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제주 : 일 년의 반은 제주살이

아무튼 제주 : 일 년의 반은 제주살이

$17.50
Description
때로는 여행 같고 때로는 일상 같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제주살이
유머와 감동이 있는 은퇴부부의 티키타카
기를 쓰며 돈을 벌고 경쟁에서 이기고 셈을 아끼고 할 필요가 없는 삶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꿀 것이다. 정년을 맞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비켜선 부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여기 시시때때로 제주에 내려가 틈만 나면 투닥거리는 은퇴부부가 있다. 돈 없으면 한 달, 여유가 되면 두 달, 또는 세 달 살이를 하는 그들의 모토는 ‘바람과 햇볕 아래 오랫동안 서 있을 것. 자주 외로운 자리를 만들 것. 편안한 곳을 정해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것. 고요하고 낯선 것들을 어려워하지 말 것’이다. 더 이상 멋을 부려도 예쁘지 않고, 애교를 부려도 귀엽지 않고, 화를 내도 무서워하지 않자 할 일이 없어진 아내와 일밖에 모르던 남편이 제주의 올레길과 숲을 걷고 바다를 따라 걸으며 느리고 소박한 삶을 누린다. 그들은 바쁘게 살아온 서로의 삶을 돌아보고 측은지심을 느끼기도 한다. 익숙한 것들을 두고 떠났으니 모든 것이 부족해 불편했고, 온종일 더듬거려야 했지만 그제야 비로소 재미있는 일, 소중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의외로 큰 기쁨이 되었다. 먹고 자고 걷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자꾸만 그들의 발길을 ‘젊어지는 섬’ 제주로 향하게 하는 까닭이 되었다.

때론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느닷없는 코끝 찡함으로
무심하게 털어놓는 이야기가 지친 일상에 따뜻한 위로가 되다
『아무튼 제주』를 읽다 보면 때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다가 어느새 코끝이 찡해오기도 한다. 부부의 티격태격이 재미있어서, 늙어가는 서로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따뜻해서 작은 감동이 일렁인다. 저자는 고사리를 꺾다가 돌무더기 위로 넘어지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보며 웃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기도 하지만, 산을 오르다 슬며시 남편의 손을 잡아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제주에서 만나는 뭇 생명들에 대한 애틋함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계속 따라오는 백구에게 줄 빵을 사느라 좋아하는 막걸리를 못 먹기도 하고, 신도포구에서 만난 남방큰돌고래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다치게 되자 그들을 대신해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마을의 터줏대감인 퐁낭(팽나무) 할아버지를 통해 오래된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재개발로 인해 퐁낭 할아버지가 사라질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특히 저자는 숲에 자주 가는데, ‘숲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도 하고 지금의 내 자리를 점검해 보는 시간도 갖게 한다’라고 함으로써 삶을 성찰하는 장소로 숲을 찾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살이를 꿈꾸는 이나 일상에 지친 이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책이 될 것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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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엄봉애

저자:엄봉애
살면서지금까지다른이의칭찬을받거나부러움을살만한일을한적이없다.전업주부로서가정을따뜻하게보살피고,아이들을건강하게길러내고가끔은꼴보기싫은남편의뒤통수를노려보는외에자랑스러울일이없다.그러다우연찮게제주에서살아보기로했다.평생자신의일외에는할줄아는게없는남편과함께살게되었으니,거기서는내가대장이될수있어,남편을골탕먹이기딱이었다.신바람이나서자주제주를들락거렸다.
더이상멋을부려도예쁘지않고,애교를부려도귀엽지않고,화를내도무서워하지않자할일이없었다.여자로서의삶을포기하고나니,그제야비로소재미있는일,소중한일들이생겼고,그것은의외로큰기쁨이되었다.제주에서모자람투성이의삶을살며,가진것이많아야꼭행복한것이아님도알게되었다.그래서쓰기시작했다.언제나어디서나볼수있는,누구나겪을수있는,그것이바로내말이야하면서고개를끄덕여비슷한감정을공유할수있는그런이야기를,세상에서가장쉬운말로하고싶었다.그렇게서로에게위안이되고싶었다.
서정시학(수필부문)으로등단(2011년)
두아이의엄마노릇만하다가그림강사로활동
지금은제주에서돈없으면한달,여유가되면두달,세달살이를하고있다.

