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조 800수로 재탄생한 「목민심서牧民心書」
“백성은 땅으로써 농토를 삼건마는(民以土爲田) / 관리는 백성으로 전답을 삼는구나(吏以民爲田) / 정약용 목민심서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 글을 읽고서도 가슴이 안 떨리면 /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가 있겠는가 / 부패한 조선 후기를 압축해 놓은 글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임금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민심서』의 「호전」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자진해서 공개했다. “나는 경기도 양근군(현 남양주시)에 척박한 토지를 가지고 있다. 논이 70두락이요 한전(旱田)이 20일경(日耕)으로 모두 단지 1결(一結)이다”고 했다. 당시 1결의 세금은 쌀 3말씩을 거두었다. 그런데 “다산은 유배지서 눈으로 직접 봤다 / 아전이 재해당한 전답을 훔치는데 / 십 결서 육십 결까지 훔친 자도 있었네”라고 탐관오리들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목민심서』 「청심」에 “청렴이란 목민관의 기본 임무이며 모든 선의 원천이요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을 할 수 있는 자는 있지 않다(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가 있다. 이를 “청렴은 목민관의 기본적 업무이며 / 만선의 원천이고 만덕의 뿌리이다 / 청렴치 못한 자들은 수령될 수 없노라”라고 정격시조로 옮겼다.
금년은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서 저술(1818)한 공직자의 교과서인 『목민심서』가 세상에 나온 지 207년이 된다. 이 시조집은 다산학 전공자이자 청렴 교육 전문 교수인 단국대 김상홍(金相洪) 명예교수(81세)가 『목민심서』의 핵심을 정격시조 800수로 옮겨 재탄생시킨 것이다. 800수 모두 음수율이 43자 똑같다. 우리나라 고전을 연시조로 변주(變奏)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목민심서』의 세목(細目)과 주석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명언과 교훈 중에 본래의 뜻을 그대로 시조에다 옮겼다. 『목민심서』를 시조로 변주한 이유를 김 교수는 “조선의 정약용이 선명(善鳴)한 목민심서 / 시공을 초월하여 목민학 명저인데 / 서가(書架)서 잠만 자도록 놔둘 수가 없노라”고 했고, 황하에 맑은 물이 흐르길 기원하여 시조로 옮겼다고 밝혔다.
우리의 “고전을 연시조로 옮긴 건 효시라네 / 남들이 가지 않은 새길을 개척하니 / 겨레 시 시조학사에 새 장르를 열었다”고 했고, “불후의 목민심서 시조로 옮긴 뜻은 / 누구나 쉽게 읽고 실천을 원해서고 / 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서 “다산은 조선사람 조선시 즐겨 썼고 / 조선의 문학독립 선언서 시로 썼네 / 이제는 목민심서가 조선시가 되었다”고 했으며, “팔백 년 역사 가진 겨레 시 시조 문학 / 다 함께 천착하고 발전을 시킨다면 / 반드시 노벨 문학상 수상할 날 오리라”고 하여 시조의 발전을 염원했다.
우리 한민족의 고유 문학인 시조를 꽃피우고 경계와 신지평을 넓히려 탑을 쌓은 만큼 “공렴(公廉)한 나라 되어 부패가 사라지고 / 시조가 융성하고 사랑을 받는 데에 / 이 책이 작은 기여를 한다면은 좋겠네”라고 했다. 김 교수는 “다산의 목민심서 두 자로 요약하면 / 공정과 청렴함을 합해 논 공렴(公廉)이다 / 공렴은 나라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네”라고 했다.
