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최남선의 신화 문화론

근대 최남선의 신화 문화론

$21.50
Description
우리시대에 신화는 문화 산업의 가장 큰 도구가 된 듯하지만, 불과 100년 전 신화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다르게 인식되고 있었다. 일제는 근대화의 명목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미신으로 매도하였고, 우리는 과학의 이름 아래 신화를 배척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의 쾌유를 위한 엄마의 간절한 기도와 소망이 동반되었을 때 의학은 아이를 더 빨리 낫게 한다. 우리에게 신화는 그런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의 핏속에 끓는 무형의 무한한 힘이었다. 그러한 신화의 힘을 망각하도록 조장한 일들이 일제 강점기 동안 참으로 많이 자행되었다. 이에 맞서 근대 지식인들은 여러 방편으로 일제의 문화전략에 맞섰다. 그 중에서 육당 최남선은 근대 문화 속에서 여러 소재 중 신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중요성을 피력했던 학자로 평가할 수 있다. 후기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나면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의 그의 학문적 업적은 눈부실 정도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최남선 초기 활동과 중기 활동에 집중해서 논의할 것이다.
저자

표정옥

저자표정옥은
-서강대학교영문과와동대학일반대학원국문과졸업.
-.서울대학교국어교육과에서박사과정을마치고서강대학교학술연구교수와서강대국문과대우교수역임
-현숙명여자대학교기초교양대학교수로재직.
2008년,2010년학술원우수도서상,2013년문화관광부우수도서수상,2014년한국연구재단사후우수저서선정,선리학술상,김구아카데미학술상등을수상했으며,다른곳에서도여러논문및저서연구가선정되었다.

목차

제1부현대동아시아신화적상상력의문화적갈등과교류
제1장신화,역사와문화갈등의현장에서다
1.한국신화에기술된동아시아신화의갈등
2.중국의동북공정과신화적갈등들
3.일본의임나일본부설과신화적갈등

제2장신화,역사와문화지식교류의중매자가되다
1.한국신화에펼쳐진자주정신
2.중국신화속불함의군자국
3.일본의천일창신화와이즈모신화속한국


제2부근대지식인최남선의역사적상상력과신화상상력
제3장?삼국유사해제?:신화로문화적욕망을펼치다
1.400년만에다시되찾아온?삼국유사?
2.대립적민족의의미규정과문화의식형성
3.단군에대한기억과신화화를통한문화민족구축
4.신화의정치적전략과근대성추구

제4장?심춘순례?:불교사찰기행으로조선신화의흔적을찾다
1.기행과체험을통한신화찾기
2.불함문화의체험공간으로서?심춘순례?기행
3.조선의신화와교호하는???사상과사찰기행
4.조선불교와조선신화의신화적상상력의교감

제5장바다의인식:신화적미래기획으로문화정체성을찾다
1.대륙의내부시선에서해양의외부시선으로
2.지리적역사관을통한문화적역사관구축
3.‘바다’에대한기억재구성으로써신화성구축
4.망각을깨우는의지와도전의문화사로써미래기획

제3부근대지식인최남선의종교문화와융합적신화상상력
제6장국토의융합적인식:신화로근대심상공간을기획하다
1.지리인식과역사인식의상관성
2.시간의경계를넘는문화적국토의환상성
3.민족의신화관과융합된국토의식
4.의지적신화의국토인식과독도에대한주장

제7장근대인문적의학담론:신화상상력으로
융합적사고를기술하다
1.신화로바라보는진화된문화담론
2.신념의신화에비춘의학독창성의통시적역사고찰
3.창의적의학전파성공담을통한자주적민족의식고취
4.조선의근대의학에나타난융합적인문정신고찰

