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이명경 장편소설)

달항아리 (이명경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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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늘의 젊은 세대와 장년 세대를 잇는 가교가 되어줄 이야기
『달항아리』는 슬프고 참담했던 그때 그 시절, 우리 시대의 한 삶을 누구의 딸, 아내, 어머니로 살아온 이야기다. 생생하고 섬세한 필치로 한 편의 감동적인 서사시로 재현한 여성 작가 이명경의 자전적 장편소설 『달항아리』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6·25전쟁, 경제발전기, 외환위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여자라는 운명에 발목 잡혀 꿈을 접고 사랑을 떠나보낸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여인의 일생을 그려내고 있다.

『달항아리』는 일흔 중반을 넘은 작가가 직접 통과한 세월이기에 묘사가 날것처럼 생생하다. 1940년대생 윤지는 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다. 결혼을 통해 희망찬 내일을 꿈꿔 보지만 무능력한 데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남편 때문에 극심한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에 처한다. 또한 윤지는 남아 선호사상이 팽배한 시대에 아들을 낳기 위해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에까지 시달렸으니 자기의 꿈을 펼쳐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녀는 해방기에 출생한 여성이 겪어야 했던 거의 모든 고통을 온몸으로 통과한 셈이다.

윤지의 유년 시절을 괴롭힌 것은 부친의 빨갱이 딱지였다. 6·25전쟁이 터진 와중에 부친에게 부과됐던 빨갱이 누명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된 것인데,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70년이 지난 요즘에도 빨갱이, 좌파 운운하며 편 가르기를 하는 세상이고 보면 당시 빨갱이에 대한 편견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학교에 가도, 골목에 나가도 ‘이윤지’는 없었다. 빨갱이 딸, 과부의 딸이 있을 뿐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세상에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마주친 친구들은 어김없이 손가락질하며 쑥덕댔다. “윤지, 쟤 아빠 빨갱이래. 총살당했대.” “우리 윤지랑 놀지 말자.” 윤지는 그 소리를 안 들으려고 귀를 틀어막았다. 빨갱이가 뭔지 모르는 윤지는 빨갱이는 얼굴이 빨간 줄 알았다. ‘우리 아버지는 얼굴이 빨갛지 않아! 그런데 왜 빨갱이래?’ 아버지는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 잘 자리 잡은 코에 광대뼈가 두드러진 잘생긴 호남형의 얼굴이었다. 왜 잘생긴 아버지를 빨갱이라고 놀려대는 건지 윤지는 알 수 없었다. 6·25전쟁 직전, 한반도는 둘로 갈라져 정치적·이념적 대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빨갱이 누명을 쓰고 쫓길 때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 살 윤지는 경찰의 달콤한 유도심문에 넘어가 아버지가 숨은 곳을 가르쳐주고 만다. 그렇게 아버지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장면은 그녀 일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저자

이명경

학력으로1962년경북여자고등학교졸업,1966년성균관대불문학과졸업,1985년성균관대대학원불문학석사,1991년성균관대대학원불문학박사가있다.1979년KBS무대(KBS-TV)〈베개〉로방송작가데뷔했고1980년TBC-TV(현KBS2TV)에〈차남〉,〈슬픈모정〉발표했다.경력으로1985년~1996년국민대불어강사,1997년~2014년명정공업(주)대표이사,2011년3월~11월쉐어앤풀(ShareandFull)논술강사등이있다.2023년《시와창작》시문학상당선으로시인등단했고2024년《시와창작》시문학대상수상했다.저서로『우리집강아지세리』(동화,아이들판,2013년7월),『생텍쥐페리문학과의만남』(문예출판사,2014년5월),『달항아리』(소설,문학세계사,2020년11월),『내안의두레박』(시집,청어,2024년12월)등이있다.2023년Amazon.com에『우리집강아지세리』(불어판과영어판),『달항아리』(‘배꼽없는여자’로개제,영어판),『생텍쥐페리문학과의만남』(불어판)출간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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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가부장제에찌든한국의남성상,남편

