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인류 (차가움의 연대기)

냉장고 인류 (차가움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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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젊은 인류학 연구자의 냉장고 문명 추적기!
차가움이 만든 스위트홈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우리는 차가운 것을 얼마나 열망해왔나

이 책은 젊은 인류학 연구자가 인간의 역사를 ‘냉장고’와의 관계를 통해 고찰한 것으로, ‘차가움의 연대기’라 할 수 있다. 냉장고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각 시대마다 인간의 욕망이 이 물건에 투영되어왔기 때문이다.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는 필수 도구로서 발명되긴 했지만 중상층 이상에서는 한때 고가의 가구처럼 인식됐고, 농촌에서는 전기세 걱정 때문에 쓸 엄두도 못 냈다. 어느 시점부터는 혼수품으로 등극하더니 2000년대 초반까지도 ‘여자의 물건’으로 광고하면서 성별 고정관념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930리터까지 점점 커지는 용량으로 인해 냉장고는 신선 기능을 자랑하지만, 음식을 넣어둔 채 잊어 쓰레기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1인가구가 시대인 요즘은 어떨까? 오피스텔에서 빌트인 냉장고를 사용하는 젊은층은 냄새 나는 음식을 굳이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을뿐더러 라면 냄새조차 싫다면서 편의점에서 사 먹는다. 편의점 냉장고가 점차 도심의 텃밭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거기서도 포장을 뜯지 않은 음식이 수없이 버려진다). 한편 중장년의 1인가구 냉장고는 초록색 소주병이 차지해 거주자의 고독을 대변하고 있다.
저자는 냉장고가 시대와 세대, 나아가 국경을 넘어서까지 인간의 생활 양식을 보여주는 창구가 된다고 보고 이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파고들었다. 미국의 철도 산업으로 인해 시카고에서 냉장 기술이 발전한 것, 국내에서 처음 출시된 냉장고, 계급별 지역별 냉장고의 현황, 베트남인과 고려인 등 각국의 냉장고 풍경…… 차가움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현지조사 및 가정 방문을 종횡으로 펼침으로써 냉장고와 얽힌 삶의 변화를 측정케 했다. 특히 집필과 동시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냉장고 환상’이란 전시를 기획해, 이 책에는 귀중한 시각 자료들이 실려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집 냉장고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 책의 재미는 사람들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 고스란히 담긴 그런 냉장고를 활짝 연다는 데 있다. 저자 집의 냉장고에서 시작해, 전라도 나주 종갓집의 냉장고, 광주 이주노동자들의 냉장고, 지하철 택배 노동자의 냉장고, 요양원으로 실려간 노원구 김씨 할머니의 냉장고, 전기를 아끼기 위해 제작한 불광동 한 카페의 아이스박스까지. 거기서는 그 사람의 삶의 향기와 음식 냄새가 풍기지만, 다른 한편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과 햇반, 라면과 초콜릿 봉지가 나뒹굴고 있기도 하다.
저자

심효윤

아시아지역곳곳을다니면서다양한사람을만나고,현장에서그들의삶과문화를관찰하며기록하고있다.중앙대에서민속학석사,영국더럼대학에서사회인류학석사학위를취득했다.2013년부터아시아문화원아시아문화연구소에서근무하고있으며,현재연구기획팀장으로재직중이다.공저로『왜우리는군산에가는가』,『황금인간의땅,카자흐스탄』등이있고,EBS특집다큐멘터리「위대한유산중앙아시아」와「위대한유산동남아시아」의조사연구및사업을담당했다.최근에는‘냉장고프로젝트’연구사업을수행하면서국립아시아문화전당‘냉장고환상’전시를기획했으며,중앙일보에서‘심효윤의냉장고이야기’칼럼을연재하고있다.

목차

프롤로그

1장거대한냉장고작아진세계
1.식탁위의혁명은냉장고로부터
2.온갖세계를담은거대한냉장고
3.이것은냉장고가아니다
4.코끼리를냉장고에넣는방법
5.찬밥의반란과따뜻한식사
6.미래의냉장고:미래에부치는편지

2장‘부엌스타’의탄생스토리
1.냉장고가문화재로지정됐다고?!
2.소가처음열차를탄날
3.냉장고로꿈꾸는환상
4.빙수사랑,아이사랑
5.짠순이복길네냉장고들이던날
6.김치냉장고에숨은과학
7.여자라서행복해요.여자라서행복하세요?

