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총체성을 구현하는 그로테스크는 연극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 견지해야 할 최고 원칙이다.”
메이예르홀트의 연출세계를 통해 살피는 모더니즘 연극의 예술성과 실험정신
〈메이예르홀트의 연출세계〉는 스타니슬랍스키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연출가로 평가받는 메이예르홀트의 연극론과 연출이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메이예르홀트의 연출세계〉에는 그의 논문과 연설문, 대담, 편지 등 연극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총망라되어 있다. 1968년 출간된 〈메이예르홀트의 연출세계〉는 그 방대한 양과 충실한 해석으로 오늘날까지도 메이예르홀트의 연출세계를 조망하는 최고의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메이예르홀트의 연출세계〉에는 배우로서 연극계에 첫발을 내딛었던 메이예르홀트의 초창기 활동부터 연출가로서 새 출발을 하던 고난의 시기,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의 연극계를 지휘하던 전성기 활동이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특히 그가 소련 연극의 수장으로서 활동하던 1920~1930년대의 자료들은 혁명기 연극이 겪었던 고난과 혼란, 그리고 불같이 타오르는 혁신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달해줄 것이다. 그 열기로 찍어낸 역사의 인장이 20세기 연극사의 한 장경을 연출하는 원동력이 된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역자 서문]
본 역서는 러시아 모더니즘 연극의 기수였던 V. 메이예르홀트(1874~ 1940)의 논문, 편지, 일기, 연설문, 대담 등을 모은 책이다. 그의 모든 저작이 집대성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전집’은 아니지만, 그의 연극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가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전집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 역서라 할 수 있다.
연극리얼리즘의 선구자였던 스타니슬랍스키의 출중한 제자였으나 스승과 정반대의 길을 간 메이예르홀트는 생체역학, 조건극, 음악극, 그로테스크 등의 개념으로 모더니즘 연극의 지평을 마련했다. 그가 선도한 파격적인 실험들은 20세기 연극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고, 스승 스타니슬랍스키와 함께 20세기 연극계를 양분하는 거대한 산맥으로 평가되고 있다. 파격적인 시도와 경이로운 실험으로 연극의 영토를 확장한 메이예르홀트는 러시아혁명을 미학적 혁명으로 승화시키려 했으나 예술의 정치화를 주장하는 반대파의 모함으로 인해 1940년 총살되고 만다.
메이예르홀트는 자연주의의 극복, 민중연극 지향, 자유로운 창조에 대한 무한한 충동 등을 자신의 예술 기조로 삼았다. 그가 주창한 조건극, 음악극, 생체역학, 그로테스크 등의 개념은 위대한 연극전통을 계승하는 건실한 다리이자 미래 연극을 위한 풍성한 모천이 되었다. 끊임없는 도전과 저돌적인 혁신 정신으로 점철된 그의 파란만장한 연극인생은 오늘날에도 무대예술의 본질과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역서가 한국 무대예술의 도약을 위한 이론적, 실천적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본 역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네 명의 역자가 수많은 회의와 논쟁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부분은 분명히 남아있을 것이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 그러한 결함은 전적으로 역자들의 무지와 과문함 때문인바, 독자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빌 따름이다.
본 역서의 발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신 한국연구재단과 정성스러운 편집 작업으로 책의 품격을 높여주신 한국문화사 김진수 사장님과 이지은 팀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번역의 책임성을 보장하기 위해 역자별 번역 내역을 밝혀둔다. 김혜란은 1권 102~207쪽, 3권 343~405쪽, 4권 전부, 박현섭은 1권 275~313쪽, 2권 220~286쪽, 백승무는 1권 3~101쪽, 1권 314~416쪽, 2권 3~86쪽, 2권 287~410쪽, 3권 3~342쪽, 안지영은 1권 207~275쪽, 2권 87~219쪽을 번역했다.
[원서 편집자 A. 페브랄스키의 서문]
이 출판물은 프세볼로트 에밀리예비치 메이예르홀트(Всеволод Эмильевич Мейерхольд, 1874~1940)가 글로 남긴 연극적 유산을 최초로 모은 저작이다.
이 저작 속에는 논문과 소논문, 편지, 일기 형식의 기록, 연설문(속기록이나 회의록 형식), 언론계 대표자들과의 대담 등이 실려 있다. 하지만 메이예르홀트가 직접 창작한 드라마 희곡들과 그가 번역한 작품들은 이 출판물 속에 포함되지 않았다.
