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군함(하) (구양근 역사소설 | 조선의 운명을 결정지은 단 하나의 사건!)

안개 군함(하) (구양근 역사소설 | 조선의 운명을 결정지은 단 하나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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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사건을 꼽으라면 ‘운요호 사건’일 것이다. 19세기 후반 세계 열강들은 약소국들의 문호를 강제로 개방시키고 식민지화하는 데 열을 올렸다.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 삼기 위해 경쟁적으로 눈을 돌렸는데, 1854년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을 하였다. 해군 제독 매튜 페리가 7척의 근대식 군함을 이끌고 개항을 강요하자 이에 굴복한 것이다. 일본과 미국 사이에는 불평등조약인 미?일 수호통상조약이 맺어져 1844년 개항한 청나라에 이어 서양 중심의 세계 질서에 억지로 편입된 것이다.
그리고 약 21년 후인 1875년 일본은 미국의 수법을 고스란히 조선에 사용했다. 그것이 바로 ‘운요호 사건’이다. 서양 함선에 신식무기 함포, 개틀링총 등을 싣고 나타나 위협을 하며 개항을 요구하는 일본에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실질적인 일본의 식민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 이전, 프랑스와 미국의 개항 요구에 쇄국정책으로 맞섰던 조선은, 일본의 개항 요구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왜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대원군이 명성황후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해 물러나 있었고, 탐관오리들의 학정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한 데다가, 오랜 가뭄과 기근으로 나라 경제가 어려웠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단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친일파 1호로 기록된 김인승의 눈부신(?) 활약 때문이었다.
저자

구양근

한국외국어대학중국어과를졸업하고대만대학대학원사학과석사과정을졸업하고,동경대학대학원동양사학과박사과정을졸업했다.
성신여자대학교교수겸총장,주駐대만한국대표부대사를역임했다.
현재한국작가교수회부회장,한국수필가협회부이사장,계간문예작가회이사,국제문인협회자문위원,국제PEN한국본부평화작가위원회위원장등을맡고있다.김만중문학상,한국수필문학상,산귀래문학상,탐미문학상등을수상했다.
주요저서로는장편소설『칼춤』(김만중문학상),『붉은전쟁』(전3권)등이있고,단편소설로「임곡역」,「금강초롱」,「윤리학강의」등이있다.수필집으로는『기분좋은날』,『일본은결코문명대국이될수없다』,『부단히떠나야한다』등이있다.
번역서로『블라디보스토크견문잡기』,『교홍전』,『정왜론』,『오수불망』등과논저『청말견책소설의사실관계연구』,『갑오농민전쟁원인론』,『중국역대문언소설선역주』,『한중일삼국의관념비교연구』등이있다.

목차

두만강은흐른다7
인천으로뱃머리를돌려라34
팔미도에정박하라49
항산도의일본군함70
집사청회담99
조·일·청의고싸움121
조선을겁박하는구로다145
김인승,조선의고삐를조이다169
강화도조약은체결되고191
현해탄을헤치고211
도쿄,블라디보스토크228

출판사 서평

한국근대사에서가장뼈아픈사건을꼽으라면‘운요호사건’일것이다.19세기후반세계열강들은약소국들의문호를강제로개방시키고식민지화하는데열을올렸다.유럽과미국의제국주의는아시아와아프리카를식민지삼기위해경쟁적으로눈을돌렸는데,1854년일본은미국에의해강제개항을하였다.해군제독매튜페리가7척의근대식군함을이끌고개항을강요하자이에굴복한것이다.일본과미국사이에는불평등조약인미?일수호통상조약이맺어져1844년개항한청나라에이어서양중심의세계질서에억지로편입된것이다.
그리고약21년후인1875년일본은미국의수법을고스란히조선에사용했다.그것이바로‘운요호사건’이다.서양함선에신식무기함포,개틀링기관총등을싣고나타나위협을하며개항을요구하는일본에조선은속수무책으로무너졌다.그리고1876년강화도조약이체결되면서조선은실질적인일본의식민지의길로들어서게된것이다.일본도강화도조약이해외진출의처음이었고조선도그것이외국과의조약체결의처음이었다.
그이전,프랑스와미국의개항요구에쇄국정책으로맞섰던조선은,일본의개항요구에힘한번써보지못하고왜그토록허무하게무너졌을까?대원군이명성황후와의권력다툼에서패해물러나있었고,탐관오리들의학정으로백성들의삶이피폐한데다가,오랜가뭄과기근으로나라경제가어려웠다는여러가지이유가있지만,결정적으로지금까지알려져있지않은숨은큰이유가있었다.
그것은친일파1호로기록된김인승의눈부신(?)활약때문이었다.


