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어의 맛

웅어의 맛

$14.50
Description
세상을 다섯 가지 감각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말ㆍ생각ㆍ감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감’에게 펜을 쥐어 주기로 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는 것이 궁금해
오감의 이야기를 듣다

묵직하고 깊은 필체, 서정성과 탄탄한 주제 의식을 겸비한 구효서의 소설집 『웅어의 맛』이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큰 공백 없이 꾸준히, 다양한 실험으로 작품의 세계를 넓혀 온 구효서는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우리 시대 대표 소설가로 자리 잡았다. 사유하는 힘을 지닌 소설을 써온 구효서가 이번엔 반야심경의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을 소재로 한 오감소설을 내놓았다. 독특한 주제와 서술 기법을 선보인 이번 소설집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각에 무조건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고 경계하게 만든다.
저자

구효서

중앙일보신춘문예에소설「마디」가당선되며등단했다.소설집『확성기가있었고저격병이있었다』,『깡통따개가없는마을』,『시계가걸렸던자리』,『저녁이아름다운집』,『별명의달인』,『아닌계절』등,장편소설『늪을건너는법』,『라디오라디오』,『비밀의문』,『내목련한그루』,『나가사키파파』,『랩소디인베를린』,『동주』,『타락』,『새벽별이이마에닿을때』,『옆에앉아서좀울어도돼요?』등,산문집『인생은지나간다』,『인생은깊어간다』등을펴냈다.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황순원문학상,대산문학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등을받았다.

목차

色·은결-길편지

聲·풍경소리

香·육두구향

味·웅어의맛

觸·Cafun?

法·밤춤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오감소설의씨앗은그가대학생시절에얻은깨달음에서나왔다.이씨앗이「풍경소리」로발아하여향,색,촉,미그리고법(의식)을거쳐『웅어의맛』으로뻗어나왔다.「풍경소리」에서미와는자신의노트에주지스님의목탁소리는‘똑똑똑똑’이라쓰고,수봉스님의목탁소리는‘뜩뜩뜩뜩’이라적는다.같은목탁소리인데도다르다.그도그랬다.혼란한시절,시위를마치고절에모여무용담을나누고있을그때,지도법사인철환스님이와서목탁소리를적어보라며빈종이를내민다.종이에적힌목탁소리는제각각이다.철환스님은여기서잘못된점두가지를지적한다.하나는목탁소리를잘못들었고,하나는목탁소리를잘못적은것이다.귀는세상의소리를제대로다들을수없어목탁소리가한차례훼손됐으며,적을수없는소리를글자로욱여넣어왜곡됐다는것이철환스님의이야기다.이알수없는말은그를,그리고우리를감각에대해끊임없이사유하게만든다.우리가학교종이‘땡땡땡’이라고하는순간종은‘땡땡땡’이된다.임의의약속이사물의본질로정착하고만것이다.우리가듣기에정말종이‘땡땡땡’하고울리던가?
말과글자를따라일어나고꺼지는소리에속고그런빛깔에속고그런냄새에속고그런맛에속고그런감촉에속아서결국은너희들의확신이너희들을속이게되는거야.대음희성大音希聲이라고하지않던?큰소리는없는게아니라들으려해도들을수없고(廳之不聞)적을수없고말할수없다는걸받아들여야해,까불지좀말고.보려해도볼수없고(視之不見),잡으려해도잡을수없다(搏之不得)는게있다는걸알아야우리가간신히우리의말과생각과감각에붙들려갇히지않을수있어.자기생각에속지않을수있다고.
「작가의말」중에서
그렇게시간이지난어느날문득수유리화계사의대적광전현판을지나며커다란적막이라는대적의뜻을알것같았다고말한다.얼마나크고귀하기에빛이난다고써놓았을까.들을수없는큰소리(대음)가사실커다란적막(대적)은아니었을까?하도궁금해대음의말을들어보기로했다.그러다이왕듣는김에소리,색,향기,맛,감촉에도동일한역할을맡기기로했다.오감이작동하며불러일으키는의식에게도.


나는감각이되,
어떤것으로도정의될수없는감각이다
『웅어의맛』이그간의소설과다른점은감각에화자의역할을부여했다는것이다.응당소설가라면죽어있는것에도펜을쥐어줄수있어야한다는그의말처럼‘나’는그야말로각단편에서주제가되는감각이다.그런‘나’를사람들은각기다른이름으로부른다.하지만뭐라고불러도상관없다고.이미이름이란사물을일컫는수단에지나지않음으로본질을제대로볼수없기때문이다.
그런냄새를일컬어누구는기미라고하고누구는후?라고하고누구는태초의향취라고했다.그러나일컫는말은일컫는대상과도뜻과도하나일수없으니나를무어라일컫든제대로일컫는게아니고마는시절이되어버렸다.이름이해당만물을잃고만물이해당이름을잃어이제는임의의약속과간주로만겨우만물의이름을대신하는시절이되었잖은가.
「육두구향」중에서
각단편은감각인‘나’가이야기를이끌지만화자를바꾸어등장인물에입장에서서술되기도한다.화자의서술과주인공의독백이서로교차하는새로운서사기법을보여준다.‘나’를통해이야기를관망함과동시에세밀한부분까지들어가상황에대한이해를돕는다.

