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박하게 정갈하게

담박하게 정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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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력 48년을 맞은 이태수 시인의 이 열여덟 번째 시집에는 시대와 세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삶의 철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존ㆍ현실ㆍ초월’이라는 삼각 범주가 축으로 작용하지만, 지난해 낸 시집 『꿈꾸는 나라로』와는 다르게 마치 프랙탈 구조처럼 더욱 다채로운 의미의 문양들이 펼쳐진다. 특히 그의 실존적 고뇌와 아픔들이 꿈을 매개로 한 초월 의지를 넘어서서 존재론적 구원 의지로 승화시킨다. 이 같은 시적 변모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사유와 영혼의 본향을 갈망하는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근년 들어 해마다 시집을 내는 열정으로 필력을 보여 주는 이 시집에는 ‘길’을 모티프로 본래적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 자아의 근원에 천착하며 영혼의 목소리를 듣거나 내적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존재론적 몸짓이 두드러져 있다.
저자

이태수

1947년경북의성에서출생,1974년《현대문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그림자의그늘』,『우울한비상의꿈』,『물속의푸른방』,『안보이는너의손바닥위에』,『꿈속의사닥다리』,『그의집은둥글다』,『안동시편』,『내마음의풍란』,『이슬방울또는얼음꽃』,『회화나무그늘』,『침묵의푸른이랑』,『침묵의결』,『따뜻한적막』,『거울이나를본다』,『내가나에게』,『유리창이쪽』,『꿈꾸는나라로』,시선집『먼불빛』,육필시집『유등연지』,시론집『대구현대시의지형도』,『여성시의표정』,『성찰과동경』,『응시와관조』,『현실과초월』등을냈다.대구시문화상,동서문학상,한국가톨릭문학상,천상병시문학상,대구예술대상,상화시인상,한국시인협회상을수상했으며,매일신문논설주간,대구한의대겸임교수,대구시인협회회장,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부회장등을지냈다.

목차


나의카르마______12
길과나1______14
길과나2______16
길과나3______18
나는작아져서______19
창가에앉아쉬다______20
나도간다1______22
나도간다2______23
옛집______24
큰아우별장에서______26
옛꿈______28
낮꿈______30
세월______31
최면또는심법心法______32
집______34
한겨울밤______36
날아오르는꿈______37
탁마琢磨______38


다시코로나에게______42
입막고코막고______44
나의방______45
코로나레드______46
하늘______47
상념想念______48
소나무그늘______50
은사시나무와안개______52
달과개______54
다시비몽사몽非夢似夢______55
배와바다,하늘______56
거울______57
어떤꿈길______58
오늘을가며______60
송어______61
희망고문______62
이른아침에______63
현과나______64


연꽃갈피______68
솔바람길______70
만대루晩對樓에서______71
회룡포回龍浦______72
나의선묘善妙______74
상사화相思花______75
다솔사에서______76
뱁새______77
낙동강하구언______78
화본역______80
까무룩______81
절정絶頂______82
늦여름한때______83
먼하늘______84
소녀와핑크뮬리______86
늦가을적막______88
나를잊지말아요______90
실향失鄕______91



하늘에서와같이땅에서도______94
푸른별하나______96
그분의뒷모습______97
뒷모습생각______98
그분생각______100
목련나무,산딸나무______102
크고부드러운손______104
낮은기도______105
천주의성모님께______106
그사람1______108
그사람2______109
갈매나무______110
풀꽃을보며______112
나의얼굴______114
어떤여운餘韻______116
지평선과수평선______118
첫눈______119
김복희의우담바라______120

