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니체의 해석부터 현대의 다양한 니체해석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고전 비극에 대한 예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그리스시대 예술관이 언제나 우리 곁에서 숨 쉬는 인문정신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인문정신의 흔적을 밝힌다. 첫째는 그리스 비극론이다. 그가 예술의 모범으로서 제시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융합의 결실인 그리스 비극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음악 예술론이다. 이는 니체가 강조했던 그리스 음악정신으로부터 비극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셋째, 비극의 몰락에 대한 예측이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주의의 낙관적 이론주의를 비판함으로써 비극의 몰락을 예측한다. ─ [서문] 중에서
[책속으로 추가]
4. 니체는 자신이 던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고통에 대한 그리스인의 관계, 즉 그리스인들의 감수성의 정도를 묻는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스인의 갈수록 강해져 가는 욕구?축제?오락?새로운 제의(祭儀)에 대한 욕구가 정말로 결핍, 우울, 고통에서 자라나왔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또한 니체는 시간상으로 그 이전에 나타났던 정반대의 욕구, 즉 추한 것에 대한 욕구, 염세주의, 비극적 신화, 삶의 근저에 놓여 있는 모든 공포스러운 것, 악한 것, 수수께끼 같은 것, 파괴적인 것, 불길한 것의 형상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훌륭하고 엄격한 의지를 되물으며 그것의 유래를 찾는다. 그리고 니체는 그러한 의지, 즉 비극은 어쩌면 기쁨, 힘, 넘쳐흐르는 건강, 과도한 충만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라고 표현한다.
니체는 반인반수인 사티로스와 비극 합창단의 근원에 대해서도 설명하면서 결국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강력한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그와 더불어 니체는 그리스인이 청춘의 힘에 넘치던 바로 그때에 비극적인 것을 향한 의지(디오니소스적 광기)를 가지고 있었고 염세주의자였다고 말한다. 또한 민주주의적 취향의 모든 ‘근대적 이념’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낙천주의의 승리, 합리주의의 지배,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공리주의는 공리주의와 동시대에 존재하는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쇠약해져 가는 힘, 다가오는 노쇠, 생리적인 피로의 징후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니체는 삶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도덕’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하나 덧붙인다.
5.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도덕이 아닌 예술이 인간의 본래적인 형이상학적 활동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또한 세계의 존재가 단지 미적인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는 암시적인 명제도 여러 번 등장시킨다. 니체는 이렇게 모든 사건의 배후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진의(眞意), 예술가의 배후 의미를 이 책에서 표현하고 ‘신’으로 비유한다. 그 신은 완전히 무모한 성격의 반도덕적 예술가로서의 신이다. 그는 세계를 창조하면서 충만과 충일(充溢)의 고난으로부터, 그리고 자신 내부의 급박한 대립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한다. 세계는 매 순간 신의 구원이 실현된 상태이다. 그래서 세계는 가장 고통받는 자, 그 자체 내에서 가장 대립 상극하는 자, 가장 모순에 가득 찬 자인 신이 영원히 변전(變轉)하면서 영원히 새로운 환영인 것이다. 신은 세계라는 가상 속에서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니체는 이것을 예술가?형이상학이라고 표현한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도덕 자체를 현상의 세계 속에 포함시키고, ‘현상’ 아래뿐만 아니라 가상, 망상, 오류, 해석, 가식, 예술로서의 ‘착각’ 아래로 끌어내리려 하는 철학을 피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도덕적 경향의 깊이는 도덕적 주제에 대한 가장 빗나간 도식화로서의 기독교를 통해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니체가 표현하는 기독교는 자신의 절대적인 척도와 자신이 믿는 신의 진실성을 가지고, 모든 예술을 거짓의 영역으로 추방한다. 니체는 그러한 기독교적 사고 이면에서 삶에 대한 적개심, 삶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에 가득 찬 혐오를 감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처음부터 본질적이고, 근본적으로 삶이 삶에 대해서 느끼는 구토와 염증이었고, 오직 도덕적 가치만을 인정하려고 하는 무조건적 의지를 가졌다고 표현한다. 또한 자신에게 기독교는 삶에 있어서 가장 깊이 든 병, 피로, 불만, 쇠진, 빈곤의 징후로 생각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니체는 기독교에서의 삶은 경멸과 영원한 부정의 무게에 짓눌려 갈망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무가치한 것으로서 느껴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니체는 도덕과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삶에 대한 가르침과 평가, 즉 순수하고 예술적인 하나의 반(反)기독교적인 가르침과 평가를 고안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니체는 그것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 불렀다.
