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말
크리스토퍼말로(ChristopherMarlowe)는흔히셰익스피어의라이벌작가로여겨진다.같은해(1564년)에태어나같은시기에작품활동을했으며서로에게영향을주고받았다는사실을고려한다면,극작가로서의성공을위해,당대지배계층과관객들의흥미를사로잡을작품을쓰기위해,이들이서로경쟁했으리라는것은쉽게추측할수있다.단6편의극작품만을남긴말로가29세의젊은나이에요절하지않았다면,셰익스피어와의경쟁에서어떤결과가나타났을지우리는쉽게단정하기어렵다.그이유는당대엘리자베스시대영국사회에서는말로의작품들이셰익스피어작품들보다더인기를누렸기때문이다.말로의초기작품인『탬벌레인대왕』(TamburlaineTheGreatPartI,II)과『파우스투스박사』(DoctorFaustus)그리고『몰타의유대인』(TheJewofMalta)이얻은놀라운인기는많은학자가인정하고있는바이다.흔히말로작품의인기비결은특유의화려한수사와다양한볼거리그리고관객의흥미를유발하는이국적이고충격적인주제등으로여겨진다.그렇다면이처럼엘리자베스시대에는큰인기를누렸던말로의작품이현대에이르러서는셰익스피어에비해대중적인흥미와주목에서다소멀어진이유는어디에있을까?
이러한질문에대한반응은어느정도추측이가능하다.우선말로의수사적기법이현대에어울리지않게너무장황하다든가,지나치게극단적으로르네상스시대의욕망을다루고있다든가,셰익스피어보다작품세계가복합적이지않고단순하다든가,요절하여작품세계가폭넓지못하다든가,그의사생활이부도덕하게여겨져정치적,국가적지원을받지못했다든가등등여러가지이유가가능할것이다.하지만무엇보다중요한점은말로의작품이다루는내용과주제가현대인에게상대적으로큰흥미와공감을불러일으키지못한다는사실일것이다.위대한문학작품은시대적인특정상황을뛰어넘어보편적감동이나공감을이끌어내는힘을지니고있다.셰익스피어의작품들이바로이러한면에서가장대표적인강점을보이고있는것이사실이다.반면말로의작품들은말로당대의상황과훨씬더깊게연루되어있다.따라서당대를벗어나말로의작품들이셰익스피어에비해저평가되어온이유는무엇보다당대의정치종교적특징이너무강하여,보편성을이끌어내는데셰익스피어만큼성공하지못하고있기때문으로여겨진다.
이연구가주목하는부분은바로그점이다.사실말로의작품들은셰익스피어의작품들보다당대영국사회의정치적,종교적상황에대해훨씬더많은관심과흥미를보여주고있다.엘리자베스여왕시대영국사회에서정치와종교는서로뗄수없는관계였다.정치는종교의힘을이용하여영향력을발휘했고,종교역시정치적힘을등에업고사람들의정신세계를지배했다.폴휫필드화이트(PaulWhitfieldWhite)의지적처럼,왕권신수설과같은절대왕권의개념은종교를통해얻어진것이었고,교회에서가르치는대로행하지않으면그것은단순히종교적죄만이아니라,국가의법률에위배되는범죄로여겨졌다(70).그런데흥미롭게도엘리자베스시대영국은종교적으로매우혼란스러운상황에있었다는사실을우리는주목할필요가있다.헨리8세이후로영국국교회와가톨릭이대립해왔으며,이러한구교와신교의갈등은메리(Mary)여왕시절피비린내나는정치적충돌을거쳐,엘리자베스여왕이다스리던당대영국사회에서도여전히지속되고있었다.당시가톨릭교도임을숨기고겉으로만국교도행세를하던많은영국인이있었음을기억한다면,이러한정치적,종교적혼란으로인해영국내부적으로수많은갈등과혼란을피할수없었다는사실은이미잘알려져있다.말로가당대정권을위해일하는정치적스파이였다는사실과또한가톨릭의이중스파이였을것이라는추측은그의작품들이보여주는정치적종교적성향의의미를더욱다양하게해석할수있는배경을제공한다.
