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삶과 문학

박태원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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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태원과 정지용은 함께 구인회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닮은 점이 매우 많다. 첫째, 실험정신이 투철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모더니스트로서 진실로 다양한 창작기법과 문체를 선구적으로 실험했다. 이러한 실험정신은 우리나라의 작가들과 평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둘째, 유학파로서 청년기에는 서구 과학문물에 대한 예찬에 몰두했으나, 식민지 현실을 돌아보면서 참담한 여건의 민족과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용이 후기시인 한적시(산수시)를 통해 동양적인 사유에 젖어들었다면, 구보는 자신의 가족 주변의 소시민의 일상생활에 대한 글에 몰두하는 동시에, 고전인 『삼국지』와 『수호전』 등의 역사소설에 대한 번역에 집중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두 사람 모두 현실 상황에 의해 월북을 택한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

박태상

저자박태상은연세대학교국문학과와연세대대학원에서공부하여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미국미시간주립대학교(MSU)에서객원교수를지냈고,현재한국방송대인문학부국문학과교수로재직중으로미국Duke대학교(2017년)에방문교수로있다.대전ㆍ충남지역대학학장과울산지역대학학장을역임했다.대통령자문기구,민주평통상임위원겸자문위원으로활동했고,충북옥천의지역축제인〈지용제〉의운영위원을맡았다.(사)〈서울평양학회〉회장,동아일보〈건강한인터넷운동〉국민운동본부장등을역임했으며,현재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부회장으로있다.

저서
『원본김기림시집』,『문화콘텐츠와이야기담론』,『정지용의삶과문학』,『문화통합론과북한문학』,『북한문학의사적탐구』,『한국문학과죽음』,『북한의문화와예술』,『엽기ㆍ패러디시대의한국문학』,『북한문학의현상』,『한국문학의발자취를찾아서』,『박태상의동유럽문화예술산책』,장편역사대하소설『진채선,사랑의향기』(3권)등36권이있다.

목차

ㆍ책머리에/v

제1부박태원은과연모더니스트였는가

탈식민주의담론을통해본지용과구보문학의존재방식
1.머리말
2.‘흉내내기’로서의모더니즘과그미학적가치
3.‘따라하기’와‘구별짓기’의모순성각성
4.‘하위주체의말걸기’로서의대안모색과한계
5.맺음말

기호학적담론을통해본정지용ㆍ이상ㆍ박태원의상관관계__43
1.머리말
2.구인회,모더니즘및근대적자아의형성
3.짐멜의담론과퍼스기호학의관점에서풀어본미적체계
4.맺음말

제2부박태원은왜역사소설에몰두했는가

고전「홍길동전」과박태원의「홍길동전」의기호학적비교연구
1.머리말
2.구보의해방기역사서사의창작배경
3.고전「홍길동전」과구보의「홍길동전」의변별성
5.맺음말

해방후박태원역사소설연구
1.머리말
2.제국주의와역사적이데올로기그리고해체담론
3.해방전후역사소설의창작동인과구보의역사관
4.주변부관찰을통한해체주의적시각
5.맺음말

박태원의『임진조국전쟁』과김훈의『칼의노래』비교연구
1.머리말
2.작가박태원과김훈의세계관
3.퍼스의담론을통해서본『임진조국전쟁』ㆍ『칼의노래』
4.맺음말

제3부박태원은양가성ㆍ혼종성의저항을했는가

불안한관찰과불온한전망
1.머리말
2.불안한관찰의서사
3.불온한전망의서사
4.맺음말

제4부북한문학사에서박태원은어떻게살아남았는가

북한문학사에서의박태원문학의위상과좌표
1.머리말
2.북한의『조선문학사』에서의변별적특성
3.당대및남북한문학사에서의구보문학의평가
4.『조선문학사』에서의박태원의위상
5.맺음말

ㆍ박태원작품연보
ㆍ구보박태원의생애와연보
ㆍ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탈식민주의담론을통해본지용과구보문학의존재방식

