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엄마 :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은 집에서

세 엄마 :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은 집에서

$12.48
저자

김미희

1977년봄에태어나서울변두리동네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국민대학교시각디자인과를졸업하고그림그리고글쓰는일을한다.하루중어린아들의질문을듣는시간이많다.질문에답을찾고있다.그림책『꼬리여덟개잘린구미호가다녀갔어』『엄마』와에세이『문뒤에서울고있는나에게』『세엄마』를그리고썼다.
“귀기울이면언제나미싱돌아가는소리가들리는동네에서자랐습니다.어린시절품었던질문을잃어버리지않고살아가기를바랍니다.”

목차

프롤로그

1장입양신청
2장어린시절의빛과어둠
3장가난한서울살이
4장새어머니의집으로
5장불가능해보이는꿈
6장사랑과자본주의
7장34년만에만난친어머니
8장세여자의자궁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내겐아무도오지않아요,암흑뿐이라고요”

저자에게어린시절하면늘떠오르는장소는단칸방이다.친엄마와도,새엄마와도총4명의식구가단칸방에서함께먹고잤다.잠들려고노력하기,잠든척하기,잠든척하며눈꺼풀속에서눈동자를굴리다가뺨맞기.단칸방에서의가장강력한기억이다.자다가아빠와엄마(친엄마와새엄마모두)가돈과술때문에싸우는소리에저자는깨지만다시잠들려고노력한다.싸우지않을때에는실업자아빠가비디오를빌려와밤새틀어놓는탓에불빛이번쩍거려잠들기어렵다.아빠와친엄마가헤어지고나서잠깐엄마랑살때동네정육점아저씨와한식구가됐다.그때도단칸방신세는변함없어서엄마와아저씨는방바닥에서자고,저자와동생은커다란정육점냉장고위에이불을펴고잤다.“지이이잉.”허공에높이뜬공간에누운두아이는냉장고의진동음때문에또잠을설쳤고,냉장고아래서엄마와아저씨가싸울때면두려운마음에서로손을꼭잡고잤다.
친엄마는붕어빵장수까지하며생계를꾸리려했지만화장실세도변변히내지못했다.아빠와헤어진뒤저자는엄마의새로운두남자를거치기도했지만궁핌함은늘그자리에있었다.그리고저자가열살때엄마는돈벌어오겠다고,2년뒤에다시찾아오겠다고말하며자식들을두고떠났고,그후다시는돌아오지않았다.아이는매달렸다.“싫어요!엄마랑살래요.엄마랑살거예요.앞으로뭐사달라고안할게요.멜로디언필요없어요.동생이랑안싸울게요.”
하지만엄마는아이의손을잡아떼어냈다.그러곤뒤돌아서가버렸다.어린아이는그때자기앞에놓인세상을절벽으로,암흑으로인식했다.돌아오겠다는엄마의약속은지켜지지않음으로써‘약속’이늘‘위반’과한쌍임을입증했다.

미싱돌리며날먹여살린새엄마,그리고친엄마와의재회

열살이후삶의풍경은급작스레바뀌었다.아빠네집으로옮기면서모르는여자에게‘엄마’라고부르게된것이다.이전에친엄마의남자에게도‘아빠’라고부른경력이있기에,저자와동생은아빠의낯선여자에게도‘엄마’라는호칭을곧잘썼다.‘몇년있다가또바뀌겠지…’하는체념의마음도품으면서.
새엄마는차가웠고,조금무서웠으며,정리정돈과어른에대한예의를엄격히하는분이었다.“수저놔.”“어른이먹기전에숟가락들면안돼.”“아빠한테인사해야지.”“빨래개고방치워.”저자는이런새엄마가두려우면서도한편궁금했다.자기가낳은자식도아닌데돈벌어먹이고입히며,게다가문제만일으키는아빠랑이혼도안하고사는것이.차가운겉모습을한새엄마는자녀둘을성인이될때까지키우고대학등록금도뒷바라지했다.
저자는이런새엄마를오랫동안‘엄마’라고부르며살아왔다.하지만아빠가죽고나서어느날가족관계서류를떼어보니서류의‘모母’칸에친엄마의이름석자가올라와있었다.지난34년간나를한번도찾지않은사람!이사람이내엄마라고?여태도그랬고앞으로도볼일은없기에가족관계서류에친엄마대신새엄마를올리려고분주하게뛰어다니는과정이시작됐다.그렇게법무사에게돈몇십만원을주면말끔히정리될줄알았던서류작업을시작한뒤어떤여자가한밤에찾아와아파트현관문을세게두드렸다.
“쾅쾅쾅!나야이정임.낮에현관에빵이랑편지놓고갔는데연락이없어서.”이소음은느닷없이나타난친엄마가낸것이었고,그녀는딸이문을열어주지않자이렇게말한다.“한번만,한번만옛날에알던불쌍한아줌마라고생각하고얼굴을볼수없을까?한번만.한번만.나를불쌍하게생각하고.”