목차

프롤로그-제주살이의시작은망설임이었다

1부봉봉이와붕붕이의행진
소쿠리안에가득한붉은앵두
지가이제와서뭔일이나제대로하겠어?
봉봉이와붕붕이의행진
쫄보와훈남1
쫄보와훈남2
숲에도주제가가있다
다리를배배꼬며갈지자로걷다
백만원도아니고천만원도아니고
OK목장의결투
40년만에찾아온우렁각시
그의허벅지살로밥을해먹다

2부손톱과발톱이자라는풍경
손톱과발톱이자라는슬픈풍경
고근산을오르다슬며시그의손을잡다
놈팽이?거지부부?
고사리포로만들기
어느운수좋은날
바람이불어밥만먹었다
아버지의바지랑대
엄마,붉은줄장미가피었어요
두부한모,갈치가운데토막
어둠을더듬어돌아오는길,함께라서다행이야

3부위풍당당퐁낭할아버지
퐁낭할아버지
뽀글이영감
백구이야기
해녀대장할머니
수애기
감꽃
시골동네의원에서
오래된초등학교교정에서
푸대접받아도나는제주가좋다
성산일출봉의풍경을묻지마라
초록이젖었다
비가내리면더아름다워지는것들

4부우리는천천히늙어갈것이다
잃어버린마을
훔쳐먹은귤보다더맛있는귤
지미봉에서혼을빼다
강정마을에서만난애국녀
가파도에서보낸두시간
고망난돌,섯가름,배튼개,왕대왓,서년듸…
영주산아래에서수없이절하다
제주에서문화인코스프레
우리는천천히늙어갈것이다
지나온길들을복습하다
버리고가는길

에필로그그리고다시서울
추천사집으로돌아오는길|강연호

출판사 서평

때론터져나오는웃음으로,느닷없는코끝찡함으로
무심하게털어놓는이야기가지친일상에따뜻한위로가되다

『아무튼제주』를읽다보면때로웃음이터져나오기도하다가어느새코끝이찡해오기도한다.부부의티격태격이재미있어서,늙어가는서로를안쓰러워하는마음이따뜻해서작은감동이일렁인다.저자는고사리를꺾다가돌무더기위로넘어지기도하고,그모습을보며웃는남편에게눈을흘기기도하지만,산을오르다슬며시남편의손을잡아보기도한다.뿐만아니다.제주에서만나는뭇생명들에대한애틋함이책곳곳에스며있다.계속따라오는백구에게줄빵을사느라좋아하는막걸리를못먹기도하고,신도포구에서만난남방큰돌고래가몰지각한사람들에의해다치게되자그들을대신해용서를구하기도한다.마을의터줏대감인퐁낭(팽나무)할아버지를통해오래된마을사람들이야기를듣기도하고,재개발로인해퐁낭할아버지가사라질까봐걱정하기도한다.특히저자는숲에자주가는데,‘숲은지난시간을되돌아보게도하고지금의내자리를점검해보는시간도갖게한다’라고함으로써삶을성찰하는장소로숲을찾는이유를설명하고있다.제주살이를꿈꾸는이나일상에지친이에게웃음과감동을주는책이될것이다.

책속에서

나는비맞아뒤틀린나무벤치에아침마다앉아있고싶어졌다.햇살이살금살금돌담을기어오르고다시그만큼내려와자그마한잔디밭에서곰실거리며기다란창으로들어오는집.빨랫줄에흰수건을빨아널고는,깊고편안한잠을잘수있을것같았다.내가하던일들,내게잠시소중하고귀하게여겨졌으나생각하면또아무것도아닐수있어꼭해야한다는집착을버린다면어려울것도없었다.

들여다보니내가좋아하는여행이라는게,멋진장소나아름다운곳을찾아다니는여행이아니라,여행하는과정중에아무것도아닌것들을만나는일이었다.갑작스레퍼붓는비,우산의주인인듯보이는아이가친구를위해내어놓은젖은어깨를보는일.철지난옷을뒤적대다가툭!주머니에서떨어진상수리열매나조개껍데기하나가지난시간으로나를데려다놓으면,더불어떠오르는그날이아득했지만,어제같아서참좋았다.

낯선곳에서깨어난이른아침이아까워,이슬에온발을다적시며안개속을걸어다니기도했다.별스럽지도않은,중요하지도않은,허름하거나오래된그런것들로부터위안을받는마음이오히려편안했다.

제주의숲은깊다.아무리뜨거운날이라도아름드리나무들이서늘한기운을뿜어내고머리위로짙은그늘을드리우면,산벚꽃잎들이바람결에하느작대며눈앞으로지나간다.이미져버린동백군락지에는볕에바랜꽃들이툭툭떨어져발걸음을잡는다.간혹성한꽃송이를발견하면,한쪽길옆으로꽃들을보기좋게모아놓거나검은바위위에이쁜모양으로올려놓는다.그곳을지나는누군가는그꽃들을보며행복해질것이다.

