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거짓말 (임창아 시집)

즐거운 거짓말 (임창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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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09년 계간 《시인세계》로 등단한 임창아의 시집『즐거운 거짓말』. 임창아의 시들은 과거의 기억들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를 만드는 힘으로 작동하는지를 보고한다. 어떤 시편들은 노골적으로 과거를 향해 있다. 회고조 문장의 시편들은 시의 화자가 지나간 시절, 망각과 기억이 반반 섞인 시간대에 서성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저자

임창아

저자임창아는1965년경남남해에서태어났다.
2009년《시인세계》로등단하였고,계명대대학원문예창작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

목차

1밀가루는밀가루를털어내기바빴고
어떤일의순서_______10
자라나는용서_______12
밀가루는밀가루를털어내기바빴고_______14
그녀의웃음_______16
스물_______18
떨림의뒤편_______20
살아있는공_______22
알수없는기분_______23
남해_______24
딸꾹질을하자_______26
오후의콜라보_______28
묵밥_______29
주름잡던시절_______30
왕년의힘_______32
편두통이찾아왔다_______34

2나를함부로탐독하지마라
추상화에대한보고_______38
토성_______40
관심밖에있는사람_______41
벽_______42
열두번째슬픔_______43
당신의목을조르기엔너무약하고_______44
이것은아무도모르는맛이다_______46
더이상그것을중심이라부를수없을때_______48
낱말의표정_______50
나를함부로탐독하지마라_______52
쌀이물먹는소리_______54
자꾸욕하고싶어진다_______56
하빈_______58
오후에사랑하는것들_______59
옆구리는옆구리가아니다_______60
그남자의식사_______62
오월_______64
질문들_______65

3혼자,라고말하면
에덴_______68
어디로갔나_______69
관심법_______70
밤_______72
혼자,라고말하면_______74
아주사소한병_______76
그믐_______78
체리의계절_______80
그일요일을기억한다_______82
모텔모로코_______84
막내고모_______86
나를향해날아온시_______88
악몽_______90
서울과칸나_______92

4당신이좋다면그것으로됐어요
화장_______94
꽃피는폐가_______96
당신이좋다면그것으로됐어요_______98
은행나무아래서_______100
울산_______102
어제그리고어제_______104
돌림과노래사이_______105
유월을기다리는방_______106
광화문_______108
죽음의방식_______110
아무일도아닌일_______112
흑백_______114
어제보다약간짧은오늘_______116
당신의방_______118
털이하얀짐승은_______120
선택된시_______122

□해설|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
기억,향수,시임창아의시세계_______125

출판사 서평

향수를품은기억의축제
기억에의한기억을위한기억의시!


2009년계간《시인세계》로등단한임창아의첫시집은얼마간의향수를품은기억의축제가벌어지는장이다.그의시에서지난경험이남긴자국과흔적들을찾아내는것은어렵지않다.그자국과흔적들이개인적기억들을소환한다.소환된기억은달무리같이어슴푸레하게확장된다.불확실성을품은회색빛미래에견줄때과거-기억은더단순하고명확하며빛난다.
미래는모호하지만과거-기억은항상현실보다더찬란하다.과거-기억들이실제보다더빛나는것은뇌가좋은기억을선호하는것과관련이있을것이다.뇌과학자들에따르면,대뇌변연계,그중에서특히감정기억을관장하는편도체안에서기억이세운과거라는왕국은빛난다.임창아의시들이대체로어두운가운데뜻밖의빛을품는것은과거-기억이라는,받아들일수없는현재의대안에서촉발된상상력에바탕을둔까닭이리라.

1.‘시’,유일한파라다이스이자아름다운감옥

과거에사로잡힘,어제에대한동경,즉우리안에있는기억의방은우리를살게하는힘이면서삶의안전망을구축한다.그것은고통을담보한다.임창아의시들은과거의기억들이우리안에서어떻게뿌리를내리고,그것이어떻게현재를만드는힘으로작동하는지를보고한다.많은시들이기억의촉매에의해발아하고,기억의아득함을더듬으며,기억을위해봉헌한다.그런까닭에임창아의시는기억에의한,기억을위한,기억의시들이라할만하다.기억이발화하는방식은다음과같다.모든것은기억때문인데,이를테면“콧구멍으로하얀바람이몰아쳤어요눈꺼풀이아이스크림처럼녹아내”렸을뿐만아니라,“우리는조금씩검정을지나흰색으로가고있”(「밀가루는밀가루를털어내기바빴고」)는것이다.과거의기억은과거에머물러있지않고그것으로말미암아“내안에서는이름없는태풍이휘몰아치고나는/젖몸살로고압선이흐르는자물쇠푼다”.결국“과거는더이상박제된것이아니다”(「낱말의표정」).박제가아니라현재의힘으로작동하는과거를다시쓰기,그게바로임창아의시쓰기다.그는시쓰기가파라다이스이자아름다운감옥으로자발적으로들어가는일이라고고백한다.“속이울렁거린다저구불구불한리듬을타고/가자내유일한파라다이스이자아름다운감옥으로”(「선택된시」).

