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관계는맺어지는것이아니라,‘해석’하는것이다.사실애초부터서로가서로에게‘특별한누구’이었다거나하는자연적인관계는없다.상대를해석하는바로그순간,관계가비로소시작되는것이다.해석을통해서무의미하게던져져있던점들이하나로이어지고,해석을통해서특별한의미로매듭지어지면서의미있게서로를결박한다.
그래서중요한것은‘어떻게해석하느냐’이다.어떻게해석하느냐가어떠한관계에있는가를암시하기때문이다.관계를해석의결과라고말하는이유가여기에있다.
문화의경우도마찬가지다.사실지금문화만큼해석의문제가중요한사회는찾기어렵다.시대의주도권은이미디지털로넘어갔다.디지털세계는정체를알수없는소문과같아서해석에해석이꼬리를무는해석의세상이되어버렸다.
엄밀하게말하면,디지털적가치관으로무장한시대적분위기에서해석의속성은소문의속성과여러모로닮았다.소문은하나의이야기가다른이야기로쉽게변하는복수성을갖는다.누가그렇게말하더라,하는식의여러개의입이소리없이끼어들면서소문은늘복수의이야기가된다.해석을해석하는것이소문의속성이다.
디지털의가공할만한복제와유통능력으로여기에연루된대단히복잡다단한관계의선들은해석을해석하고,또해석하면서,문화텍스트는마치소문처럼수많은해석‘들’을만들어낸다.
소문이이렇게단독주체가없는간접서사인것처럼,왕성한복제능력을가진문화역시단독주체가없는간접서사이다.달리말하면,문화야말로그어느분야보다도해석의문제가중요함을의미하는것이다.
더구나문화적할인의시대로접어든상황에서고유한문화텍스트는찾아보기가어려워졌다.문화를정면으로거론하든,그렇지않든고유의문화가사라지고,거의모든영역에문화적보편화의현상이지배적으로되어가고있다.
따라서문화라는프레임으로접근하는한,서로를맹렬하게닮아가고있는상황에서문화그자체보다문화적관계에대한이해와이에대한윤리적해석의과제가긴요해진다.
그런데암호는소문과해독방식이같다.암호에서중요한것은암호자체에대한해독이아니다.이보다는암호화과정에대한해석이훨씬시대의본질에근접한다.소문은단순히남의이야기를전달하는것이아니라,남의이야기를빙자하여전달자의욕망을슬쩍끼워넣는권력의서사다.그래서소문속에는변경에서중심부로뚫고들어가려는,혹은중심에서변경으로퍼지려는권력관계의욕망이도사리고있다.따라서소문의서사에서는어떤내용인가가아니라,‘누가’‘왜’이왜곡의서사를지어내고있는가하는관계에집중해야진실에근접할수있다.
이번저서의키워드역시‘관계로서의문화’이다.20세기일제강점기에서21세기소비문화시대까지,남한에서북한까지,시에서만화까지,담론과현장에이르기까지개개의연구물들을‘문화적관계’라는프레임으로읽어내느라애를썼다.격랑의시대,복잡다단하게얽히고설킨혼돈의내부가문화적관계로접근했을때어떤방식으로새롭게구성되는가가꽤흥미로운고민거리였다.
‘1부_수용과굴곡’에서는지역적경계를넘으면서하나의가치가구부러지고휘어지는양상을담아내고있다.가치는유혹하고충동질하여끌어당기는것이다.중심부와주변부사이,선과악의사이,성과속의사이,이흔들리는‘사이’에서가치가방향을드러낸다.그러니가치는언제나힘으로구부러지고휘어질수밖에없다.힘의불균형이강력할수록굴곡과우회하는힘도극심해진다.4편의논문을이러한점에서읽으면꽤흥미롭다.
박경수의『백석시의중국문화수용과문화의식의특성』은일제강점기백석시에서중국문화를수용하는시적주체의태도가이방인으로서의관찰자가아닌문화참여자라는점에서출발하고,그것이탈식민주의의문화의식을보여준다는점을새롭게읽어낸다.차선일의『‘프란츠파농담론’의한국적수용양상연구』는제3세계의민족해방운동의이론적공급원중하나였던비서구출신의실천적인사상가프란츠파농이국내학계와문화계에유입되는과정에서나타나는몇단계의굴곡과우회의과정을포착한다.류종렬의『이주홍작품의화전민과메아리모티프의변모양상』은기행보고문이라는독특한장르적시각으로일제말기향파이주홍의현실인식을진지하게고찰하고있다.박형준의『한국문학의차이니스디아스포라』는참신하게차이니스디아스포라라는시각으로일국적경계를넘어선문화적소통의가능성을오정희의『중국인거리』에서찾아내고있다.