세여자,세엄마

총8장으로이루어진이에세이는세여자의삶이단지개인의서사가아닌,어쩌면‘우리엄마들의현대사’일지도모른다고암시한다.잔인한엄마,불쌍한엄마,힘내는엄마들이등장해무너질듯무너지지않는집에서시대의한계에갇혀수동적삶을택하기도하지만,마침내남편과이혼하거나새삶을꾸리면서주체성을보이기도한다.이들여성한명한명이전개하는삶은사실한국여성의보편적삶이라고여길부분이많다.
저자가어린자신을다시돌아보며쓰는문장들,가령“나는어머니에비해게으르고더럽고멍청하다고생각한다”“우리는이방에있지만없는아이들이다”“아버지는아내에게기생하고있고나는그런아버지의자식이다”는아이의마음속을투명하게들여다보게함으로써어른독자들에게세상의잔혹함을직시케한다.어떤어른들이일군아이의삶은삐뚤빼뚤모양이모나며,가끔은아이가성장을멈추거나혹은자기마음을은폐해버리게만든다.
어른들의말은늘그부정적인영향력을계산해보지도않은채무심하게내뱉어진다.“내가그날술만안마셨어도너는안태어났어.내가술마시고만든거야,너는.”“눈웃음치지말아라.여자가헤프면인생망치는거야.잘모르나본데네인생은이미망했다,나때문에.”
이런환경속에서도저자는잘웃고,공부를좋아하고,그림그리길즐기는사람으로성장했다.그러면서다소무기력하고,세상이나를무시하면나또한세상을냉소하겠노라는버릇을몸에새기기도했다.하지만저자는아빠가뿌린불행의씨앗을과감히물리친다.아빠나엄마를자신과긴밀히엮지않고‘그는그,나는나’의자세로분리하며삶의기쁨과만족을하나씩배워나간다.삶의굴곡점마다분별력을잃지않으려는그의노력으로인해이렇게힘있는책이마침내나올수있었다.

■책속으로

할머니가이불을내어깨까지덮어주며말했다.“미희야,저기언덕의나무를생각해봐라.따로물주고돌봐주는사람하나없지만저혼자서잘자라잖니.너도그나무처럼잘자랄수있다.”나는하고싶은말이있었지만졸려서입밖으로나오지않았다.‘할머니,그나무에게는하늘에서비춰주는햇님이있고,비도오잖아요.저는아무것도없다고요.내겐아무도오지않아요.암흑뿐이라고요.나는버려졌어요.”_49쪽

엄마는2년후에다시온다고하지만그말을어떻게믿지?늘다음에다음에하고말했지만다음은없었는데.엄마가우리를떠나려하고있다.나를버리려고한다.나는울면서엄마팔에매달려악을쓴다.“싫어요!엄마랑살래요.엄마랑살거예요.앞으로뭐사달라고안할게요.멜로디언필요없어요.동생이랑안싸울게요.”세상이끝나는것같다.컴컴한절벽아래로내팽개쳐지는것같다._60~61쪽

어머니가내게지키도록한규칙,귀가시간엄수,어른에대한예의,배려,청결등이나를위해서가아니라어머니가다른사람에게욕먹지않기위해서시키는건아닐까의심한다.새엄마는나에게뿐만아니라자신에게도엄격한규칙을세우고그것을지킨다.네식구가사는작은방은늘청결하게정돈되어있고,그녀는일터에지각하는법이없다.나는그녀에비해게으르고더럽고멍청하다고생각한다._81쪽

어렸던동생과나를아버지집에팽개쳐놓고이대가족은이렇게서로다정하고친밀하다니.나는쌓였던불만이하나둘떠올랐다.친어머니에게는부둥켜안고울수있는엄마가있다.그엄마는손녀를걱정하는듯보이지만실은실의에빠진자신의딸이걱정이다.나는느껴보지못했던모녀의애틋함.친어머니는내게서그애틋함을앗아갔다._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