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김종생목사는 아픔의 자리, 눈물의 자리, 슬픔의 자리, 상처가 있는 곳을 보면 언제나 그가 먼저 생각납니다. 왜 그럴까 돌이켜보니 고달픈 삶의 현장에 먼저 달려가고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결핍과 상실, 그리고 억울함으로 지치고 힘든 이들 곁에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대전에서 공부방을 시작하고, 복지관을 운영할 때부터 알게 되었으니 어느새 3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에 선발되었을 때 나의 일처럼 기뻐했었는데 그것은 긍휼함을 기본적인 소양으로 갖춘 사람이 교단 디아코니아 정책 책임자가 되어 현장과 정책을 이어가는 다리로서의 적합성 때문였습니다. 이어서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해 방제작업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한국교회봉사단의 사무총장으로 우리 교단을 넘어 교회연합의 귀한 코디네이터라 여겨져 기쁘게 추천을 한 바 있습니다. 한국교회봉사단은 이미 구성되어 활동해 온 교계 사회복지의 협의체인 사)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와 통합하였고, 서해안 방제작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한국교회희망연대와 한국교회봉사단이 다시 하나되는데 그 실무적인 역할을 은혜롭게 감당해 왔습니다. 당시 교회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를 배경으로 디아코니아 사역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훈련을 해왔습니다. 교계 사회복지 현장을 한데 모으고 현주소를 점검하면서 한국교회 사회복지 방향을 함께 고민해 가는 사회복지엑스포 실무 총괄의 책임을 소리 없이 조정해가는데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서해안의 자원봉사로 기독교 자원봉사는 물론 종교계 전체 나아가 일반 자원봉사 영역에까지 관계와 사역을 확장해 가는데 균형잡힌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서해안 자원봉사 연합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 아이티 지진발생시 한국교회가 연대하고 연합하는 원탁회의는 참으로 의미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역사이래 가장 많은 관심과 모금을 해온 아이티 지진 구호를 위해 〈한국교회아이티연합〉을 조직하고 책임성 있게 수행했습니다.
아픔의 현장에 먼저 달려가는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소금처럼 녹으면서 한국교회를 하나되게 만드는 귀한 겸손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서해안 방제작업의 구호로 사용한 〈섬기면서 하나되고 하나되어 섬기자〉는 사회의 아픔을 연대로 승화한 쾌거의 슬로건였습니다. 개별 교회와 교단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한국교회와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므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게하고, 한국교회의 유익을 도모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는 사역 건물이 〈소금의 집〉이듯이 자신을 녹여 한국교회의 필요한 도구가 되고 작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희망의 산실이 되길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우리 교회와 사회의 그늘진 현장을 찾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 곁에서 위로하고 격려하여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지식은 말하려 하고 지혜는 들으려 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인 우리 교회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해 왔다. 신학과 전통에 따른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교회의 연대와 협력을 이루어 왔다. 다양한 이들이 일치를 추구 함에 있어 ‘소통이 잘 안되는 이유는 내 생각이 옳다거나 내 방식대로 결론 내거나 상대방의 말을 자르기 때문’이라며 ‘경청과 공감은 신뢰를 부르는 소통의 비밀’이라고 ‘폴 투르니에’는 강조한다.
경청(傾聽)의 한자 풀이가 재미있다. 聽은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 마치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듣고, 열 개의 눈으로 관찰하며 온전히 한마음으로 몰입해 들으라는 뜻이다.傾은 기울일 경으로 듣는 자세를 뜻하는데 상대에게 기울여 듣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몸을 기울이고 귀를 쫑긋 세워 온몸으로 들으라는 것이다. ‘의사소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인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제3의 귀로 듣는 것’이라고 한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은 온몸이 귀였다!’고 표현한다. 주님은 사람들의 소리를 온몸으로 들으시고,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듣는 것이 보는 것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듣는 것이 결정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은 지혜를 구한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구했다. “누가 주의 이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여기 ‘듣는 마음’의 원문에는 가까이 가서, 자세하게, 이해되기까지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듣는 마음으로 백성에게 다가가 그들의 입장을 들으려 한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넓은 마음을 주시되 지혜와 총명을 얹어 주셨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왕상 4:29) 솔로몬의 위대한 지혜는 경청에서 나오는 비결임을 알 수 있다. 자주 듣고, 많이 듣고, 잘 듣는 데서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자의 태도는 들음이고, 들음을 통해 지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이다. 지식은 글과 말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글과 말을 통해 배울 수 없다. 지식과 달리 지혜는 몸으로 체득해야 생긴다. 지식이 없으면 무식하다고 하고, 지혜가 없으면 어리석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1981년 12월 27일 마지막 주일 청량리중앙교회 임택진 목사님 은퇴식이 있었다. 23년간 충성스럽게 목회하시고 은퇴하시면서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눅 17:9,10) 성경을 읽으시고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1분도 안되는 짧은 은퇴사를 인용하며 임목사님을 존경하고 있다. 짧지만 긴 울림은 우리 가슴에 오랫동안 남는다.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 어느 날 기자가 물었다. ‘수녀님은 매일 기도를 오래 하신다고 들었는데 기도할 때 주로 어떤 말씀을 하세요?’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전 그저 듣기만 해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나요?’ 그러자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분도 듣기만 해요’ 테레사 수녀의 이 말을 통해서 ‘들음’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능력인가를 알게 된다. ‘들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요한 매개 통로다. 성경에는 하늘의 소리를 들은 이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교회는 서로 다른 이들이 다양하게 모여 일치와 연합을 도모해야 하는 곳이다. 일치와 연합의 길은 서로 존중하면서 상대의 입장과 주장을 경청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먼저 겸손하게 듣는 일이다.
