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루즈는 소음기가 장착된 피스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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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창조적 고뇌와 성취를 향유한 예인을 소환하는 시인

시인 김윤배의 작품에는 힘과 서슬이 서 있다. 시인의 문장은 짧으면서 정언 형식을 취하고 있어 종종 숨 가쁜 육성처럼 느껴진다. 이 정언 형식의 단문들은 은유, 그것도 컨시트의 틀을 대부분 갖췄다. 여기서 우리는 말의 폭력적 결합에 따른 서슬을 맛본다. 또한, 김윤배의 힘은 광활한 시적 공간에서 비롯한다. 제주의 차귀도에서 백두고원, 카스피해, 우즈베키스탄을 넘나드는 시적 주체의 공간이동은 미지에 대한 답사 겸 확인일 터이다. 곧 도처의 세계와 삶에 대한 성찰인 것이다. 이들 공간에서 견문하고 확인한 것은 세상이 “거짓으로 지어진 거대한 집”이자 “함정”이며 그래서 늘 “삐걱”댄다는 사실이다.

“이번 시집에는 여러 화가와 시인 작가들이 시적 주체로 소환되고 있다. 이들 예인의 삶은 쇄말한 일상에 함몰된 평균인의 경우와 다르다. 남다른 창조적 고뇌와 성취를 함께 향유하기 때문이다. 달리는 이들이 역사와 세계의 가장 민감한 성감대 같은 존재인 탓도 클 것이다, 그렇긴 해도 이들 또한 “굴신의 생”을 영위한다. 김 시인은 이들이 산 “삐걱대는 세상과 삶”의 의미와 값을 웅숭깊게 짚어본다. 또 그는 그동안 여러 편 장시 작품을 통해 예인의 삶과 그 의미를 천착해 오지 않았는가.”

-홍신선 (시인·전 동국대 교수)
저자

김윤배

1944년충북청주에서출생,1986년『세계의문학』에작품을발표하면서문단생활을시작했다.시집『겨울숲에서』(1986,열음사),『떠돌이의노래』(1990,창작과비평사),『강깊은당신편지』(1991,문학과지성사),『굴욕은아름답다』(1994,문학과지성사),『따뜻한말속에욕망이숨어있다』(1997,문학과지성사),『슬프도록비천하고슬프도록당당한』(1999,세계사),『부론에서길을잃다』(2001,문학과지성사),『혹독한기다림위에있다』(2007,문학과지성사),『바람의등을보았다』(2012,창비),『마침내,네가비밀이되었다』(2019,휴먼북스),『언약,아름다웠다』(2021,현대시학사)장시집『사당바우덕이』(2004,문학과지성사),『시베리아의침묵』(2013,문학과지성사),『저,미치도록환한사내』(2021,휴먼북스)산문집『시인들이풍경』(2000,문학과지성사),『최울가는울보가아니다』(2004,작가)평론집『김수영시학』(2014,국학자료원)동화집『비를부르는소년』(2001,산하),『두노야힘내』(2010,푸른책들)등을냈다.

목차

1.몽환의파버카스텔

새떼는강진먼바다로진다______12
몽환의파버카스텔______13
의자의명상______15
인턴사원______17
나무십자가______19
모노크롬의언어들______21
몰락에대한경배______23
거식증을앓는산맥______25
질문______27
유빈가든______29
조로아스터의제물______31
붉은,검은그리고붉은______32
죄가아름다운이유______34
고성에울음비끼다______35
함정______36
시인들의무덤______38
아버지의이름으로______40
칼끝의심연______42

2.배티성지에는사람의길이있다

도도의정원______46
배티성지에는사람의길이있다______47
일상,그깊은슬픔______48
비내섬______50
꽃잎______52
선착장골목______53
눈______54
마지막한잎______55
찰나와영겁______56
수거되는기억들______57
서간을읽을수없는봄날______58
착란의이미지______59
슬픔은피를머금고있다______60
언젠가는베링해협을향해날아오를______61
노각나무의백년______62
아,이풍경______63
꽃뱀______64
니제르강어딘가에서해가진다______65

