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트딜러다 : 작품 너머 삶의 본질을 들여다본,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위대한 조력자

나는, 아트딜러다 : 작품 너머 삶의 본질을 들여다본,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위대한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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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양수

저자 : 김양수
50년 넘게 한국 미술 시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1세대 화상(畵商)이자 갤러리스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붓을 잡는 대신 숨은 예술을 발굴하고 세상에 알리는 길을 선택했다. 1984년 서울 동숭동에 ‘두손갤러리’를 개관한 뒤, 빼어난 안목과 과감한 기획력으로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이우환, 박서보 등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주도했고 로버트 라우션버그, 프랭크 스텔라,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했다.
1992년에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의 ‘비디오 때·비디오 땅’ 전시를 성사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듬해 미국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그는 맨해튼 소호에서 대안 공간 스페이스 언타이틀드(Space Untitled)를 운영하며 백남준을 비롯한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했고, NYCMA(New York Center for Media Art)를 통해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2008년 귀국한 뒤에는 서울에서 예술문화전문기획사 인터아트채널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시를 기획하는 한편, 전통문화의 가치를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에도 힘을 기울였다. 2017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간다라 미술전’, 2023년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해외 디자이너들과 한국의 나전 장인들이 협업한 ‘자개 테이블전’은 이러한 관심이 구체화된 사례다. 미술과 공예, 디자인을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닌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접점으로 바라보며 활동 범위를 확장해 왔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김양수의 행보를 관통하는 것은 익숙한 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아직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예술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태도다. 고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서울에서 뉴욕으로, 다시 전통 공예와 동시대 디자인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발굴하고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를 연결해 온 인물이다.

목차

1장 꿈을 꾼다
케데헌의 고향, 답십리에서
꿈 사냥꾼 | 옛것의 시장에서 도심형 박물관으로 | 유물에 볕 쪼이기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로 치유되는 세상
그날 이후의 뉴욕 맨해튼 | 상처를 응시하는 오스카 와일드 | 한류로 풀어내는 진혼제

2장 나는, 아트딜러다
청계천 탐험가
부전자전 | 운명의 갈림길 | 보물과 꾼들의 세계 | 불화에 중독되다 | 뜻밖의 장물아비 | 상인의 손을 떠나야 국보가 된다
박수근 원정대
그림은 시절 따라 흐른다 | 시대의 아이콘, 이중섭 | 박수근의 진짜 가치를 매기다 | 해외 탐정을 동원한 그림 찾기 | 어쩌면 위작이었을지도
첫 번째 버킷리스트: 단 두 작품으로 이루는 완벽한 전시
한없는 고독, 고단한 삶 | 첫눈에 빠지다 | 권진규와 자코메티
두손갤러리, 내가 쓰는 한국 현대 미술사
가장 눈부신 시절 | 장욱진 작품 구출 작전 | 한국 현대미술과의 동행
세계 미술 시장과의 조우
미술품 수입 불가 시절 | 세상을 바꾼 아트딜러, 레오 카스텔리 | 일본 시장과 데이비드 호크니 | 국내에 트랜스아방가르드를 선보이다 | 비싸다고 좋은 작품은 아니다

3장 영광에서 몰락까지
두 번째 버킷리스트: 삼족오의 부활
발단 | 무장 해제 | 작전 수립 | 작전 개시 | 퇴각 | 논공행상 | 아! 고구려… | 후일담
유배
의식주를 예술로 | 승승장구를 거듭하다 | 과욕이 부른 화 | 뉴욕으로의 유배
다시 일어서다
콘크리트 정글 | 새로운 첫걸음 | 생업에서 발견한 기회 | 뉴욕 최고의 명소 | 쇼는 계속된다 | 막을 내린 질곡의 세월 | 데이미언 허스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얻은 최고 전리품 | 아트딜러의 숙명
외계인 백남준
날카로운 첫 경험의 추억 | 천재라는 말로는 부족한 예술가 | 너무 완벽하면 신도 화를 낸다 | 11932년에 만일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나는 10만 살이 될 것이다
세 번째 버킷리스트: 홀로 지키는 약속
문제적 작가와의 첫 만남 | 충격받아야 할 것은 사진이 아닌 현실 | 세 번의 만남 | 오래된 약속

4장 도전의 역사
귀향
인생 3막을 위한 정리 | 변질된 뉴욕 미술계 | 동양 시대의 서막 | 쿠사마 야요이를 놓친 한국 미술 시장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 미술
푸른 물결을 담은 작가, 심문섭 | 아트퍼니처와 최병훈 | 한국의 혼을 한지에 담아내는 전광영 | 조력의 희열
멘디니와 청자

5장 현재 진행형
한국 미술의 서사네 번째 버킷리스트: 고려를 위하여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최고의 방법
세계에 선보인 우리 고미술품 | 자승자박이 된 문화재보호법

나오며: AI 세상, 도깨비가 산다
인연 | 까치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출판사 서평

