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세상의자료들을바라보는교사의시선
이책은2019년한국교원대학교에서필자가담당하였던‘문화콘텐츠교육론’이란대학원수업의강의노트와그동안읽어왔던독서의결과물이다.언제나귓가를맴도는땅밑에흐르는이상한물소리,헨리소로우가들었다던북소리를나도들어,나는가만히있을수없어,글을쓰고,학생들을이해하려애쓰고,그과정에서쌓인조그만지식이나마나누려한다.
세상에가득찬동영상이나책,작품을교육자료로활용할때어떤주제들이중요한가를고민해보면서나는‘회복탄력성’과‘의사소통능력’과‘신자유주의’라는세가지개념에주목하였다.우리에게는수업시간에교육자료들로활용할수있는다양한문화콘텐츠들이주변에널려있다.세상의콘텐츠들은교사에게는잠시나마아이들을집중하게할수있는훌륭한교육자료이다.그자료들을선별할때교사에게는‘무엇이중요하고가치가있는지’를볼수있는안목이필요하다.우리가가르치는아이들을생각해보자.오늘날,우리아이들에게다급하게필요한것은무엇일까?
전쟁의폐허를딛고눈부신경제발전을이루어낸대한민국에서는예전과같은절대빈곤이나기아의시대는끝나가고있는지모른다.그러나2019년,우리의인간성과영혼에관해살펴보자면,현대의시대는어른들이나아이들에게우호적인환경은아니다.과학과기술의급속한발전에걸맞는적절한윤리를준비하지못하였고,돈과사적이익만중요시하는신자유주의경제체제,약육강식의사회속에서파울페르하에허의말처럼우리는‘역사상가장기분나쁜’사이코패스가되어가고있는지모른다.
자기자신도추스르기힘들고가치관이혼란스럽고,여러가지경제난과관계의어려움에처해있는부모들밑에서우리아이들이자라고있다.예전처럼부모의부족함을어느정도보상해주었던할머니할아버지와의친밀한관계나다른친인척들간의교류는거의사라져간다.도시의놀이터에는놀친구가없고,유튜브나인터넷에는규제되지않은선정물과폭력게임등이넘쳐난다.
우리는우리의몸을편하게해주고,무한한정보에의접속과통신을가능하게하는첨단기술환경들과물질적풍요속에서살면서오히려예전보다덜행복해하며,점점더돈을‘신’으로삼고,고립되어가며,인간성은황폐해가는징후를보인다.이런세상과어른들을닮으면서우리아이들은매순간병들어가고있다.일찍이이오덕선생님이말씀하신것처럼‘아이들을살려야한다’를매일매일가슴에새겨야그망가지는속도라도늦출수있는시점인지모른다.이런생각으로부터문화콘텐츠자료들을선택할때교사들이주목해야할주제들은무엇일까하는고민에서이책은시작되었다.이책에서다룬‘회복탄력성,소통,신자유주의’는우리아이들이자라나는시대적환경에서특히중요하고다급해보이기까지한주제들이다.
‘의사소통능력’은필자의오랜관심사이지만‘회복탄력성’과‘신자유주의’라는주제는사실심리학이나경제학에걸친광범위한주제이며이것에대해말한다는것은필자의능력을벗어난다.그러나교육현장에서만나는학생들을관찰하고,내아이를관찰하고,초중고선생님들과이야기를나누어본결과,이주제들에대해서정리해보는것이우리교사들에게반드시필요하다는확신을하게되었다.더불어이개념들이인터넷에서수많은동영상자료등의교육자료들을선별할때,교과및비교과목을지도할때,뭔가방향성을줄수있으리라는기대가생겼다.
그때만해도나는책을잘읽지못했다.동급생들은글자를어떻게발음하는지알기시작했는데도나만은그걸따라가지못했다.나는글자를읽는법도,발음하는법도알지못했다.나는같은반의아이들과진도를맞출수없었다.