3장당신의냉장고를열어라!
1.종갓집냉장고와내림음식
2.점심시간없애고한시간일찍퇴근어떨까?
3.편의점은동네텃밭이자공유냉장고
4.편의점인생을졸업하는날이오면
5.할머니의냉장고를부탁해
6.노년의냉장고:2000칼로리-0칼로리
7.탄씨가족냉장고엿보기
8.산모의서러움달래주는냉장고
9.고려인의부엌:국시와빵
10.추억을붙여왔던걸까-엄마와냉장고자석
11.외로움을달래주는유학생의냉장고

4장냉장고와멀어지기
1.잃어버린전통식재료저장기술
2.전기먹는하마를다루는법
3.냉장고없고전기도들어오지않는비전화카페
4.과소비사회에등장한비전화제품
5.냉장고파먹기:비움과즐거움
6.매일장보는베트남생활
7.음식물쓰레기로만든그릇:쓰레기와가치있는물건사이의관계

에필로그

연표(얼음의노래)

출판사 서평

얼음에이끌린사람들

‘부엌’의어원은‘불’에서찾을수있다.주먹도끼와돌칼로사냥을해온호모속에게불에탄고기는인기가좋았고,불은인간의진화에서중심역할을했다.부엌의모든것이불과연결되어오던차에유독냉장고만불에반대됐다.따뜻한불에서진화의핵심요소를얻은인간들은점점신선한음식을선호하면서얼음을탐색하기시작했다.
1842년바닷가재가처음열차를타고미국뉴잉글랜드에서시카고까지급행으로이동했다.1868년호주의소고기는영국으로처음출항했고,1882년4000여마리의양고기는최초의냉장선을타고뉴질랜드에서런던으로항해했다.1920년대말부터는미국에서섭씨영하40도의급속냉동기술이개발되면서,식재료의손상을최소화하여해동후에도맛과모양이변함없는냉동식품이발명되었다.
그렇다면국내냉장고의시초는뭘까?1965년에출시된금성사의GR-120‘눈표냉장고’다.용량은120리터밖에안됐지만,이마저자체기술로는만들수없어일본히타치사와기술제휴를했다.대졸초임월급이1만1000원이던1968년에냉장고가격은8만600원이었으니경제상위1퍼센트만집에갖춰둘수있는물건이었다.95퍼센트의국민이이를보유하기까진25년쯤더기다려야했다.
이책은냉장고발명전의얼음연대기도다룬다.고려와조선에서도얼음꿀물이나화채를즐겨먹었지만,냉차가들어오고빙과류가대중화된것은아이러니하게도일제강점기부터다.1900년대에경성시내에일본식빙수점氷水店이등장한데다1915년서울의빙수상인은442명에달했다.어린이날을제정한방정환선생도빙수마니아여서『별건곤』에이런글을남겼다.“사알-사알가러서참말로눈결가티가른고흔어름을삽풋떠서혀ㅅ바닥우에가저다놋키만하면씹을것도업시깨물것도업시그냥그대로혀도움즉일새업시스르르녹아버리면서달콤한향긋한찬긔운에혀끗이환-해지고입속이환-해지고머리속이환-해지면서가슴속배속등덜미까지찬긔운이돈다.”
시계를한참돌려〈전원일기〉방영시점으로와보자.냉장고구매는악마의속삭임과도같아사람의마음을들었다놓았다했다.드라마속복길네는짠순이로소문났는데,이웃사람들은복길엄마에게냉장고를한대장만하라며대거설득에나선다.그녀가버티는이유는그돈으로차라리논밭을사겠다는것이었다.동네친구들이재차설득했다.“(복길엄마)봐요.김치를한번담그면일주일싱겁거든?그러니깐버리는것도없고,일손도안들고.”“맞아.매일아침김치담는수고,그야말로헛수고지뭐.”“그래.큰맘먹고사버려요,응?”이에대해복길엄마는고민을거듭하다대답한다.“역시아니야.지금산다고해봐.나중에몇년지나면또사야한다며?그리고냉장고사가지고써봐서좋으면세탁기놓고싶을거고,세탁기사서써보고좋으면은또칼라텔리비전도보고싶을거고……아휴,안돼!”
그랬던냉장고였건만이제는과잉공급되고전기세를잡아먹으면서‘과연냉장고가필요할까’라는의문을낳는시대에까지이르렀다.인간은언제나사력을다해무언가를개발하지만,지나친탐욕으로그것을과잉추구하다가부작용을낳고,마침내그것이개발되기이전으로되돌아가려는일에열중하곤한다.