말로의작품세계를셰익스피어의작품세계와비교하여면밀히살펴보면,몇가지주목할만한점이발견된다.첫째는말로의작품중에희극을찾아보기힘들다는점이다.셰익스피어의낭만희극이나벤존슨의풍자희극과같은희극작품을말로에게서는찾아볼수없다.물론말로가젊은나이에요절하지않고셰익스피어처럼많은작품을쓸시간이있었다면,희극에관심을가질가능성을무시할수는없다.하지만그가남긴작품들만을고려한다면,개인의문제보다사회적조화와화합을중시하거나,남녀간의사랑,풍자적인웃음을유발하는희극에는말로가관심을보이지않았다고판단할수있다.그렇다고그가전통적인비극정신을중시했다고보기도어렵다.그의작품중에는개인의성공과파멸을다루고있는경우들이있지만,이들을전통적인비극장르에포함시키기어려운경우가대부분이다.오히려그의작품들에서발견할수있는말로의관심은장르보다는‘정치와종교’라는특정주제로집약된다.『에드워드2세』(EdwardII)를포함해서『탬벌레인대왕』과『파리의대학살』(TheMassacreatParis)은거의권력욕과권력갈등을주제로삼는정치역사극에가깝다.『파우스투스박사』와『몰타의유대인』은종교의문제가작품의중심에있다.『디도,카르타고의여왕』(Dido,QueenofCarthage)은사랑의문제를다루고있는것처럼보이지만,그이면에는역시정치의문제가깊게자리잡고있다.따라서말로는당대영국사회의정치,종교적상황에비상한관심을갖고있었으리라추정할수있다.
그리고말로의등장인물들과셰익스피어의등장인물들을비교해볼때발견할수있는중요한차이점은등장인물의변화이다.말로의등장인물들은극초반에보여주는성품에서크게변화하지않고자신의기질과욕망을유지한채결말을맞이하는반면,셰익스피어의등장인물중에는전혀다른성품의인물로변하는경우가많다.예를들어오셀로(Othello),리어왕(kingLear)과같은비극적인물들,『헨리4세』(HenryIV)의할(Hall)왕자그리고『말괄량이길들이기』(TheTamingoftheShrew)의캐서리나(Katherina)와같은경우가대표적이다.오셀로는고귀한성품의무어인장군에서잔인한살인자로,리어왕은거만하고어리석은왕에서겸손하고현명한노인으로,할왕자는부랑배에서이상적인왕으로그리고캐서리나는말괄량이에서정숙한아내로변모한다.하지만말로의탬벌레인(Tamburlaine),파우스투스(Faustus),바라바스(Barabas),디도(Dido),에드워드2세(EdwardII)등의중심인물들은극의결말에서죽음과파멸을겪는순간까지도성품의변화를발견하기가쉽지않다(Danson221).셰익스피어는등장인물의변화과정과변화된모습을통해인간과삶의본질과교훈을전달하려한반면,말로는등장인물의특정행위나정치,종교적태도가초래하는결과,불행과파멸에초점을맞춘것으로보인다.셰익스피어가다양하고자연스러운인간군상들의모습과변화들을그려낸반면,말로는어떤목적의식을가지고등장인물들을묘사했다는추측이가능해지는이유가여기에있다.
그렇다면말로의목적의식은무엇이었다고할수있을까?로렌스댄슨(LawrenceDanson)은말로의인물들이셰익스피어의인물들보다도더사실적인인물들이라고주장한다(222).셰익스피어는관객들의기호에맞춰인물들의성품을변모시키지만,말로의등장인물들은“비극적용기”를그대로유지한다는것이다.결국죽음과파멸로이끄는이러한고집스러운성품은아리스토텔레스가규정하는전통적인비극의주인공에게서쉽게찾아볼수있는하마티아(비극적결함)라고할수있을것이다.하지만말로의경우는이것을단순한사실적비극성의표현으로만설명하기힘들다.말로의인물들은많은비평가가지적하는것처럼,르네상스당대영국사회의다양한현실적욕망을대변하는인물들이기때문이다.물론이러한욕망은르네상스사회만을대표하는것이아니라시대를막론하고보편적인욕망에해당하지만,중세시대에억압되었던욕망이르네상스시대에강렬하게분출되었기때문에특별한의미를지니는것이다.그리고이러한새로운욕망을대변하는인물들의삶과파멸의과정은당대사회가지니고있던전통적가치와질서를절대화하는지배이데올로기의허구성을폭로하고탈신비화하는요소들을지니고있다.
