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푸른 눈의 증인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5.18 푸른 눈의 증인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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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평화봉사단 외국인 청년, 광주민주항쟁을 마주하다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온 청년 폴 코트라이트는 광주민주항쟁이 있던 80년, 전남 나주 호혜원에서 한센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호혜원에서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좁은 방에서 달걀과 감자로 요리를 하고 음악을 듣던 평범한 청년은 의례적인 건강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광주민주항쟁을 마주하게 된다. 현지 국가의 정치적 행동에 개입을 금지하는 평화봉사단의 지침을 따를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에 저항할지 심한 갈등을 하다가 폴은 목숨을 걸고 산을 넘어 광주의 상황을 알리러 서울 미 대사관으로 향한다.
폴은 광주민주항쟁 기간 동안 목격한 내용을 끊임없이 기록했다. 당시 그 경험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기록은 엄청난 양의 메모가 되었고 기억을 모두 쏟아내 겨우 살아갈 수 있게 되자 그는 메모와 기억을 한편에 미룬 채 삶을 지속했다. 목격자로 그 자리에 존재해야 했던 그의 마음속에 짐으로 남아있던 기억과 메모는 40년이 지난 후에야 절제된 언어로 세상에 나왔다. 〈5.18 푸른 눈의 증인〉 에는 아주 짧은 기간 한 청년의 삶과 성격을 바꾸어 버린 강력했던 한국 현대사가 담겨있다.

"우리에겐 목소리가 없어.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주게.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게." 할머니는 두려움이 없는 눈으로 나를 뚫어질 듯 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나는 여기에 '목격하기 위해' 있었다. 할머니가 내게 분명한 임무를 주었다.
나는 그 할머니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40년이 지난 이제야, 그 책임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
저자

폴코트라이트

미국평화봉사단으로한국에파견되어1979년부터1981년까지전남나주의나환자촌에서봉사활동을했다.이후열대성질환과안과질환을전공하고공중보건분야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20년간이집트,에티오피아,남아프리카공화국,탄자니아에서근무했으며,탄자니아모시지역에아내수잔박사와함께킬리만자로안과센터를설립해운영하였다.250개가넘는의학논문을게재하였으며미국안과학회를비롯해실명예방분야에서독보적인업적을이룬사람에게수여하는다수의상을받았다.남아프리카공화국케이프타운대학의대겸임교수이자영국의실명예방전문NGO인사이트세이버(SightSavers)의트라코마예방사업의고문을맡고있으며현재는아내와함께미국샌디에이고에서살고있다.한국과는1981년부터깊은관계를이어오고있으며여러한국연구자들과공동연구를진행한바있다.2014년에는국제보건및국제개발협력전공자들을대상으로연세대학교에서‘현장연구와역학’단기코스를진행하였고,그외에도수차례의특강등을통해한국의후학양성에많은노력을기울였다.최근아프리카에서의트라코마퇴치에대한공로를인정받아영국여왕의초대를받기도했다.

목차

저자의말

지도

프롤로그

첫째날(5월14일수요일)
-서울의데모
둘째날(5월15일목요일)
-승자없는데모
셋째날(5월16일금요일)
-집으로가는길
넷째날(5월17일토요일)
-일상으로돌아가기
다섯째날(5월18일일요일)
-무성한소문들
여섯째날(5월19일월요일)
-무슨일이일어났을까
일곱째날(5월20일화요일)
-군인들의행진과마지막버스
여덟째날(5월21일수요일)
-물러서지않는사람들
아홉째날(5월22일목요일)
-항쟁의흔적들
열째날(5월23일금요일)
-우리는‘불순분자’
열한째날(5월24일토요일)
-시신안치실에서통역하다
열둘째날(5월25일일요일)
-산너머에는평화가있을까
열셋째날(5월26일월요일)
-서울로가다

에필로그

감사의말

부록

1.또다른증인,어느선교사의5.18일지
2.1980년광주를목격한외국인최초의

회고록

번역자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