3.산사에서흰손가락을보다

아야진항의동화______68
시인과살모사______69
객지______70
소읍의양장점______71
산사에서흰손가락을보다______73
광장은비어있다______74
자폐의계절______75
비공신화______77
카페JJ______79
밀어______80
지붕위의지붕들______81
해국海菊으로가는길______82
소리는내귀의감옥이다______84
불꽃______86
복병______87
무릎을꿇고앉아있는여인______88
사마르칸트의동백______90

4.천사와그늘

응시______92
늪______94
쑥부쟁이평전______95
천사와그늘______96
시詩의아리바다______97
비탈______98
밀교의계곡______99
필사의도마뱀은없다______100
오류______101
밤은사람이무겁다______102
주검을유적이라고쓰는숲______103
폭설과고요______104
채색깃의새한마리______105
봄은청옥빛이다______107
군산______109
피반령______111

┃해설┃송재학(시인)
그늘에도피가있다는말______113

출판사 서평

창조적고뇌와성취를향유한예인을소환하는시인

시인김윤배의작품에는힘과서슬이서있다.시인의문장은짧으면서정언형식을취하고있어종종숨가쁜육성처럼느껴진다.이정언형식의단문들은은유,그것도컨시트의틀을대부분갖췄다.여기서우리는말의폭력적결합에따른서슬을맛본다.또한,김윤배의힘은광활한시적공간에서비롯한다.제주의차귀도에서백두고원,카스피해,우즈베키스탄을넘나드는시적주체의공간이동은미지에대한답사겸확인일터이다.곧도처의세계와삶에대한성찰인것이다.이들공간에서견문하고확인한것은세상이“거짓으로지어진거대한집”이자“함정”이며그래서늘“삐걱”댄다는사실이다.

“이번시집에는여러화가와시인작가들이시적주체로소환되고있다.이들예인의삶은쇄말한일상에함몰된평균인의경우와다르다.남다른창조적고뇌와성취를함께향유하기때문이다.달리는이들이역사와세계의가장민감한성감대같은존재인탓도클것이다,그렇긴해도이들또한“굴신의생”을영위한다.김시인은이들이산“삐걱대는세상과삶”의의미와값을웅숭깊게짚어본다.또그는그동안여러편장시작품을통해예인의삶과그의미를천착해오지않았는가.”

-홍신선(시인·전동국대교수)

시「몽환의파버카스텔」속에서,몸에서건져올린흰뼈에천착하는시인의생은미시적(재생산과다른의미로)으로확장된다.이뼈는고흐의파버카스텔과다르지않다.고흐가사용하던이스케치용연필은자신의몸에서뜯어낸뼈로재구성한발명이다.시의전반부이자외부는고흐를고뇌로이끌어준현실의생(구두에서파버카스텔까지)이고흐자신의회화와일치한다는인식에서,마찬가지로자신의생과문학을합일하려는시인의의지에서출발하고있다.평생자신을벼리며자신의영혼을절차탁마하는사람의좌표가닮아가는소이연이기도하다.시의후반부이자시의내면은‘흰뼈’라는질서를감싸고있다.고흐의해바라기이미지처럼흰뼈는고통에서돌올하여고통을환기하면서신성을통과하려는상징계이다.따라서「몽환의파버카스텔」이라는시는화가와시인에게세계와고뇌들은어떻게각인되었냐는점을발화시킨다.화가가방황했던대지·바람·늪지는시인에게와서시간·구릉·묘역으로대치된다.「몽환의파버카스텔」은고흐와자신을병렬시키면서일생을가열시키는생에대해진술하고있다.따라서몽환의파버카스텔,미지의‘심연’은외관상단순한생에서자신을바라보고생을삼켜야하는예술가의정화일수밖에없다.

