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자주국방 :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10년, 그리고 4대 핵공장과 백곰 유도탄

박정희의 자주국방 :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10년, 그리고 4대 핵공장과 백곰 유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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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계공업 육성방향’과 유도탄 ‘백곰’ 개발의 비사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10년은 오로지 자주국방이라는 목표 하나에 집중되었다. 북한이 군사적·경제적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미군 철수가 가시화되자 다른 데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이때 추진된 것이 유도탄 백곰 개발 사업이고, 이 사업과 동시에 진행된 동전의 다른 면과 같은 사업이 중공업 육성 사업이다. 1970년대 이후 남한은 이 두 가지 사업의 성공을 발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창조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역사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업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아전인수와 자기변명이 넘쳐나고 있고, 연구자들조차 비밀의 문에 막혀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기계공업 육성방향’ 수립의 첫 단추를 꿰고, 지대지 유도탄 ‘백곰’ 개발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수행했던 필자의 생생한 육성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새로 그리고 보여준다.
저자

이경서

(李景瑞)
·경기고등학교졸업
·서울대학교공과대학2년수료
·미국MIT공과대학기계공학학사,석사,박사학위취득
·미국BBN(Bolt,Beranek,Newman)社선임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책임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ADD)유도탄개발담당부소장
·국제화재해상보험(주)대표이사사장
·한국중공업(주)부사장
·단암전자통신(주)회장
·現단암시스템즈(주)회장
·보국훈장천수장수훈(국방부)
·국방과학장려특1대통령표창수상(국방과학연구소)
·체신부장관표창장수상
·보국훈장모란장수훈(과학기술부)
·5.16민족상수상(과학기술부문)
·한국공학한림원‘대한민국100대기술과주역’수상
·장영실국제과학문화상수상
·사단법인한국경영과학회감사
·청와대과학기술자문회의위원
·한국과학재단부이사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부회장

목차

●프롤로그

제1부‘기계공업육성방향’의진실
어떤인연
‘기계공업육성방향’수립의전말
기적은있다
오원철차관보
진실과거짓이뒤섞일때
오원철식기계공업육성정책의허와실
유일한논문

제2부백곰유도탄개발의막전막후
국방과학연구소로옮기다
항공공업육성방안
하늘이주신선물들
관성항법장치를찾아서
진정한자주국방

제3부부러진화살과그책임자들
이만영박사와감사원특별감사
대전기계창장시절
서울기계창과진해기계창의운명
번개사업의잘못된교훈
백곰이날기까지
백곰이후
비극에대한추론

●에필로그
●부록
Ⅰ백곰개발주역들의간단한소개와소회
Ⅱ백곰의후예들
Ⅲ1.백곰개발관련훈표창수여자명단
2.백곰개발추진조직의변천

출판사 서평

단군이래우리한민족은무수한외침에시달렸지만자기힘으로자기나라를지킨자주국방(自主國防)의경험은매우적은불행한역사를되풀이해왔다.고구려때수나라와당나라의침공을성공적으로막아낸경험외에는항상굴욕적인항복이나타국의도움을받아야만살아남을수있었다.가장최근에겪은전쟁인6·25때도상황은크게다르지않았다.미국을비롯한서방의지원덕분에간신히국가체제를유지할수있었던것이사실이다.그런데이런쓰라린경험에도불구하고1960년대까지우리에게는자주국방에대한의지나능력이태부족이었다.반면에북한은정전직후부터러시아와중국의지원을받아다시군수산업을크게일으킴으로써경제성장을달성하고국방력재건에도성공했다.이당시우리는국방력에서든경제력에서든북한에크게뒤지는상황이었다.

이렇게미국의원조에만매달리는세계최빈국신세가지속되는와중에박정희정권이들어섰고,정치분야의불안이어느정도제거되자본격적인경제성장의길을모색할여지가생기게되었다.경제개발5개년계획등을통해보릿고개의굶주림을면하기시작했고,경공업이지만수출에도조금씩나설수있게되었다.그렇게경제성장을바탕으로나라의모습을갖추어가던1969년,우리나라는다시한번존망의위기에처하게되었다.충격은예기치못한외부에서갑자기시작되었는데,새로미국대통령에취임한닉슨(RichardM.Nixon)이그해7월소위‘닉슨독트린’을발표한것이다.미국역사상최초의패전으로기록될지모르는베트남전의마무리를앞두고나온이선언은미국인들이가지게된,남의나라전쟁에대한염증이투영된결과물이었다.당연히미국인들의입장에서는환영할만한정책이었다.하지만자기나라를스스로지킬힘이없던당시의우리에게닉슨독트린은일종의사망선고나마찬가지였다.괌에서발표한독트린에서닉슨은이렇게표명했다.

“미국은핵보유국들로부터동맹국들의자유가위협을받을경우방패(핵우산)를제공할것이다.다른형태의침략(재래전)의경우미국은필요하고타당한경우군사적,경제적지원을제공할것이나,위협을받는당사국이자국의방위를위한일차적인책임을져야한다.”결론적으로미국은앞으로아시아지역의전쟁에는개입하지않겠다는선언이었다.다시말해북한이남침을하더라도미국은직접참전하지않고,북한이핵공격을할경우에만핵우산을제공하겠다는것이다.그러면서미국은실제로당시남한에주둔하고있던미군의철수를개시했다.

우리나라입장에서는청천의벽력이고당장발등에불이떨어진격이었다.6·25의참상을경험한우리에게전쟁보다무서운것은없었고,미군에만의존하던국방을하루아침에자주국방으로전환하지않으면안되는절박한상황이벌어진것이다.미군이떠난한반도가북한의손아귀에들어가는것은그야말로시간문제일뿐이었다.이런화급함에도불구하고,안타깝지만자주국방은하루아침에달성될수있는목표가아니었다.이미군사력과경제력모두에서북한에크게뒤지고있는상황이었으니뾰족한수를찾기가참으로난망했다.문자그대로누란의위기였다.

닉슨독트린이발표된1969년부터박대통령이서거한1979년까지,박정희대통령의마지막10년은이절체절명의국가적위기를돌파하는활로찾기에오로지집중되었다는것이나의생각이다.한마디로요약하면‘자주국방’의추진이다.그런데이때의자주국방은한국가의명운을건백척간두의싸움이자가장난해한퍼즐을맞추어야하는고도의게임이기도했다.그저국가정책의우선순위를바꾸는정도의문제가아니었던것이다.그것은또하나의전쟁이자한국가와국민전체의사활을건위험한도박이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