‘2부_시선과재현’에서는권력안에서생성된비존재들에대한우리사회의고민을담았다.재현의문제는재난의현실에연루되기마련이다.물론여기서재난은제도로서의재난이다.권력의성패여부는타자를양산해내는제도의교묘함,이를통해공적문제의사적으로이전시키는비윤리적인합법성을얼마나제대로작동시키는가에서판가름이난다.이점에서보면,이방인은외부에서들어온존재가아니라,내부의권력에서만들어진내부자들이다.따라서이방인에관한재현의문제는배치의문제가아니라,인식의문제로접근할필요가있다.4편의글은이러한재현의테마를존재론이아닌관계론으로풀어보여준다.
고봉준의『현대시에투영된이방인과다문화』는2000년이후한국시에투영된이방인과다문화에관한재현의방식을담론과예술의문제로요약한다.이방인과다문화를재현의불가능성이라는철학적문제가아닌선(善)한의도와미학적균열사이의이율배반을중심으로전유하는데대한문제제기와이에대한대안으로이주성에주목한다.권유리야의『명령하는아버지응답하는아들;유아적노년의로컬부산』은영화[국제시장]에전면화하는가족공공성이주인공의삶을로컬로만드는과정을현실의부산이로컬로확정되는과정과동일선상에놓고고찰한다.박형준의『1960년대‘동래금강공원’의로컬리티』는1960년대동래금강공원의공간적표상변화를통해산업화와도시화가급격하게진행되고있던한국사회의내재적모순과부조리의징후를분석한글이다.류종렬의『시선의정치?이주홍의일제말기일문(日文)만화연구』는이주홍이일제말기?동양지광?에발표한일문(日文)만화를최초로소개하고,1940년대대중적인만화매체를통해이주홍의역사왜곡과대일협력의양상을밝힌다.
‘3부_정념과사상’에서는정념을시차의관점으로현실을재해석하려는의지로이해하였다.종합이나매개할수없는두지점사이에서늘이동하는관점을시차라고한다면,시차에서중요한것은근거가없음에도불구하고두개의점을연결하려는대면의의지이다.가장낮은곳에서가장높은곳으로이동하기위해서해야하는것은보편적인것과개별적인것사이의차이를개별적인것자체로옮겨놓는것뿐이다.이를뭉뚱그려정념이라고이해하면되겠다.억압적현실로부터자신을해방하려는해석의의지라는점에서,정념은감정이아니라냉철한사유의과정으로이해할필요가있다.
권유리야의『김애란소설에나타난친밀감의착시와연극적가족진리』는김애란의소설이가족이아닌가족‘들’의문제를다루고있음을밝히며,한국사회의현재성이라는차원에서김애란소설을가족윤리가아닌가족진리의문제로좁혀고찰하였다.박경수의『정지용초기시의일본근대문화수용과문화의식』은정지용의초기시『카페?프란스』,『파충류동물』,『황마차』를중심으로카페?기차?근대도시에대한피식민주체로서타자의문화인일본근대문화를어떤관점과태도로수용하고있는지,그에따른문화의식이어떤의미를지니는지집중적으로논의한다.정훈의『‘남조선사상’으로본민족미학의방향:김지하미학의경우』는김지하의사상에서남조선사상을민족미학적관점에서접근하면서,김지하의문학의본질이학계에서외면당하는사상과미학을결합하려는노력의산물임을밝혀내고있다.
관계는해석의산물이라는말의의미를다시생각한다.관계에서는‘이미’라거나‘우연’이라는말은쓰기가어렵다.서로에대한해석의‘의지’를통해서관계가지속되기때문이다.서로에대한해석의의지가있는한,그관계는늘새롭게시작되는현재형이된다.
