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 전투 (유럽의 운명을 바꾼 나폴레옹 최후의 결전)

워털루 전투 (유럽의 운명을 바꾼 나폴레옹 최후의 결전)

$13.61
Description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그의 대표작《레 미제라블》에서 워털루 전투를 다루었다. 이 책은 제2부〈코제트〉의 제1편〈워털루〉에서 워털루 전투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한 3∼18장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으로, 옮긴이주 110여 개를 달고 관련 삽화와 기록화, 지도를 수록하는 한편 충실한 해설을 덧붙여 보다 입체적으로 전투의 전개 양상과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장엄하고 극적인 묘사, 비장미 넘치는 위고의 문체가 돋보이는 이 책은 여느 역사책보다 흥미진진하게 워털루 전투의 전모를 파악케 해줄 것이다.
저자

빅토르위고

저자빅토르위고VictorHugo(1802∼1885)는19세기프랑스낭만주의를대표하는시인이자소설가,극작가.나폴레옹휘하의군인인아버지와왕당파집안출신인어머니의셋째아들로,당시아버지의임지였던브장송에서태어났다.이후파리,나폴리,마드리드등을전전하며유년시절을보냈다.학창시절독서와시창작,문예비평에열중하다스무살이되던1822년첫시집《송가와여러시》를발표했다.1823년첫장편소설《아이슬란드의한Han》에이어1827년운문희곡〈크롬웰〉등을발표하여낭만주의작가로자리매김했고1830년초연된희곡〈에르나니〉로고전주의자들과의싸움에서주도권을획득했다.1831년발표한역사소설《파리의노트르담》으로대성공을거두었고루이필리프의7월왕정시기에정치성을띤시집을다수발간했다.
현실참여적인지식인이자인도주의자로서사형제폐지와빈민구제를주장한위고는공화파정치가로도활약했다.1851년나폴레옹3세가쿠데타로제정을수립하려하자이에반대하다국외로추방되어브뤼셀등지에서19년간망명생활을했다.그기간동안작품집필에몰두하여《명상시집》과《레미제라블》을비롯한걸작들을남겼다.1870년프로이센·프랑스전쟁으로나폴레옹3세가몰락하면서파리에돌아온후1876년상원의원으로선출되지만1878년뇌출혈로건강이악화되어정계에서은퇴했다.1885년파리에서폐울혈로사망한그의장례는국민적인애도속에국장으로거행되었고시신은팡테옹에안장되었다.
대하소설《레미제라블》에여담형태로삽입된‘워털루전투’이야기는위고가벨기에전적지에서두달간머무르며곳곳을답사하는노력끝에집필한것이다.위고특유의비장미넘치는문체가돋보이는이글은일세를풍미한영웅나폴레옹의패배과정을극적이고도박진감넘치게그려내는동시에전투의역사적의미를일깨우며여운을남긴다.

목차

11815년6월18일

2A

3전투의불가해함

4오후4시

5무척기분이좋은나폴레옹

6황제가길잡이라코스트에게질문하다

7예기치못한일

8몽생장고지

9나폴레옹에게는나쁜길잡이,뷜로에게는좋은길잡이

10근위대

11비극적인결말

12마지막방진

13캉브론

14지도자의비중은어느정도일까?

15워털루를인정해야할것인가?

16신권神權이다시일어서다

해설|나폴레옹,1815년6월18일-고봉만

옮긴이의말|워털루는끝나지않았다

출판사 서평

세계를지배하려했던문제적영웅나폴레옹
워털루전장에서운명적인몰락을맞이하다
빅토르위고가그려낸인간과전쟁의장엄한서사시

“워털루는단순히하나의전투가아니다.그것은세계의얼굴이바뀌는순간이었다”

