그런가하면‘프로아나’등거식증커뮤니티웹사이트나트위터를돌아다니기도했다.소셜미디어는비슷한경험을해본타인을발견할수있는공간이었고저자는그렇게발견한사람들의삶을추적했다.이런오랜탐색과수집의세월은‘다른세대의삶을위해할수있는최선’을다하려는지금의그를만든중요한힘이었을것이다.그러니까이책은거식증으로인해고립되지않고오히려타인들과연결될수도있음을증명하는하나의사례다.그리고이책스스로도,어딘가의독자에게과거와현재의타인들을소개해줄환한입구가될것이다.
거식증을탐구하고이해하는나날속에서저자는‘상처입은치료자’로나아가려한다.루이즈글릭,마샤리네한,피오나애플과같이‘직접겪은경험’을시,회고록,음악등의다양한방식을통해전해온이들이있고,저자도그중하나가되려는것이다.간호사와의사,글쓰기선생님과주고받아온편지들속에는어떻게하면좀더적확한치료방법을찾을수있을지에대한고민이가득하다.물론이때의치료는거식증을타자화하는치료가아니다.직접질환을경험했고그게무엇인지조금이나마이해하고있는‘상처입은치료자’들이당사자로서의정체성을가지고좀더나은삶을함께고민한다는의미에서의치료다.

‘직접겪은이’가말하다

그러므로이책은거식증을‘인정’해야한다고주장하는것이결코아니다.오히려저자는현재정신적질병을치료하기위해디지털헬스케어분야를탐구하고있다.어떻게하면환자들에게치료동기를만들어줄수있을지,환자를‘매끈하게마름질된’대상으로보지않는방식의치료가어떻게가능할지등이본격적인화두가된것이다.
특히한국에서는2000년대초중반젊은의사들에의해섭식장애전문치료시설이세워지기시작했고그나마도지금은열기가식은상태다.저자가다녔던병원도인력난과경영난으로운영을중단했고국가적·사회적차원에서는대책에대한관심이없다시피하다.반면그간국내섭식장애환자는그야말로폭증했다.심지어아직한국에서는거식증을우울증으로수렴시켜버리는경향도있을정도다.
질환에대한이해와관심이절대적으로부족한이런시점에서,이책은거식증당사자가직접만들어낸이정표가될것이다.저자가겪어온나날들속에는많은이가그간알지못했던거식증의리얼리티가담겨있기때문이다.물론이책이모든환자를대표할수는없을것이다.하지만선이해나편견없이정신질환을있는그대로고백하는목소리는언제나부족하다.이책은오랜시간동안독자들에게전해지기를기다려온목소리이며,앞으로다른목소리를불러일으킬소중한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