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추가]
이 책에서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다룰 것이다. 첫째, 언어적 접근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스페인어가 스페인, 중남미, 미국 등 지역별로 지니는 다양성을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는 스페인과 중남미 국가에서의 다양한 스페인어 방언, 주변 지역어와의 언어접촉에 따른 스페인어의 다양성, 미국에서의 스페인어(스팽글리쉬)와 코드 스위칭 현상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둘째, 역사적 접근을 통해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언어상황과 언어정책을 통시적으로 개괄할 것이다. 이중언어 상황에 놓여있는 스페인과 중남미 스페인어권 국가의 언어정책을 인권과 다문화적 관점에서 국가별로 연구함과 동시에,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언어사용 현황을 분석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스페인의 이중언어 지역인 갈리시아, 카탈루냐, 파이스 바스코 지방과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원주민어가 활발히 사용되는 국가인 볼리비아, 파라과이, 멕시코, 페루, 칠레를 중심으로 각국에서 스페인어와 함께 사용되고 있는 소수언어가 제도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받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다문화 사회에서 정부가 어떻게 이들 소수언어 화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이들 소수언어 화자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를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를 예로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 다룰 구체적인 주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스페인과 중남미의 언어상황과 언어정책을 다룰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갈리시아, 카탈루냐, 파이스 바스코와 같은 이중언어 지역의 언어상황과 스페인의 언어정책을 다룰 것이다. 특히, 분리독립 문제로 스페인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카탈루냐 자치주의 언어정책과 언어상황을 좀 더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중남미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다문화?다언어 국가들을 선정하여 이들 국가에서의 언어상황에 대한 사회문화적 실태를 조사할 것이다. 즉, 전통적으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백인 화자들이 기득권 세력을 형성한 사회에서, 소수언어이며 피지배언어인 원주민어를 구사하는 화자가 겪고 있는 인권유린이나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문제점들을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는 볼리비아(아이마라어), 파라과이(과라니어), 멕시코(나우아틀어와 마야어), 페루(케추아어), 칠레(마푸체어), 그리고 카리브해 국가(크레올어)가 해당되겠다. 둘째, 다문화?다언어 상황에 처해있는 중남미 국가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언어정책에 대한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하여 중남미 국가의 원주민어, 원주민 문화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주민어에 대한 언어정책 변화에는, <단일 문화주의>(하나의 언어로 통합된 사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 <다문화주의>(원주민어를 인정하되, 스페인어권 사회로 동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입장), <다원적 문화주의>(인권보호라는 측면에서 원주민어를 인정하며, 언어의 다양성을 지키고 원주민 문화를 보호하려는 입장)라는 세 가지의 범주로 나누어 살펴볼 예정이다. 셋째, 스페인과 중남미 각국의 언어상황과 소수언어 보호정책을 고려하여, 스페인과 중남미의 소수언어가 어떠한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 그 전망을 살펴볼 것이다.
이 책은 특정분야를 심도있게 다루는 전문적인 학술서라기보다 스페인어권 세계의 언어상황과 언어정책을 소개하는 언어문화 분야의 교양서에 가깝다. 해당 주제에 관심이나 궁금증이 있으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볼 수 있는 정보가 대부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책과 같은 언어문화 교양서를 집필하게 된 이유는,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이 스페인어권의 세계에 보다 폭넓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먼저, 한국에서는 중남미를 연상하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만 떠올리지만,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이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둘째, 스페인과 중남미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한국과 스페인, 중남미 각 국가 간의 진일보된 문화적 교류와 앞으로의 경제적 투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해주는 국가로 부상한 현재,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이 우리나라의 주요한 경제 협력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본 연구에서 지향하고 있는 스페인과 중남미 각국의 다문화?다언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한국과 스페인?중남미 국가 간의 경제?문화 교류에 생산적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게다가,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언어 사회에 머물고 있지 않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다언어?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해가 지날수록 다방면에서 외국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다문화 가정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이제는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거나 외국어를 듣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TV 프로그램에서 접할 수 있듯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모두 동일한 잣대로 평등하게 대하고 있는가? 백인들에게는 저자세이면서,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에게는 고자세로 업신여기면서 우리 사회에서 소외시키지는 않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소외된 계층의 인권보호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폭넓은 이해 측면에서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해 본다.
