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토마토와 불가능한 토요일 (김도언 시집)

가능한 토마토와 불가능한 토요일 (김도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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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삶의 단면을 통해 보여주는 ‘당신들이 아는’ 인간의 삶
소설가이자 시인, 경계를 벗어나 장르가 된 김도언.
한국 문단에서,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는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로 활동한 김도언은 계간 〈시인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한 후, 첫 시집 『권태주의자』를 내놓으면서 시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시집에서 김도언은 자신이 ‘권태주의자’라고 주장했지만, 소설과 시를 계속 내놓는 것을 보면 권태주의자라기보다 “허무를 정확히 기록하려는 서기”에 가깝다. 김도언의 언어는 낯설고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메타포를 품고 있다. 전 지구적 삶의 단면을 통해 인간의 삶을 적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문장으로 소설과 시의 경계를 벗어난 김도언만의 개성적인 장르를 만들고 있다.

첫 시집 『권태주의자』가 ‘기록되지 않을 시인의 뒷모습’이었다면 이번 두 번째 시집『가능한 토마토와 불가능한 토요일』은 ‘당신들이 아는 얼굴’이다. 얼굴은 옆으로 보일 때 가장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옆모습으로, 모든 신체는 생략된 곳 없이 온전히 표현되어 있다. 이런 표현법을 예술의 특징에서, 정면성(正面性, frontality)이라 말한다. 보이는 대로가 아닌 ‘아는 대로’ 표현한 방식, 각자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을 선택적으로 표현하여 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얼굴은 얼굴, 다리는 다리, 팔은 팔. 시인에게 있어, 사람은 그냥 사람, 못생긴 사람 이쁜 사람 구별이 아닌, 그냥 본질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김도언의 시는 어긋난 존재와 시간에 각별한 경외심을 갖는다. 그곳은 이미 되어버린 세계이고 합리적 희망이나 윤리적 재생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국외자를 자처한 시인은 그들이 품고 견디는 비애의 항목들을 살피고 내밀한 발성으로 그 하나하나에 거룩함을 부여한다. 예민한 촉과 순도 높은 자의식으로 안팎의 관여와 저의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그의 시는 환멸과 열망이 교차하는 양면모순의 천재성을 발휘한다.” -정병근(시인)
저자

김도언

충청남도내륙에서1972년태어나버렸다.중2때재미삼아쓴소설네다섯편을친구가읽고읽을만하다고말해주었는데그게내삶을스스로오독하는돌이킬수없는계기가되었다.전역후,내가읽고싶은소설을내가직접써보면어떨까하는생각이들어서본격적으로소설을쓰기시작했다고말하면반쯤만진실이다.아무튼스물일곱에지방신문,그다음해에한국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어소설가가되었다.소설책을여섯권쯤펴내는동안소설가보다는시인들과더자주어울리다가몹쓸감염이일어났고마흔살에계간≪시인세계≫신인상을받으며시로전향하게된다.이후시200여편을발표하고김정환,황인숙,문태준,이수명등흠모하는시인열다섯명과인터뷰를하고책을묶는등미만彌漫한시의세계를겁도없이주유했는데,어느날무심코돌아보니시인도아니고소설가도아닌어설프고어정쩡한경계인이되어있었다.2019년첫시집『권태주의자』를펴냈고이번에묶는게두번째시집이다.시집제목때문에고민이많았는데,힌트를주신황인숙선생님께감사를표한다.지나고보니시는우주가들려주는걸받아적는것이맞고,소설은안써져도끙끙대면서쓰는게맞다.그런데지금나는소설과시를구분짓는것만큼바보짓은없다고생각하는쪽이다.

