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실록으로 읽다

경복궁 실록으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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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것으로 아무리 왕이라 해도 자신의 실록은 물론 선왕의 것 또한 고칠 수도 볼 수도 없었다는 점에서 권력에서의 완벽한 독립성이 인정되고 있다. 또한 실록에는 사신의 주관적 논평, 즉 사론도 함께 기록됐는데 이는 사건의 시말이나 시비는 물론 관직 임명에 대한 의견, 생전 또는 사후의 인물에 대한 주관적 의견도 포함되어 역사를 바라보는 눈의 역할을 했다. 저자는 실록을 근거로 경복궁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다뤘다. 책은 단순히 궁을 답사하기 위한 가이드북이 아닌 우리의 역사를 함께 되짚어보며 시간 속에 지워져 가던 경복궁의 진정한 의미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다.
저자

최동군

저자志于學士최동군(崔東君)은
다음,네이버,페이스북닉네임:동쪽임금(東君을풀어씀)
강원도원주에서육군보병장교최준호대위와김주자여사사이의장남으로태어남.1973년부산연제초등학교에입학한후,동해중학교,동인고등학교를거쳐1991년연세대학교를졸업할때까지우리문화재와역사에는특별한지식이없는평범한시민이었음.그러던중1997년태어나서처음참여한2박3일간의‘경주고적답사’에서거의신내림에가까운큰문화적충격및감명을받았고,그후로우리문화재와역사에대해독학으로집중공부함.또한평소‘배워서남준다’는소신으로많은문화답사강좌및모임을통해우리전통문화와역사를전파하고있음.
유튜브(YouTube)에서‘최동군’으로검색하면[답사방법론12가지],[음양오행과풍수],[궁궐],[불교및사찰],[조선왕릉]등다수의특강동영상을볼수있음.
2013년부터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문화해설사입문’과목을강의중이며2016년부터성균관대학교유교문화연구소연구원으로활동중임.

ㆍ주요저서및논문
ㆍ2016향교ㆍ서원활용모델개발에관한연구
(2016동양철학문화연구소)
ㆍ8일간의화성행차정조반차도(2016)
ㆍ현장학습1번지국립고궁박물관(2016)
ㆍ답사여행1번지경주(2016)
ㆍ문화재속숨어있는역사(2015)
ㆍ나도문화해설사가될수있다Series
궁궐편(2011),사찰편(2012),
북한산둘레길편(2013),능묘편(상ㆍ하/2014)

ㆍ공식카페:cafe.daum.net/NaMoonSa
ㆍ페이스북:www.facebook.com/NaMoonSa(작가최동군)
ㆍ페이스북:www.facebook.com/DongKuhn(개인최동군)

목차

머릿말_4

궁성과사대문_12
경복궁의입지선정-동전던지기로결정하다_13
궁성-연산군의궁성밖민가철거는적법했다_32
광화문[南門]-제1차왕자의난의분수령_51
건춘문[東門]-간신의대명사가된파수꾼_64
영추문[西門]-청일전쟁의서막을열다_74
신무문[北門]-조광조의몰락을지켜보다_81
동십자각[闕의흔적]-서십자각은어디로갔을까?_88

외조일원_94
흥례문[中門]-원래이름은홍례문_95
영제교[禁川橋]-풍수지리의상징물_104
유화문과기별청-수많은관청들의조화를상징하다_115

치조일원_123
근정문-왕의즉위식이열리던장소_124
근정전[法殿,正殿]-정도전의숨은뜻을담다_140
사정문과사정전[便殿]-왕이일상정치를하는곳_166
만춘전과천추전[보조便殿]-천체관측활동의중심지_193

동궁일원_206
자선당-왕세자를노린저주사건과방화사건_207
비현각-삼고초려의원조,명재상이윤을본받아라_216

대전과중궁전일원_220
향오문과강녕전[大殿]-세조의술자리정치_221
연생전,경성전,연길당,응지당[小寢]-오행의상징물_232
양의문과교태전[中宮殿]-음양의상징물_241