1.머리말

1930년대의가장중요한두예술가인정지용과박태원은1933년구인회를통해만나게된다.물론나이는1902년생인지용이일곱살이많아서선배의위치에있었다.구보는1909년생이라서두사람이처음만났을때는24세로약관의나이였다.지용은구인회의형성에주도적인역할을했던상허이태준과의친교관계로구인회에들어가게되었고,구보는경성고보동창이었던조용만의천거로가입하게된것으로알려져있다.구인회는애초당시신문사기자들을주축으로하여이종명ㆍ김유영ㆍ조용만등이모여서카프에맞서는순수문학을지향하는단체로만들려고했으나이태준과정지용이좌장과사회를맡으면서회칙도강령도없는순수한친목단체로방향을설정하자이종명과김유영이슬그머니탈퇴하고그자리에조용만의천거로박태원과이상이들어가게된것이다.
지용과구보의친교관계에대한것은기록이많지않아상세하게알수가없다.다만지용이이태준ㆍ이병기ㆍ김용준등『문장』파문인들과깊은친교를맺고있었던것에비해구보는이상ㆍ김유정ㆍ김기림ㆍ정인택등과친밀한관계를유지하고있었다.지용이술을즐겼고고집이상당히센것은널리알려져있다.또지용은시를암송하는것을즐겼던것으로보인다.지용이천향원이라는요릿집에서기생의머리채를잡고호통을치다가요릿집남자주인공에게봉변을당하는장면을보고최재서가택시를잡아서모윤숙과최정희를밀어넣고도망간후에다음날최정희가지용에게편지를써서안부를물었다는사건은당시의문인들사이에회자된다.최정희는지용이북아현동에살때바로옆에살아서자주만나고술을함께하기도했는데,지용은술에취하면“좋아죽겠다”라고두팔을위로치켰다내렸다하면서펄쩍펄쩍뛰었다고전한다.그래서당시별명으로소형차인‘다또상’이라는별명을지어주었다고한다.
구보도음주를즐겼던것으로생각된다.외국을갔다가돌아온김기림에게“돌아오셨으니반갑소.오랜만에서울거리를함께거닙시다.술은배우셨소?…(중략)…그뒤로다시창작활동이없는것은도시술을배우지못하기때문인가하오.우리,같이술좀자시고,누구꺼릴것없이죽은이상이의욕이나한바탕합시다.”라는글을『여성』에실은것에서확인이된다.또『삼천리』의기자였던최정희는구보에대한추억으로노래부르기를즐겼던구보가하도자랑을해서둘이서건물옥상에올라가서노래경연대회를해서그를눌렀던것을기록에남기고있다.구보가먼저노래를부르기시작하고그가그치면최정희가부르는식으로반복을해서수시간뒤에구보가패배를자인했다는것이다.지용이시를암송하기를좋아했고,구보가노래부르기를즐겼다는사실을보면두사람이모두리듬을타면서풍류를즐겼던동질성이있다.이러한취향이외에도두사람은초기에서정시를창작했다는공통점을지니고있으며,또한일제강점기에모더니스트로서문명을휘날리다가,군국주의가말기증세를보이던1930년대말부터자신의문학적흐름을변화시켜동양적은일의세계로옮겨간것도대동소이한양상으로생각된다.또해방이후한국전쟁의시기에두사람모두자의반타의반으로평양으로가게된것도공통점이다.
이렇게지용과구보의삶과문학은여러가지점에서비슷한양상을지니고있다.요즈음탈식민주의담론으로근대문학뿐만이아니라시대를거슬러올라가고려시대몽고족에의해복속을당한시기에창작된고려가요까지도분석하는경향이있다.특히근대시기의문학을분석하는데에는좋은비평의잣대가될수있다고본다.지용과구보두사람모두거의같은궤도의문학적흐름을보여주게된것은작가개인의개성보다는시대적환경적요인이더크게작용한것으로판단된다.따라서탈식민주의담론에따른분석이상당한유효성을띠게될가능성을높여준다.