제8장불교인식:근대역동적문화지식으로불교문화를바라보다
1.근대불교의문화적역동성
2.민족의식의대결적코드로서불교문화
3.국토인식의상징적표지로서불교문화
4.문화민족의견인차로서불교문화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추가]
가야사연구는정한론,청ㆍ일전쟁,강제병합의과정속에서의도적으로이루어졌다.타율성이라는식민사관을바탕으로‘임나일본부설’이만들어졌고,임나일본부설을증명하기위하여가야사가연구되었다.이러한가야사연구는한일양국모두에게바람직하지못했다.1980년대이전까지의가야사연구는임나일본부설에대한긍정과부정을위한근거제시에불과했다.따라서한국과일본,그리고한일관계에대한객관적인역사연구가이루어지지못했다.이것이가야사의불행이었다.가야사연구는더이상과거일본의제국주의사학자들이내세웠던‘일선동조론’이나북한사학자가주장하는‘분국론’같이민족적자존심을만족시키는내셔널리즘이되어서는곤란하며현대적국가의식의과잉으로투영된고대한일관계사의복원도경계되어야한다.호혜평등의미래지향적인한일관계를이룩하기위해서구시대의식민사관은극복되어야할대상이며,일본은한국에대한객관적연구를토대로한새로운한국사상을수립해야할것이며,이것은한국의학계에서도주지해야하는것이다.
칠지도에대한논쟁역시한일고대사에서역사적혹은신화적으로중요한이슈가되어왔다.백제는일본에많은문화를전파한것으로알려져있는데,일본은백제에서건너간칠지도에대해서백제가일본에게바친조공물이라는논리를펴고있다.그러나2012년전라남도순천고분발굴에서대가야의무덤이발굴되었는데,일본의고대문물이전혀나오지않았기때문에임나일본부설은허구성을여실히드러내고있다.칠지도역시조공물이아니라단순한선물이라는게우리역사학계의주장이다.칠지도에새겨진내용을보면,후왕과성음이생겨왜왕에게하사한것으로보인다.조공설은억지스러운논리로보이는데도일본은백제가일본에조공물을바친주변국나라였다고주장한다.이역시임나일본부설과함께식민사관을형성하기위해일본이아전인수로잘못끌어들여해석한부분이라고할수있다.내선일체를주장하면서조선의식민지화를정당화시킨일본은『일본서기』의‘신공황후’부분을들어백제가조공으로바친것이라는논리를펴고있는데,『일본서기』의기록은정확한정사라고보기어렵기때문에여러가지역사적사료와유물로허구임이밝혀지고있다.
현재칠지도는일본나라현덴리시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에서보관중인데,길이74.9cm의양옆으로모두6개의가지가뻗은철제칼로칼에는앞면에35자,뒷면에27자로총62자의금상감명문이새겨져있다.명문(銘文)의해석을둘러싸고한일역사학계에서는서로해석을달리하고있다.해석문제는광개토왕릉비와더불어임나일본부설의실재여부를입증하는데중요한단서가될수있다.1977년과1978년에찍은확대근접사진과1981년NHK에서촬영한X-레이사진을통해보면年자와月자사이에十자가검출되어그동안五月(5월)로보았던명문을十一月(11월)로볼수있게되었다.앞과뒤의글귀를살펴보면다음과같다.

<앞면>
泰[和]四年十一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鍊鐵七支刀[出]百兵宜供供侯王□□□□作
태[화]4년11월16일병오날한낮에백번이나단련한강철로칠지도를만들었다.이칼은온갖적병을물리칠수있으니,제후국의왕에게나누어줄만하다.□□□□만들었다.

<뒷면>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지금까지이러한칼은없었는데,백제왕세자가귀하게성음(聖音)으로태어났다.그런까닭에왜왕지를위해만들었으니후세에전하여보이라.

