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것은 낮은 자세로 (노두식 시집)

가는 것은 낮은 자세로 (노두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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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간 여행자’의 유장한 여정과 성찰의 언어
시간의 깊이, 사유의 넓이가 담긴 시편
노두식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하여 “시를 통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면서도 인간 회복에 이르는 아름답고 건강한 시 의식을 견지해 오고 있다.”(김병호, 「실존의 감수성과 공명」)는 언급은 여전히 타당하다. 이번 시집 『가는 것은 낮은 자세로』가 보여 주는 대로 그가 여전히 시간의 깊이를 깨달은 시간 여행자로서 대긍정의 사유를 보여 주는 한 그에게서 ‘아름답고 건강한 시 의식’을 발견하는 것은 소당연(所當然)에 가깝다. 무한히 연장된 시간과 공간을 사유하기. 연결과 접속과 합일을 긍정하기. 그리하여 ‘시간의 만등(萬燈)’에 올라타 산 자들의 시공과 죽은 자들의 시공을 합치고 뭉치고 주무르고 휘젓기. 노두식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와 같이 아주 특별한 시간 여행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시인의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 그가 새롭게 펼칠 또 다른 여행담을 기다리는 기쁨을 누려도 좋을 것이다.
저자

노두식

시인노두식은인천에서태어났다.제물포고등학교와경희대학교의과대학을다녔고동대학원에서한의학박사학위를받았다.1991년〈문학세계신인상〉으로데뷔하였고,『크레파스로그린사랑』(1984),『바리때의노래』(1986),『우리의빈가지위에』(1996),『꿈의잠』(2013),『마침내그노래』(2016),『분홍문신』(2018),『기억이선택한시간들』(2019),『기다리지않아도오는것』(2020)등의시집을펴냈다.그밖에『한국의약용식물』,『엄마건강하게키워주세요』,『한방방제감별조견표』,『재미있는한방이야기』,『노두식박사의생활한방114』등의저서가있다.

현재한국문인협회와현대시인협회회원이며,인천문학상을수상하였다.인천영제한의원원장으로일하면서경희대학교한의과대학외래교수로출강하고있다.

목차

1
어르고달래며----12
달팽이는뛰지않는다----14
공평한것은없다----15
하루를지켰다----16
밀에대하여----18
상상하기----19
진실에대하여----20
장미----22
중심잡기----24
마음에게----26
인연----27
근시안----28
당분간은----30
가을----32
염색을하면서----33
표의----34
제로----35
탈출----36

2
호숫가에서----40
쥐똥나무----42
은어----43
몸살----44
바람꽃----45
봉오리----46
닿았다----48
하찮은위로----50
나무늘보----52
알망드풍----53
회복----54
숨----56
회피가아니라----58
가을장미----59
여름이있었기에----60
명화----61
드로잉수업----62
음양----64
모든모꼬지에서떠나있을때----65

3
다도해에서----68
상시적질문----70
묻고싶다----72
매너리즘----73
일방동행----74
먼저시든다----76
친구에게----77
뼈----78
조탁----80
먼저해야할일----81
산책----82
밤----83
크로키----84
이유----85
심지----86
산----88
검은꽃----89
잊는법----90
낙서----92

4
가는것은낮은자세로----94
오늘내게온아침----96
바람----97
쇠비름----98
꿀벌에쏘이다----99
달음질치는별----100
이유가있다----102
중추절----103
감염----104
고드름----105
그녀----106
모르는일----107
이른낙화를보며----108
디아스포라----109
어쩔수없는일----110
재----111
용서----112
누이생각----113
아침신문을읽다가----114

┃해설┃김재홍·시간의깊이,사유의넓이----115

출판사 서평

시에대한한결같은열정으로시와함께시의길을쉬지않고걸어온노두식시인은올해로등단시력(詩歷)30년을맞게되었다.이미우리시의제단에바쳐진여덟권의시집에더해그가이번에새로이선보이는시집『가는것은낮은자세로』또한‘시간여행자’의유장한여정과성찰의언어를풍성하게담고있다는점에서귀한성과가아닐수없다.