이 책의 구성은 시조집이 반이고, 논문과 자료가 반이다. 『목민심서』의 순서대로 시조로 옮겼는데 앞에 서시와 서설이 있고 12강목 다음에 후세의 평가와 맺는말이 있어 모두 15장이다. 부록으로 논문인 「정약용의 목민심서 세계」와 자료인 「목민심서 260선」이 있다. 이 책은 김 교수의 한용운 문학상의 수상을 기념하여 펴낸 시조집으로 김 교수의 다산학 연구 저서로는 아홉 번째 책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임금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민심서』의 「호전」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자진해서 공개했다. “나는 경기도 양근군(현 남양주시)에 척박한 토지를 가지고 있다. 논이 70두락이요 한전(旱田)이 20일경(日耕)으로 모두 단지 1결(一結)이다”고 했다. 당시 1결의 세금은 쌀 3말씩을 거두었다. 그런데 “다산은 유배지서 눈으로 직접 봤다 / 아전이 재해당한 전답을 훔치는데 / 십 결서 육십 결까지 훔친 자도 있었네”라고 탐관오리들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목민심서』 「청심」에 “청렴이란 목민관의 기본 임무이며 모든 선의 원천이요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을 할 수 있는 자는 있지 않다(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가 있다. 이를 “청렴은 목민관의 기본적 업무이며 / 만선의 원천이고 만덕의 뿌리이다 / 청렴치 못한 자들은 수령될 수 없노라”라고 정격시조로 옮겼다.
금년은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서 저술(1818)한 공직자의 교과서인 『목민심서』가 세상에 나온 지 207년이 된다. 이 시조집은 다산학 전공자이자 청렴 교육 전문 교수인 단국대 김상홍(金相洪) 명예교수(81세)가 『목민심서』의 핵심을 정격시조 800수로 옮겨 재탄생시킨 것이다. 800수 모두 음수율이 43자 똑같다. 우리나라 고전을 연시조로 변주(變奏)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목민심서』의 세목(細目)과 주석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명언과 교훈 중에 본래의 뜻을 그대로 시조에다 옮겼다. 『목민심서』를 시조로 변주한 이유를 김 교수는 “조선의 정약용이 선명(善鳴)한 목민심서 / 시공을 초월하여 목민학 명저인데 / 서가(書架)서 잠만 자도록 놔둘 수가 없노라”고 했고, 황하에 맑은 물이 흐르길 기원하여 시조로 옮겼다고 밝혔다.
우리의 “고전을 연시조로 옮긴 건 효시라네 / 남들이 가지 않은 새길을 개척하니 / 겨레 시 시조학사에 새 장르를 열었다”고 했고, “불후의 목민심서 시조로 옮긴 뜻은 / 누구나 쉽게 읽고 실천을 원해서고 / 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서 “다산은 조선사람 조선시 즐겨 썼고 / 조선의 문학독립 선언서 시로 썼네 / 이제는 목민심서가 조선시가 되었다”고 했으며, “팔백 년 역사 가진 겨레 시 시조 문학 / 다 함께 천착하고 발전을 시킨다면 / 반드시 노벨 문학상 수상할 날 오리라”고 하여 시조의 발전을 염원했다.
우리 한민족의 고유 문학인 시조를 꽃피우고 경계와 신지평을 넓히려 탑을 쌓은 만큼 “공렴(公廉)한 나라 되어 부패가 사라지고 / 시조가 융성하고 사랑을 받는 데에 / 이 책이 작은 기여를 한다면은 좋겠네”라고 했다. 김 교수는 “다산의 목민심서 두 자로 요약하면 / 공정과 청렴함을 합해 논 공렴(公廉)이다 / 공렴은 나라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네”라고 했다.
이 책의 구성은 시조집이 반이고, 논문과 자료가 반이다. 『목민심서』의 순서대로 시조로 옮겼는데 앞에 서시와 서설이 있고 12강목 다음에 후세의 평가와 맺는말이 있어 모두 15장이다. 부록으로 논문인 「정약용의 목민심서 세계」와 자료인 「목민심서 260선」이 있다. 이 책은 김 교수의 한용운 문학상의 수상을 기념하여 펴낸 시조집으로 김 교수의 다산학 연구 저서로는 아홉 번째 책이다.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한용운문학상 수상 기념 시조집)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