┃해설┃이진엽·존재의부름,영혼의응답______123

출판사 서평

‘실존ㆍ현실ㆍ초월’화두의자아성찰
존재의부름에대한영혼의응답
이태수시집『담박하게정갈하게』

시력48년을맞은이태수시인의이열여덟번째시집에는시대와세인들로부터받은상처를스스로치유하는삶의철학이자리매김하고있다.‘실존ㆍ현실ㆍ초월’이라는삼각범주가축으로작용하지만,지난해낸시집『꿈꾸는나라로』와는다르게마치프랙탈구조처럼더욱다채로운의미의문양들이펼쳐진다.특히그의실존적고뇌와아픔들이꿈을매개로한초월의지를넘어서서존재론적구원의지로승화시킨다.이같은시적변모는삶과죽음에대한근원적사유와영혼의본향을갈망하는성찰에서우러나오는것으로보인다.
근년들어해마다시집을내는열정으로필력을보여주는이시집에는‘길’을모티프로본래적자아를회복하기위해자아의근원에천착하며영혼의목소리를듣거나내적대화를나누기도하는존재론적몸짓이두드러져있다.

길을가다가왜이길로가고있지,
라고스스로묻게될때가있다
멈춰서서는가지않으면어쩔테지,
라고다시되묻게될때도있다
가려고하는곳이분명히있더라도
가다가안가고싶을때가있다
가고싶지않은곳이었는데불현듯
나도몰래가고있을때도있다

내가가는길은내것이아니라
길의것일따름이어서그런것일까
가고싶거나가고싶지않아도
길이부르지않으면그렇게되는지,
아무리가고싶은곳이라해도,
아무리가고싶지않은곳일지라도
길이나를부르면가야하지만
불러주지않으면못가는것일까

가고싶은곳으로가려해도,
안가고싶은곳으로안가려해도,
길은나를부르다가말고그러다가
다시부르고있는것만같다
-「길과나1」전문

낯선세계에방기된실존의처소에대한이물음은실존이던져진이길위에서깊은상처대해“괴질보다사람이더무서워서/사람들속에서사람이그리워도/사람을만날까저어하며걷습니다”(「길과나2」)라고토로하는데로도나아간다.아픔과불안,방황과좌절이공존하는이실존적상황에서시인은자신이걸어가는길을통해느끼는존재의모순과부조리는“가려고하는곳이분명히있더라도/가다가안가고싶을때가있”고,“가고싶지않은곳이었는데불현듯/나도몰래가고있을때도있다”고피력한다.
시인은“길이나를부르면가야하지만/불러주지않으면못가는것일까”라고되뇌면서‘나’와세계사이에서길의부름에응답한다.이부름은‘나’의내면에서들려오는심혼의목소리이기도하며,본연의자아로회귀하려는실존적기투행위에다름아니다.
길은모든살아있는존재가흘러가는통로이다.“물위에떠서떠내려갑니다/아래로,아래로가는물길을따라”(「세월」),“땅거미가내린다/밖에나서니모두가가고있다”(「나도간다1」),“내마음도저배에실려서/자꾸만아래로떠내려간다”(「나도간다2」),“집을나서면서생각해보면/저뜬구름같고까치밥같기도하다”(「늦가을적막」)등에서도그흐름이확연히드러나며,제행무상과무소주정신을상기시킨다.

꽁지가빠지도록힘겹게지은집을
한해만살다버리는까치를생각하다가
제침뱉어만든진흙으로지은집을
반년만살다떠나는제비를생각하다가
제창자에서뽑아낸실로지은집에
고작열흘만살뿐인누에생각을해봅니다

사람들은집마련하려이전투구泥田鬪狗하지만
한지기생각을해보면허망합니다
평생처음마련한집에겨우몇해살다
세상떠날땐빈손이었기때문입니다
언젠가는미련없이버리고가야할집은
한동안머물다비우는곳일테지요

누에고치와제비집과까치집을떠올려보다가
내가사는집을한바퀴돌아보면서
빈손바닥을한참이나들여다봅니다
빈손으로왔다가빈손으로떠나가는
사람들이저미물들보다도어리석지않을까요
-「집」전문