예술에 위로받고, 예술로 충만해지는 삶을 꿈꾸는
아트딜러가 이어 준 작가의 세상

우리는 갤러리에서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볼 때 그림 너머로 작가를 그려 본다. 감상하는 동안에는 그림과 나, 작가만 존재하지만 종종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을 때도 있다. 이 정도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그림의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등장인물이 하나 더 있다. 아트딜러는 작가의 손에서 그림을 우리의 눈앞에 가져다 놓는 역할을 한다. 작가에게 작품을 구매해 갤러리나 수집가에게 판매함으로써 예술과 시장을 연결한다. 아트딜러가 그림을 구매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뛰어난 그림이라도 화실 벽에 걸려 있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비단 작품 판매나 작가 발굴만이 아니라 그림값을 통해 화가의 입지를 뒤바꿔 놓기도 하고, 판매를 위해 온갖 곳의 문을 두드리며 홍보에 열을 쏟기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인물임에도 우리에게 낯선 이유는 중개인이라는 특성상 그림자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아트딜러라는 역할과 사명감, 역량을 모두 보여 주는 인물이 『나는, 아트딜러다』의 저자다.
그는 해외 미술품이 금수품이던 1980년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아트딜러 레오 카스텔리의 큐레이팅으로 해외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는 한국 최초로 개인 화랑이 해외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전시한 사건이었다. 작품을 유치할 때 수출권을 보장받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1990년대에는 해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를 그대로 국내에 유치하기도 했다. 기획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기획을 진두지휘하지 않고 해외 갤러리와 협업하는 진일보한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참신한 시도는 다음 행보로도 이어졌다. 국내 전시회에서 소개한 작가를 데리고 일본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이다. 한국 갤러리가 일본에서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일은 국경을 무력화시킨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 외에도 소더비와 신경전을 벌이며 아트퍼니처를 체급이 낮은 디자인이 아닌 순수예술 카테고리에 넣어 최병훈 작가의 위상을 높이거나,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지 작가’로 알려진 전광영의 전시를 열어 세계적인 작가로 나아가는 데 구름판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는 아트딜러의 역할을 예술 작품에만 한정 짓지 않았다. ‘아! 고구려… 1,500년 전 집안 고분벽화전’ 때는 일을 착수할 때부터 발 벗고 나서 뛰었으나 고구려의 역사를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전시회 직전에 수익을 포기한 채 명예만 누렸다. 우리 역사에 대한 열정은 20년이 지난 2015년에도 이어져 한 달 동안 북한 개성을 오가며 고생한 끝에 ‘광복 70년 남북 공동 발굴 개성 만월대 특별전’ 개최를 성공시켰다. 최근에는 고미술품에 집중해 고미술품 분야에서는 유럽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트 페어 ‘테파프 마스트리흐트 2025’에 한국의 고미술품을 데뷔시켰다. 이러한 성취는 상인으로서의 현실적인 감각과 예술가가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한다는 직업적인 소명감에 더해 예술에 관한 확고한 신조가 더해진 결과다.

한 사람의 삶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 미술의 지도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선수가 아닌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로 결심한 후부터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고미술상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국보와 보물 10점을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를 세운 그는 공부의 일환으로 경기도 광주의 가마터 일대를 뒤지고 다니다 주민 신고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고,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장물을 구매하다 문화재 단속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집념은 결국 국보 제275호 〈도기기마인물형뿔잔〉과 보물 제59호 〈백자청화매조죽문병〉을 손에 넣음으로써 보답받는다. 1970년대 중반, 작은 화랑을 연 그는 이중섭에 비해 한참이나 저평가된 박수근의 진가를 알아본 뒤 국민 화가로서의 제자리를 찾아 주기로 결심한다. 작품을 시장에 유통하면서 가격을 올리거나, 해외에 팔린 작품들을 사들이는 노력 끝에 박수근의 그림값은 수백 배가 오르면서 제값을 받는다. 1984년에 두손갤러리를 개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그는 장욱진조차 무관심했던 화실 벽의 작품을 통째로 떼 내 전시하거나 무작정 데이비드 호크니를 찾아가 작품을 구매하고, 당대 해외에서 열풍이 일었던 트랜스아방가르드를 국내에 선보이는 등 성공을 거듭한다.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야심에서 시작한 건설과 인테리어, 디자인, 의류, 식음료 분야 사업도 순풍에 돛 단 듯하다가 어느 날 정치적인 사건과 맞물려 갑작스럽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루아침에 뉴욕으로 쫓겨난 그는 카페를 차리며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지만 형편이 나아지자마자 카페 한편에 백남준을 비롯한 유명 작가의 전시를 여는 등 이내 목숨과도 같은 아트딜러의 생활을 다시 영위한다. 20년간의 뉴욕 생활을 마친 뒤 귀국한 그는 인생 3막을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매진한다. 조각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심문섭의 평면 작업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하고, 유명한 알레시의 코르크스크루 안나 G를 만든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찾아가 고려 문화의 정수인 청자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제안한다.
미술상, 후원자, 문화재 지킴이, 한국 근현대 미술의 개척자 등 저자가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다양한 옷을 입은 것처럼 이야기도 장르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박수근이나 권진규, 백남준 등 거장을 언급할 때는 미술서가 되었다가 장물을 사고판 일, 중국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촬영한 일을 들려줄 때는 모험 소설을 읽는 듯하다. 성공한 사업가에서 부도를 맞고 뉴욕으로 도망쳐 생활하는 부분에서는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내용의 회고록이 된다. 다양한 줄거리가 이것저것 얽힌 만큼이나 책을 읽고 나면 그림과 작가, 시대와 미술 시장, 예술 전반에 대한 시야가 한층 더 넓어져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답십리에 가면 세월이 있다. 시대가 있고, 세상이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의 첫 단추, 고미술품의 세계로 돌아가리라는 오래된 원을 품고 살았는데 드디어 착수를 했다. 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존재하는 세월은 박물관에 갇힌 예술품과는 다르다. 답십리에는 오늘의 삶 속으로 들어와 내일로 이어질 수 있는 과거의 강인한 생명력이 완연하다. 나는 이 살가운 역사의 텃밭에 우리의 미래를 심으려 한다. 아마도 꿈 사냥꾼 인생의 피날레가 될 것이다.
1장 ‘꿈을 꾼다’에서