목차

1.군함과돼지

졸시______12
거룩함에대하여______13
멍든말______15
UndertheBridge______18
퇴폐주의버스______19
창밖,프로이트식으로고찰한______20
토마토주의자______21
군함과돼지______22
토요일의태도______24
그리운비행기______27
송가______29
일관성이없다는일관성______30
두개의바퀴가있는밤의산책______32
그렇고그런______33
파라노이아______35
이모에게______36
저녁과굴뚝이______37
의문______39

2.파업과외설

가난의족속______42
당신이생각에잠긴사이______43
누군가는말해야한다______44
홍콩에내리는소나기______46
바나나들______48
테니스치는여자______49
파업과외설______50
노르웨이고등어______51
윌리엄포크너식으로소설을시작한다면______52
여자친구와오리______54
4월의노래______56
빨강코에대한소박한보고서______58
닫힌방,악마와선한신______61
내사랑은______63
나의프랑스시인자크프레베르는______65
불안에대한사적견해______67
처서창밖______69
고독에대해서말해야한다면______71

3.사촌과고독

여름의노래______74
여름에고양이에대해몇마디쓰다______76
편견에의하면______78
이별을위한모놀로그또는______79
건조주의보______80
고도를기다리며______82
부릉부릉______83
오월이고열여덟째날에는______85
이국종염소에게______87
사촌과고독______88
나의개______90
극장안의관객과극장밖의관객______92
가능한사치와불가능한꿈______95
러시아남자______97
법도에대하여______99
실용적인공구들과개의심장______100
회복기의노래______102
다행______103
상형문자______104

4.창고와나

창고와나______108
이걸봐______111
코로나,봄날______113
눈과나비의기억______115
혈통______116
우리들의금요일______119
연애론______120
설경의탄생______123
가설______124
실연______125
말세,둥근해가떴습니다______127
처음부른노래______129
파도______130
프로이트에게______131
영면기永眠記______132
신파,혹은신화2______133
대학로에서______135
자작극______136
물의성전______138
러시아형식주의______139

┃해설┃석민재(시인)
빨강게르니카______147

출판사 서평

환멸과열망이교차하는양면모순의시세계

한국문단에서,소설가이면서동시에시인으로활발하게활동하는작가는손에꼽을수있을것이다.소설가로활동한김도언은계간〈시인세계〉신인상을받으며시인으로등단한후,첫시집『권태주의자』를내놓으면서시인으로주목받기시작했다.첫시집에서김도언은자신이‘권태주의자’라고주장했지만,소설과시를계속내놓는것을보면권태주의자라기보다“허무를정확히기록하려는서기”에가깝다.김도언의언어는낯설고기이하면서도강렬한메타포를품고있다.전지구적삶의단면을통해인간의삶을적확하게드러내고있는문장으로소설과시의경계를벗어난김도언만의개성적인장르를만들고있다.

김도언이만들고있는장르적개성은비주류적인삶의스타일과루틴과연동되면서고유한메시지를창출하고있는데,그것은현대인의무의식을지배하고있는도착적욕망,그리고위선과위악같은정신적모험에대한집요한탐구의지라고할수있다.이를테면알콜중독자의내면세계를다룬시「빨강코에대한소박한보고서」에서김도언은소수적가치를지향하는존재들의애틋한연대가능성을모색하고있다.

이것은/어려운보고서도아니고/대단한보고서도아니다/거리마다/빨강코를한주정뱅이들이/가늘게눈을뜨고/태양보다뜨거운/시선을견디고있는것에대한이야기다/빨강코는바코드다/도살된돼지의피부에스민/푸른도장처럼/빨강코는오랫동안준비된/단순명쾌한낙인이다/빨강코가되지않기위해/사람들은열심히/사전을습득해/고급한단어들을외운다/예를들면와인의이름같은거/오케스트라의배열같은거/혹은로마노프왕조의승계순서를/빨강코가되는순간/돌이킬수없는종이울린다는걸/그종소리에/머리를흠씬두들겨맞는다는걸/빨강코들은안다/그래서빨강코들은/빨강코만을사랑한다/그래서빨강코들은/빨강코만을경멸한다/빨강코의세계는견고하다/빨강코가아니고서는/이세계에그누구라도/한발짝도들여놓을수없으니까/반쯤농담을섞어서말하면/빨강코는되고싶다고/누구나되는것도아니다/빨강코는오랫동안/슬픔과반역의서사를/제몸에새긴이들이/가까스로얼굴한가운데얻은/별빛같은것이다
-「빨강코에대한소박한보고서」전문
위의시편이잘보여주는것처럼김도언의시적특질은초월적이면서도반문법적세계를지향하면서도논리적설득력을포기하지않는데에서도찾아진다.그것은그가오랫동안연마해온소설이라는서사적세계의논리를시작업에유연하게적용한결과물로보여진다.그는지상에서한없이떠오르려는시적부력을즐기는듯하면서도그것을또필요에따라통제하고변용시킨다.기본적으로언어는개인의것이지만사회적공공재로통용되는제도적현실에서완전하게이탈할수없다는것을김도언시인은예리하게촉지한다.그의자의식은사회적감수성과견고하게맞물려있으면서권력이나제도에억압과착취를당하는무기력한개인의처지를긍휼히바라보는것이다.개인의발견에만심취한나머지그를둘러싼사회체제를무력화하거나도외시할경우오히려개인들의미시적진실이사라질수있다는인사이트가시집전체를관통한다.

