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 (조선·일본·청, 1860~1882 | 양장본 Hardcover)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 (조선·일본·청, 1860~1882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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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을 국제 세계로 이끈 중국과 일본의 정책과 행동은
동아시아의 기존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
고故 김기혁 UC데이비스 교수의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이 번역되어 나왔다. 저자의 박사논문이기도 한 이 책은 1980년대 미국에서 출간돼 관련 학계의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이 책은 기존과는 달리 개항기 동아시아에서 조선을 사이에 두고 청과 일본이 벌인 경쟁, 외교적 공격과 방어의 디테일을 극사실주의적으로 살핀 수작이다. “동아시아 세 나라의 언어에 모두 능통해 다양한 자료를 충분히 파악하면서 그 시대의 정책을 살펴본 외교사 연구의 전범”이다. 저자는 1860년부터 1882년까지 20년간 조선, 청, 일본 세 나라의 외교정책이 입안되는 과정과 그에 영향을 미친 국내 정치세력의 동향과 움직임을 밀접하게 연관시켜 고찰했다.

저자가 볼 때 이 시기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조선을 국제 세계로 이끈 중국과 일본의 정책과 행동은 동아시아의 기존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한 것은 없다. 저자는 우선 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여러 나라를 포괄적으로 검토했다. 서양의 국제체제가 도입되면서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이원적 세계질서-전통적 세계질서의 마지막 국면-가 끝나는 과정을 대표하는 부분으로서 조선의 국제적 위치 변화를 살펴봤다.
저자

김기혁

金基赫(1924~2003)

일제강점기에태어나중학교때일본도쿄로건너가메이지明治대학을졸업했다.태평양전쟁말기대학이폐쇄되고한국인에대한징병제가실시되던무렵해방을맞이했다.그뒤한국전쟁이일어나는바람에중국으로건너가역사를공부하려던꿈을접은채직장생활을시작했다.
1967년20년에가까운직장생활을그만두고미국캘리포니아대학교데이비스캠퍼스대학원에입학해류광징劉廣京교수의지도로중국사를공부하기시작했다.중국최초의근대화운동인자강운동自強運動을연구해「중국초기근대화에대한일본인의견해JapanesePerspectivesonChina’sEarlyModernization」로석사학위를취득했다.
그뒤동아시아전체로관심을넓혀19세기후반한반도를무대로전개된청과일본의패권대결을연구해1975년『동아시아세계질서의종막TheLastPhaseoftheEastAsianWorldOrder』이라는제목의박사학위논문을완성했다.이논문은1979년단행본으로출간돼세계학계의높은평가를받았다.
특히이분야에서일본의견해를대표하던하버드대학의이리에아키라入江昭교수가“감정과편협한애국주의그리고독단적인주장에서벗어난이정표적인저술”이라고평가한사실은주목된다.
오랫동안캘리포니아대학데이비스캠퍼스동양역사·어언語言학과교수를지냈으며,연세대현대한국학연구소자문위원,국제퇴계학연구회이사등을역임했다.주저인『동아시아세계질서의종막』을포함해『청일전쟁과리훙장』등근대동아시아사에서많은연구성과를냈다.

목차

추천사_류광징U.C.데이비스역사학과교수
머리말

1장전통동아시아의조선
2장조선에서커지는서양의압력
3장일본의초기팽창주의
4장유신외교:1868~1871년일본의청·조선정책
5장“서구적”정체성과팽창주의를향한열망:일본의새로운동아시아정책,1872~1875
6장일본과조선의화해와새조약,1874~1876
7장조약체제의외교:청의새로운조선정책
8장조선에대한청의영향력변화
9장결론:동아시아의국제질서를향해

참고문헌
옮긴이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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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감정과편협한애국주의,독단적인주장에서벗어난이정표적인저술”
_이리에아키라入江昭전하버드대교수

19세기후반동아시아전통적세계질서가해체됐다.주변국들이청나라에조공하는체제가서양열강의힘에의해강제로깨졌다고하는게이시기를보는우리의시각이다.하지만좀더세밀하게이시기를살펴볼경우동아시아의전통적세계질서가해체되고궁극적으로종말을맞은것은동양과서양의문화가거대하게충돌한결과이기도했지만그시기에청과일본이경쟁한결과이기도했다.그런결과를가장잘보여주는사건은조선이청제국의조공국에서근대국제사회의일원으로변모한것이다.