다른반이었다면내게는멍청하다거나늦되거나지진아라는딱지가붙었을것이다.그러니까내가자라던1950년대와1960년대만하더라도아이의성장과정을판단하는용어는두가지뿐이었다.‘영리하다’는게하나라면‘멍청하다’는게다른하나였다.나는읽는속도가너무느렸기때문에멍청하다는판단이내려졌다.그결과나는교실한쪽에서서조롱을받을수도있었고,남들보다더열심히공부하지않는다면완전히잊혀진존재가될것이라는말을들을수도있었다.그당시케이프코드같은작은마을의공립학교에서는영리하다거나멍청하다,혹은착하다거나나쁘다는판단이외의판단을아이에게내릴수있는사람이많지않았다.영리하지않다면멍청한것이라고믿는사람들이내릴수있는일반적인처방이란부끄러움과상처와굴욕감을심어주는것뿐이었다.나와같은시절에어린시절을보낸사람들에게부끄러움과상처와굴욕감이라는,그잊을수없는교육방법에정통한선생님을만나기란그다지어려운일이아니었다.
하지만엘드릿지선생님은아이들에게부끄러움을심어주는분이아니었다.엘드릿지선생님은자상한분이셨다.내가기억하는선생님은연세가지긋하셨고매우둥글둥글한분이셨다.선생님은모든면에서둥글둥글하셨다.얼굴생김새며뺨이며몸집까지.심지어입고계신드레스에까지둥근모양의빨간사과가그려져있었다.상당히오랫동안1학년담임을맡아왔다는사실을제외하면선생님은읽기를제대로하지못하는학생을가르치는데필요한체계적인교육을받은적이없으셨다.
선생님의교수법이란간단했다.읽기시간동안선생님은내옆에앉아크고부드러운팔을내어깨에두르고글자를해독하려고끙끙대던나를꼭안아주셨다.나는읽기를제대로못했기때문에말을더듬거리곤했다.하지만그런나를보고웃는아이는없었다.왜냐하면내옆에마피아처럼힘이센분이앉아계셨기때문이다.
엘드릿지선생님의팔,그게나를가르치는‘교수법’이었다.엘드릿지선생님에게내가받은것이라고는그게전부였지만그것이면모든게충분했다.공부를잘못하더라도아무런문제가되지않는다는사실을내게가르쳐주셨다.나정도의두뇌면모든게가능하다는사실을내게가르쳐주셨다.내머리를좀더좋은것으로이식해주거나난독증을치유해주지는못하셨지만,선생님은선생님만이할수있는일,그러니까그게창피한일이아니라는깨달음을내게주셨다.선생님의방법은너무나훌륭해서그이후로나는읽기시간을손꼽아기다리게됐다.엘드릿지선생님을영원히잊지못할것이다.여전히나는내어깨를감싸안은선생님의팔을느낄수있다.고등학교,대학교,의과대학,전문의과정등을거쳐작가와강사,심리치료사로활동하는동안에도내내느낄수있었다.그느낌만은영원히나를감싸고있다.십여년전,박사논문을쓰느라프랑스어읽기교육에대해서연구하고있던무렵나는우연히이글을읽게되었다.그이후로교육자로서지칠때나,나와동료들의연구주제들은도무지세상이나아이들을바꿀만한힘이없는것처럼느껴질때이글을떠올린다.위글을쓴에드워드할로웰은삶에서만난좋은선생님들과친구들을‘삶의든든한구명조끼’라고말하며‘세상의모든선생님들’에게경의를바친다.그는역기능가정에서자라났으나지금은세계적으로알려진정신과전문의이며베스트셀러작가가된사람이다.그의친아버지는조울증환자였고,양아버지는알콜중독에걸핏하면폭력을휘두르는사람이었고친어머니까지결국엔알콜중독증환자가되었으며,친형역시정신질환을앓는사람이었다.본인역시난독증과주의력부족장애라는학습장애까지가지고있었다.그러나할로웰은‘삶의구명조끼’가되어주었던주변의친척들,친구들,선생님들을만난행운으로의사가되었고작가가되었고무엇보다행복한사람이되었다.
10여년전,내가대단한지식은없을지라도적어도따뜻한팔로안아주며아이들옆에앉아있어주는교사는될수있지않겠느냐고스스로에게말을걸며나는공부를포기하고싶은시간들을버텨냈었다.할로웰의글에서처럼교사가내미는따뜻한손,눈빛,말한마디는어떤아이들에게는처음으로받아본따뜻한손,눈빛,말한마디일수도있다.이책은화려한첨단미디어수업도구들도사용할줄모르고과학적인읽기교수법도잘몰랐으나글자를모르는아이를따뜻한팔로안아주면서글자를가르치기시작한할로웰의엘드릿지선생님같은선생님들을그리워하며찾아나서며내가세상에띄우는종이편지이다.이종이편지속에서나는어빈얄롬의말처럼“누군가에게방향제시와위로를줄수있는나의어떤아이디어들이전달되기를”바란다.또한“그것이작은물결로퍼져나가서예측할수없는방법으로내가알지못하는사람들에게전달되기를”기도한다.