노두식시인의아홉번째시집에서‘9’는완전수가아니라‘하나’가모자란숫자이다.완전은커녕부족한수이자결핍의수이다.십진법은그렇게우리를수비학적상상력으로이끈다.‘9’는절정을향해끓어오르는긴장과열망의숫자이며,첨두아치를향해가파른기울기를견디어내는영원히추락하지않는접선이다.그런점에서시간속에서시간의깊이를재는이번시집은시간의분수령인첨두아치를향한접선의기록이라고할수도있다.

인간에게시간이란절대적바탕이자존재의근거라는점에서벗어날수없는것이지만,그렇기때문에우리는시간의만등(萬燈)에올라타두드리고때리고던지고퉁기며살아간다.산자들은산자들대로삶의방식으로,죽은자들은죽은자들대로죽음의방식으로.시간을겪는그양상의무한성에존재의비의(秘義)가있다는듯이.

시간의보편성에반하여시간여행자의고유성을노두식시인에게허여해야한다면,일흔다섯편에이르는이번시집의세목들이낱낱이시간의어떤국면들을함축하고있기때문일것이다.그것도“마음의비밀은그자체로/비밀스러운존재의부분을이루”(「비밀에대하여」)듯이고유한시간의국면들을통해보편성의지평으로육박해들어가는섬세하고유장한사유의떨림이번뜩이기때문일터다.

그렇다면함께시간을겪는‘시간의존재’인우리는그가보여주는시간의깊이를가늠하고사유의넓이를음미해보는것만으로도‘고유한’시간을체험하는기쁨을누릴수있지않을까.

시간여행자는오늘도걷는다.마치걷는일이자신의본업이라도되는듯그는걷고또걷는다.그가걷는길의끝에는무엇이있는지,끝이있기나한것인지알수없다.하지만여행자는걷고또걷는다.어쩌면걸음이무한히반복된다는데시간여행자의본성이있다.여기서도시간의넓이는반복의무한성에연결되고,깊이또한반복의필연성에접속한다.시간여행자에게반복은무한이기도하며때문에필연적이기도하다.

어둠에서풀려난
강물의흐름이조금씩빨라지고
교각에걸린표지등이흐려지는때

맨흙길위의고요를밟아가면
어린풀들은납작한잠에서깨어나웃고
질척한발치에서는봄냄새가피어난다

걸음에여유를부리며비틀거리며
방패같은겉옷을벗어든다
의식없이지배되는의식이편안하다
마음의집을나서서무심히걸어도
길의끝은언제나희망으로올것을믿는일

몸의안팎을연한햇살에적셔
살갗의얕은곳에두루두루하루의새잎이돋아나고
간지러움속에초록빛긍정의호기가솟는
오늘은아침이석영알처럼반짝인다
-「산책」전문

여기“물수제비가강물위에서스스로미끄러지듯비상하는순간”(이시영)과같은시간여행자의합일의순간이있다.‘석영알’처럼반짝이는아침햇살에적셔‘살갗의얕은곳’에새잎이돋아나는순간이다.그러한아침은역시‘긍정의호기’가솟는다.그런날이라면걸어도걸어도고단하지않을것이며,“마음의집을나서서무심히걸어도/길의끝은언제나희망으로올것”이다.이런순간들(!)을위하여시간여행자는걷고또걷는지모른다.

그것은“이동은한장소에서다른장소로건너가게하는것이아니라그장소내에서위치를바꾸는것”이며,이러한“내재적인위치변화의모범적인예는사랑의둘안에있다.”(『비미학』)는바디우의통찰을연상케한다.일상속에서같은시각같은장소를거닒에도다른상념다른고뇌를안고걸을수밖에없지만,언제나‘길의끝’은희망으로올것이라믿는일,그것은‘방황과방향이하나라면불일치또한얼마든지합일의다른양상’일수있는이치와같다.그것은배반의항상성에도불구하고영원히꿈꾸는존재인인간의숙명과도같다.