사물의본질을보여주는시인의정면성

첫시집『권태주의자』가‘기록되지않을시인의뒷모습’이었다면이번두번째시집『가능한토마토와불가능한토요일』은‘당신들이아는얼굴’이다.얼굴은옆으로보일때가장쉽게볼수있기때문에옆모습으로,모든신체는생략된곳없이온전히표현되어있다.이런표현법을예술의특징에서,정면성(正面性,frontality)이라말한다.보이는대로가아닌‘아는대로’표현한방식,각자의특징이가장두드러지는부분을선택적으로표현하여합하는것이다.다시말하면얼굴은얼굴,다리는다리,팔은팔.시인에게있어,사람은그냥사람,못생긴사람이쁜사람구별이아닌,그냥본질의사람이라는것이다.

“김도언의시는어긋난존재와시간에각별한경외심을갖는다.그곳은이미되어버린세계이고합리적희망이나윤리적재생이불가능한영역이다.국외자를자처한시인은그들이품고견디는비애의항목들을살피고내밀한발성으로그하나하나에거룩함을부여한다.예민한촉과순도높은자의식으로안팎의관여와저의로부터자유로워지고자하는그의시는환멸과열망이교차하는양면모순의천재성을발휘한다.”-정병근(시인)

아파서대문을못열고/며칠유심히보니우리집에/세종류의새가날아온다는걸알았지./조류를공부한적없는나는/그새들의이름을알지못해./새들은마당에있는단풍나무가지사이를분주히오가고/어떤새는내창문옆베란다에앉기도하더군./창백한사내가유리안쪽에서자기들을보고있는것을/아는것같기도하고/모르는것같기도해./나는그것을영영알수없을거야./그새는붙잡을수없는,/붙잡고물어볼수없는외계니까./어떤사람에게는/세가지의근심이오고/어떤사람에게는/세가지의절망이올수도있는데,/나에게오는건세가지의새야./이행운은얼마나거대한것인가./어떤사람에게는세명의적이생길수도있고/어떤사람에게는/풀어야할세가지오해가생길수도있어./그런데내게는세가지의새가/그러니까이름은정확히모르지만근심이나절망,/적이나오해가아닌것만큼은분명한,/어떤작게나는것이/오는거야,/오고있는거야.
-「코로나,봄날」전문

이시집은강박덩어리다.전쟁과평화에의한강박이며,반복된지옥을겪으며알게된어떤질서다.그질서를알았기에복수했다고성공했다고생각해버린,그리하여자학하는강박이다.또한,시인은평화가어떻게강박이되는지보고자한다.박제가아닌데도새가공포가아닌강박이되는모습을시인은다음과같이보여준다.“세종류의새”가날아오면사람들은세가지의‘근심’이온다고말하고어떤사람들은세가지의‘절망’이올수도있다고말하는데,새는세마리의‘작은새’지세명의‘적’도세명의‘오해’도아니다,하고.이름은모르지만“어떤작게나는것”이오고있는‘새’일뿐이라는시인의말을들을수있다.왜우리는근심으로절망으로적으로오해로지나치게힘이들고나서야‘새를새’로볼수있는것일까?힘을빼고볼수있는눈은어디에두고살고있는가?믿음은내의지의문제다.의심없이어떤형상에대해본질만볼수있는마음만있다면그믿음은맑고밝다.