함원전과흠경각_251
함원전-단종의비극을간직한전각_252
흠경각-조선의표준시는이곳에서부터_268

경회루와수정전_279
경회루-아무나볼수없었던비경을간직한곳_280
수정전-집현전이라불리웠던전각_303

자경전일원_312
자경전-남편보다더대접받은조대비_313

건청궁일원_323
향원지와향원정-중국사신마저감탄한곳_324
건청궁-고종의독립의지를상징하다_329
장안당과곤녕합-명성황후시해사건에연루된대원군_339

집옥재일원_348
집옥재-일본의뒤집기한판_349

태원전일원_357
태원전-묘호가바뀐왕들_358

집경당과함화당_369
집경당과함화당-외국사신들과의접견장소_370

출판사 서평

조선왕조의흔적을고스란히간직한궁궐이들려주는이야기!!
사람은삶으로써흔적을남기고
집은그흔적을간직함으로써삶(역사)을기억한다.

사람없이‘집’이존재할수없고,집이존재해야만이삶이이어질수있다.그렇게이어진삶들은역사가되어세상에남는다.
김춘수시인이그의작품에서이름을불러주어야비로소꽃이된다고했듯,집이란누군가의삶이들어서는순간비로소‘집’의의미를가지게되는것이다.

지금은관광지로쓰이는궁궐도이전에는누군가의집이자수많은사람들의삶이담긴공간이었다.그공간에담긴의미를제대로이해하기위해서는그당시그곳에서살았던조상들의삶속으로들어가봐야한다.이미100여년전왕조시대가끝난오늘날,궁궐속우리조상들의삶속으로들어갈수있는유일한방법은조선왕조실록을통하는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왕의일거수일투족을기록한것으로아무리왕이라해도자신의실록은물론선왕의것또한고칠수도볼수도없었다는점에서권력에서의완벽한독립성이인정되고있다.또한실록에는사신의주관적논평,즉사론도함께기록됐는데이는사건의시말이나시비는물론관직임명에대한의견,생전또는사후의인물에대한주관적의견도포함되어역사를바라보는눈의역할을했다.

저자는실록을근거로경복궁에서일어난역사적사건들을다뤘다.책은단순히궁을답사하기위한가이드북이아닌우리의역사를함께되짚어보며시간속에지워져가던경복궁의진정한의미를만나게해줄것이다.

세종은풍수전문가였다?!
조선역사상가장위대한과학발전을이룬세종대왕이사실은풍수전문가라고하면믿을사람이몇명이나있을까?실록을통해보면세종대왕또한풍수지리가성리학적인관점에서보자면정통이아닌이단의학문임을확실하고간혹허황된내용도있다고얘기하지만,조상대대로수용해온것이기에버릴수는없다고얘기하고있다.또한기왕쓰려한다면제대로써야한다며집현전에서제대로강습하라고까지이야기했다.
풍수에대한이같은태도는비단세종대왕뿐만아니라조선의역대왕들에게서공통적으로나타난다.풍수지리외에도도교계통의소격서에대해서도같은입장을취했다.
이러한세종이풍수지리를따져궁안금천(禁川)으로물이흐를수있도록하였는데,이에대한내용이세종실록에자세히실려있다.

세종15년(1433)7월21일/황희,맹사성,권진등을불러강녕전,경회루,역상등에관해논의하다
...(전략)...“근자에글을올리어(풍수)지리를배척하는사람이더러있으나,우리조종께서지리로서수도를여기다정하셨으니그자손으로서쓰지않을수없다.
정인지는유학자인데,역시지리를쓰지않는것은매우근거없는일이라고말하였고,나도생각하기를지리의말을쓰지않으려면몰라도,만일부득이하여쓰게된다면마땅히지리의학설을따라야할것인데,지리하는자의말에,`지금경복궁명당에물이없다`고하니,내가궁성의동서편과내사복시(內司僕寺)의북지(北地)등처에못을파고도랑을내어서영제교(永濟橋)의흐르는물을끌고자하는데어떻겠는가.”하니,모두아뢰기를,“좋습니다.”하였다.