러시아로탈출한이주민김인승


함경도경흥관아의호방이었던김인승은대대로벼슬을지낸뿌리깊은집안의손이었으나11대조가죄를지어함경도로유배를가고,7대조때경흥으로이사를가면서토반으로전락한집안의사람이었다.
경흥관아에서호방을하지만나름공부가깊었던김인승은의협심마저있었던인물이었다.경흥부사윤협이기근과홍수로아사직전에있는백성들의긍휼미를빼돌려염가미로팔아이득을취하자경흥부민이들고일어나관아에쳐들어왔고,이를대변하다가목숨이위태로워진김인승은조카김학우와국경탈출을하게된다.
조선의국경을넘어러시아땅추풍(秋風니콜리스크)에자리를잡은김인승은블라디보스토크에서무역상을하는일본인다케후지헤이가쿠를우연히만나게되는데,바로이다케후지가나중에그를친일의길로안내하는첫안내자가된다.
다케후지는조선을손에넣기위해주변의정세를살피러온세와키히사토를만나게되고,세와키에게조선인김인승을소개하게된것이다.세와키는공식적으로는일본외무성이블라디보스토크에무역사무소를개설키위해파견한외교관이었지만사실상정탐꾼이었고,이중의절반은조선에대한것이다.세와키의‘출장명령서’에는구체적으로‘조선인을고용하여조선땅으로들어가서토지·풍속등을탐색하고올것’등이명기돼있다.다케후지로부터김인승의학식과경험을높이산세와키는귀국길에그를일본으로데리고갔다.


일본의외국인고문

이무렵일제는다수의외국인고문을고용하고있었는데1874∼1875년무렵에는그수가520여명에달했으나조선인고문은단한명도없었다.김인승이조선인으로서최초의외국인고문이었다.일제는조선에‘황국의군현’을설치하여이를근거로대륙을침공할계획을세워놓고있었다.외국인고문채용은이를대비하기위한사전포석이었다.그리고그첫군사행동이바로‘운요호사건’이었다.
세와키를따라일본으로건너간김인승은일본정부와외국인고문고용계약을맺고만주지방지도작성,북방사정탐색,조선침략용지도작성,기타필요한사항에대한자문등의일을하였는데,이중에서김인승이크게기여(?)한부분은조선에관한사항이었다.
1875년일본육군참모국이조선침략용으로작성한〈조선전도〉,당시조선사정을일목요연하게정리한『계림사략』등에세세한조언을하는등김인승은일본의외국인고문역할을충실히했다.
그는강화도앞바다에정박한일본군함에머무르며조선이일본의강압에강화도조약을체결하는동안공문의한문번역과수정책임을맡았고,조약체결과정에서수시로일본측에조언을해주었는데구로다에게는조선관리설득방책까지제출할정도였다.여기에는‘전신기사용’을권장하는내용에서부터‘여러말할필요없다.청국은그처럼인구가많고땅이넓은데도먼저일본에강화조약을청하여맺었다.두루살펴깊이생각하라’는등공갈·협박성문구도들어있다.
곧고정직한성품의조선선비였던김인승은일본의속셈을헤아리지못한채‘조선이개항해야한다’는생각에사로잡혀자신도모르게나라를팔아먹는일에협조를한것이다.
조약체결후일본으로돌아온그는일본인들로부터멸시와증오는물론이고목숨까지위협을당하는신세가되었다.그는겨우일본을탈출하여러시아로되돌아오나,그전말을알게된연해주일대의한인독립단에의해추풍의어느산모롱이에서포살당한다.

친일파1호김인승의기록을역사에서찾아내다


‘친일파1호’김인승의기록을발견한사람은이소설의작가이며사학자인구양근이다.구양근은동경대학에서동양사학과박사과정을수료하는과정에서일본의외교사료관사료를볼수있는기회를얻었고,그후동경대학에교환교수로있으면서외교사료관사료를열독하다가김인승이라는인물을찾아냈다.
김인승은친일파연구의태두인임종국선생이그의저서에서단한마디언급했을뿐어디에도기록이없었다.구양근은김인승의기록을무더기로찾아내최초로언론에알렸다.그리고그는국내학술지에논문으로발표하기도했다.작가는김인승의이야기를통해뼈아픈역사를돌아보고같은실수를반복하지않아야한다는의지로김인승의자료를토대로소설을썼다.
“강화도조약으로말미암아우리나라는사형구형을받은것이고(사형선고는청일전쟁의시모노세키조약,사형집행은한일합방),친일파란어떤특별한사람이되는것이아니고매우강직한사람이라도자칫한번의판단착오로그처럼된다는것을말하려함이다.김인승은구로다를도와조선을개국시키는것이애국인줄알았다.그러나결과는그반대로매국이었던것이다.”(작가의말중에서)
미국정치철학자한나아렌트(HannahArendt)의《예루살렘의아이히만》에서말한‘악의평범성’을떠올리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