〈손〉을 처음 본 순간부터 권진규를 흠모했다. 나는 당시에도, 지금도, 한국 근대미술의 최고봉은 단연코 권진규라고 확신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를 너무 늦게 알았다는 사실이다. 진작 알았더라면 어렵잖게 인연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 그랬다면 나는 그의 예술 세계에 더욱 깊게 빠져들 수 있었을 것이다. 지척에 있었던 천재를 홀연히 떠나보냈다는 사실에 뒤늦게 망연자실했다.
2장 ‘나는, 아트딜러다’에서

〈동물가족〉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작가의 일상이 녹아 있는 공간에 무심코 그려진 벽화라는 점에서 대단히 이례적이고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예술가의 생의 흔적이 화랑의 개입으로 작품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도 보기 드문 전시 성과였다. 어렵사리 얻은 작품이지만 화랑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보람에 넘치게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작품이란 과연 무엇인지, 화랑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귀한 경험이었다.
2장 ‘나는, 아트딜러다’에서

화가의 길을 접고 상인으로 나섰을 때,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종착역은 명예였다. 내 역할은 명확하게 페이스메이커였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를 자처했다. 나 역시 성장해, 작가들이 나를 믿고 마음껏 질주할 수 있도록 뒤를 든든하게 받치는 태산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작가가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선도자로 우뚝 섰을 때, 그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악수를 청하는 그런 파트너가 되고 싶었다. 내 수고에 대해 몰라 줘도 상관없었다. 작은 역할이라도 나는 꼭 필요한 부속이었다는 자긍심이면 족했다.
3장 ‘영광에서 몰락까지’에서

예술은 일상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그러므로 예술은 관람의 대상이나 추앙의 대상이 아니라 즐기며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예술품은 놓인 환경과 어우러져야 하고, 전체적인 흐름으로 사람을 감싸안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매 순간 위로받을 수 있고 치유될 수 있다. 그렇게 예술이 삶에 흡수되면, 삶은 비로소 스스로 예술로 승화할 것이다.
3장 ‘영광에서 몰락까지’에서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 입구 벽에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작품 두 개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가격은 개당 5만 달러면 충분했다. 이 계획을 백남준에게 말했더니 자신이 만들어 주겠다며 차이나타운에 가서 5만 달러짜리 목각 봉황 한 마리를 사 오라고 했다. 꼼짝 못 하는 후배는 군소리 없이 봉황을 대령했다. (…) 1997년, 작품이 완성됐다. 문 양쪽으로 새장을 세우고 그 안에는 인디언과 동서양의 모습이 재생되는 스물한 개의 모니터를 무질서하게 놓았다. 새장에 갇힌 모니터처럼 기술이 제멋대로 활개 치지 못 하게 잡아 가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루이즈 부르주아를 고집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고 안도했다. 그때 내가 구매하려고 했던 거미의 가격은 현재 100배가 올라 500만 달러가 되었고, 백남준의 출입구 작품은 설치 비용이 15만 달러였는데 매각 비용도 15만 달러였다는 반전이 있지만 말이다.
3장 ‘영광에서 몰락까지’에서

두손갤러리는 하이엔드 마켓의 정점에 있었다. 정석대로 좋은 작품을 엄선해 마땅한 가격에 파는 게 주업이었다. 마케팅도 있었고, 작품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코멘트도 했었다. 하지만 맹세코 주객을 전도시키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둔갑시키는 짓은 못했다. 내 눈에 최상인 작품만 엄선했고, 그래서 비쌌다. 한국 시장이 감당 못 하는 작품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처리했다. 작품 하나로 갤러리 1년 운영비가 충당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