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바람과자연의섭리와함께농사짓는아버지
생명을얻고적멸또한얻었던아버지의초상화
평생농부였던아버지의모습을시로그린시인아들의사부곡
1.흙의즐거움과연민으로가득한우리시대새로운농부아버지의모습
장인수시집『적멸에앉다』는평생흙투성이농군으로일해온한농부의필생의모습이담겨있고,이런아버지의한생을눈에담아서시를쓴아들의사부곡이담겨있다.밭에서땀흘리며일하는아버지에겐농로의나무밑에서쉴수있는나무그늘마저도적멸의공간으로보인다아버지의언어는농사꾼의언어인데길바닥에널부러져있는자갈같은언어요,패랭이꽃같은언어들이다.풀의언어요가축의언어다.코스모스와놀란흙과풀냄새가있는곳이면아버지의언어가있다.(「코스모스의중심」,「놀란흙」,「풀냄새」등),갯벌의온갖생명체에게경배를하고(「갯벌에합장을하다」),소와염소에게감격과감탄을하고(「소떼」,「아버지의등」,「소는혀가아름답다」,「노을이소등을덮다」등),비오는날마당의물주름을타고넘는미꾸라지(「마당풍경」)의카니발이펼쳐진다.아버지는흙과바람과감자와개와돼지와소와호박의이야기를잘듣는다.식물과가축의언어와감정을잘해독한다.해독할수없는동식물의언어를알아듣기위해서는관심과관찰과사랑이있어야한다.농사의핵심은사람이먹는것을길러내는것이지만사람을살리면서동시에흙을살리고,돼지가자유를누릴수있는권리를살리는일이어야한다.인문학은사람을위한,사람의삶을풍요롭게하는,사람중심의학문이기도하지만더나아가사람중심을버리는탈여토,리좀의학문이기도하다.
시집『적멸에앉다』에서는아들과카니발을벌이는부성(父性)을보여준다는점에서이전의유형들과는변별성이확보된다.70년대에서90년대에이르기까지무수한폭군,노름꾼,알코올중독자,난봉꾼,막노동꾼,실패한혁명가(지식인)등으로표상되는문학속아버지들은스스로의부재를은폐하기위해끊임없는방황의길로들어서서체제의언저리를배회해왔다.반면『적멸에앉다』라는시집에서는서로다른재료들을너무삶아“자주빛곤죽이되”(「가지비빔밥」)어버린아버지의가지조리법이마침내허기를잊게하고막걸리의취기를부르는것처럼,시인에게아버지의정신과육체는권력과권위와그러한사회구조를떠받치고있는기존의윤리(금기)마저무화시키는카니발의장소로써인식된다.그것은곧누군가의희생을강요하지않고서도,현실의일탈(불온성)을놀이와웃음의차원으로끌어올릴수있는동인으로써포착되는아버지상이다.그리고그러한축제의정점에서우리는가부장적사회를지탱시켜온‘남성의몸’까지도되짚어볼수있다.아버지는급기야아들친구와친구되기를시도하면서아들친구와반말을트고함께들판에퍼질러앉아막걸리를나누어마신다.(「친구」)
2.언어미학속에녹아있는지적으로통제된서정그리고평화와소통의이미지
자전거에/막걸리한병/비닐포대두개/낫한자루/된장한식기/꼭꼭동여매고/밭에가서/고추,고구마,열무,참깨랑어울리다가/출출함이찾아오면/밭가그늘의적멸에털푸덕앉아서/막걸리를몇잔마시는거라/알타리무를쑥뽑아/낫으로껍질을설겅설겅친후/깨물어먹는거라/나무그늘의품은잠시나마/별서(別墅)이며/적멸보궁인거라
-「적멸에앉다」전문
표제시격인「적멸에앉다」에서드러나다시피,근대화이후사라저가는농촌의풍경은‘지금,여기’의삶에서떨어져있지만,바로그러한이유로변하지않는일체감의대상이된다.“적멸”의순간을기다리는위태로운풍경은시인에의해죽음이아닌(도시의)삶을유지시키기위한동력으로전환되고,나아가근대의균열을극복하기위한믿음의장소,즉부처님의진신사리를모신“적멸보궁”과같이실재하는세계의일부분으로현현(epiphany)하는것이다.“자전거”,“막걸리”,“비닐포대”,“낫”,“된장”,“고추”,“고구마”,“열무”,“참깨”등의시어들은낯익은농촌의풍경을묘사하기위해상투적으로동원된것에불과하지만,일체감에대한“출출함이찾아오는”순간,비로소욕망의대상이되어시적긴장감을형성한다
