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 원천석 시선 (개정판)

운곡 원천석 시선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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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1330~?)은 고려에 벼슬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고려왕조에 충성할 의무는 없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학식과 문장이 뛰어났지만, 진사가 되는 데 그쳤다. 고려 말에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강원도 치악산에 은거하여 제자들이나 가르치며 한평생을 보냈다. 그의 제자인 태종이 벼슬하기를 권하려 치악산까지 찾아왔지만, 그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숨으면서 끝까지 만나 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치악산 일대에는 그 자취들이 남아 있어, 그의 행적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산 속에 숨어 사는 것만으로 일생을 마치지는 않았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들을 그대로 기록하여, 후대의 역사적인 증언이 되게 하였다. 고려왕조의 창왕과 우왕이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핏줄이라는 이유 때문에 폐위되는 과정부터, 이성계 일파가 결국은 왕씨의 고려왕조를 폐하고 새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정하는 과정까지, 그는 자기가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1,144수의 시로 기록하였다. 시는 그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저자

원천석

원천석의본관은원주이며호는운곡(耘谷),자는자정(子正)이다.고려말에종부사령(宗簿寺令)을지낸원윤적(元允迪)의아들로1330년7월8일에태어났다.그의집안은강원도원주에기반을둔향리층이었고,아버지대에와서미관말직이나마비로소중앙정계에진출하게된다.
원천석은10세무렵에아버지를,14세에형천상(天常)을잃은것으로추정되며집안형편은어려웠던듯하다.그는24세되던1353년무렵부터치악산운곡에은거한것으로보인다.그러다가20대후반에군적에편입되자공부에정진하였고1360년에국자감시에급제하여군역에서면제된뒤에는다시운곡에은거하였다.그는자주강원도일대를여행하면서다수의기행시를남기기도하였으며승려들과도끊임없는교분을나누기도하였다.
원천석은여말선초를살다간지식인이었다.그렇지만그는어느왕조에서도벼슬길에나서지않았고원주치악산기슭에서은거하면서그인생을조용히마감하였다.이렇게현실의전면에나선적이없던원천석이었지만조선중기이후의문헌이나악부시에는그에대한관심이끊이지않고나타나있다.그것은원천석이고려의멸망과조선의건국이라는혼란과변혁의와중에서어떠한삶을살아갈것인가를진지하게생각했던인물중의한사람이었기때문이다.원천석은당시에조선건국을추진하는세력들에의해서저지른현실왜곡과불의한행위에분노하였고,나아가그시대의진실을후세에남기기위하여《야사(野史)》와원고(原稿)3권2책을남겼다.
그중에서도《야사》는그의자손이멸족을두려워하여불살라버렸다고하니,조선건국관정의비도덕적인행태를신랄하게서술한정도를추측으로나마짐작할수있다.또다른저술이3권2책의원고는집안에서보관되어내려오면서일부가부식되고일실되기도하였지만그의사후200여년이지나서세차례간행되었고한차례필사되었다.-〈원천석의생애와문학〉중에서

목차

[제1권]
ㆍ신묘년삼월에금강산으로가다가횡천에이르러_17
ㆍ갈풍역을지나다_18
ㆍ춘주에서_19
ㆍ매화가지끝에걸린달_20
ㆍ그림속의산_21
ㆍ남만에서들어온종이_22
ㆍ어진이불러들인이불_23
ㆍ나라에금주령이내렸는데제호조소리를듣다_24
ㆍ갑오년시월에회양으로가다가횡천에이르러벽에걸린시에차운하다_25
ㆍ초사흗날횡천을떠나면서_26
ㆍ열이튿날교주를떠나금성에이르다_27
ㆍ청양을지나다_28
ㆍ방산가는길에서_29
ㆍ연기나는집이하나도없어_30
ㆍ춘주신대학의교외별장에쓰다_32
ㆍ을미년칠월어느날춘성의두서생김생과안생이공부를끝내고고향으로돌아간다고여러서생들이시를지어송별하는데추(秋)자운을얻다_33
ㆍ형님께서보내주신시에차운하다_35
ㆍ말_36
ㆍ이름이군적에오르다_37
ㆍ즉사_39
ㆍ경자년정월십구일에딸아이를낳았는데,예쁘고도영리했다.올해5월십칠일에병으로죽었기에시를지어서곡한다_40
ㆍ조목감을곡하다_41
ㆍ송목사의화답을받고다시차운하다_42
ㆍ그윽한골짜기의굉대사가상원사주사굴서쪽봉우리에암자를새로짓고암자이름을무주암이라했는데그높고뛰어난경치를아름답게여겨시한수를지어서굉대사에게올리다_44
ㆍ동년인정도전이찾아와서지어준시에차운하다_45
ㆍ임기가차서서울로돌아가는송목사를배웅하다_47
ㆍ동년인김비가보내준시에차운하다_48
ㆍ조카식이보내온시에차운하다_49
ㆍ김매는늙은이의노래_52
ㆍ안사호집에모여몇몇사람이술잔을나누면서시한수를지어이선생에게보이다_55
ㆍ동년인허중원이시를보내왔으므로글자를나누어서운을삼아이십팔수를짓다_57
ㆍ춘성향교의여러대학들에게보내다_59
ㆍ나옹화상의〈운산도(雲山圖)〉에쓰다_61
ㆍ청평사_62
ㆍ읍선루_63