자료에충실한외교사연구의전범

고故김기혁UC데이비스교수의『동아시아세계질서의종막』이번역되어나왔다.저자의박사논문이기도한이책은1980년대미국에서출간돼관련학계의많은관심을불러모았다.이책은기존과는달리개항기동아시아에서조선을사이에두고청과일본이벌인경쟁,외교적공격과방어의디테일을극사실주의적으로살핀수작이다.“동아시아세나라의언어에모두능통해다양한자료를충분히파악하면서그시대의정책을살펴본외교사연구의전범”이다.저자는1860년부터1882년까지20년간조선,청,일본세나라의외교정책이입안되는과정과그에영향을미친국내정치세력의동향과움직임을밀접하게연관시켜고찰했다.
저자가볼때이시기에대한기존의연구는“조선을국제세계로이끈중국과일본의정책과행동은동아시아의기존세계질서에어떤영향을줬는가?”라는질문에대답한것은없다.저자는우선제도에초점을맞추고여러나라를포괄적으로검토했다.서양의국제체제가도입되면서동아시아에서형성된이원적세계질서-전통적세계질서의마지막국면-가끝나는과정을대표하는부분으로서조선의국제적위치변화를살펴봤다.

일본정한론,현실-이상의대립이론비판

저자가청·일본·조선의정책을검토하는과정에서세가지사항이가장중요하게떠올랐다.그것은정책을입안하는데작용한전통의역할,국내정치와외교정책의상호관계그리고세나라의정책과행동의상호작용이다.언제나전통은다른나라들보다그당사국에서좀더중요하겠지만,그영향은보편적이고지속적이었다.개혁과근대화를열망했지만메이지일본이동아시아인접국에게펼친초기정책은청이나조선이시행한정책못지않게전통적이었다.
저자는각국의정책을좀더깊이이해하려면정책입안에작용한국내의문화·정치적배경을파악해야한다고생각했다.일본과관련해서는메이지초기조선정책에는현실주의와이상주의가대립했다는기존논지를지지하면서도막부말기와메이지시대초기일본의끈질긴팽창주의적정서는일본의국내문제와좀더관련됐다고말한다.메이지초기에등장한과두정부안의분립은,서양이제공한영감과함께당시일본이조선·타이완에게시도한행동의배후에있던주요요인이었다.
끝으로저자는동아시아의전통적세계질서의궁극적종말을가져온점진적이며미묘한변화를보여주려면관련된주요국의개별정책뿐아니라그것들사이의상호작용도연구해야한다고판단했다.청의정책은일본과조선에관련된조처를신중하게연대순으로분석하지않으면완전히이해할수없다는것이분명해졌다.청의정책은달마다바뀌었지만전체적인기본유형은도전과응전이었다.

조선의변화세단계로나눠살펴

조선이청의조공국에서국제사회의일원으로변모하는과정은세국면에서나타났는데,조선에관심을갖고있던서양국가들과동아시아국가들의정책변화와맞물려전개됐다.첫국면은1866년프랑스의침입과1871년미국의원정이었다.1871년은일본이청과처음으로조약을맺은해인데,그부분적인원인은조선에대해우월한지위를차지하려는데있었다.프랑스·미국·일본의움직임은탐색활동이었을뿐이어서조선주변의국제적상황은대부분그대로유지됐다.두번째국면은일본이조약을개정해서양열강과,나아가서는청과동일한지위를획득하려고노력하면서시작됐다.일본은팽창주의를추구하기시작했고,페리와비슷한방법을사용해1876년조선과강화도조약을맺는데성공했다.이시기청·일본·조선의관계는처음으로급속하고엄청난변화를겪었는데,일본의외교정책이서양의방식을따르고팽창주의를추구하기시작한결과였다.

