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우리 집이올시다 (한국을 사랑한 파란 눈의 어머니, 캠벨)

조선은 우리 집이올시다 (한국을 사랑한 파란 눈의 어머니, 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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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왜 캠벨은 안전한 고향을 떠나 바다 건너 낯선 나라를 찾아왔을까? 그가 학교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며 진심으로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 조선이 나의 집이라고 말하며 다시 돌아와 이 땅에 묻힌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가졌던 우리의 많은 질문에 대해 건조한 설명이 아니라 꼼꼼하고 성실하게 찾아낸 캠벨의 목소리로 대답해 준다. 모쪼록 이 평전이 캠벨 선교사의 헌신을 기념하면서 선교사의 선교활동을 계승하여 세상 곳곳에 또다시 펼쳐지는 캠벨 후예의 선교에 활력을 제공하는 기적의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저자

권지영

(權智英)
감리교목사.한양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감리교신학대학교대학원(M.Div.)에서석사학위를취득했으며,졸업논문으로「캠벨부인의선교와신학에관한연구」를썼다.현재감신에서박사과정중.

목차

간행사/최이우ㆍ3
추천사/이현식ㆍ5

Ⅰ.선교사가되기까지1853~1887
1.개척자들ㆍ14
2.낭만의시절ㆍ19
3.빈손ㆍ23
4.부르심ㆍ26
5.적합한사람ㆍ30

Ⅱ.중국선교-상하이1887~1888
1.교회의건설시대ㆍ38
2.대양을건너서ㆍ42
3.매력적인선교사ㆍ46
4.시작점에일어난일ㆍ50
5.새로운도시,가득채워진손ㆍ54

Ⅲ.중국선교-쑤저우1888~1895
1.병원의관리자ㆍ62
2.외국인악마들ㆍ67
3.영원한불만족ㆍ71
4.성숙한기독교인ㆍ75
5.영혼없는존재ㆍ79
6.양어머니ㆍ84

Ⅳ.한국선교-결정과개척1895~1897
1.안식년휴가ㆍ90
2.다른가까운마을들로가자ㆍ94
3.한국의문을두드리다ㆍ98
4.격변의시대,성장하는기독교ㆍ103
5.한국에서의첫날들ㆍ106
6.처음교회들ㆍ111

Ⅴ.한국선교-시작1897~1898
1.시동을걸다ㆍ116
2.한국의여성들ㆍ120
3.학당의시작ㆍ126
4.학당의처음풍경ㆍ132
5.이웃집외국인ㆍ137

Ⅵ.한국선교-발전1898~1905
1.배화학당의발전ㆍ144
2.건축이야기ㆍ149ㆍ154
4.작은선교사에게일어난일ㆍ160
5.여선교부의어머니ㆍ167
6.휴가를떠난이유ㆍ171

Ⅶ.한국선교-부흥1905~1910
1.부흥ㆍ178
2.새로운도약ㆍ184
3.신여성들의등장ㆍ189
4.자골교회전도부인들ㆍ197
5.새로운교회들ㆍ204
6.아들,유경상ㆍ208

Ⅷ.한국선교-달려갈길1910~1920
1.지치지않는열정ㆍ214
2.Amoniㆍ221
3.강부인기념회ㆍ225
4.조선은우리집이올시다ㆍ228
5.마지막숨까지ㆍ232

후기/전병식ㆍ237

부록/연표ㆍ242
미국감리교역사기록보관소보관자료ㆍ244
주ㆍ272

출판사 서평

조세핀필캠벨(JosephineEatonPeelCampbell,姜慕仁,1853-1920)
조세핀필캠벨은1853년4월1일미국남부텍사스에서목사이자법조인이었던브라이언트필의딸이다.남감리회교육자이자선교사였던마틴루터의외손녀로태어났다.텍사스에서어린시절을보내고1862년미국캘리포니아의로스앤젤레스로이주하여자랐다.

1878년1월미국남감리회목사이자교육가인알론조캠벨과결혼하여딸과아들두자녀를낳았으나,수년내에모두잃어홀로남았다.가족을모두잃은뒤“하나님께서자신의빈손을주님을위해일하는것으로채워주시기를”기도했다.캘리포니아주립사범학교에재학후,미국남감리회해외여선교부에서파송을받아1887년4월중국상하이에도착하였다.상하이에서클럽튼학교음악교사,여선교부활동을하던중1888년5월중국쑤저우로파송되어쑤저우여선교부를담당하였다.쑤저우여성병원에서의료및복음전도사역을주관하는동시에,쑤저우매일학교들을감독하고이스트사이드기숙학교의교장으로일했다.1895년5월부터지속된안식년휴가이후한국여성선교의개척자로지명되어,1897년10월8일중국인수양딸도라유(DoraYu)와함께제물포항에도착하였다.1898년8월1일자골(지금의내자동)로남감리회여선교부본부를이전하고,1898년10월2일여섯명의학생으로‘캐롤라이나학당’,즉‘배화학당(培花學堂)’의문을열었다.1900년4월15일부활주일에기숙사기도실에서예배를드린것이종교교회와자교교회의모체인자골교회의시작이었다.1907년에는용각골(필운동)언덕의4천여평을매입하여,1915년배화학당이전건축이완성될때까지이를지휘감독하였다.1910년까지배화학당의교장직을맡았고,1912년안식년휴가이후에는수표교교회와광희문교회의전도부인사역을포함한서울선교본부의복음전도사역을맡았다.

1917년1월부터는세브란스병원간호학교교사,기숙사사감으로봉직하였다.1917년10월,한국교인들이준비한‘내한선교20주년기념식’이거행되었으며,이와관련한매일신보와의인터뷰에서“여기(한국)가우리집이니까언제까지든여기서지내겠습니다.”라고말하였다.1918년안식년휴가를떠났고디프테리아를앓으면서쇠약해졌으나,주변의만류에도불구하고1920년8월한국으로돌아왔다.내한4개월만인1920년11월12일67세의나이로별세하여양화진에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