길위에서흘러가는존재인인간은그길위에모든것을두고떠나야한다.비움,또는무소유는만물에내재된본성이기때문이다.시인은‘까치’,‘제비’,‘누에’라는대상을통해“집마련하려이전투구”하는사람들과미물들을대비해무소유의정신을일깨우며,‘길?흐름?비움’이하나의고리로연결되어시세계를더욱의미심장하게떠받쳐준다.
그의시편들에는세상과타자로부터유발된상처와고통의시학이도처에서묻어나온다.‘나’의양심과현실의불합리가서로부딪쳐일그러질때마다괴로워하면서그통증에서벗어나기위해존재의비약을꿈꾼다.이런상처는타나토스의공격성과파괴욕구,페르소나의이중적인격을마음속에감춘세상사람들과의관계에서빚어진다.이런‘상흔’이일상인들뿐만아니라사무사표방하는문사들사이에서까지목도된다는점이시인을더욱고통스럽게한다.

①집나서면코막고
입을막고전전긍긍할따름입니다
사람을멀리하면서
그거리만큼거꾸로
가까워지고싶다면잘못일는지요
소리도냄새도없는
당신은언제마음돌리려하나요

(실은가까웠던사람이
등져서더무섭습니다)

안보이게쳐들어온당신은
입을막고코도틀어막으면서
어디를가든옥죄기만하네요
공포의수렁에빠뜨리네요
-「다시코로나에게」부분

②한겨울깊은밤중에
찬물한잔을단숨에들이켜고
창틀흔드는바람소리에귀를모은다
희미한소금등불빛,
불빛에술렁거리는악몽부스러기들

하지만애써잠을다시부르지않고
뜨거운불잉걸하나
가슴속에끌어들여밤을지새고싶다
잉걸불로타오르는비애마저도
깊이그러안고싶다
-「한겨울밤」전문

인간소외와단절감이만연해있는현대사회에서의역병창궐은인간관계를차단하고불신감을팽배하게하는분위기를조장한다.“집나서면코막고/입을막고전전긍긍할따름”이며,이보이지않는바이러스에세인들의인심이겹쳐져중층묘사되고있다는점이특히주목된다.“소리도냄새도없는/당신은언제마음돌리려하나요”라고표면적으로는바이러스의공포를말하고있지만,이면적으로는“실은가까웠던사람이/등져서더무섭습니다”라고염량세태의불신감을더욱부각시키고있다.
역병과인간의믿을수없는가변성이오버랩된이런정황은“사람과사람은이제/서로못믿어멀어지는사이입니다”(「입막고코막고-코로나블루1」),“보이지않는공포에시달리다지쳐/분노의무기로바뀐이들도있습니다”(「코로나레드」)등에서도잘드러나있다.이정신적고통은“뜨거운불잉걸”과같아가슴을태우지만이런악몽속에서도“잉걸불로타오르는비애마저도/깊이그러안고싶”은포용력과정신적성숙성을내비친다.상처에대한이러한그러안음은특히‘자연’을통해치유하려한다.

깊은산골짜기,솔숲에든다

마을에두고온마음의그늘들도

따라오거나슬며시먼저온건지

소나무아래서웅크리고있다

아무도안만나고싶어칩거하던

사람기피증이안풀려서그럴까

민망스럽고딱하기그지없다

멧새들이다정하게속삭이고

지나는바람이타이르는듯한데

아직도마음이되돌려지지않아

소나무그늘에주저앉을뿐

상처가깊은마음을추스르면서

한참나를들여다보고있노라면

소나무그늘이나를품는다
-「소나무그늘」전문

자연은언제나세파에찌든사람들을포근히안아준다.그윽한풍경화처럼묘사되고있는이시에서시인은“깊은산골짜기,솔숲”에들어세상에서짙게드리운“마음의그늘들”을씻어내며위로를받는다.그마음의그늘은다름아닌“아무도안만나고싶어칩거하던/사람기피증”이다.그가솔숲길을혼자걷고있는동안“멧새들이다정하게속삭이고/지나는바람이타이르는듯”하면서시인의우울한마음을어루만져준다.
그자연은“나를부드럽게감싸주던/바로그비단자락”(「은사시나무와안개」)과도같이,또는“아픈마음달래고추스르던/곧고정한갈매나무에마음포갠다”(「갈매나무」)는생각처럼,일상의늪에서상처받은이들을원형적모성애로따뜻이품어안아준다.자연을통한이같은위안은