조선의무지한국수주의

그뒤1882년조선이미국·영국·독일과처음조약을맺을때까지6년동안세번째이자마지막국면이전개됐는데,청은조선에대한러시아와일본의위협이커지자조선문제에개입하지않는다는전통에서벗어나일찍이없던새로운정책을추진했다.청의이런새정책으로조선은서양적개념의국제체제로진입했고동아시아에서는새로운국제질서가형성됐다.
조선의전환이이뤄진첫단계동안청·일본·조선의전환이이뤄진첫단계동안청·일본·조선의기존관계는크게달라지지않았다.청은서양열강에게패배와모욕을거듭겪었지만중국의왕조로남아있었으며그권위와패권은동아시아의어느나라로부터도도전받지않았다.변화에대한저항은조선이훨씬더철저했다.문화적국수주의에빠져있었고서양세계의발전에무지했던조선은“유교적이상세계”를지향하며몇세기동안이어온고립을고수했다.천주교는한세기에가까운정부의박해를견뎌냈지만,조선정부는그런저항을보면서외래종교가조선지배층의성리학적사회·정치관에근본적으로도전하는사상이라는위험을확신했을뿐이다.조선정부는천주교가내부를무너뜨리거나외부에서공격을시도해조선을장악하려는서양의일반적음모의일부라고확신했다.조선관원들은청이서양열강을받아들이는과정을강한반감으로지켜봤다.숭명반청감정에사로잡힌그들은청의개탄스러운사태는전체적으로만주족의부패와특별하게는공친왕의실정때문에발생했다고믿었다.그들이더욱당혹스럽게생각한것은서양을모방하려는일본의시도였는데,그것은일본이동양문명과전통을배반한증거라고생각했다.그들은천황체제가조선보다우위에있다는일본의새로운주장이터무니없고모욕적이라고여겼다.대원군은지배층의견고한합의의지원을받아서양과일본을단호히배척했다.프랑스와미국의침입을물리치자그는조선이어떤서양침입자라도물리칠수있다는믿음을더욱굳혔다.

왕정복고이후쓰시마의퇴각

왕정복고와함께시작된정치구조의변화를반영하는메이지정부의첫조선정책은일본의복원된천황제의전통과중세의유산이복합된것이었다.그것은현실적이지않았던만큼이나모순으로가득했다.천황의새체제는조선보다높은위치에있다고가정했지만조선사안을즉각관리할수없었다.조선정책의실행은거의모두계속쓰시마가맡았다.쓰시마는조·일관계의중개자로활동하면서그동안조선에서누린외교적·무역적특권을계속보유하고싶어했다.그런특권의보유는조선에게반半조공의무를지속하는것에달려있었지만일본의새체제가그런관행을허용하지않음으로써쓰시마의의무는일방적으로중단됐다.조선으로서는일본의새체제가우위를주장하는것이나쓰시마가새로운자기권리를요구하는것모두받아들일수없는행위였다.일본의왕정복고이후조선과일본이외교적불화를일으킨원인은조선의비타협적태도와근대국제관계에대한무지에만있는것은아니었다.
적어도메이지정부가시작한“유신외교”에도동일한책임이있었는데,도쿠가와시대와동일한외교형태와관행을지속해야한다는조선정부의고집만큼이나시대착오적이고비현실적이었기때문이다.

일본의팽창주의는1870년전후에확립

이시기일본의많은정치지도자는조선을외국이라기보다는자국의국경으로간주했다.그들은조선정책을국내문제로여긴적이많았다.막부말기초기정한론자들,유신직후의기도,1873년사이고와그지지자들,1875년오쿠보같은권력안팎의정치가들은긴장이나위기때국내의정치적이익을확보하기위해“조선문제”를이용했다.이모든것의뿌리에는일본이서세동점의시대에독립국으로살아남으려면한반도에권력과영향력을확대해야한다는널리퍼진믿음,사실상국가적합의가있었다.힐러리컨로이는메이지시대의조선정책과관련된중요한연구에서이시기일본정부의지도자들은조선을“점령”하려는책략이나계획이없었다고강조했다.이것은그들의태도·견해·행동이정한론자와달랐다는뜻은아닌데,팽창은다른형태를띨수있었고정도도변화할수있었기때문이다.아울러일본이합법적이거나근대적인국익추구라고간주한것은조선이나청이보면본질적으로팽창주의적이거나약탈적인것이었다.현실주의와이상주의의대립이라는컨로이의주제는중요하지만,그런구분만으로는메이지시대의초기조선정책의본질을충분히설명할수없으며,1910년의조선병탄은사실상그정책의정점으로생각된다.일본의국내정치와안보에서조선의역할과중요성은한반도에영향력이나통제력을확대하려는일본의지속적열망과함께,대부분의일본정치적지도자들이조선에관련된자신의건의를형성하고정책을입안한정신적기본체계를형성했다.그들의목적·계획·행동은어느때든지“현실에맞춰”또는국내정치와국제상황의긴급한사태에따라결정되거나바뀔수있었다.그러나이연구에서제시한사실들이보여주듯조선에대한일본인의기본적심성은1870년대에확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