[제2권]
ㆍ〈삼소도〉에쓰다_67
ㆍ경술년초여름에회포를쓰다_68
ㆍ복사꽃 69
ㆍ구월오일에손님과술잔을나누다_70
ㆍ말_73
ㆍ생원김누에게약을청하다_74
ㆍ최안을에게받은시에차운하다_75
ㆍ춘주천전마을에묵다_77
ㆍ즉사_78
ㆍ여러분이화답한시에다시차운하다_79
ㆍ금성령으로부임하는아우자성을보내면서_82
ㆍ더위속에한가롭게읊다_83
ㆍ병진년윤구월에일본의여러선덕들이이곳에왔는데그총림의전형이우리나라의제도와비슷해서시한수를지어주다_84
ㆍ설자사가도경선사에게보낸시에차운하다_85
ㆍ곡계(谷溪)의시권에쓰다_86
ㆍ늦봄_87
ㆍ철원관북관정시에차운하다_88
ㆍ추석날선영에참배하다_89
ㆍ불경을베끼는이에게지어주다_90

[제3권]
ㆍ김해선달신맹경에게부치다_93
ㆍ홀아비로이십일년을지내고_94
ㆍ소암(笑巖)의시권에쓰다_95
ㆍ스스로읊다_96
ㆍ오도(悟道)고개를오르면서_97
ㆍ기생딸이떠나가자노파어미가슬피울다_98
ㆍ원신(元信)의시권에쓰다 99
ㆍ〈서방구품도〉가이뤄지기를원하는시_100
ㆍ배웅하다_101
ㆍ환희당당두의시에차운하다_102
ㆍ좌망_103
ㆍ세가르침이하나의이치일세_104
-유교_105
-도교_106
-불교_106
ㆍ명나라의복제도를따르게되었기에_108
ㆍ해동의두현인을찬양하다_109
ㆍ판삼사사_110
ㆍ무문전사의시권에쓰다_111
ㆍ새벽에일어나서읊다_112
ㆍ아야니서쪽강을건너다_113
ㆍ스스로읊다_114
ㆍ환희당대로의시에차운하다_115
ㆍ십오일날빗속에서읊다_116
ㆍ느낀바가있어_118
ㆍ아이들에게설상을받고_120
ㆍ엎드려들으니주상전하께서강화로옮기고원자께서즉위하셨다기에감회를읊다_121

[제4권]
ㆍ기사년정월설날아침에_125
ㆍ도통사최영장군이사형당했다는말을듣고탄식하다_126
ㆍ소나무를심다_129
ㆍ이달십오일에나라에서정창군을세워왕위에올리고전왕부자는신돈의자손이라하여폐위시켜서인으로삼았다는말을듣고_132
ㆍ나라에서명령하여전왕부자에게죽음을내리다_134
ㆍ꿈을적다_135

[제5권]
ㆍ두보의시집을읽고_141
ㆍ백성들을대신해서읊다_142
ㆍ목은상국이국화를보고시를지어보냈기에차운하다_143
ㆍ옛시를본받아짓다_144
ㆍ향학의여러서생들에게보내다_146
ㆍ나라이름을고쳐서조선이라고하다_147
ㆍ십이월삼십일_149
ㆍ새나라_150
ㆍ삼가〈금척을받든글〉과〈보록을받는어록〉을읽고경사롭게여겨찬양하다_152
ㆍ정이상이지은노래네곡을찬양하다_154
[부록]
ㆍ〈해설〉원천석의생애와문학_159
ㆍ原詩題目찾아보기_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