흥미로운사실은에밀리바텔스(EmilyBartels)의지적처럼말로의주인공들이모두이방인이거나타자라는사실이다(3-5).탬벌레인은스키타이의야만인이고,바라바스는유대인,파우스투스는독일의하층민,디도는유럽이아닌아프리카지역의여왕그리고『파리의대학살』의주인공기즈(Guise)는프랑스의가톨릭교도이다.유일한사극인『에드워드2세』의주인공에드워드는영국의왕이지만,기독교교리가금하는동성애에빠진타락한무능한인물로묘사된다.따라서이방인과타자에대한거부감을지니고있던당대영국사회에서말로의주인공들은대부분관객에게적대감이나혐오감을불러일으킬만한존재들이다.따라서이들이보여주는어떤야만적행위나신성모독적언행은그들의타자적정체성으로인해극단적일탈을가능케하지만,다른한편으로는이들의파멸을당연하게받아들일수있는배경이된다.사실이들의극단적모습은이방인이얼마나어리석고,야만적이며,잔인하고,사악한지드러내는증거가될수있다.따라서영국관객들은이들에게적대감과혐오감을느끼면서,동시에다른한편으로는우월감을느낄수있다.하지만중요한점은말로의타자주인공들이보여주는욕망이나일탈행위들이당대영국인들이열렬히욕망하는것들이라는사실이다.말로의탈신비화전략은바로여기에서부터시작한다.
말로의작품들은전통적으로『탬벌레인대왕』,『몰타의유대인』,『파우스투스박사』를중심으로“권력”,“부”,“지식”이라는르네상스의무한한욕망을추구하다가결국인간적한계때문에추락하는이카로스(Icarus)와같은비극적인간유형을묘사하는작품들로평가되어왔지만(Levin42-3),전형적인비극의형태에서는많이벗어나있다.스키타이의야만인과유대인그리고악마와거래하는독일인의파멸이숭고한깨달음을불러일으키기는쉽지않다.르네상스당대를지배했던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시학』(Poetics)에기초한고전희랍의비극론을비롯하여도덕정신에기초한중세적비극관에서도비극의주인공은우선신분이나지위가높고,사회적으로성공한인물로정의된다.그런데말로의주인공들은태생부터비극적영웅으로서의위엄을지니기에는한계를안고있는,당대사회에서소외되어있는이방인들이다.말로가이들을비극의주인공으로삼았다는사실자체부터가당대의극장전통이나질서를위반하는의미를갖는다.말로가대학생시절그리스로마신화를바탕으로쓴최초작품『디도,카르타고의여왕』과죽기직전에쓴두작품,『에드워드2세』,『파리의대학살』까지고려한다면,말로의타자주인공들은낯선세계와낯선인물들에대한호기심그리고그들이추구하는일탈적욕망으로당대관객들을사로잡을수있었을것으로보인다.말로는이러한낯설고이질적인주인공들을이용하여당대의기존질서나가치를위반하고저항하는정치의식을자연스럽게무대위에올려놓을수있는극적기반을확보한다.
말로는이방인타자들을주인공으로삼고그들에게극단적인욕망과영웅적면모를부여함으로써당대사회가지니고있던주체와타자에대한신화를탈신비화시킨다.사실말로당대영국사회에서는이방인타자에대한편견과고정관념이분명하게존재했다.그리고이러한편견과고정관념은영국과유럽인은이방인과는다르다는우월의식에서기인하였으며,이러한우월의식의바탕에는종교가자리잡고있었다.이슬람교나유대교를믿거나무신론자인이방인에대한반감은말할것도없고,심지어가톨릭과신교의갈등이첨예했던말로당대영국사회에서신교도에게는가톨릭교도도종교적타자이고이방인이었다(Woods223).기독교도에게유대인이나이슬람교도가악마와같은존재로여겨진것처럼,신교도에게가톨릭교도는악마와같은존재로여겨졌던것이다.엘리자베스여왕과그녀를통해신교도정권을세운지배권력층의입장에서는여왕을몰아내고가톨릭왕을옹립하려하는가톨릭교도들을악마로신비화하는것은당연한정치적전략이었을것이다.하지만말로작품의타자주인공들은이러한당대의고정관념과편견을재현하면서도,그러한편견을넘어서서타자의신화를의심스럽게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