오늘내리는눈은포근하고다정하다
바람이잠자는동안나직하게
속삭이듯조신한자태로내려온다

잊힐듯하다살아나는기억과같이
떠나간사람이다시돌아오듯
마음의빈터에따스한불을지핀다

창밖의나무들이무명옷을입는다
날아온작은멧새서너마리는
창가에순은의노래들을끼얹고있다
-「첫눈」전문

고그려지듯이고요히내리는‘첫눈’을통해“포근하고다정”한마음의평온을되찾으며,“마음의빈터에따스한불을지”피기도한다.첫눈,멧새,시’의영혼이서로어우러져연출하는이평화로운정경은한폭의명화같다.
한편,세상과타자로부터받은상처를시인은‘꿈’을통해초극하려는의지를떠올린다.이시집의많은시편들에서도‘꿈’은중요한모티프로작용하며,이꿈을매개로삶의희망과위안,존재초월을실현하려한다.

밤에는꿈을꿀까두렵지만

낮엔안간힘으로꿈을불러들입니다

더나은삶을향한꿈꾸기와

가위누르는꿈이밤낮으로길항합니다

이길항은어제오늘뿐아니라

오랜세월의트라우마이기도합니다

그그늘에서말들이빚어지고

가혹하게지워지고밀려나기도합니다

하지만그그늘에서언제나

더나은세계를열망하고있습니다

이젠밤낮없이꿈을꿉니다
-「나의카르마」전문

꿈은시인에게밤의악몽과낮의길몽이라는이율배반의의미를가지므로“더나은삶을향한꿈꾸기와/가위누르는꿈이밤낮으로길항”하지만,이길항은곧반전된다.그상처의‘그늘’에서세상의말들이빚어지고/가혹하게지워지고밀려나기”를거듭하면서“더나은세계를열망하”게되며,마침내“이젠밤낮없이꿈을꿉니다”라고고백할정도로새희망의세계를지향하는꿈을꾼다.
그러므로이태수시인에게는꿈이단순한몽상이나신기루현상이아니라,자아의본래성을회복하려는존재론적탐색활동이다.이같은꿈꾸기는어두운세상에서훼손된자아를빛의바늘로봉합하고존재의상승을갈망하는날갯짓으로새롭게읽힌다.

이따금날아오르는꿈을꿉니다
꿈을깨고나면사방이벽인데
여전히벽속에갇혀서도
꿈속에선하늘멀리날아올랐습니다
몽매에도그리던천사를
잠시나마가까이만나기도하고
안보이던길을걷기도했습니다

오늘도밤이오면다시잠속에서
옥빛하늘로날아가고싶지만
그런꿈을꾸게될는지
이풍진세상에서는알수없습니다
날지않으면길을잃는*
새들처럼날면서새길을여는
꿈을이한낮에도꾸고싶습니다
-「날아오르는꿈」전문

시인은“꿈을깨고나면사방이벽인데/여전히벽속에갇혀서도”꿈꾸기를포기하지않는다.‘사방이벽’이라는처지가암시하듯이시인이처한현실은생명이없는콘크리트같은인심이지배하는황량한세계이다.이굴레에서벗어나기위해서는다시꿈꾸기를하지않을수없다.꿈속에서나마“옥빛하늘”멀리날아가“몽매에도그리던천사를/잠시나마가까이만나”,상처받은영혼을위로받아야한다.
이런날갯짓은“오래갇힌채가라앉아만있었는데/새처럼날고싶은꿈을꾸면서”(「희망고문」),“꿈속에서는나도나비등에타고/수미산을하염없이오르고있었다”(「낮꿈」)등에서처럼환상에젖게하기도한다.그래서그는끝없이비상의날갯짓을하면서“새길을여는/꿈을이한낮에도꾸고싶”다는열망할것이다.이처럼시인에게있어서꿈꾸기는존재의비약과상승의지의표현이며,삶의새로운길트기를위한몸짓이다.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