칠지도자료는1945년이전의연구에서는『일본서기』의신공황후기에언급된칠지도가실재함으로『일본서기』와신공황후에대한신빙성을증명하는것에사용되었다.신공황후의삼한정벌에대한증거로채택되어한반도병합의역사적이유로이용되었다.그러나<칠지도>명문에대한해석이본격화된것은1945년이후일본학자들에의해시작되었는데,그들의연구에따라명문이61자인것이확인되었고,이칠지도가한일고대사의중요한비밀을가지고있다는사료로서가치를인정받았다.이러한연구결과로일본학자들은『일본서기』신공기52년조에언급되고있는칠지도로해석하여이칼이백제왕이일본천황에게헌상했다고주장했다.
임나일본부설이나칠지도보다가장큰현실적인논란거리는독도영유권에대한두나라의논쟁이다.『세종실록』(1454)에“우산,무릉두섬은현정동진에서정확히동쪽에있다.두섬은부속관계이고서로멀지않아,날씨가청명한날이면바라볼수있다.신라때에는,우산국이라고불렀다.”라는내용을통해,날씨가좋으면울릉도(무릉)에서독도가보이므로,독도가우산도에해당된다고보아야한다.즉,우산국은512년에신라에복속되었으니,독도는한국영토인것이다.육당최남선은<울릉도와독도>와<독도문제와나>에서일본은독도에대한일현의역사적기록들을고증해내면서프랑스가리앙쿠르섬이라고부를때까지독도의존재를거의모르고있었고,따라서그곳을어떻게부르는지조차몰랐다고말한다.이부분의논의는뒤의최남선국토와신화부분에서집중적으로다루기로하겠다.
『일본서기』에는신라에대한비하발언이자주등장해서한국과일본의역사논쟁에서늘문제가되고있다.기본적으로신라는작고추한나라라는논지를자주보이고있다.『일본서기』에신라를작고추한나라라고일부러강하게비난하는것은그만큼신라를위협적으로느끼고있었던것의반감으로보여진다.신화가보여주는일련의갈등과대결의양상을역으로보여주는논리인셈이다.신화는있는그대로를적기보다는때로는사실을부인하기위해반대로기입하기도하고다소과장되어기록하는경우도허다하기때문이다.각나라의신화는사실에기반할수도있지만사실에대한반대급부로대리욕망을투사시키기도한다.보다객관적인국제적관점으로과거사에대해서올바른평가가이루어져야만현재의동아시아의우호적질서는가능할것이다.

[책소개]

우리시대에신화는문화산업의가장큰도구가된듯하지만,불과100년전신화는우리나라에서매우다르게인식되고있었다.일제는근대화의명목으로우리전통문화를미신으로매도하였고,우리는과학의이름아래신화를배척하는문화를자연스럽게받아들였다.아이가아프면병원에가야하는것이지금으로서는당연한일이지만,아이의쾌유를위한엄마의간절한기도와소망이동반되었을때의학은아이를더빨리낫게한다.우리에게신화는그런신비로움그자체였다.눈에는보이지않지만분명히우리의핏속에끓는무형의무한한힘이었다.그러한신화의힘을망각하도록조장한일들이일제강점기동안참으로많이자행되었다.이에맞서근대지식인들은여러방편으로일제의문화전략에맞섰다.그중에서육당최남선은근대문화속에서여러소재중신화를가장적극적으로받아들이고그중요성을피력했던학자로평가할수있다.후기의친일행적에대한논란을차치하고나면1910년대부터1930년대초반까지의그의학문적업적은눈부실정도이다.따라서본연구는최남선초기활동과중기활동에집중해서논의할것이다.후기만주건국대시절이후부터는이연구에서는거론되지못함을양해해주길바란다.
내가최남선을만난것은오로지삼국유사때문이었다.현대문학을전공했던처지인지라,신화와맺은인연이다소특이하다고할수있다.생활속에서시작된궁금증으로찾아간인간의문화와연원에대한호기심이신화를연구하게이끌었다.그과정에서가장값지게만난책이바로삼국유사와관련문화유적들이었다.대학에서내가만난학생들과열심히삼국유사를읽고현실문제와연결해서난상토론을펼치고,외부일반시민들과도다양한방법으로삼국유사의흔적을찾았고재구성해다시새롭게읽어보려고했다.이쯤되면나는보각국사일연스님에게칭찬한마디들어도괜찮을것이다.그런데몇년전부터연구를하려고만하면반드시만나는특별한사람이있었다.평소에친일인사라는멍에로거들떠도보지않았던근대지식인육당최남선이그주인공이었다.
근대최남선의신화문화론의구성은크게세부분으로나뉜다.먼저,최남선의신화론이성립하기위해서는동아시아에서근대에어떤신화갈등과신화교류가있었는지그배-경을알필요가있다.한,중,일세나라는과거오래전부터갈등의역사를반복해왔다.우리의신화서와일본의신화서와중국의신화서에서그려지는갈등과교류의단면을한번살펴볼필요가있다.
최남선이신화연구를시작한동기역시일본이주장하는단군부정론에기인한다.단군을살리기위해서최남선은삼국유사를소중히여기고알리고연구했다고할수있다.따라서1부의내용은최남선의본격적인신화논의의서막과같은논의들이다.동아시아신화의갈등과교류를제대로들여다보아야만2부의신화논의와3부의논의들이의미있게다가올것이다.1부의논의는2015년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동아시아공존의신화전략연구>에서기초적인작업을이어온것이다.
2부의내용은근대지식인최남선이가장중요하게바라보았던삼국유사연구를시작으로신화담론을연구한다.3부의내용은최남선이라는근대지식인이보여주는융합적인상상력에대한고찰이다.3부의내용이융합적상상력이라이름붙인것은다양한학문이만나는지점을포착하고있는것에기인한다.