색성향미촉그리고법
감각이전하는이야기
오감소설의첫번째감각인색을주제로한「은결-길편지」는포구의민박집을중심으로인물들이절망의끝에서희망을건져올리는이야기다.길편지는길잃은편지에서비롯된것으로배달도반송도불가능한우편물이다.수신자도발신자도없는편지를보내는건미가의민박에서지내는요다.포구사람들은요를걱정하며끝까지가지말고바다를위해남겨두라고말한다.
그래서포구사람들은어디든끝까지가지는말라고말합니다.끝까지가게하지않기위해삼성은팽총을쏘며그들에게서한시도눈을떼지않고,광석은손재주를부려평상을만듭니다.키미는늘재미난이야기를쏟아내며반짝이는바다를바라보게합니다.저는기껏도다리쑥국이지요.있는힘을다해누군가를도우라는당신의말씀에저는부끄럽기만합니다.제가할수있는일이란고작편지를읽고그들곁에있어주는것뿐입니다.
「은결-길편지」중에서
고즈넉한가을의사찰과청량한풍경소리가잔잔한평화를안겨준다.그러나그안엔인간의삶과운명의의미를불교적인인연의끝에연결된이야기가있다.주인공미와는달라지고싶으면성불사에가서풍경소리를들으라는친구의말을듣고성불사로향한다.과거의기억에붙들려고양이울음소리를환청으로듣는미와는성불사에서영혼이청정해지는것을경험한다.
객실창호지문에어린푸른달빛.달빛과함께떨어져내린풍경의둥근몸체와물고기모양의추가푸른창호지에검은윤곽으로또렷이박혔다.바람없는한밤중이었으므로그림자는꼼짝도하지않았다.꼼짝도하지않았으나풍경소리가울리기시작했다.
「풍경소리」중에서

민물게장의향으로열어끈적끈적하고짠내가득했던이야기는어느새풋풋한풀향내와향신료의향으로가득찬다.카페기도하고식당이기도한외딴집을방문하는많은단골손님이있다.우쿠렐레악사는21년째행방불명된딸을찾기위해떠돌아다니고편자쟁이는자신의돈을가지고다른남자와도망간여자를찾고있다.외딴집의여인은육두구의인연으로쓸쓸하게태어나외딴집의주인이됐고다른이들은계절이바뀔때마다각자의향에이끌려세상을떠돌다가자신도모르는사이향이숨쉬는외딴집으로돌아온다.
나는그렇다.종종그녀의넋을빼앗아울음에빠뜨리고외딴집에들어서는그의걸음을문득멈추게하며,우쿨렐레소리속에‘무릎꿇는나무’의향으로숨어있다가돌연늙은남자의슬픈노래가되고,편자쟁이로하여금하염없이세상을돌고돌고또돌게하는것이다.
「육두구향」중에서
표제작인「웅어의맛」은이런날이있었나싶게맑고밝은아침에시작한다.전에없던날씨,그래서생각나는어디에도없던튜브치약의싸한맛그리고웅어.K는웅어의맛을떠올렸지만떠오르지않았다.먹을때도맛을알수없었다.K는지인에게부고를듣고공원묘지를방문했다가웅어집에들렸다.묘지의주인은다름아닌K가사랑했던여인이다.그러나그는이미38년전그녀의부고를들었다.두번의부고라는충격으로웅어의맛을느끼지못하는것일까?
전에없던빛의범람,맛보다는충만감으로만기억되던웅어.그는그러니까없던빛,없던맛,없던충만으로인해자신이뭔가막연히다른차원의시간속에서움직이고있다는느낌만받을뿐이었다.
「웅어의맛」중에서
『웅어의맛』에서는‘집’이라는건물이자주등장한다.포구의미가,육두구향이가득한외딴집,그리고「Cafun?」의장미집이다.찬이사는장미집의주인인마희는앞을보지못한다.마희는장미집을너무사랑한나머지일부러건물틈새에제몸을끼워놓는다.혼자빠져나오지못해누군가가구해줘야하지만,오롯이온몸으로건물을느끼고싶은마희의괴상한습관이다.
앞을못보는마희에게는청각도촉각이었다.소리입자가모래알이나참깨알처럼그녀의귀청에날아와박혔다.강력하고섬세한터치일거라는걸내가모를리없다.
「Cafun?」중에서
마지막단편인「밤춤」은감각대신감각으로인해생기는의식을주제로했기때문에앞서언급된기법과다르게전개된다.앓아누운아버지를위해땀을비처럼흘리며들보에머리가닿을정도로뛰어올랐던어머니.어머니의모습에큰무당마저입을벌릴수밖에없었다.팔십여년전밤춤을추던어머니와그밤의눌메기와부엉이의기억을눌러놓는희님에게동생인옥님은비밀스럽게그녀를그장소로데려간다.긴긴벚꽃길,밤,달,반짝이는물빛그리고어머니.나쁠거라곤하나도없는데왜기억을덮어버렸을까.
하지만눈을뗄수없었다던장면을옥님은어머니가몸을흔들던‘거기’와관련해미혜한테이야기한것처럼보였다.미혜의반응으로짐작하건대옥님은그광경이자신의생애를줄곧지배해왔다고생각하는것같았다.
「밤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