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 신유학의 철학적 탐구

중국 현대 신유학의 철학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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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중국 현대 신유학의 철학적 탐구』에서 논의하고 있는 내용은 현재 중국철학(특히 현대 신유학)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과 그 차이점, 초월(超越)과 내재(內在)의 문제를 양행의 도리(兩行之理)라는 측면에서의 고찰, 현대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상대주의(절대적 상대주의와 완화된 상대주의)로 인한 윤리의 부재 문제와 동서윤리 융합의 가능성 탐구, 세계윤리선언의 기초 과정과 동양윤리의 위치, 현대 교육체계에서 통합적 지식의 문제 등이다. 이 책은 넓게는 동양철학 전반, 좁게는 현대 신유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

유술선

저자 유술선은 원적이 강서(江西) 길안(吉安)으로 1934년 상해에서 태어났다. 대만대학 철학과 학사, 철학연구소 석사, 미국 서던 일리노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찍이 동해대학(東海大學) 부교수, 서던 일리노이 대학 철학과 교수, 홍콩 중문대학(中文大學) 철학과 강좌교수(講座敎授), 중앙연구원(中央硏究院) 중국문철연구소(中國文哲硏究所) 특임강좌를 담당하였다. 2016년 6월 서거. 저작으로 『문학 감상의 영혼』(文學欣賞的靈魂), 『새로운 시대 철학의 신념과 방법』(新時代化哲學的信念與方法), 『문화철학의 시론적 탐구』(文化哲學的試探), 『생명정조의 결단』(生命情調的抉擇), 『중국철학과 현대화』(中國哲學與現代化), 『주자철학사상의 발전과 완성』(朱子哲學思想的發展與完成), 『황종희 심학의 정초』(黃宗羲心學的定位), 『문화와 철학의 탐색』(文化與哲學的探索), 『중서철학논문집』(中西哲學論文集), 『대륙과 해외-전통의 반성과 전환』(大陸與海外-傳統的反省與轉化), 『유가사상과 현대화』(儒家思想與現代化), 『이상과 현실의 규결』(理想與現實的糾結), 『전통과 현대의 탐색』(傳統與現代的探索), 『당대중국철학론』(當代中國哲學論), Understanding Confucian Philosophy: Classical and Sung-Ming 등이 있다. 그밖에 영문으로 된 논문 수십 편이 있다.

목차

옮긴이의 말 / 5
자서 / 9

1.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본 현대 중국 철학사상의 변화 국면 / 17
2. 유학의 이상과 현실-최근 동아시아 발전의 성취와 한계에 대한 반성 / 37
3. 종교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논의함 / 76
4. “양행의 도리”와 안심입명 / 102
5. 세계윤리와 문화차이 / 181
6. “세계윤리선언” 초안의 어려움-제2차 세계윤리회의 스케치 / 204
7. 현대 신유가의 관점으로 본 세계윤리 / 219
8. 유가철학의 심리학적 의미 / 251
9. 통합지식과 지ㆍ정ㆍ의-반세기 이래 통합지식교육의 반성 / 280
10. 다원문화에서 중국문화의 위치 / 298

출판사 서평

중국 현대 신유학은 서양 문화의 극복 방법에 대한 대안을 탐색하는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부단히 변화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 중국 현대 신유학의 상황은 서양의 형이상학을 자신의 형이상학 체계 내에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본서에서 논의하고 있는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중국철학(특히 현대 신유학)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과 그 차이점, 초월(超越)과 내재(內在)의 문제를 양행의 도리(兩行之理)라는 측면에서의 고찰, 현대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상대주의(절대적 상대주의와 완화된 상대주의)로 인한 윤리의 부재 문제와 동서윤리 융합의 가능성 탐구, 세계윤리선언의 기초 과정과 동양윤리의 위치, 현대 교육체계에서 통합적 지식의 문제 등이다.
본서는 넓게는 동양철학 전반, 좁게는 현대 신유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할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동양철학 연구자와 동양철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먼저 현재 중국철학이 처한 문제를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ㆍ현대 중국이 마주했던 세 가지 논점 ―현대 신유학, 마르크스-레닌주의, 자유주의― 을 담고 있다. 특히 서양의 패러다임 논의는 과거를 극복 또는 부정하고서 나타난다는 유형의 패러다임 담론이 성행하였지만 이것은 서양근대의 진보적 역사관을 그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동양의 나선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현대 신유학과 송대 신유학의 관계, 더 멀리는 선진유학과의 관계까지 논의하면서 중국 현대 신유학의 발전 방향을 탐색하고 있다. 이것은 전통과 현대의 융합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과 그 차이점에 대해 저자는 일찍이 모종삼(牟宗三)이 제시했던 서양철학의 외재초월(外在超越)과 동양철학의 내재초월(內在超越)이라는 기본 개념에 근거하여 비교/분석/비판하였다. 이 문제 역시 송대 신유학의 리일분수에서 리일과 분수의 독립성과 상관성을 모두 긍정하는 입장에 서서 논의한 것이다. 리일은 리일이고 분수는 분수이지만 리일은 또 분수를 통해 드러나고 분수는 리일을 통해 그 근거를 갖는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리일이 없는 분수는 불가능하고 분수가 없는 리일은 무의미함을 드러내고 있다.
초월과 내재의 문제를 양행의 도리라는 측면에서의 고찰은 흔히 전통 서양철학에서 나타난 이원적 세계관의 문제점을 리일분수라는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도가철학, 불교철학, 유가철학의 장단점을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도가철학과 불교철학은 기본적으로 초월의 측면에 편향되어 내재의 측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그러나 유가철학은 초월과 내재를 모두 균형 있게 탐구하고 있다. 그 관점이 바로 앞에서 말한 리일분수이다. 저자는 초월과 내재의 탐구를 통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는 종교와 형이상학이 사라진 현대인이 처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P. 틸리히가 말한 ‘궁극적 관심’의 문제를 유학의 리일분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사회의 상대주의로 인한 윤리의 부재 문제와 동서윤리의 융합 문제는 흔히 윤리부재의 시대라 평가되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해야만 세계윤리를 새롭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역사적 맥락과 가치관이 다른데 이것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그것들의 융합에 대한 성찰이 논의되고 있다.
현대 교육의 통합적 지식문제는 현대 교육의 파편화된 지식 교육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그 대안으로 전인교육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섭(統攝)의 문제이다. 이제 과거와 같은 전문화되고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전인적 교육이 불가능함을 강조한다.
오늘날 동양철학이 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현대 신유학자들은 이것을 ‘유혼’(遊魂)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이 책은 중국 현대 신유학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면서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에서 현대 신유학에 대한 논의는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상황은 대체로 중국학자/서양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거나 비판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논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까닭은 새로운 관점에서 창의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창의적인 논의가 부족한 것은 새로운 방향 설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에 대해 유술선의 저작은 한 모범을 보여준다. 비록 이 저작에서 새로운 논의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방향의 기준점은 제시하고 있다.
아무튼 이 저작은 넓게는 동양철학 전반, 좁게는 현대 신유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할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동양철학 연구자와 동양철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최대우ㆍ이경환

