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라비, 셀라비 (정유정 시집)

셀라비, 셀라비 (정유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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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형이상적 사유와 아름다운 환상
정유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셀라비, 셀라비』(문학세계사 펴냄)가 출간됐다. 「유리병 속 오후」, 「내 안의 천사」, 「마음의 온도」, 「어떤 랩소디」, 「고요한 정원」 등 69편을 실었다. 초월을 향한 길트기, 무상과 포용의 길 걷기로 귀결되는 심상 풍경들을 떠올리며, 상실과 박탈감을 넘어서는 따뜻한 사랑의 회복과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을 노래한다. 해설을 통해 이태수 시인은 “형이상적 사유를 젖은 감성과 서정적인 언어에 녹여 부드럽고 아름답게 착색한다.”고 평가했다.
저자

정유정

1992년《현대문학》추천완료로등단했다.시집『보석을사면캄캄해진다』(2005),『아무도오지않았다』(2017)를펴냈다.대구문인협회와대구시인협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1
창1/창2/잠과꿈/마흔아홉,등불을켜다/붉은양귀비/바람이고요를품고/시월의집/유리병속오후/내안의천사/비워둔대답/사각의창/눈보라속붉게타오르는태양/십일월,슈베르트/눈사람을그리다/까만시간,하얀자유/아프지않은살/셀라비
2
웅크린봄/편지1/편지2/마음의온도/술병속편지/불소리2/상상은상상을낳고/하얀나무/강물/잔인한꽃/해바라기/부추꽃/유월/만취,만추/십일월1/십일월2/북해도5
3
LostParadise/어떤랩소디/비나무/고도/해변2/찌그러진달/의문,푸른색의/이집트의추억/속삭임/빛,그오후의흔적/비의정원/다시꽃에깃들다/푸른배경/스무살에/고요한정원/불소리5/깨끗하고하얗고예쁜발
4
끈끈한끈/뭔가분명히/상처/이율배반/미안하세요/얼음사람/별을따다준다는사람없지만/정지된밤을건너다/별이된이를찾아/죽은남자를위한파반/빛의모양/착각하기/그리운것들/물의모양/자폐2/미랭시/아버지는/나비,어느날의혼돈

출판사 서평

해설/이태수-형이상적사유와아름다운환상

정유정시인은형이상적形而上的인사유思惟를젖은감성과서정적인언어에녹여부드럽고아름답게착색한다.그정서의결과무늬들은환상幻想을떠받들고있으며,안팎으로번지고스미는‘꿈의세계’를가까이끌어당기거나그이상향理想鄕으로비상하려는마음에날개를단다.

시인은산중山中의집투명한유리벽안에서바깥을내다보거나내부로시선을돌리면서현실너머의신비神?와비의?義의세계를찾아나서며끊임없이꿈을꾼다.그꿈은지난날과지금,앞날에까지분방하게길항拮抗하지만,어둠과밝음을넘나들면서궁극적으로는초월을향한길트기,무상無常과포용의길걷기로귀결되는심상풍경心象風景에주어진다.

이서정적환상은푸른빛을띠거나무채색을동반하기도하고,끝내비어버리고말지라도바라는바의이데아를향해열리고있으며,상실喪失과박탈감을넘어서는따뜻한사랑의회복과그리운사람들과함께하고싶은소망을깊숙이끌어안는양상으로비치기도한다.

시인의일상은거의산중에서의삶에무게가실리며,낮보다는밤이안겨주는정서들로채워진다.이때문에그의시편들은일상적인삶의현장에천착하는경우가드물고,낮이든밤이든주로집에머무는동안으로제한되는세계와그공간에초점이맞춰져있다.사람들사이에서부대끼며살아가는현실보다는자연과의친화親和나그속에서의꿈꾸기와자기성찰自己省察에무게중심이주어져있기때문이다.

시인은자신이살고있는산중을심지어“길모퉁이의조그마한집”(「시월의집」)이라고여기는가하면,산중의자연을내면으로끌어들여온갖느낌과생각들을투영하고투사投射한다.이같은시선과시각은거대한자연(산)도그만큼친밀하게시인과밀착돼있다는뉘앙스로읽히게하며,그자연은있는그대로의자연이아니라시인의서정적자아自我가내면화(세계의자아화)하고주관화한공간이라할수있다.

시인이사는산중은“그집에울긋불긋그산이산다/시월그집에내가산다”(같은시)는구절이말해주듯,산이산의집이되고산이‘나’의집이되어주는‘자연’과‘나’의일치一致의세계로자리매김하고있다.게다가시월의집(산)에사는산은울긋불긋단풍들고‘나’도같은처지이므로하나로어우러지는일체감을보여주기도한다.

「창1」에서와같이시인은그산중집의창안에서바깥으로눈길을주면서“저사각의창밖으로/얼마나많은구름이지나갔을까요?/얼마나많은바람이/창을흔들며지나가고눈은또/얼마나포근히창가에머물었을까요?”라고,지나가는세월의무상無常과허무虛無를담담하게떠올린다.그흐르는세월은일정한거리를둔채지나가는구름과화자가까이창을흔들며지나가는바람,포근히창가에머물던눈이암시하듯이다채로운빛깔과무늬들로미만해있다.

또한창안으로는“푸르스름한새벽”이오고,햇살가득한한낮엔“노란졸음”이밀려오며,창에달이뜨고별이뜨는밤이오면“두꺼운커튼”을드리우고내면의길로깊숙이들게도된다.이같이시인은바깥세상의흐름을다각적으로바라보면서도내면성찰內面省察로눈길을돌려시간의흐름이아름답든그렇지않든창을비우고마음도비게하는허무나무상과마주한다.하지만이비움은좌절과좌초가아니라다시채우고일어서기위한예비동작이아닐수없다.