그의낡은구두를네가기억한다면그는어떤어둠으로너를데리고갔을까

네가지나간자리마다실핏줄처럼살아나는고뇌의흔적이대지거나바람이거나늪지인것을알았다면그는어느가슴에낡은구두를걸어두고싶었을까그의퀭한눈빛과솟아오른광대뼈와날카로운턱선을더듬어나가다잠시멈추고생각깊던네가,흔들리는불빛너머먼산맥을짚다툭부러지는죽음을알았다면,너는그의영혼을울어준파버카스텔이겠다

몽환의파버카스텔,미지의심연이여

내파버카스텔은나의흰뼈다흰뼈가내낡아가는시간을읽고구릉의침묵을읽고여름햇살챙챙한묘역을읽었다묘역에남아있는노래는슬프지않았다흰뼈는호수의물결이바람을닮아가는걸보았다흰뼈는산맥을태운오래된재였거나무수한등줄기를몸속에세워준젊은날의고뇌다

-「몽환의파버카스텔」전문

드가의그림은습작데상이지만완성된작품보다더발칙하고맹렬하다.그림속“여인은오랫동안무릎을꿇고앉아목을소망했”다는진술은회한과동경의언술이다.“생애를생략할수없었던드가는여인의목을생략”했다고시인은고백한다.문맥을따라간다면생애를표현하고목을생략한것이다.일상의입술과눈과귀와표정”의생략이야말로더절실하지않은가.아니면입술과눈과귀와표정을상상한다는것이야말로가장놀라움이라는생각에도달한다면이부분에공감할수있다.“목없는여인의숨소리는힘겹게건너는육신의강이었다”라는구절을본다면그것은정신뿐만아니라육체까지수긍해야하는목의결핍의상상력이다.마지막부분,목없는여인의목위에‘바벨탑’이올려져서목을대신하고있다는강렬함은냉소적이긴하지만득의의풍경이다.

드가의‘무릎을꿇고앉아있는여인’은목이없다

여인은오랫동안무릎을꿇고앉아목을소망했을것이고그날도비가내렸을지모른다치맛자락의섬세한주름은습한마음의우수다생애를생략할수없었던드가는여인의목을생략했을것이고여인은목없는전경을악마의필법이라고생각했을것이다

일상의입술과눈과귀와표정을생략했으므로여인은섬세한치맛주름속에한탄을숨겨수직의벽면을살았을것이고떠나고싶었을여인은뜨거운숨소리를새겨수십년이었을것이다

목없는여인의숨소리는힘겹게건너는육신의강이었다

무릎을꿇고앉아있는여인의살아있는치맛주름이마음의협곡이었다

여왕뒤에서는,보이지않는바벨탑이여인의목이었으니

-「무릎을꿇고앉아있는여인」전문



도형의윤곽에서내면과비애를호출하는심미안

붉었던시간이있다그때마다종이학을접었다종이학은밤마다날아올라하늘을덮었다붉은웃음소리가들렸다나는붉은그림자였다그림자를벗고밖으로나갔다그림자는검게변했다내가떠나자더검어졌다

몽유거나발광이었다거대한묘비들은침묵의도시를만들고유령들은밤을기다린다밤은낮은북소리처럼죽은자들의비어있는뼈를울며온다어둠보다낮은노래가도시의문을두드린다지하철이어둠속에서어둠속으로질주한다도시는새벽과밤이,남자와여자가,시작과끝이뫼비우스의띠로이어져있다나는뫼비우스의띠위에있다

흙이고물이다,붉거나검거나

고뇌의마지막은붉은혼돈이다붉은지평선의성근페인팅에마음을던진다붉은하늘과붉은대지를구분짓는흰여백은영혼의계단이다생성이며소멸이고생명이며죽음인마지막붉은화폭,누구도쉬이떠나지못한다나는가슴을뜯다돌아서고다시가슴을뜯는다붉은하늘에,붉은대지에검은피가번진다