이 책이 발행되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과 성원이 있었다. 먼저, <스페인어의 세계> 수업시간에 주제별로 성실히 발표와 토론에 참여해준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주제발표가 수업을 더욱 더 활기차게 했음은 물론, 이 책의 집필에도 큰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소중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보내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과 매번 기꺼이 출판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한국문화사에 감사드린다. 끝으로 중남미의 언어상황과 언어정책에 대해 많은 도움을 주신 Claudia Macias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독자의 관점에서 이 책의 원고 전체를 면밀히 읽고 윤문과 교정을 봐준 송예림 박사와 안다희 양 그리고 최희중 군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본문 발췌]
제3장 : 스페인의 언어상황과 언어정책
1. 스페인 문화의 다양성과 지역 민족주의
1.1. 스페인의 지역감정
필자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경험담이다. 1994년 5월 당시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로피언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가 이탈리아의 AC 밀란과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대부분의 마드리드 사람들이 밀란을 응원하는 게 아닌가? 필자는 당시 스페인의 지역감정이 그렇게 드센 줄 모르고 있었기에 이러한 광경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결과는 AC 밀란이 4:0으로 FC 바르셀로나를 이기고 우승컵을 안았으며, 당연히 마드리드의 바에서는 환호성이 울렸고 축제의 분위기가 되었다.
반대로, 바르셀로나에서는 마드리드를 철천지원수처럼 대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00년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루이스 피구는 FC 바르셀로나 캄누(Camp Nou) 홈구장에서 치러진 엘 클라시코 더비에 나섰다가 무수한 야유에 시달렸고 급기야 바르셀로나 팬들이 피구를 향해 오물과 돼지머리를 투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바르셀로나의 상징이던 피구가 라이벌 팀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것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가 한 데 섞인, 바르셀로나 팬들의 격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아마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다른 팀으로 이적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감정이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지 오래지만, 만약 반감을 가지고 있는 특정 지역 연고지 팀이 외국팀과 경기를 한다고 가정해보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지역에 관계없이 자국 팀을 응원하지 않겠는가? 또한, 아무리 지역감정이 있더라도 라이벌 팀으로 이적했다고 오물까지 투척할 정도로 증오감을 느낄까? 이러한 생각에 이르게 되면서, 당시 필자는 스페인의 지역감정이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심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민족이란 넓은 테두리 내에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과 같은 지역적 색깔이 포용되는 반면, 스페인은 지역별로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카탈루냐, 갈리시아, 바스크의 분리주의적 지역감정이 우리나라의 지역감정보다 훨씬 더 강력한 민족적 색깔을 띠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카탈루냐가 카스티야(스페인)에 대해 지니는 지역감정은 우리가 일본에 대해 느끼는 ‘한일감정’과 유사한 것으로도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무력진압을 통한 지배의 역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1910년 일본제국이 조선의 주권을 강탈하여 35년간 조선을 식민 지배하였듯이, 스페인도 1714년 부르봉 왕조의 펠리페 5세가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을 이끌고 자치권과 독립을 외치며 항쟁하던 카탈루냐인들을 무력진압하고 바르셀로나를 함락하여 카탈루냐를 지배하고 통치하였다. 현대사로 눈을 돌리면, 카탈루냐와 카스티야 사이의 대립양상을 보인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 군부 프랑코의 파시스트 체제는 철저한 중앙집권 통치를 선보이며 분리?독립을 추진했던 카탈루냐와 바스크를 가혹하게 탄압하는 폭압정치를 하였다.
이러한 프랑코의 강력한 독재정치가 지역 간의 대립과 악감정을 더욱 증폭시켰을 것임은 자명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며 독립을 위해 투쟁해온 역사는 카탈루냐나 바스크가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분리?독립을 추진해온 역사와 비교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스페인의 지역감정은 스페인을 둘러싸고 있는 다언어, 다문화 그리고 다민족이라는 개념과 스페인의 역사에서 출발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다수의 소왕국들이 재정복 과정에서 하나로 합쳐져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