가족의불행이자기에게서비롯되었다고생각한나머지윤지는어머니의말이라면무조건따르는착한아이콤플렉스에갇힌다.원하는상대가아님에도어머니가골라준신랑감과결혼식을올린것은그녀내면에자리잡고있는죄책감과무관하지않다.안타깝게도윤지의삶은결혼을통해더큰어려움속으로내몰린다.윤지의남편은새가정을꾸린가장이었음에도집에돈한푼가져다주지않는뻔뻔한남자였다.아무렇지않게자신의월급을전부혼자쓰고마는데,그돈을나쁜데쓴게아니라딱한친구도와주고,후배들밥사주고,가난한형제들돕는일에사용했다는명분으로가장의책무를간단히저버린다.마치부잣집딸을아내로맞은이유가그런식의적선을위한것이라는듯생활비를전적으로처가에의지하는남편.밖에서는인간성좋은사람,베푸는사람으로비추었을것이지만사실윤지의남편은친구들사이에서는리더역할을하고싶어하고,형제들사이에서는삼남이면서장자권을탐한,허세가득한사내에다름아니다.아내가부모에게받은막대한재산을외환위기로날려버리는대목보다가족의생계를나몰라라하는장면이더인상깊었던것은그가가부장제에찌든못난한국남성이었기때문이다.그것은너무나익숙한우리들의삼촌,아버지,이웃남자의모습에불과하지않는가.윤지는자존심때문에친정엄마에게노골적으로돈달란말은못하고엄마가용돈으로쥐어준비상금을가족의생활비로충당한다.


생생하게재현된1960,70년대의여성삶의현실

자신을위해서는돈한푼쓸수없는상황.이소설을통해우리어머니들이살아온시대상을알수있는것은덤이다.1960년대중반콩나물한줌가격이5원이라는것,한달생활비가2만원이라는것.콩나물을10원어치는사야네식구가먹는데5원어치를사다무치니한접시밖에안됐다.다른반찬들도상을두번볼수가없어한상만봐놓고온식구가남편올때까지기다리곤했다.윤지엄마는쌀한가마니를사주고따로2만원을윤지손에쥐어주었다.콩나물한주먹이5원이니2만원은거의한달치생활비다.‘셋방살이’가흔하던시절‘한지붕두가족’의삶은고단하면서도정겹다.날선신자유주의적경쟁의식이고개를들기전,장년세대에선이웃과함께살아가야한다는정신이강했다.두가구여섯식구가같은대문을쓰며별다른마찰없이의좋게지냈다.다만여름이되면서양철지붕이달아올라더위를견디기힘든게문제였다.자주씻기라도해야하는데마당한가운데있는수도가목욕시설의전부였다.형편상매번목욕탕에갈수도없고방법을찾아야했다.두집남자가상의끝에불을끄고집전체를캄캄하게만든다음남자들이먼저수돗가로나가씻고나서신호를보내면여자들이나와씻는걸로하자고결론을냈다.그방법은생각보다괜찮아서여름내내그렇게샤워문제를해결했다.


하나의그리움,하나의사랑

윤지가슴저밑바닥에는하나의그리움이있다.그것은그리움이기도하고자책감이기도하다.대학2학년때그녀앞에나타난첫사랑‘M’.오페라를즐겨부르고,윤지를철저하게배려하는모습에서그녀는아버지의생환을떠올린다.2년간의아름답고순수했던사랑은결국이념문제가걸림돌이되어윤지는그를떠나보내고만다.윤지는삶이자신을배반할때마다,유학을핑계로그를매정하게내쳤던자신을떠올리며자책감에빠진다.그런상황에서집에돈한푼안가져다주고,아내에대한배려라곤눈곱만큼도찾아볼수없는남편은꿈속에서도세상탓만한다.“더러운세상!힘있는놈들세상이다이거지.없는놈들은다죽어라,이거아니냐고!그래,잘먹고잘살아라.”가장힘없는아내조차배려하지않는남자가,세상이자기를배려하지않는다고어리광을부리며술주정하는꼴이란.윤지는묵묵히상을치운뒤방을훔치고이부자리를깔아주었다.수도가본채부엌에있어물을길어다설거지를하는데겨울이라손이뼛속까지시렸다.M생각이고개를쳐들었다.그녀를세심하게배려하던그가그리웠다.그는천당에서지옥으로바로직행한윤지의모습을상상도못할것이다.프랑스에가있는줄알것이다.윤지는그리움과자책감으로가슴이터질것같았다.자상한아버지를떠올리면꼭그렇게가슴이아팠는데…….