“처음읽었을때는안주하지않는의식의황홀에빠졌고,다시읽었을때는내게부착된욕구와갈등의중첩을보았다.그리고또다시읽었을때는내부의응고된힘이풀리는느낌이들었다.어떤시는읽히지않고독자를명상케하는가을날나뭇잎들의파열음처럼들린다.나는아직그를만나지못했다.언어가유일한무기이자방패인투명인간을의자에앉혀두고읊조림을듣고있다.이시집은읽고듣는재미가있어저주받지않은걸작이될것이다.”-윤태원(시인,정신건강의학과의사)

토마토주의자는모든감정에토마토적인감각을집어넣는다.슬픔과외로움은물론이고심지어는기쁨과환희에도토마토적인감각을넣는다.토마토적인감각은식은적막두스푼에들끓는연민세스푼따위로계량될수있는게아니다.말하자면토마토주의자는모든감정이토마토와무관해지는걸참지못하는사람이다.이세계가반反토마토적인분위기로흘러가는것을견디지못하는것이다.토마토의처녀적인신선함과붉음을전파해,낡은것의고집불통을,노인의지혜를,이성의전체주의를파괴하는것이토마토주의자의정신이다.토마토주의자는당연히토마토에대해매우분명한태도를가지고있는데,토마토주의자의토마토는붉고아름다운감정에충실해야하지만토마토주의자의입술은반드시붉거나아름다울필요는없다.처음부터완벽히붉었던것은드물다.
-「토마토주의자」전문

모든것이빨강이면어떻게될까.세상에서빨강이사라지면어떻게될까.저믿음은,저사랑은어떻게될까.토마토주의자는꼭토마토를키우지않아도될수있다.의미그대로“모든감정에토마토적인감각을집어넣으면”된다.꼭사랑한다는말을하지않으면그것이사랑인줄우리가모르는것과같이모든것에토마토냄새가나지않으면못견디게된다.토마토가아니면아무것도아닌,즉사랑이아니면아무것도아닌고린도전서13장같은,시「토마토주의자」.붉고아름다운입술은필요없는,계량할수없는사랑의존엄에대하여말하는시다.나는사랑을사랑답게하고있는가?정면성으로다시돌아가이야기를하면,얼굴,몸뚱이,팔,다리,발등각부분의특징을극대화한방식으로조합해놓은그림은인간을표현한것임에도‘사람냄새가풍기지않는비인간화된인간의형상’이되어버리고말았다.질서와영원에대한깊은연구는자연의재앙,고난과투쟁하는인간의‘살아남음’의문제로인해시작했기에어떤의미에서‘나’‘스스로’를위한것인데,이는지나치면‘저사람이나를공격하는건아닐까’하는마음이생긴다.(「파라노이아」)시인은토마토주의정신으로“낡은것의고집불통을,노인의지혜를,이성의전체주의를파괴하는것”이라했다.사랑이지나쳐강박이되면코가빨개진다.처음부터붉었던토마토가드물므로,농담도점점진담이되고토마토는토마토의태도를넘어무능하거나강박이된다.

시인의‘시적면적’은어떤지형의변화에도불구하고불변하는것이다.삼각형과사각형이라해도면적은같을수있다.눈으로감각적으로모양이달라도초감각으로보게되면같다는추상충동이작용하고있다.그림으로읽었을때,구성,디자인같은느낌을주는이유이다.이것이시인의의지다.또한다양한것이아니라공통된것을뽑아내는것이시인의의지다.개별적이아니라보편적인것,이것이바로김도언시인의예술의지다.직선이든악마든방과창고든가장중요한것은'아이'이며,정육면체와교차로와사각형,오직직선으로만감정이설계된,가장완벽하게닫힌거룩한방에서아이를구하지못한악몽을계속해서꾸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