대전에서 공부방을 시작하고, 복지관을 운영할 때부터 알게 되었으니 어느새 3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에 선발되었을 때 나의 일처럼 기뻐했었는데 그것은 긍휼함을 기본적인 소양으로 갖춘 사람이 교단 디아코니아 정책 책임자가 되어 현장과 정책을 이어가는 다리로서의 적합성 때문였습니다. 이어서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해 방제작업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한국교회봉사단의 사무총장으로 우리 교단을 넘어 교회연합의 귀한 코디네이터라 여겨져 기쁘게 추천을 한 바 있습니다. 한국교회봉사단은 이미 구성되어 활동해 온 교계 사회복지의 협의체인 사)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와 통합하였고, 서해안 방제작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한국교회희망연대와 한국교회봉사단이 다시 하나되는데 그 실무적인 역할을 은혜롭게 감당해 왔습니다. 당시 교회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를 배경으로 디아코니아 사역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훈련을 해왔습니다. 교계 사회복지 현장을 한데 모으고 현주소를 점검하면서 한국교회 사회복지 방향을 함께 고민해 가는 사회복지엑스포 실무 총괄의 책임을 소리 없이 조정해가는데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서해안의 자원봉사로 기독교 자원봉사는 물론 종교계 전체 나아가 일반 자원봉사 영역에까지 관계와 사역을 확장해 가는데 균형잡힌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서해안 자원봉사 연합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 아이티 지진발생시 한국교회가 연대하고 연합하는 원탁회의는 참으로 의미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역사이래 가장 많은 관심과 모금을 해온 아이티 지진 구호를 위해 〈한국교회아이티연합〉을 조직하고 책임성 있게 수행했습니다.
아픔의 현장에 먼저 달려가는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소금처럼 녹으면서 한국교회를 하나되게 만드는 귀한 겸손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서해안 방제작업의 구호로 사용한 〈섬기면서 하나되고 하나되어 섬기자〉는 사회의 아픔을 연대로 승화한 쾌거의 슬로건였습니다. 개별 교회와 교단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한국교회와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므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게하고, 한국교회의 유익을 도모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는 사역 건물이 〈소금의 집〉이듯이 자신을 녹여 한국교회의 필요한 도구가 되고 작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희망의 산실이 되길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우리 교회와 사회의 그늘진 현장을 찾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 곁에서 위로하고 격려하여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지식은 말하려 하고 지혜는 들으려 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인 우리 교회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해 왔다. 신학과 전통에 따른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교회의 연대와 협력을 이루어 왔다. 다양한 이들이 일치를 추구 함에 있어 ‘소통이 잘 안되는 이유는 내 생각이 옳다거나 내 방식대로 결론 내거나 상대방의 말을 자르기 때문’이라며 ‘경청과 공감은 신뢰를 부르는 소통의 비밀’이라고 ‘폴 투르니에’는 강조한다.
경청(傾聽)의 한자 풀이가 재미있다. 聽은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 마치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듣고, 열 개의 눈으로 관찰하며 온전히 한마음으로 몰입해 들으라는 뜻이다.傾은 기울일 경으로 듣는 자세를 뜻하는데 상대에게 기울여 듣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몸을 기울이고 귀를 쫑긋 세워 온몸으로 들으라는 것이다. ‘의사소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인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제3의 귀로 듣는 것’이라고 한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은 온몸이 귀였다!’고 표현한다. 주님은 사람들의 소리를 온몸으로 들으시고,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듣는 것이 보는 것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듣는 것이 결정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은 지혜를 구한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구했다. “누가 주의 이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여기 ‘듣는 마음’의 원문에는 가까이 가서, 자세하게, 이해되기까지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듣는 마음으로 백성에게 다가가 그들의 입장을 들으려 한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넓은 마음을 주시되 지혜와 총명을 얹어 주셨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왕상 4:29) 솔로몬의 위대한 지혜는 경청에서 나오는 비결임을 알 수 있다. 자주 듣고, 많이 듣고, 잘 듣는 데서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자의 태도는 들음이고, 들음을 통해 지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이다. 지식은 글과 말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글과 말을 통해 배울 수 없다. 지식과 달리 지혜는 몸으로 체득해야 생긴다. 지식이 없으면 무식하다고 하고, 지혜가 없으면 어리석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1981년 12월 27일 마지막 주일 청량리중앙교회 임택진 목사님 은퇴식이 있었다. 23년간 충성스럽게 목회하시고 은퇴하시면서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눅 17:9,10) 성경을 읽으시고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1분도 안되는 짧은 은퇴사를 인용하며 임목사님을 존경하고 있다. 짧지만 긴 울림은 우리 가슴에 오랫동안 남는다.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 어느 날 기자가 물었다. ‘수녀님은 매일 기도를 오래 하신다고 들었는데 기도할 때 주로 어떤 말씀을 하세요?’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전 그저 듣기만 해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나요?’ 그러자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분도 듣기만 해요’ 테레사 수녀의 이 말을 통해서 ‘들음’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능력인가를 알게 된다. ‘들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요한 매개 통로다. 성경에는 하늘의 소리를 들은 이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교회는 서로 다른 이들이 다양하게 모여 일치와 연합을 도모해야 하는 곳이다. 일치와 연합의 길은 서로 존중하면서 상대의 입장과 주장을 경청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먼저 겸손하게 듣는 일이다.
봉사를 통한 교회의 연합과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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