메이예르홀트가 언론 지상에 최초로 기고를 시작한 것은 1902년의 일로서, 모스크바 신문 『전령』(Курьер)에 밀라노에서 보낸 통신문을 게재한 것이 그 시초이다. 그 후 메이예르홀트는 1907년부터 1910년 사이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논문들을 출판했는데, 훗날 그 논문들과 아직 출판되지 않은 다른 논문들을 묶어서 『연극에 관하여』(О театре, 상트페테르부르크, 1913년. 저자 서문에는 1912년 11월로 기록되어 있다)란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메이예르홀트의 소책자 『연극의 개조』(Реконструкция театра, 모스크바, 1930)와 적지 않는 논문과 소논문, 언론계 대표자들과 나눈 많은 대담도 그의 생전에 출판되었다. N. D. 볼코프의 두 권짜리 책 『메이예르홀트』(Мейерхольд,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1929)에는 혁명 전에 작성한 메이예르홀트의 편지와 메모 들 일부가 게재되어 있다. 메이예르홀트가 연설을 통해 발언한 내용은 이를 보도한 언론 매체 기사에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 메이예르홀트가 글로 남긴 유산은 방대하다. 많은 양의 속기록과 적지 않은 편지와 논문, 논문 초안과 메모를 포함하는 이 자료들은 소련국립중앙문학예술문서고(메이예르홀트 전용 문서번호 ф. 998과 메이예르홀트국립극장 전용 문서번호 ф. 963)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 소재한 다양한 소장시설 및 메이예르홀트 연구 학자들과 동료들, 서신교환자들이 보관하고 있다. 이 유산 자료들은 메이예르홀트가 예술가이자 연출가일 뿐만 아니라, 독특한 창조적 면모와 고유한 문학적 스타일을 보유한 작가이며, 탐구심 강한 연구자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메이예르홀트는 뭐니 뭐니 해도 연출가였다. 그래서 그의 유산 대부분은 연출활동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연출활동에 대한 이론적 주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메이예르홀트 공연을 간접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메이예르홀트의 발언들은 독자들에게 생생한 연극체험을 제공하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샘물이 될 것이다. 메이예르홀트를 흥분시킨 많은 질문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연극 활동가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메이예르홀트의 대답은 오늘날에도 크나큰 실용적인 의미가 있다.
이 뛰어난 거장이 온갖 분야에서 시도한 지칠 줄 모르는 탐색은 매우 흥미롭다. 메이예르홀트의 탐색 중에서 눈부신 성취를 달성한 부분뿐만 아니라, 긍정적 결과를 산출하지 못한 부분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1935년 2월 11일 지방 극장 연출가들과의 대담에서 메이예르홀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연출 원리를 자주 변화시키고 형태를 바꾸었는데,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새벽노을」을 제작할 시기에 안주하지 않고 많은 면에서 변했습니다. 예술이 멋진 이유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매 단계마다 ‘나는 배우는 사람이야’라고 자신을 가다듬게 만든다는 데에 있습니다. (…) 우리는 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우리는 기본적인 입장까지 변경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기본적 입장이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어쨌든 많은 변화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메이예르홀트는 틈만 나면 자신이 예술계의 실험가임을 강조했다. 평론가들이 여러 차례 빠진 함정, 즉 평론가들이 메이예르홀트가 이미 성공적으로 극복한 과거의 발언이나 무대실험을 꼬투리 삼아 그를 비난하려다가 빠진 그 함정을 피해가려면 메이예르홀트의 창작세계가 가진 실험가적 특성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메이예르홀트의 자료들을 접할 때 독자들은 그가 이 자료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메이예르홀트가 자신의 책 『연극에 관하여』와 관련하여 한 발언들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메이예르홀트는 그 책에 포함된 논문들 속에 자신이 보기에 “얼마간의 보충적 설명과 보론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1930년대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만약 내게 여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연극에 관하여』에 실린 내 논문 중 몇 편을 고쳐 쓰고 싶다. 그렇다고 본질적인 개작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20세기 초에 유행한 모더니즘 용어들만 없애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그 모더니즘 용어들 때문에 이 논문들은 오늘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본서에 포함된 몇몇 자료를 통해 우리는 메이예르홀트의 개별 공연들이 무대상연을 준비하는 과정과 개작, 혹은 새로운 판본의 공연을 거치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본서의 편집자들은 이 책에 메이예르홀트가 올린 모든 공연(1920년부터 시작된 모스크바 시기의 공연은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포함했다)에 대해 본인이 직접 설명한 자료들을 집어넣었으며, 결국 실현되지 못한 그의 구상들 또한 공개하려고 노력했다. 메이예르홀트의 발언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1920년대의 몇몇 공연만은 본서에 포함되지 못했는데, 그 공백은 이 공연들에 대한 설명이 담긴 주석을 통해 일정 부분 메워질 수 있을 것이다.
공연에 대한 자료의 분량이 항상 해당 공연의 중요성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구체적 공연에 대한 관련 자료들은 메이예르홀트의 창작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해당 공연의 위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료의 내용적 중요도와 공연 자체의 한계를 넘어선 뛰어난 문제의식 덕분에 선택된 것이다(예를 들어, 「부부스 선생」에 관한 강연 속기록과 이 공연이 채택한 ‘음악극’이라는 문제의식이 그것이다).
메이예르홀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