만날사람은언제든만나게되어있다

유학도,M의기억도아득한일이되어버리고,윤지에게는그저아이들의엄마로살아갈현실만이남겨진다.대기업에다니는남편,부자엄마를둔그녀였지만삶은더할수없이곤궁했으니식재료도파장에떨이하는것들만사다먹었고,아이들옷도자신이처녀때입었던옷들을뜯어마련했다.그나마도재봉틀이없어손으로박음질해바지도만들고,윗도리도만들었다.막막하기만했던윤지의삶에드디어따스한햇살이비쳐드는일이찾아온다.늦으나마자신의의지로박사학위를받고,어엿하게강단에서게된것이다.돈도,남편도,자식도가져다줄수없는게행복이라는것을윤지는마흔넘어깨닫는다.엄마를위해,남편을위해,자식을위해자기행복을뒤로미루어왔던윤지가늦었지만자기힘으로자기삶을헤쳐나가는모습은퍽감동적이다.자아성취의행복도잠시,매사아내의의견을무시하고독단적으로결정하던남편은결국형제에게큰돈을투자했다가배신을당하고,설상가상IMF사태가터져일은걷잡을수없게흘러간다.이제와서남편이한다는말이그녀가이룬모든것을포기하고다망한사업체를맡아수습해달라는것이다.“위기에는여자가더강한법이야.옆에서무슨일이든열심히도와줄테니합심해회사한번살려보자고.살면서느낀일이지만당신에겐내게는없는특별한능력이있더라고.”아내를그렇게무시하던남편이윤지에게사정하는날이온것이다.윤지로선한번도해보지않은사업체운영이었지만친정재산의상당부분이들어간데다가족전체의운명이걸려있어할수없이그일을떠안는다.남편이말아먹은사업체를뒷수습하면서그녀가재확인한것은남편이생각보다더허술하고무책임한사람이었다는사실이다.그런사람에게삶을저당잡혀꿈도,사랑도,미래도모두포기했으니이보다억울한일이있을까.그런데이같은삶이과연윤지에게만해당되는것일까.이땅의대다수어머니들은여자라는운명에발목잡혀자기꿈을접고밑바닥의삶을살았다.
이명경작가의『달항아리』가이토록큰공감을불러일으키는것은이땅의어머니를대변해작가가그고통을구체적으로되살렸기때문이다.작가는‘업장’이라는말로써자신과그들의삶을위로한다.모든사태가업이니,전생에서서로가서로에게진빚을현생에서갚아가는‘업장소멸’의과정이었다는것이다.그렇게모든게업장소멸로마무리되는가운데그녀앞에운명처럼M이나타난다.모든게제자리를찾아간상황이도래한것이다.소설제목이된‘달항아리’는M이말해준그녀의이미지였다.“제가윤지씨더러달같다고한적있지요?그런데지금의윤지씨는달이라기보다무언가를가득담을수있는순백의달항아리같아요.”초로에접어든그녀는어느덧충만한달에서,비워도비워도더비워낼게없을만큼비워진달항아리가되어있었던것이다.이장면을통해만날사람은만나게되어있고겪을일은겪게되어있다는운명론을떠올리는것은어렵지않다.과연우리의인생이운명이라는거대한수레바퀴에구속된것인지,개인의자유의지로선택한결과일지,아니면시대의부산물일지논하는것은전적으로독자의몫이다.
다만작가는주인공윤지가굳건한의지와바른방법으로자아를성취하고운명처럼사랑을되찾음으로써고통은인간을무릎꿇리지못한다는사실을우리에게말해주고있다.『달항아리』는나이지긋한장년세대에게는위로가,젊은세대에게는어머니세대를이해할수있는열쇠가되어주는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