“평생을좋아하는일만했음에도얼마전부터그일이지겨워지고하기싫어꾀가나더구만.자네는똑같은일을40년이나하고,해도해도끝이없는단순노동이대부분이었으니얼마나지겹고힘들었겠는가.”

‘내몸에서도새것들이자라는구나.’매일조금씩늙어가는데도새로운무엇들이자꾸만자라나,거기에비례로생명에대한기쁨과기대들도자꾸만자라났다.

“눈앞에저렇게멋진바다가펼쳐져있고,등뒤로는산방산이보이고,막걸리한잔에신김치하나면온갖시름이없는데,이행복을어디가서살수있겠나.”

어쨌든이름이너무쓸쓸해서그바다가또그렇게쓸쓸할까봐,나는그곳에여러번다녀왔다.파도로하얗게다가왔다가멀어지며,쪽빛으로넘실대는일밖에할줄모르는바다를,늘같은모양의그를사람들은지치지않고사랑했다.바닷가기슭에가만히서있으면가끔씩그푸르디푸른오묘한빛의바다로,찰박찰박걸어들어가고싶었다.

우리는딸에게도아름다운세화의바닷길을걷게해주고싶었다.하루에12시간씩일하는그녀의눈을,그리고피곤에지친마음을씻어주고싶었기때문이다.여기있는동안온전히자신만을위해모든시간을쓸수있기바랐다.아름답고편안한이곳의풍경속을걷고또걸어지쳐가고있는마음에위로가되게하고싶었다.

제주의어느집마당에서,나는그알수없는쓸쓸함이나그리움이,피고지는꽃때문인줄알았다.그마당에서처럼풍요로운것들을가지지못한결핍때문인줄알았다.그러나이제야그것이,내안에숨을죽이고있던,엄마잃은아이가문득떠올린,어린날의그리움과행복이었음을.

끝이보이지않는시중으로지쳐가던내게남편은이젠그만먹이라며보내주는게옳다고말했다.그것이나중에늙고병들었을내게하는말같아서화를냈다.그러나밤새숨죽인뽀글이의신음소리를들으면서어찌몰랐겠는가.살아있음이오히려욕이라는것을.주인의어쭙잖은동정으로녀석이죽음같은시간을견디고있다는것을.

제주는이상한섬이다.폭우로쏟아지던비가그치고해가나기시작하면빗물은흔적도없이사라져버린다.검은화산석이순식간에빗물을빨아들여땅을뽀송하게만들어버리니꿈인가,속은것같기도하다.비가내린뒤에는주변의푸름이더맑고선명해져늙어가는섬이아니라젊어지는섬이라는생각이든다.

그냥아이들이모두다행복해보여좋았다.거기에저푸른하늘좀봐,그아래긴머리칼을팔랑대며뛰는아이들은가벼운나비같았다.늙은느티나무아래꼬맹이세명이둘러앉아재잘댄다.슬그머니옆으로가들여다보니,한아이가묻는다.“이거드려요?”조그만유부초밥을들어올렸다.

바닷길과검은돌담을여기저기기웃거리며쓸쓸하고외롭게보낸시간.그런데마음은더욱따뜻해져돌아갈수있으니대견했다.집을나섰으나낯선이섬에는정작갈곳이없어터벅대고걷다가,잘보낸시간이다.혼자서도이렇게마음그득한하루를보낼수있구나.가끔은남편과대판싸우고집을나설일이다.

줄기가가는꽃대들과아직어린나무들이억센빗줄기에도패이거나꺾이지않는이유는,그들이자연의힘을거스르지않기때문이다.휘청거리며서서오는비를다맞아들이고,큰바람이불어도피하지않고의연히서서,그것도견딜수없으면둥글게이리저리몸을말아,그사이로바람이가는길을열어주기때문이다.

빨래가마르고나면,거기에햇살이배어있어바스락거리는소리가들렸다.빨래를개어정리를하고나니아무것도할일이없어둘이마주보며앉아있다가,그얼굴이그얼굴인것을확인하고는차라리바다를보자!나서기로했다.

울퉁불퉁한흙길에나무를놓아가지런할수없는계단들.힘들다는얘기는할수없었다.괜찮다고,아무렇지도않다며서로를위로했지만,우리는둘다알았다.이런길들이편안하기에는우리가너무나이들었다는것을.그대신에나를위로한것들은구슬봉이,보라제비,양지꽃,민들레꽃이었다.그리고간간이뒤를돌아보며별일없나,확인하는남편의눈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