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삶과 죽음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삶과 죽음이 없다(無死生)고 강변하는 것은 그런데 왠지 억지처럼 보인다. 해와 달을 타고 사해 밖을 노니는 소요유와 무사생은 구별된다고 할 수 있는데, 전자가 삶과 죽음을 모르거나 잊는 차원이라면 후자는 여전히 삶과 죽음이 없다고 하여 현해(縣解)한 것 같지만 여전히 그것에 “매달리는”(縣) 양상을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해는 현해에도 매달리지 않아야 현해이니, 마땅히 해와 달로 표상되는 시간을 타고(騎日月) 사해 밖을 노닐 일이다(遊四海之外). 삶과 죽음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애써서 수준이 낮다느니, 깨달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느니, 아직 미숙하여 속제가 구성하는 有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느니 폄하하지는 말자. 여기서 말하는 생사수용은 깨달음 이후의 생사에 관한 것이다. 마땅히 煩惱卽菩提, 煩惱卽涅槃이지만, 이는 穢土가 다시 佛國土임을 알게 될 때 또한 가능하다. 성경을 빗대어 말하자면, 천국은 우리 안에 이미 와 있지만 우리가 다만 그것을 모를 뿐이다.
영생과 윤회, 있어도 없어도 좋다 (영문학자가 읽은 장자의 사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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