연산군의무오사화는당연한것?!
지금의많은사람들은연산군이라고하면‘폭군’의이미지를많이떠올릴것이다.연산군이폭군이었다는점에대해서는이론의여지가거의없다.하지만그가재위기간내내폭군이었던것은아니다.연산군은아버지였던성종과달리준비된적장자로서왕위에올라신권이왕권을넘어서려는것을용납하지않았다.연산군이강력한왕권을세우려노력하던중성종의실록을편찬함에있어김일손이쓴사초가문제가되어일어난사건이무오사화이다.
김일손은자신의스승인김종직이단종의일로조의제문을지어분개했고,그때문에본인이조의제문을사초에넣었다고증언했다.김종직의조의제문은세조의계유정난을비난하는글로연산군에게는자신의증조부를모독할뿐만아니라자신에게까지내려오는왕위정통성을흔드는것이기에대역죄로다스림이당연했다.
이처럼무오사화는갑자사화와달리,연산군이폭군이어서일어난일은아니라고볼수있다.연산군이아닌그어떤다른임금이그자리에있었다하더라도이같은일을용납하고넘어가지는않았을것이다.
무오사화가일어남에있어가장주요한역할을한자는건춘문파수꾼출신으로간신의대명사가된유자광이다.유자광은누구도해석할엄두를내지못한조의제문을글귀마다풀이해그글이세조를비판하는글임을연산군에게알리는역할을했다.그랬던그가중종반정이일어나가적극가담했고,연산군일기에는그런그에대한사관의부정적평가가적나라하게남아있다.

연산4년(1498)7월29일/유자광에대한평가내용과무오사화의전말
...(전략)...유자광은부윤(府尹)유규(柳規)의서자[?子]로,날래고힘이세었으며,높은나무를원숭이와같이잘탔다.어려서무뢰자(無賴子)가되어,장기와바둑을두고재물을다투기도했으며,새벽이나밤에떠돌아다니며길가에서여자를만나면마구끌어다가음간(淫姦)을하므로,유규는그소출이미천한데다가또방종하고패악함이이러하니,여러번매질을하였을뿐만아니라자식으로여기지아니하였다.처음에갑사(甲士)에소속되어건춘문(建春門)에서파수를보다가상소하여자천(自薦)하니,세조가그사람됨을장하게여겨발탁하여썼다.또무자(戊子)년에고변(告變)한공로로써훈봉(勳封)을받아1품(品)의품계로건너뛰었다....(후략)

단종은근정문,세조는근정전?!
근정전은경복궁의중심이되는정전이며근정문은근정전으로들어가는정문이다.이곳에서는역대왕의즉위식이나대례등이거행되었다.그렇다면역대조선왕들은모두근정전에서즉위식을올렸을까?실록을살펴보면왕마다즉위장소가다름을볼수있다.

단종즉위년(1452)5월18일/근정문에서즉위하고교서를반포하다
노산군(魯山君)[후일단종으로복위됨]이근정문(勤政門)에서즉위(卽位)하고,반교(頒敎)하기를,...(후략)...

세조1년(1455)윤6월11일/노산군이세조에게선위(禪位)하다
...(전략)...세조가사정전으로들어가노산군을알현하고면복을갖추고,근정전(勤政殿)에서즉위(卽位)하였다....(후략)...

그렇다면왜왕들마다즉위장소가달랐던것일까?무릇왕의즉위는이전의왕이죽어그자리가비어야만이행해지는행사이다.따라서왕의즉위식은경사가아닌조사로흉례(凶禮)의예를따랐다.정상적인왕의승계가일어날경우당시국법대로라면근정문에서즉위식을올리는것이맞다.하지만세조는단종이살아있는상황에서왕위를찬탈했기때문에흉례를따르지않고근정전에서즉위하였던것이다.

이처럼각건물들마다우리가잘알지못했던이야기들이담겨있다.우리가접하는문화재를컴퓨터로예를들자면유물또는문화재들은하드웨어이고그안에담긴이야기(역사)는소프트웨어이다.둘중하나라도없으면컴퓨터를제대로작동시킬수없듯문화재속에담긴역사를알지못하면제대로된문화재답사를했다고볼수없다.스스로한번자문해보자.우리는항상겉으로들어난경복궁의하드웨어만을둘러보고있지않은가?본서적에실린소프트웨어(역사)를잘숙지하여경복궁의하드웨어와접목시킨다면그순간부터새로운경복궁의모습을보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