1815년6월18일,벨기에중부워털루지역일대에서한시대를호령했던나폴레옹의운명이,나아가유럽전체의운명이갈렸다.유배지엘바섬에서탈출하여재기를노리던나폴레옹의프랑스군이웰링턴과블뤼허가이끄는영국-프로이센연합군에게패배한것이다.이로써백일천하는종지부를찍었고마침내나폴레옹의시대가,유럽대륙에대한프랑스의지배가막을내렸다.
전쟁사에서워털루전투만큼이나극적이고,이후에도오래도록막대한파장을일으킨전투는찾아보기힘들다.본래굴곡진데다밤새비가내려질척해진전장에서각국명장들의치열한전략과전술,치명적인오판과실수,여기에우연과천운까지어우러져한치앞을내다보기힘든박빙의승부가펼쳐졌고,혼전끝에승패가갈렸다.운명을건전투에서패배한나폴레옹은세인트헬레나섬으로유배되어그곳에서살다가1821년영욕의생을마쳤다.
전투이후유럽의주도권은프랑스에서영국으로넘어갔으며,혁명의시대가막을내리면서민주주의에반대하고군주제를옹호하는빈체제가성립되어유럽의질서가대대적으로재편성되었다.이처럼역사의흐름을완전히뒤바꾼전환점이된워털루전투는‘19세기의돌쩌귀’,‘유럽역사의분수령’이라일컬어진다.전투의전개과정과승패를가른요인,이후에미친영향에대해분석하는수많은기록이남겨졌고,다양한연구가행해졌다.일세를풍미한영웅의몰락과한시대의종언이라는점에서어떤강렬한영감을주었는지,역사가들뿐만아니라바이런,테니슨,발자크,스탕달같은소설가들도워털루전투를작품의소재로삼았다.
19세기프랑스낭만주의문학을대표하는대문호빅토르위고도그의대표작《레미제라블》에서워털루전투를다루었다.이책은제2부〈코제트〉의제1편〈워털루〉에서워털루전투에대해집중적으로서술한3∼18장을발췌하여번역한것으로,옮긴이주110여개를달고관련삽화와기록화,지도를수록하는한편충실한해설을덧붙여보다입체적으로전투의전개양상과당시의역사적맥락을이해할수있도록했다.장엄하고극적인묘사,비장미넘치는위고의문체가돋보이는이책은여느역사책보다흥미진진하게워털루전투의전모를파악케해줄것이다.벨기에전적지를찾아가나폴레옹이마지막분투를벌이다결국패배하고만현장을꼼꼼히답사하고이책을쓴위고는한때전유럽을지배했던천재적전략가나폴레옹도실수를저지를수있다는것을,영원한승자도영원한패자도없다는교훈을전해준다.그리고영웅들의이면에서싸우다죽어간이름모를병사들에게연민어린시선을던지면서그들의희생과고통을일깨운다.

“패배가패자를위대하게만들었다”-승자보다패자가더유명한전투
“모든사람은결국자신의워털루를만난다EverymanmeetshisWaterlooatlast.”노예제폐지를주장했던19세기미국의사회개혁가웬델필립스의말이다.누구나일생에서큰실패를겪기마련이라는뜻으로,‘워털루를만난다meetone’sWaterloo’라는표현은영어에서‘큰패배를맛보다’라는의미의숙어로굳어져사용된다.한편,스웨덴혼성그룹아바ABBA는그들에게1974년유로비전송콘테스트의대상을안겨준곡〈워털루〉에서“나폴레옹은워털루전투에서항복했지./나도거의같은식으로사랑의운명을만났다네./책장에진열된역사책은언제나반복되고있지”라고노래한바있다.
앞의예들은워털루전투가‘커다란패배’혹은‘운명적인굴복’의대명사로자리잡을정도로사람들의기억에깊이각인된역사적대사건임을보여준다.그런데정작승리를거둔영국의냉철한전략가웰링턴,프로이센의노장블뤼허의존재감은흐릿하고,오히려패배한나폴레옹의존재감이강렬하여워털루전투는‘승자보다패자가유명한전투’로회자되기도한다.천부적인전쟁지휘관으로명성을드날렸던나폴레옹이이전투에서패한이유는과연무엇일까?의견이분분하지만이책에서드러난패인을정리하면다음과같다.
그는밤새내린비로포병대가이동하기어려운악조건속에서도승리를과신하며인력을잘못배치하고적을과소평가했다.이틀전에벌어진리니전투에서무찌른프로이센군을추격해섬멸하지못한것도패착이었다.나폴레옹휘하그루시장군의부대는프로이센군을찾느라엉뚱한곳을헤매다시간을허비했고결국프로이센군이영국-네덜란드연합군에합류해전투의대세를바꾸어놓는것을막지못했다.이러한오판에갖가지실수와우연까지겹쳐결국프랑스군은연합군에게격파당하고만다.프랑스군이유리한고지를점할뻔하다막판에역전당한워털루전투는무려6만명이상의희생자를낳으며단하루만에결판이났다.
위고는이책에서전투상황에따라낙관과자만,분노와절망을오가는나폴레옹의모습을낭만주의적필치로장중하게그리면서,이문제적영웅에대해자신나름의평가를내리고있다.아울러미셸네,술트,데를롱,캉브론,그루시등프랑스군의장군들은물론웰링턴,블뤼허,오라녜대공,픽턴,뷜로등영국-프로이센연합군의장군들을사료에기반하여생동감있게묘사함으로써역사적사실성을더해주고있다.