없던일로하자
한번만봐달라,이제와서

없던일이될수없고
한번만봐줄수없는일은,대체
어떻게자라어디로갈까?

오래달려온말에는오해가들어있다
발길끊어진밭에제멋대로자라나는잡풀처럼,

주인발소리오래듣지못한풀은날마다발뒤꿈치를든다
자신이풀이란걸잊은채,

풀의말은풀만알아듣고
손가락만한풀잎들은손가락만한하늘을가리고

오래만난사람을어쩐지오늘은만나고싶지않은날

있던일이없던일이되려면
얼마나오래달려야할까?

아무생각없을때까지오래
오래달렸다오해가따라오지못하도록

―「자라나는용서」전문

「자라나는용서」가노래하는것은‘용서’에대한것이지만이런사태가빚어지는계기는과거에일어난일이다.누군가시의화자에게과거에있었던일을없었던일로해달라고한다.“이제와서”그게가능한가?아마과거의일이란‘말’로인해생긴것이리라.그런데그‘말’은고착되고응고된채머무는게아니라자라난다.그‘말’이“발길끊어진밭에제멋대로자라나는잡풀”이라는비유를얻을때,그것은새로운감각적명증성을얻는다.그리고“주인발소리오래듣지못한풀은날마다발뒤꿈치를든다/자신이풀이란걸잊은채,”라는생동감으로나아가며생채(生彩)를띤다.“있던일이없던일이되려면/얼마나오래달려야할까?”라는물음은아직용서를할수없어유보를하는데,진정한용서가가능하려면더많은시간이필요하다는뜻이다.

2.흑백이되어버린과거의시간

임창아의어떤시편들은노골적으로과거를향해있다.“남해에서여고다닐때”(「어떤일의시작」)라거나“갈래머리여고시절”(「주름잡던시절」),혹은“셋방한칸이신접살림전부였을때”(「서울과칸나」)같이회고조문장의시편들은시의화자가지나간시절,망각과기억이반반섞인시간대에서성이고있음을암시한다.“왕년”을앞세우는시들은일종의시간거스르기다.서정시들이주로자아의고백으로이루어지고,이때고백은지나온삶의대한기억을기반으로하는것이니그다지이상할건없다.어쩌면시인은너무일찍“왕년을앞세우면누구나/수탉처럼용맹하고유치하고무모하고……”(「왕년의힘」)라는구절이직설적으로드러낸“왕년의힘”을알아버린것은아닐까.그“왕년”이란지나간시절이지만,그것은과거에서오늘에까지이어지는시간의흐름이다.그래서시인은왕년이“오늘날까지매일매일이어져있다”고쓰는것이다.우리의과거가불가피하게망각으로기울어진뒤많은것들,이를테면추억이나기억들은망각의주변에서득실거리며번성한다.기억과추억들은망각의지층에서용케도현재로싹을내민것들이다.그것들은언제나망각의영토안에서편재(偏在)한다.기억과망각은정확하게삶과죽음에대응하고회통(會通)하는것이다.“요컨대망각은기억의살아있는힘이며,추억은그것으로부터나오는산물인것이다.”(막오제,『망각의형태』,25쪽)우리의추억-이미지들은망각에서살아귀환하는기억들이다.그것은삶의자취들,무엇보다도부재의징표들이다.우리는추억과기억안에서산다.그기억속에는‘아버지’가있고,‘막내고모’가있고,‘삼촌’이있으며신산한가족사가있다.그런데추억이란실제있었던것의재현이아니라있었다고믿어지는기억,즉각색된이야기들이다.

사과를깎는데
껍질은갑자기너에게로가는길이되었어

너에게쓰는편지가
어느순간나에게오고있었어
맨발을내려다보는데내발목에네발이달려있었어

벗어놓은고무신은화분이되고있었어
발을품었을때보다
흙을품었을때더오래
더멀리갈것만같았어
신발속에앉아생을망칠궁리만하던스물

발끝에서뒤꿈치로
개미가물어나르는내용은뭔지모르겠어
신발밖의세상이늘궁금했어

내가누구인지모를때
너를나라고생각한적있었어

사과의길은
머리부터발끝까지너에게로이어져있었어
툭,
뛰어내려잠을열면
사과는흑백

검은대문앞에서서성거리던스물
―「스물」전문

「스물」은사과깎기에대한소소한경험을다룬시다.사과는깎이면서껍질이갑자기“너에게로가는길”로변하는것이다.이때‘너’라는객체는“생을망칠궁리만하던스물”,“검은대문앞에서서성거리던스물”의‘나’다.그렇게유추할수있는것은‘나’에게로오는“맨발을내려다보는데내발목에네발이달려있었어”라는구절때문이다.스물의나이란아직세상을모르고,저바깥세상의모든것들에맹렬한호기심을품을때다.시인도그나이때“신발밖의세상이늘궁금했어”라고고백하고있지않은가.사과껍질이만든길과스무살의‘나’에서오늘의‘나’로이어지는길은하나다.그길은“머리부터발끝까지너에게로이어져있”는것이다.‘너’는흑백이되어버린과거의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