[본문]
1.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본 현대 중국 철학사상의 변화 국면

1960년대에 쿤(T. S. Kuhn)은 “패러다임”(paradigm)론을 제시하여 과학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과학의 발전은 안정적인 상태에서 지식이 부단히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기에 모두 모종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임으로써 잘 살펴보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의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패러다임은 결국 새로운 상황과 문제에 대해 대처할 수 없게 되면서 과학혁명을 낳게 된다. 이러한 혁명은 결코 지엽적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던 때가 바로 이러한 변화의 시기였다. 표면상으로 볼 때 역사에 연속성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역사는 단절되었다. 근대과학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전시킨 것으로서 고전적 패러다임과는 구조적(framework)으로 서로 받아들일 수 없을(incompatible)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incommensurable) 것이다. 계발성이 풍부한 쿤의 학설은 당시의 논리실증론이 주도하여 주류가 된 “통합과학”(unity of science) 사상에 직접적으로 도전한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분명한 사실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과학의 발전은 평온하게 흘러 온 것이 아니라 일단 돌발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표면상으로는 여전히 옛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이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미시적이다. 그렇지만 쿤의 학설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역사의 단절을 주장한 그의 학설은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슈펭글러(Oswald Spengler)와 같은 유형으로 변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해석학(hermeneutics)의 이른바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고대 그리스, 중세기와 근대 서양의 사상 구조는 큰 차이가 있지만 화이트헤드는 근대 서양 과학의 연원은 바로 그리스의 사조와 중세기의 보편적 관념으로 소급해갈 수 있다고 논하였다. 이것으로 패러다임의 차이가 반드시 지평의 융합을 방해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상 발전이 모종의 상황에 이르게 되면 돌발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되어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포괄적인 의미에서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패러다임을 엄격한 이론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여러 가지 난점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을 얻을 수도 없다.
모두가 곤혹감을 갖게 되는 것은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근본적으로 엄격한 정의를 결핍하고 있다는 점이다. 쿤 자신이 그 용어를 사용할 때부터 다른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도 일찍이 비교적 확정적인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다지 성공을 하지 못하였다. 그 자신은 뒤에 이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였다. 그렇지만 “패러다임”론이 제기되었을 때 그 개념이 갖는 엄격성의 결핍과는 상관없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이해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고, 또 반드시 쿤이 말한 원래 개념에 구속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뉴턴의 고전물리학에서 20세기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으로 변화한 것은 한 차례의 과학혁명으로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닌가? 비교적 느슨한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을 과학혁명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여전히 많은 물리학학자들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성과는 단지 몇 가지 중대한 수정에 불과한 것으로 패러다임의 전환과 같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준을 다시 좀 더 관대하게 적용하면, 이른바 유심(唯心)ㆍ유물(唯物)은 두 가지 다른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는가? 헤겔로부터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를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안 될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유심ㆍ유물은 서양 근대에 데카르트가 심물이원(心物二元)을 엄격하게 구분한 뒤에 발전되어 나온 두 가지 종류의 철학적 기본 유형으로 피차간에 모순ㆍ충돌을 하지만 오히려 상호 충돌하면서 교류하는 것이다. 공산당 정부는 전체 철학사를 유심ㆍ유물이라는 두 가지 노선의 투쟁으로 보지만 이것은 패러다임의 이해에 있어서는 쿤의 학설과 별반 관련이 없다. 종합하면, 사람들은 모두 “패러다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살펴보면 곳곳에 모두 문제가 있어 하나로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해결할 의도는 없고, 단지 “패러다임”을 하나의 계발식의(heuristic) 관념으로 삼아 우리의 견해에 도움을 받고자 할 뿐이지 그 밖의 더 큰 뜻은 결코 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패러다임”이라는 관념을 중국 철학사상의 발전 과정에 응용해보고자 한다. 어떤 면에서 볼 때, 만약 반드시 쿤의 원래 의미에 따라야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