그렇게시간여행자는오늘도“몸안팎을연한햇살에적셔”걷고또걷는다.“살갗의얕은곳에두루두루하루의새잎이돋아나고/간지러움속에초록빛긍정의호기가솟아나도록”걷는다.여행자는이렇게나날이걸어서희망의미래로나아간다.

그러나“물이되어도흐르지못하는일들이/모질지않기를그토록간구하였으나”(「쇠비름」),불행하게도아이들은“처마끝에매달려울고있”(「고드름」)다.시간여행자는다시걸어야한다.‘길의끝’까지걸어서다시희망을찾아야한다.

초승달신을삼아어스름을걷는다
갈대숲에
보랏빛강바람
우수수한숨지며먼산돌아눕고
눈에물안개서려
네모습젖는구나
너를찾아가는길보이지않는길
뜬걸음만총총

내마음의샛강
마른이삭마다맺혀있는이슬같은시간이
너의목소리로가사없는노래를부른다
-「누이생각」부분

이런노래,이런마음이있어시간여행자의걸음은무한히반복된다.그러므로‘길의끝은’없다.‘당분간’도‘흔들림’도‘그늘의쓴맛’도모두겪은여행자이지만,“윤기나던단발머리”누이의처음과끝이‘한뼘’에불과하다면노래를부를수밖에없는것이다.그러므로노래는영원히반복된다.

“낮게,살아야하는것”

낮음.우리에게“가는것은항상오는것보다낮은자세다”.노두식시인의전언처럼우리는‘낮게’태어나‘더욱낮은’곳으로가는존재들인지모른다.그것은‘가을’이“관목과이끼낀바위비스듬히기우는쪽으로”스며드는것과같고,‘빛의타래’가“쇠락하는잎끝에머물다가/바닥으로똑똑방울져떨어”지는것과같다.‘젊음’도‘사랑’도갈때는낮았다.

아직오늘은아니라고한다
여름몰래
관목과이끼낀바위비스듬히기우는쪽으로
가을이스며들고있다
시든열기가숲속을배회하고
후회의띠처럼서늘하게스쳐가는아쉬운시간이바쁘다
말간빛의타래가쇠락하는잎끝에머물다가
바닥으로똑똑방울져떨어진다
여기동작이느려진곁가지들의춤이
가사를잃은노래에얹혀있던
계절의마지막온기를끊어내고있다

가는것은항상오는것보다낮은자세다
젊음이그러했고사랑이그러했다
일어선것이엎드린것들을지운다

배경을흐리며어제의여름이슬쩍다가와머물다가
해짧은오후의그림자처럼자취를감춘다
초록은그리운것들속에깃들어한동안은
오히려짙어질것이다

그래도아직
오늘은아니라고오늘만큼은아닐거라고
여윈들풀이
뒤를돌아보고또돌아다본다
-「가는것은낮은자세로」전문

노두식시인의시세계에대하여“시를통해존재의의미와가치를고민하면서도인간회복에이르는아름답고건강한시의식을견지해오고있다.”(김병호,「실존의감수성과공명」)는언급은여전히타당하다.이번시집『가는것은낮은자세로』가보여주는대로그가여전히시간의깊이를깨달은시간여행자로서대긍정의사유를보여주는한그에게서‘아름답고건강한시의식’을발견하는것은소당연(所當然)에가깝다.

무한히연장된시간과공간을사유하기.연결과접속과합일을긍정하기.그리하여‘시간의만등(萬燈)’에올라타산자들의시공과죽은자들의시공을합치고뭉치고주무르고휘젓기.노두식시인의이번시집은이와같이아주특별한시간여행의기록이라고할수있다.그러하기에우리는시인의다음여행을기대하며,그가새롭게펼칠또다른여행담을기다리는기쁨을누려도좋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