2.‘흉내내기’로서의모더니즘과그미학적가치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는우리나라에서다양한용어로번역되고있다.그냥포스트식민주의로번역하는학자도있고,후기식민주의나,신식민주의로나름대로번역하는사람들도있다.요즈음가장많이사용되는것은역시‘탈식민주의’라는용어이다.이말에는식민지유산의지속과청산의양가적속성을내포한개념이될것이다.
식민지인입장에서지배권력에맞서는저항은중요한전략이다.식민지배자는식민지인의욕망과저항을위험한것으로보고이를항상통제하고억압하고단죄하려한다.질들뢰즈의용어를빌리자면,이것은일종의‘코드화’혹은‘영토화’이다.들뢰즈에게는지배권력에서벗어나려는개개인의욕망특유의분열적인흐름을‘탈코드화’혹은‘탈영토화’하는것이중요하다.이런탈주(선긋기)의흐름을억압하고통제하는메커니즘을‘재코드화’혹은‘재영토화’라부른다.예를들면,파시즘과자본주의는개개인의욕망을억압하는기제로작동한다.탈주욕망의지속적생성(과정)이창조적이며전복적인삶을지속시키는자양분이된다.들뢰즈의이런개념은식민주의와제국주의에맞선저항을설명하는데일조할것이다.
탈식민주의란억압과착취를낳는지배이데올로기를해체혹은전복시키는것을목적으로삼는다.이를위해식민화를지지하는인종차별의부당성을알리고지배권력의횡포에제동을걸어종주국과식민국사이에발생하는여러형태의불평등을해소하고자한다.최근모더니스트로서의지용과구보문학에대한새로운해석이봇물터지듯이루어지고있다.소장학자로부터제기되는대체적인흐름은지용이나구보문학을초기의모더니즘문학과후기의전통성에근거를둔문학으로획일적으로이원화해서구분하는것을비판하고있다.두사람의문학에는근대성과전통성이혼재되어나타나고있다는해석이다.이러한현상은아무래도유학을다녀온식민지지식인으로서조선이처한현실이심각하며,식민주의자들이주장하는근대성의표피적인효과보다는잠재되어있는문제점이간단하지않음을인식한데서비롯된다.
지용은1920년대전반부터1930년대중반까지근대도시풍경을노래하는모더니즘시를많이창작하여발표한다.이시기는지용이일본유학생활을떠나고,일본교토에머물던시기와귀국후휘문고보의영어교사를하던시기에해당한다.1925년에교토에서「샛밝안기관차」,「황마차」를써서1927년『조선지광』에발표했다.동지사대학영문학과에입학했던1926년에는유학생회지인『학조』에「카페프란스」,「슬픈인상화」,「파충류동물」을발표하는동시에1927년2월『근대풍경』제2권2호에일본어로표기된시「고아의꿈」을투고하여일본의대표적인시인인키타하라하쿠슈(北原白秋)의관심을받게된다.1930년에는『시문학』에「바다1」을발표하고,『조선지광』에「아츰」을게재한다.1933년에는『가톨릭청년』에「시계를죽임」,「해협」등을발표하고,1934년에는구인회가펴낸순문예잡지『시와소설』(창문사)에「유선애상」을싣는다.『시와소설』에이태준은수필「설중방란기」를발표하고,구보박태원은실험적단편소설「방란장주인」을게재했다.1935년에는『조선문단』에「다시해협」과「지도」를발표한다.
이시기에발표한지용의시에는공간으로서바다가많이등장하고,새로운근대문물로기차ㆍ선박ㆍ비행기가시의중요한소재로활용된다.공간으로서‘바다’는일본근대시에도많이등장하는소재이며,일본식민지확대정책의부산물이기도하다.그동안지용의시는이미지즘이나모더니즘으로평가받아왔다.이미지즘은에즈라파운드(E.Pound,1885~1972)와그의옛애인H.두리틀그리고그녀의약혼녀리처드올딩톤(R.Aldington)과함께셋이서1912년에런던에서시작한현대시의변혁운동이다.이미지즘이란말을최초로만든사람은흄이지만,이미지즘의시는작품수도적고,볼만한수준의작품도많지않다.또파운드의이미지즘운동도길게잡아서불과2~3년에지나지않았다.즉이미지즘은영미모더니즘의일부분에지나지않는다는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