「창2-바다로가는길」에묘사되는바와같이,때로는바깥세상을“벚나무를거느린아름다운길”로바라보고,“모든길끝에는바다가있다고요”라는‘누군가’의말처럼그길을“열흘쯤가다보면바다에닿을“(같은시)수있으리라는희망의끈을놓지않고있다.말하자면,산중집의방에서창을통해바깥세상을끌어들이고,이상향理想鄕과도같은꿈의세계로나아가려는의지에불을지핀다고할수있다.

그러나‘창안’(현실)에서동경하는‘바다’(이상세계)는‘몽환夢幻의뜰’을벗어나고“또무엇이구름처럼흘러와/창안의나를불러줄”때라야이루어질수있다는전제를하고있어그동경과현실의괴리감을시사示唆한다.게다가현실보다비현실(환상)의세계,꿈의세계에서는동경의대상이여전히멀고소멸의숙명에놓여있다고하더라도한결아름답게그려진다는점을흘려보지말아야한다.

“한밤중꿈결에창밖을본다/알듯알듯희미한웃음남기고/가을달님이간다”로시작되는「잠과꿈」에서시인은창문앞에머뭇거리며서있는늙은솔(소나무)을자신(화자)의처지에비춰보기도하고“하늘은여전히멀다”고토로하면서

금빛달님아직도
서쪽으로간다
서로어여쁘다고말하던꽃들도
깊은잠에들었다
처연한달빛만방안에소복한데
환히열린꿈속얼굴
고쳐벤베갯머리에선명하다

-「잠과꿈」부분

고,기울고있는달의모습을신비와비의의대상으로미화한다.‘달’에‘금빛’이라는관을씌우고‘님’이라는존대어를쓰고있을뿐아니라,달이소멸을향해흘러가는모습을‘아직도’라고도수식한다.게다가서로가어여쁘다고예찬禮讚하던꽃(생명의절정)들이잠들었는데도처연한빛을비추며하염없이하늘(허공)에떠가는달을“환히열린꿈속얼굴”로신비화하고“고쳐벤베갯머리에선명하다”고치키고있다.

‘반달’모습역시‘금빛’으로바라본다.또한반달을‘고르게뛰는심장’으로인격人格을부여해격상시키는가하면,반달이떠오른그”덧없이아름다운시간”(「붉은양귀비」)이잠못이루게하고,시인(화자)의심경心境을한낮에본붉은양귀비가눈가에어른거리게한다고도그린다.더구나반달이촉발하는시인의간절한심경이양귀비꽃의모습으로전이轉移되고비약된다.

이제라도사람껍질벗고
꽃이되어볼까

발갛게달아오른달빛으로
양귀비꽃덮어주고

그빛깔처럼
무명천에자리한어여쁜나의꽃,

곱게감싸
아주먼시간으로보낸다

-「붉은양귀비」부분

시인은심지어사람껍질을벗고양귀비꽃으로변신하고싶어지며,달아오른달빛으로양귀비꽃을덮어주고곱게감싸안아아주먼시간으로보내게도된다.고르게뛰는심장인반달은이윽고시인이‘나의꽃’으로명명하는양귀비꽃과짝이되고하나가된다.

하지만이시를또다른시각으로들여다보면,붉은양귀비를여성성의상징象徵으로읽을수있다.여성이치르는생리현상과그피의빛깔을‘발갛게달아오른달빛’과‘양귀비꽃빛’에비유하는것으로보이기때문이다.그래서시인은“무명천에자리한어여쁜나의꽃”이라고시들지않은여성성을기꺼워하면서도그생리현상의끝에이르러“곱게감싸/아주먼시간으로보낸다”고아쉬워한다.그의시는이같이보는시각에따라달리볼수있는복합성과애매성을거느리는경우도적지않다.

지는해를배웅하고
다시올아침해를
행복하게기다릴것이다
투명한목소리로노래하며
서로머리카락을땋아주거나
꽃그늘에앉아사진을찍거나
샘물에발담그고가슴을포개어
심장이뛰는걸느낄것이다

새로운이타카를찾아떠났지만
앞선사람들은난폭한고함소리를남기고
신기루처럼사라졌다
이상을앞세워그들을따라나서지않았다면
아직도나는그곳에있을것이다
달빛도그곳에만머물러밤은
사뭇꿈같을것이다

-「LostParadise」부분

이시는어떤것이낙원이며,낙원을잃어버린비애가어떤것인지도말해준다.인간이추구하는낙원은이상향(이타카)이지만,시인에게그이상향은신기루같아서지금여기서는‘아득한옛꿈같은밤’이곧낙원과같을수도있다.하지만그런밤보다다시오는아침과투명한노래,서로머리카락을땋아주거나함께꽃그늘에앉으며,샘물에발담그고서로가슴포개어심장뛰는걸느끼는때가‘낙원의시간’이다.

시인은잃어버린낙원을향해산중의집사각의창안에서그너머의세계를부단히꿈꾸고있으며,그꿈은멈추지않을것같다.어쩌면현실이외롭고삭막하고비루鄙陋할수록더욱그럴는지도모른다.겸허하게꿈꾸는그세계는고요하고아름답고부드럽고따뜻한사랑의공간이며,그리운사람들과더불어가슴포개며살고싶은세상인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