이책이나오기까지특별히감사하고싶은분들이있다.
우선작품을이책의표지그림으로사용하도록허락해주신한국교원대학교미술교육과의최철교수님께감사드린다.최철교수님은‘새롭게쓰고그리고기억하기’라는그분의카카오톡아이디처럼다양한실험정신으로작품을하고계시는저명한서양화가이시다.어려운선배교수님이자전시회와작품활동을하시느라바쁘신화가에게막무가내로조르며,‘책표지그림으로쓸예쁜그림하나’를달라고좇아다닌철없는후배교수의청을기꺼이받아주신그마음에감사드린다.
두번째로이책의본문그림들을그려준미술학도인윤수현양에게고마움을전한다.책의내용들이좀더이미지로기억되고잘전달되기를바라는마음에서나는그녀에게소통의순간들과회복탄력성의이미지들,신자유주의시대의황폐함과같은핵심내용들을설명하면서그림들을요청하게되었다.나는그녀에게요즘유행하는일러스트레이션이나아이패드로그린그림이아닌,어떤화려한기교도없이옛날국어교과서에나오는그림처럼그려달라고부탁하였다.꼬마일때부터미술을좋아해서미술학원에다니고,예고를다니고미대를준비하면서수없이그림을그리면서성장한순수한미술학도의땀과정성이들어간그림들로이책의메시지를전하고싶었다.현대미술의조류와는전혀상관없는이책의‘정직한’그림들을정성껏그려준수현양이앞으로자신만의작품세계를펼치는화가로서잘성장해나가길진심으로기원한다.
다음으로도서출판대장간의배용하대표님께감사드리고싶다.필자의까다로운편집요구들을다들어주시고,시간을낼수없어늘갑작스럽게약속을잡으며편집과교정작업을진행하였음에도언제나이해하고배려해주셨기에이작업을마칠수있었다.배용하대표님은시골에서농사를짓고,책을만들면서,하나님과이웃을섬기는귀한사역자이다.배대표님의사모님이신박민서자매님은불쑥찾아와서가을농사를방해하는나에게늘뜨끈뜨끈한밥상을차려주셨는데,이책의어딘가에는그‘밥심’이담겨있으리라.
마지막으로이영주대표에게감사하고싶다.그는‘세상의엄마들이자기아이만돌보면엄마없는아이들은누가돌보는가’라는궤변을늘어놓으며학교일에빠져사는나를대신하여딸과아들을돌보고,세상사는기술면에서는아이들보다나을게없는나조차20년이넘는시간동안돌보고있다.그의선함,그의변치않는유머가고마워서나는때로말을잃는다.
요즘가끔애국심이넘치는사람도아닌내가머릿속에서대한민국의지도를떠올린다.내머리속지도에는삼천리화려강산무궁화들이피어있지는않다.다만저남도의진해에는빵을좋아하고목소리카랑카랑한양인선선생님이,창원에는여리하고온화한박선후선생님이,그위울산에는아이들의말을지극한눈빛으로언제나들어주시는박진경선생님이,충청도시골에는아이들의머리를빗겨주며단정하게머리좀묶자고고집센여자어린이를꼬시는최하니선생님이,저기전주에는‘중2들’담임하느라늘하루가전투라면서도아이들이너무예쁘다는임해인선생님이,서울의큰학교에서는수업준비로늦게까지퇴근을못하시는정다연선생님이무궁화보다아름다운꽃으로피어있다.2018년과2019년대학원수업에서만나,언제나쉬지않고배움으로써더좋은교사가되기위해책과씨름하였던조윤미선생님,강수희선생님,엄주희선생님,김서연선생님,정애리선생님,이은주선생님,서현주선생님….내가슴한구석을차지하게될이땅의선생님들은늘어만간다.이책은그들과의만남을준비하고,만나서진한이야기를나누고,이제는헤어져서추억하는시간동안시작되고완성되었다.어려운여건속에서도교직을하늘의소명으로알고,자신도아프면서,아이들을위해사시는이땅의선생님들에게이책을바친다.
2019.가을.
정우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