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계 기술의 개척자 그레그 (한국 공업의 스승)

한국 기계 기술의 개척자 그레그 (한국 공업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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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공업선교사 그레그의 한국 근대 공업개척기
저자 임연철(林然哲) 박사는 오랜 조사와 연구 기간을 거쳐 뛰어난 통찰력으로 그레그의 삶을 조명하면서도 그가 YMCA 운동이나 우리나라 근대화에 미친 선한 영향력을 전기 작가로서 전지적 시점(視點)에서 분석했다.

현대사에서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공업 입국’이라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구호보다 반세기 앞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공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서울 YMCA 선각자들의 혜안과 그 부름에 응해 헌신한 그레그의 위상은 대단한 것으로 이제야 조명되는 것은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이 극도로 가난하게 된 원인은 노동에 대한 오래된 혐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에 대한 심각한 편견과 일하는 것을 경멸하는 생각에 맞서 한국인들의 노동관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그레그
저자

임연철

언론인, 예술경영인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미국 드루대 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 중이다. 모태신앙인으로 논산제일감리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고등학교를 서울(1964)에서 다니면서 경동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직분은 집사이다.

서울대학교 사학과(1972)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 석사(2002),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 박사(2006)를 받았다. 그리고 감신대와 총신대가 운영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위취득 과정을 수료, 교육부로부터 신학사 학위(2014)를 받았다.

중앙일보(1974-1978)에서 기자를 시작해 동아일보(1978-2007)에서 문화부 기자를 거쳐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사업국장을 역임했다. 중앙대(2007-2008)와 숙명여대(2012-2014) 초빙교수, 건양대(2014-2017) 대우교수를 지냈으며 공연 전시 마케팅과 홍보를 강의했다. 국립중앙극장 극장장(2009-2011)으로서 공연 기획 제작, 경영을 총괄했다. 서울 서초문화예술회관 관장(2017-2019)으로 일했다.

예술경영 관련 저술로 『문화예술 홍보론』(2007), 『문화예술 마케팅』(공역, 2007), 『극장 경영』(공역, 2011), 『뮤지엄 매니지먼트』(공역, 2011), 『예술 경영』(공저, 2013), 『공연예술 마케팅』(공역, 2016)이 있다. 종교 관련 저술로는 문화부 기자 재직 시 펴낸 『민중 속의 성직자들』(1984)이 있다.
본사에서 펴낸 『이야기 사애리시』, 『지네트 월터 이야기』, 『마렌 보딩 이야기』, 『반하트』 등 여러 권의 선교사 전기를 출간했다.

목차

추천사ㆍ3
머리말ㆍ6
감사의 말씀ㆍ10

시작하며 이웃 사랑, 공업 기술, 첼로가 평생 화두ㆍ16

1부 이웃 사랑 신앙 속에서 택한 평생 진로 공업
1. 캐나다 장로교 개척한 목사^신학자의 4남ㆍ23
2. 공업에서 찾은 식민지 청년의 꿈ㆍ32

2부 서울YMCA의 부름과 응답
1. 구한말 서울YMCA의 태동과 산업교육에 대한 청소년들의 기대ㆍ39
2. 한국에 없는 공업 기술자 급구와 그레그의 운명적 응답ㆍ43
3. 질레트 “그레그는 한국에 딱 맞는 공업선교사” 평가ㆍ49

3부 한국어 배울 틈도 없이 투입된 건설과 교육 현장
1. 서울YMCA 신축 공사 감독-산업부 설계와 교육 동시 추진ㆍ57
2. 신축회관 준공되자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완성ㆍ67
3. 확대된 과목으로 재개된 산업교육-새 회관에서 졸업식도ㆍ76
4. 서툰 편지 속 학관장 그레그에 대한 학생들의 호응ㆍ81

4부 궤도에 오른 그레그의 공업 입국
1. 본국 휴가 중 준비한 산업교육-후원자 모집에 큰 성과ㆍ89
2. 서양 전문가 초빙해 철공 목공 제화 사진 인쇄 교육 본격화ㆍ92
3. 학생이 만든 제품으로 자립 가능성 보여준 1912년ㆍ102

5부 성공적으로 계속된 산업교육
1. 시설 설치에서 인재 양성을 중시한 ㆍ113
2. 새 작업장과 최신 자가발전 설비 갖춘 1914년ㆍ123
3. 대학ㆍ학교 설비 대형 주문 받아 자립 시도한 1915년ㆍ132
4. 10년 노력-청소년 노동관 개혁해 사회 계급 타파ㆍ138

6부 회관 건축 끝나 산업교육에 몰두한 그레그
1. 어머니와 마지막 상봉-후원금 6,000달러 모은 1916년 휴가ㆍ143
2. 고급 기술, 발전된 제품으로 전시회까지 개최한 1917년ㆍ151
3. 자립 목표 거의 이룬 1918년-한국 최초 파이프 오르간 설치ㆍ162
4. 3ㆍ1운동 후 긴장 속에서도 성장한 1919년ㆍ175
5. “공업에 힘쓰라” 실력양성론 중심에 선 그레그의 1920년ㆍ188

7부 첼로와 오르간으로 재능기부를 통한 한국 사회봉사
1. 교회를 넘어 한국 음악인과 음악회 가져ㆍ199
2. 중학생 안익태의 첫 첼로 스승 그레그ㆍ207
3. ‘손과 머리’로 가르친 공업 노동의 중요성ㆍ211
4. 1919년에 쓴 동화 〈토미와 집안 일꾼〉ㆍ215

8부 일 중독 독신자에게 찾아온 뜻밖의 질병
1. YMCA의 가장 독특한 사업이 된 공업부-1921년 이후ㆍ225
2. 1927년 귀국 직전 교육공로자로 선정된 그레그ㆍ231
3. 마음으로부터 추모한 YMCA 동료 반하트ㆍ237
4. 그레그의 헌신 일대기를 조명한 글과 기사, 서신들ㆍ242

저자 후기 그레그의 흔적을 찾아서
1. 역사에 대한 경의-미네소타대 YMCA 문서보관소ㆍ252
2. 묘소-사후 80여 년 만에 처음 찾아온 한국인ㆍ256
3. 토론토-그레그의 젊은 날이 서려 있는 곳ㆍ258

〈자료〉
서울YMCA 〈산업교육 개요 1906-1913〉ㆍ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