시집『적멸에앉다』는서정적화해를위한실존적운동이작품마다작동하고있다.그의시는우리주변에차고넘치는갈등,분열,대립,저항,부조리,환멸등을부각하지않는다.오히려‘동일성(일체감)의시학’이라는서정시의영역을지속적으로모색한다.그런데그의시는1인칭으로향유되는서정시의원리에서벗어나있다.1인칭은쉽게등장하지않는다.집요하게관찰자의시점을유지하거나,주변의인물이나동식물의시선을등장시킨다.눈높이를1인칭인시인에게맞추는것이아니라상대방의높이에맞추려는시도를끊임없이보여주고있다.시인의말에서분명히밝히고있듯이,중요한것은“고추를딸때밭고랑에쭈그리고앉아서보면고추가부처님으로보인다”는사후적인결과가아니라,“사람은늘자신의고정된눈높이가있다”는자명한사실로부터“나의눈높이보다는상대방의높이에내눈썹을맞추면순식간에새세상이보인다”는사실을인지한자의‘운동(위치)에너지’를확보하고있다는것이다.여기에서새로운시선,새로운인식,새로운각도,시적화자의새로운위치가신선하게드러난다.
장인수의시집『적멸에앉다』에서적멸은주로나무그늘속이다.적멸보궁,묘토(妙土),정토(淨土),청정토(淸淨土)의공간은주로아버지와엄마가고된노동을하다가잠시휴식을취하기위해들어가는나무그늘이다.일을하면서바가지를엎어놓고짓밟아깨부술듯이싸우다가도나무그늘속에들어가면평화롭고온순해진다.(「적멸에앉다」,「나무그늘속에극락보전이있다」)또는적멸보궁은눈꼽재기창으로내다보는마당이거나‘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천하를천하로서감싼다)’처럼폭설이쏟아지는마당이다.(「눈꼽재기창」,「눈이오는날은눈밖의소리가다보인다」)우리주변의가장낮은곳,하찮은곳에적멸보궁과정토가있을수있다는인식이나깨달음이잘드러난시집이다.
장인수시인은2003년시전문지《시인세계》의신인작품공모당선으로등단하여심사위원황동규,김종해,김승희시인의기대를한몸에받았던시인이기도하다.장인수의첫시집『유리창』(문학세계사,2006),두번째시집『온순한뿔』(황금알,2009),그리고이번세번째시집『적멸에앉다』에이르기까지,장인수시인의시에는레토릭이과하지않을만큼일관된시적지향이드러난다.꾸밈없는언어들과일상적인경험들,일원론적자연관,고향을배경으로한가족서사등은장인수의시집전편에서어렵지않게발견할수있는특징들이고,이는곧균열된세계와갈등하기보다자아와세계의일치점을모색해왔다는것을의미한다.
허리를펴뒤로젖히고/우두커니서서/사방팔방을둘러본다/노을빛깔,야생화빛깔,물빛빛깔,구름색깔,여치와/백로와제비들의색깔이/헤실바실/넘실거린다/들깨,참깨,콩,팥,마,감자,고추,배추,호박,가지들을/밭에만심는것이아니다/구름속에도심고,노을속에도심고,바람속에도심는것/허리를펴고잠시/우두커니서있을때/싹이트고,꽃이피고,색소를만들고,향기를풍기는/색깔의세상이광활하게펼쳐지는것이다
-「아버지의허리」전문
하얗게함박눈이내리는마당은/잠실蠶室,누에방이다./누에방에선하루에도몇차례씩/눈비가오는소리가들린다/누에가뽕잎을먹을때내는소리는/콩밭에가랑비내리는소리/굵은빗방울이연잎에듣는소리/포목점에서비단찢는소리/녹두알만한누에똥이후두기는소리는/댓잎파리에싸락눈뿌리는소리/섶에올라제입의명주실을뽑아/하얀고치의적멸보궁을짓는소리는/끝없는정적으로들어가는소리/눈이오는날은눈밖의소리가다보인다
-「눈이오는날은그런소리가다보인다」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