공부라는매개속에서오랜시간을함께해온사제지간의경우,이말은대단히유의미하다.책으로이어진30년가까운시간에서우리사제들은밝게혹은어둡게,느리게혹은빠르게,가깝게혹은멀게,꾸준히서로에대한해석을갱신해가며사제의관계를지금까지이어왔다.
쉽지않은현실에서책을매개로꾸준히만나면서서로의변화를바라보는즐거운시간이었다.지난7년간?1930년대문학의재조명과문학의경계넘기?(국학자료원,2010),?지역?주체?소수자담론과욕망표상?(국학자료원,2014)두권의책을냈고,이번에또세번째책을기획한다.서울-부산을오가는고단함이있었고,연구실에서밥자리로술자리로이어지는기껍고애틋한시간도있었다.생각해보면,참즐거운시간이었다.
벌써인생의한바퀴를도는회갑이시다.박경수은사님의남은학자로서의삶이이전보다더욱빛나시기를우리모두고대한다.
2017년여름
마음을모두어제자들드림
[책속으로추가]
주체의문화의식에타자의문화가영향을주면서동시에주체와타자의상호대화적관계에의해서주체의문화의식이형성된다는점에서,주체가체험하는대상으로서의문화는일차적으로타자화되지만,그것은이차적으로타자의문화가갖는특성과이를수용하는주체의태도에따라다양한양상으로나타날수있다.타자의문화가우월적위치에있을때주체는타자의문화에압도되거나호의적인태도로선망하거나관조하는특성을보일것이며,또는그반대인경우에는비판적거리를두고배제또는저항의대상으로삼기도할것이다.그리고주체와타자의상호호혜적인대화관계가유지되는경우,문화적갈등없이문화적조화나융합의국면을보이기도할것이다.백석의시는물론이와같이다양한국면의문화수용태도와인식을보여주는것은아니다.그렇지만,백석의중국문화수용의관점과태도는독자적이면서도문제적인문화의식을보여준다고앞서말할수있다.그리고백석의중국문화수용태도와그에따른문화의식은결코당대에한정된문제의식만을보여주는것이아니라,오늘날점차다문화사회로나아가고있는한국의상황을고려할때선험적인문화의식으로유효한의미를지닌다고말할수있다.
2.백석의만주체험시와문화론적접근의경과
백석시에대한논의는1980년대이후부터본격화되기시작했다고말할수있다.고형진,김명인의백석시연구에이어이숭원은『풍속의시화와눌변의미학』을통해시집?사슴?(1936)이후발표된『수박씨,호박씨』,『귀농』,『두보나이백같이』등의시작품들이개인적체험을바탕으로이국에서의향수를민족적실체를찾으려는노력과연결되고있음을간략히논의했으며,윤영천은일제강점기만주지역거주조선인들이겪는삶의문제들을형상화한이른바‘유민시’를논의하는자리에서시『안동』이이국정취의느낌을말한‘통상적인풍물시’에불과한것으로그시적의미를가볍게보아지나치듯언급한바있다.이후국내외학자들이재만조선인의시문학에대한자료의발굴과소개를포함한논의가이어졌으나,이들의논의는만주지역에서발행된?만주시인집?(1942),?재만조선시인집?(1942),시동인지인?시현실?,?북향?,일간지?만선일보?등매체들을중심으로시작품들을논의했던까닭에만주에체류하면서도국내매체를통해시를주로발표한백석의시는관심권밖에두었다.
백석이만주체류시기에쓴시를포함하여만주체험관련시작품들에대한논의들이1990년대후반부터재개되었다.비록한정된작품에대한논의이지만,신범순은시『귀농』이백석의실제소작농생활을소재로한작품이면서도“민중들의현실적이해관계로부터너무나동떨어져있는개인주의적세계”를담고있는작품으로중세적인전원시적세계로퇴화한것으로부정적인평가를내린바있다.이른바‘만주시편’으로구분될수있는백석의시를전반적으로논의한이는박주택이다.박주택은백석의‘만주시편’이백석의방랑편력과관련되어있음을밝히는동시에자유정신을바탕으로낙원에의꿈을펼치고있는작품들로파악했다.
이경수도백석의후기시인『수박씨,호박씨』와『두보나이백같이』에서노자,공자,도연명,이백,두보등의인물인유(allusion)를통해동양적상상력의하나로서은둔의상상력을주목하면서현실과화합하지못하는시인의성향을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