종갓집냉장고속과택배노동자의냉장고속

저자는인류학전공자로서국내외현지조사를많이다닌다.종갓집의명맥을잇고있는전남나주의남파고택에도갔는데,이집냉장고가궁금했기때문이다.3000제곱미터의대지에안채,사랑채등총일곱동의건물이있는집에서강정숙종부는마침마루에앉아고추전을만들고있었다.종부는1974년결혼하면서혼수품으로냉장고를마련했다.남파고택에처음으로냉장고가들어온날이다.부엌으로가냉장고를열어봤더니이집만의내림음식이한가득이었다.대표적으로반동치미가있고,톡쏘는맛이일품인홍갓김치,나주배보쌈김치,파김치,고춧잎을넣은집장,멸치젓등조상대대로전해온비법의반찬들이있었다.이집은부엌이두개인데,안채뒷마루에는현대식김치냉장고가두대있다.
저자는서울로발길을돌렸다.여기엔1인가구가무척많아시선은자연히혼자사는사람들에게로쏠렸다.2019년10월부터3개월간1인가구의부엌을조사했다.경기도고양시에사는정씨할아버지는거동이불편해져요양원으로옮기셨다.그분집의냉장고를여니가장먼저눈에띄는건야채칸에수북이쌓인초코파이였다.노인의당을초코과자가책임지고있었던것이다.반면서울노원구김씨할머니댁냉장고는음식과재료로꽉채워져있었지만,집안엔쓰레기가널려있고주방바닥은물이튄채그대로인걸보니냉장고속음식들도유통기한이많이지난듯했다.저자는고독감이나우울증상에빠지면가장먼저마음의문이닫히고,이어냉장고문도열리지않는다고말한다.마음이죽으면밥솥안의밥은부패하고날짜가지난햇반과라면,통조림이나뒹굴면서부엌도함께죽는것이다.

냉장고와계급

이책은경제,문화,역사,민속,시각예술,사회사연구등거의모든분야의연구를파고들며냉장고에관한함의를이끌어낸다.그중마지막대단원은계급과환경문제에좀더초점을맞춘다.우리사회노인들의냉장고는세가지유형으로분류할수있다.먼저,장수욕망을보여주는‘냉장고타입A’다.불로장생,안티에이징을향한이욕망의냉장고에는영양제와약재료,홍삼팩,인삼으로만든담금주와꿀단지가보인다.야채칸에는오렌지,참외,호박,파프리카,아보카도등싱싱한채소와과일이담겨있다.마치신선의냉장고를엿보는듯한느낌이다.그다음은‘냉장고타입B’로,노년노동자의것이다.B냉장고의주인은80대남성으로,지하철택배일을10년간해왔다.하루세건정도뛰고버는돈은월70만원.그의냉장고첫칸엔눕힌소주병이있다.늘이동중이라점심은주로빵과떡으로해결하기에10개들이모닝빵같은것도냉장고한켠을차지하고있다.마지막으로,무연사회의‘냉장고타입C’가있다.C냉장고의주인은1인가구로자녀는없다.C냉장고는아이러니하게도가장미니멀한모습을하고있다.차마그속을보여줄수없는걸까.사진속냉장고문은아주조금만열려있다.게다가이냉장고에는구청에서설치한안심단말기센서가달려있다.만약일정시간이상어르신의움직임이없거나이상징후가감지되면,즉시지자체에서해당가정에연락을취하거나직접방문하게된다.
이처럼우리시대의냉장고는그사람이무엇을먹는지를보여줌으로써우리의처지,경제적신분,나아가사회계급까지비추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