19세기유럽의근대를추동한분수령
올해는워털루전투가일어난지꼭200년이되는해로,유럽전역에서전투의의미를되새기고재평가하려는움직임이활발히일어나고있다.6월18일벨기에워털루지역일대에서각국군인들의복장을하고전투를재현하는행사와기념식이대대적으로열렸고,프랑스에서는관련전시회4개가동시에진행중이다.벨기에가워털루전투의기념물인‘사자상’(프랑스군의대포를녹여서만든것이다)이미지를넣은기념주화를발행하는과정에서프랑스와갈등을빚었다는소식도전해졌다.이전투로쓰라린패배를당하고영국에게주도권까지빼앗긴프랑스로서는심기가불편할만도한일이다.
워털루전투를두고프랑스,영국,독일,벨기에,네덜란드등참전국의입장과평가가엇갈리는가운데,유럽통합의전기가된사건이라는점에서는목소리를같이했다.전투이후유럽에는오스트리아의재상메테르니히가주도한‘빈체제’가성립하면서전체적인질서가재편되었고왕정으로돌아가려는복고적움직임이대거일어났다.이로써자유와평등의이념이유럽전역으로퍼져나가던혁명과전쟁의시대가저물고,안정을추구하는구체제가부활하면서평화의시대가찾아왔다.이반동적인움직임속에서도혁명의성과를완전히무시할수는없었다.이제위정자들은언제든지새로운나폴레옹이나타날수있다는사실을염두에두고,민중의힘을항상의식하면서정책을펼쳐나가게되었다.
영국의저널리스트이자역사학자인폴존슨은저서《근대의탄생》에서유럽근대의진정한시작을워털루전투가일어난1815년이후로보았다.20년가까이계속되며유럽을포화에휩싸이게한나폴레옹전쟁이끝나고안정을되찾으면서산업과과학,문화영역에서수많은변화와발전을이룩할수있었다는것이다.일찍이나폴레옹은그의법전으로신분및출신과관계없는유능한인재등용,능력에따른출세보장,노동과신앙의자유,법앞의평등등을허용하고유럽각국의법체계정비에지대한영향을미쳐근대화에일익을담당했다.위고도이책의마지막장에서나폴레옹의몰락후유럽에서일어난거대한반혁명적움직임과그여파를냉철하게포착하고있다.

시대의증언자빅토르위고,나폴레옹신화를재조명하다
위고는“시민이곧영웅인근대사회의서사시”《레미제라블》제2부〈코제트〉의첫머리에서,전투의격전지였던우고몽성채를우연히한나그네가지나가다가그근방의농부에게들은것을이야기하는형식을빌려서워털루전투에대해서술하기시작한다.즉,워털루전투의발발에서부터그경과,전장의지형적특징,나폴레옹의과신과실수,신의섭리,프랑스군의반격과패주,마지막저항과패배,나폴레옹신화와정치적유산,이후유럽질서의재편과왕정복고에이르기까지장렬한이야기를펼쳐보인다.
위고는어린시절나폴레옹휘하의장교였던아버지레오폴드위고의임지를따라파리,마드리드,나폴리등지를전전하는등나폴레옹전쟁당시의기억을생생히간직한데다나폴레옹몰락이후프랑스사회의혼란과격변을온몸으로겪은역사의산증인이다.현실참여적인지식인으로서사회와역사에관심이깊은위고는자신의경험과통찰을작품속에녹여내고자했다.1851년나폴레옹의조카로서숙부의인기를등에업은나폴레옹3세가쿠데타로왕정을수립하려하는데,위고는이에반대하다국외로추방되어망명생활을하게된다.
오랜망명생활로불안정한시간을보내던위고는1860년이되어서야다시《레미제라블》의집필에몰두할수있었다.이무렵부터역사적장소와사건과관련된자료들을수집하고연구하여작성한단편적인여담들을소설에삽입했다.워털루전투이야기는은어와수녀원,파리의하수도에관한이야기등과함께《레미제라블》의대표적인여담이다.위고는워털루전투가끝난지46년이지난1861년워털루전투가벌어졌던몽생장고지인근의콜론호텔에서두달간머물면서전적지를꼼꼼히답사하고그곳주민들에게서들은전투당시에대한증언을기록했다.이렇게모은자료를바탕으로워털루전투이야기를써내려갔고이작업을마지막으로《레미제라블》의집필을끝마쳤다.
위고는그가비판했던나폴레옹3세가권력을잡을수있도록위세를더해준,죽고나서도엄청난존재감과카리스마를과시하는숙부나폴레옹보나파르트라는존재자체에관심이있었고,이워털루전투이야기를통해그를재조명하고자했다.젊은시절에나폴레옹을동경하기도했던위고는노년에이르러무르익은,한시대를호령한영웅과그가벌인전쟁에대한자신의생각을이책곳곳에서드러낸다.
“보나파르트가워털루의승리자가되는것,그것은더이상19세기의법칙에는들어맞지않는일이었다.나폴레옹으로서는어쩔수없는일련의사태가이미벌어지고있었다.그에게악의를품은여러사건들이오래전부터예고되고있었던것이다.이원대한포부를품은인간도세력을잃고물러날때가온것이다.”(79쪽)
“그날인류의앞날은바뀌었다.워털루는19세기의돌쩌귀다.위대한시대가도래하기위해서는위대한사람의소멸이필요했다.그누구도항변할수없는어떤존재가그일을맡아준것이다.”(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