6.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자신이 수행했던 과제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있는데, 그것은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정신과 취향에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낯설고 새로운 가치평가를 그들의 정식에 따라 표현하려 했던 점이다. 특히 쇼펜하우어의 체념주의와는 아주 다른 자신의 입장에 유감스러워 했고, 더 더욱 유감스러워 한 점은 자신에게 열려진 그대로의 웅대한 그리스적인 문제를 가장 근대적인 사태와 혼합해 버림으로써 그것을 망쳐버렸다는 사실이다. 니체는 그것이 바로 독일의 최근 음악을 토대로 ‘독일적 본질’에 대해서 헛소리를 지껄인 자신의 실수라고 표현하면서 당시의 독일 음악을 가장 비(非)그리스적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니체는 자신의 실수를 도외시한다면, ?비극의 탄생?에서 제기되고 있는 디오니소스적 대(大)의문은 음악에서도 계속해서 적용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문이란 디오니소스적 기원을 갖고 있는 음악은 독일 음악과는 다르게 낭만주의적 기원을 갖지 않고, 어떤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이다.
7. 니체는 여기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의심한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주장이 유혹적이며 낭만주의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다. 여기서 니체는 예술가?형이상학에 나타나 있는 것 이상(以上)으로 현실이나 근대적 이념에 대한 깊은 증오가 드러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다시금 독자에게 부탁한다. 엄숙함과 공포를 견디기 위한 모든 자기 교육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자들처럼 형이상학적 위로를 얻어 기독교적으로 끝나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부탁한다.
그래서 니체는 새로운 예술, 즉 형이상학적 위로의 예술을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찾는다. 니체는 우리가 이러한 위로의 예술을 배워야 하며, 전적으로 염세주의자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웃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를 말한다.
“웃는 자의 이 왕관, 나는 이 왕관을 스스로 내 머리에 썼노라. 그리고 나 자신이 나의 웃음을 신성한 것이라 말했노라. 그렇게 해줄 만큼 강한 자를 나는 타인들 중에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춤추는 자 차라투스트라여, 날개로 신호하는 가벼운 자 차라투스트라, 모든 새들에게 신호하면서 날아오를 준비가 끝난 자, 지복에 가득 찬 가벼운 자,
예언자 차라투스트라, 진정으로 웃는 자 차라투스트라, 성급하지 않은 자, 절대자가 아닌 자, 높이 뛰어오르기와 옆으로 뛰기를 좋아하는 자, 나는 스스로 이 왕을 썼노라!
웃는 자의 왕관, 장미꽃으로 엮은 이 왕관,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이 왕관을 그대들에게 던진다! 나는 웃음을 신성하다고 말했노라.
그대들 높은 인간들이여, 나에게서 배울지어다 ―웃는 것을!”
8. 이와 같이 위에서 기술한 내용들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 서문에 해당하는 ?자기비판의 시도?를 요약한 것이다. 이렇게 요약한 이유는 ?니체와 그리스 비극?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자 하는 취지이다.
이 책은 지난 수년간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중심으로 ?니체연구?, ?철학?, ?동서철학연구?를 비롯한 여러 철학 및 ?인문학연구? 등재학술지에 실린 내용들을 새롭게 수정, 보완 및 개정하여 ?니체와 그리스 비극?이란 제목으로 편찬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은 내용에서 미흡한 부분들을 장마다 대폭 새롭게 추가(특히 제3장, 니체와 쇼펜하우어, 그리고 바그너, 데카당스: 바그너의 경우) 보완하였고 책의 내용에 부합하는 사진들(28장)을 넣었다. 또한 기존의 등재지에 실렸던 글들의 각 장을 책의 제목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이렇게 이 책을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지만, 얼마만큼 독자들에게 만족을 주었는지는 독자들의 몫에 맡길 뿐이다. 향후 독자들의 아낌없는 질정을 부탁드린다.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애써주신 한국문화사 김진수 사장님, 영업부 조정흠 차장님, 편집부 정지영님, 디자인 담당 이사랑님을 비롯한 출판사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대전 유성 궁동연구실에서
2017년 5월 양해림
제1장 니체와 그리스 비극: 인문정신과 3대 고전 비극작가
인문정신의 출발점
기원후 2세기에 라틴어 문법학자인 겔리우스(Gellius)는 파이데이아(Paideia)라는 그리스어와 동일하게 ‘humanitas’를 사용했다. 파이데이아는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지칭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에 대치되는 말로서, 일반학, 또는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낼 수 있는 비판적 학문을 의미하였다. 파이데이아는 능동적인 시민 양성을 위한 일반교양 교육을 나타내는 용어였다.
기원전 4세기,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기에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의 많은 도시 국가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글을 가르쳤다. 그 당시 소피스트는 글자 그대로 지자(知者), 식자(識者)를 뜻하였다. 그들은 문학적, 문예적,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점차로 증대해 가는 식자들의 관심으로 말미암아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했다. 기원전 5세기 중반부터 소피스트들이 그리스 도시국가의 젊은이들에게 실시한 사적인 교육에서 또한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수사학자들이 실시한 고전 교육에서 기본이 되는 교육 내용이었다. 소피스트들의 이론은 곧 회의적, 상대적, 궤변적 양립론으로 대두되었다. 그들은 강한 이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