-「붉은,검은그리고붉은」전문

추상화가마크로스코의작업을소재로한「붉은,검은그리고붉은」시편에모리스메를르퐁티의‘살LaChair존재론’이라는감각의환대가있다.다만시인의환대가부재와거절을포함하고있다는사실을간과해서는안된다.붉었던시간에접는종이학은따라서붉음에서탄생했거나붉음을박차려는붉음의진화이다.이진화의궁금증은결국순환의섭리를따라화자인‘나’는붉은그림자이고만다.내가없는그림자를보라.결국그림자는검은색,붉은색의맞은편이다.그때검은색은붉은색을탈피하려는몸짓이상이다.그리고생활에서붉음과검음의접촉,이별,괴로움의독해를만나게된다.그것은자신의생을스스로잘라서만나는자신의단면이다.자신을포함해서세계는“흙이고물이다,붉거나검거나”,흙의시간은혼돈이지만흰여백을포함한세계이다.따라서종이학으로드러나는영혼을포함해서세계는어쩔수없이붉은대지에검은피가번질수밖에없다.그게생명을지닌것들의운명이다.시의이해를위해서러시아사람마크로스코의작품을살펴볼필요가있다.그가추구한추상주의는‘혼돈’같은흐릿한사각형의구도와단순한색상의조합이었다.거대한화폭위의사각형은불안과우울의표징이다.그사각형을붉은하늘과붉은대지에검은피가흐르는모습으로파악한시인의시선이있다.따라서붉음과검음은생이라는사각형에가득채운생의갈등이다.그기호들은「모노크롬의언어들」에서도동일세계관을공유한다.

캔버스를단색의네모들로채운다

사방으로닫히고열리는네모는세상의환유다
네모안에네모를,네모밖에네모를세워
무한지평을열어간다

세상은온갖색들로연옥이었고출구는없었다

색을찾아헤매는동안화폭가득하던말들은죽어갔다
캔버스는공허해지고세상은어둡고차가웠다

산다는게얼마나단순한건지깨닫지못했던날들은시간속으로스며들었다

캔버스를고령토로채우게된것은우연이다

우연은고통스런사유의인대였다

고령토를말려균열을만들고균열위에물감을바르고바른다음떼어내고하는지루한반복은생의위험한실현이다

그렇게실현된생은,모노크롬의언어를얻고버려진다

-「모노크롬의언어들」전문

세잔느가바라본사물들이모두기호화되고도형화되면서피카소입체화의기초를열어준것처럼화가정상화의작업은세계를단색의네모로압축시킨다.“네모안에네모를,네모밖에네모를”세우는무한지평의방식은무늬의상상력이다.언젠가무늬의성찰에대해쓴적이있다.“거치무늬,격자무늬,결뉴무늬,궐수무늬,귀면무늬,기봉무늬,길상무늬,능삼무늬,무늬의이름을발음해보자.무늬라는애도를통해서천천히그를위로했으리”라는것은무늬를처음시도한사람에대한공감각이다.모노크롬의무늬들은결국“고령토를말리고균열을만들고균열위에물감을바르고/바른다음떼어내고하는지루한반복은생의위험한실현이다”라는선언을얻는다.“지루한반복”이란구절에주목할필요가있다.누군가에게는단색의네모라불리는세상은지루한반복이겠지만누군가에게는“생성이며소멸이고생명이며죽음”의세상이다.

시인의언어는성실하면서가파르고진행형이라는아포리즘으로가득차있다.사물의윤곽에서내면과비애를호출하고,그통로에자신의시적행로를동행하는심미안에김윤배의특이점이있다.“시는독자를끌어당기는마법적기능이있다.시에는어떤마법성이있어독자를중독에이르게할까.시에는즐거움,즉쾌락의마법성이있고세상의사물들을새롭게인식하는인식의마법성이있으며독자를구원에이르게하는구원의마법성이있다.”(김윤배,「시의마법성혹은,마법성의시」,『언약,아름다웠다』,현대시학사,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