[머리말]:저자서평

신화가만들어낸또다른근대
우리시대에신화는문화산업의가장큰도구가된듯하다.그러나불과100년전신화는우리나라에서매우다르게인식되고있었던것으로보인다.일제는근대라는이름으로우리의전통문화를미신으로매도하기에급급했고,우리는그것을과학이라는이름과함께별저항없이신화를배척하는문화를자연스럽게받아들였던것으로보인다.아이가아프면병원에가야하는것이현명한일이겠지만아이를위한엄마의간절한기도와소망이동반되었을때의학은아이를더빨리낳게한다.우리에게신화는그런오묘한것이었다.눈에는보이지않지만분명히우리의피속에살아있었던무한한무형의힘이었다.그러한신화의힘을망각하도록조장한일들이일제강점기동안참으로많이자행되었던것으로보인다.
근대지식인들은여러방편으로일제의문화전략에맞서그시대를견뎌내고있었다.그중에서육당최남선은근대문화속에서신화라는도구를가장적극적으로받아들이고그중요성을피력했던학자로평가할수있다.후기의친일행적에대한논란을차치하고나면1910년대부터1930년대초반까지의그의학문적업적은눈부실정도이다.모든연구사를전체로보는것이옳은방법이라면이연구는친일작가를연구한다는멍에를가질것이분명하고그런역사적평가에만가치를둔다면분명이연구는의미가없을수있다.하지만,역사는자긍심을주는것도연구해야하지만그와동시에잘못건너가게된역사적인물에대한연구도객관적으로필요하다.따라서본연구는최남선초기활동과중기활동에집중해서논의할것이다.후기만주건국대시절이후부터는이연구에서는거론되지못함을양해해주길바란다.
내가최남선을만난것은오로지삼국유사때문이었다.현대문학을전공했던처지인지라,신화와맺은인연이다소특이하다고할수있다.생활속에서시작된궁금증으로찾아간인간의문화와연원에대한호기심이신화를연구하게이끌었다.그과정에서가장값지게만난책이바로삼국유사와관련문화유적들이었다.대학에서내가만난학생들과열심히삼국유사를읽고현실문제와연결해서난상토론을펼치고,외부일반시민들과도다양한방법으로삼국유사의흔적을찾았고재구성해다시새롭게읽어보려고했다.이쯤되면나는보각국사일연스님에게칭찬한마디들어도괜찮을것이다.그런데몇년전부터연구를하려고만하면반드시만나는특별한사람이있었다.평소에친일인사라는멍에로거들떠도보지않았던근대지식인육당최남선이그주인공이었다.
나는대학원시절해에게서소년에게를제외하고육당최남선의목소리를일부러찾아본일이별로없다.그런데,우리나라의문화중신화와종교와민담등에관심을갖게되자늘만나는사람이최남선임을부인할수가없게된다.1974년현암사에서나온최남선전집을거금을들여서사서읽기시작했다.2003년도서출판역락에서나온최남선전집도구입해서참고하면서읽었다.그런데,한문투와근대에만사용한용어들이다수있어서쉽게독해되지는않았다.그래서별의별방법을동원해서읽어보았다.소리내서도읽어보고,녹음해서직접들어도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