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 박순 시선 - 한국의 한시 24 (개정판)

사암 박순 시선 - 한국의 한시 24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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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암 박순은 명종 8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30여 년 동안 벼슬하면서 영의정을 10년 가까이 지낸 전형적인 관료 문인이다. 명나라 사신 장조가 그를 만나보고는, “송나라 인물에다 당나라 시풍을 지녔다”고 칭찬할 정도로, 그는 관료와 학자와 시인의 풍모를 아울러 지닌 인물이다. 영의정을 10년이나 지낸 뒤에 경치가 좋은 포천으로 물러나 산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살았으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한평생을 살았던 시인인 셈이다.
그는 화담 서경덕에게 글을 배워 율곡과 이기의 문제를 논하기도 하였으며, 동문수학하였던 초당 허엽과는 서인과 동인의 영수로 갈라져 당파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는 강직한 언론으로 외척 윤원형을 제거하면서 사림의 기반을 잡고 정계의 핵심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의 주변에 젊은 관료들이 모여들어 자연히 서인의 영수가 되었던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저자

사암박순

1523년(중종18년)10월박우(朴祐)와당악김씨의맏아들로나주에서태어났다.
1553년31세문과에응시하여≪중용≫을강론하고장원급제하였다.성균관전적(정6품)에임명되었다가,곧공조좌랑(정6품)으로옮겼다.
1561년39세봄에홍문관응교(정4품)에임명되었지만,5월에특명으로파직되어나주로돌아왔다.그때옥당에서임백령의시호를의논하였는데,사암이그를낮게평가하여‘소공(昭恭)’이라고올렸다가탄핵당했던것이다.12월에한산군수(종4품)에임명되었다.
1564년42세정월에홍문관직제학(정3품)으로옮겼다가,윤2월에통정대부승정원동부승지(정3품)로승진하였으며,통례대로좌승지(정3품)까지승진하였다.10월에이조참의(정3품)에임명되었다.
1565년43세정월에성균관대사성(정3품)ㆍ사간원대사간(정3품)에임명되었다.4월에문정왕후가세상을떠나자,요승보우의죄를논하여외딴섬으로유배보냈다.8월에는외척윤원형의죄를논하여시골로돌아가게하였다.겨울에사헌부대사헌(종2품)에임명되고,가선대부(종2품)에올랐으며,다시한성부우윤(종2품)에임명되었다.
1566년44세봄에동지중추부사(종2품)에임명되었다가,6월에다시부제학(정3품)과대사헌에임명되었다.이듬해에도이자리에두어번다시임명되었다.
1567년45세6월에예조참판(종2품)에임명되었다.
1568년46세명나라에서태감장조와행인구희직을명종의시제때문에사신으로보내자,접반사가되었다.
1572년50세봄부터겸직인대제학을사퇴하게해달라고청하였지만,임금이끝내허락하지않았다.7월에영의정이준경이세상을떠나자,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정1품)에올랐으며,겸직은계속하였다.8월에등극사로연경에갔다.
1579년57세2월에영의정(정1품)에올랐다.
1583년61세2월에경원의오랑캐니탕개가반란을일으키자,3월에많은인재들을추천하였으며,7월에병조판서를겸하였다.
1585년63세여름에스스로사퇴하고영중추부사가되었다가,홍문관수찬정여립의탄핵을받고영중추부사에서도해직되어용산으로돌아가쉬었다.
1586년64세가을에휴가를청해영평현초정으로목욕하러갔는데,임금이내관을보내술과호피를하사하였다.백운산시냇가에집을짓고살았으며,겨울에상소하여관직을사퇴하였다.
1587년65세임금이의원을보내치료하게하였으며,세차례나교지를내려불렀지만끝내올라오지않았다.
1589년67세7월백운산시냇가에서세상을떠났다.10월에종현산동쪽언덕에장사지냈다.

목차

〈칠언고시〉

어부사_17
감회가있어_18
길가의돌사람_19
명나라사신성헌의김효녀시에차운하다_21

〈오언절구〉

삼가강릉을살펴보고감회가있어짓다_25
효릉을고쳐쌓고서느낌이있어_26
청안현에서자다_27
낙엽_29
향림사스님에게드리다_30
영연대_31
초학대_32
스님의시축에쓰다_33
강가에서_35
봄제비_36
집에서기르는학_37
수진스님에게드리다_38
나그네가오다_39
닭을기르며장난삼아짓다_40
입으로부르다_41
이고장에범이많아서장난삼아짓다_42
취로정_43
백운산일원스님이과일두가지를보내주어시로답하다_44
윤상사가조와박을보내주어감사하다_45
귀화한오랑캐의집에서자다_47
산사람에게지어주다_48
박공에게지어주다_49
영평시냇가돌에쓰다_50
성연의시권가운데임석천의시에차운하다_51
지사황정욱이술을가지고들르다_52
납상정시에차운하다_53
우연히읊다_54

〈칠언절구〉

직장송대립의시에차운하다_57
견스님에게드리다_59
현등산으로돌아가는벗을배웅하다_60
남쪽으로돌아가는정계함을배웅하다_61
눈이온뒤에호당에서썰매를타고한강얼음위로내려가다_62
내신세를생각하며_64
스님에게드리다_65
안변부사양사언에게부치다_66
화주승에게드리다_67
남중에사는벗에게부치다_68
한산관아에서조카와손자들이보게부치다_69
매화가지를종이에싸서보냈기에_70
육호스님에게지어주다_71
집정원에서손님과함께술을마시다_72
가야금에쓰다_73
예전에살던산으로돌아가는조운백을배웅하다_74
연경에가는주청사김중회에게드리다_75
한쌍의소나무_76
호남관찰사로나가는정계함을배웅하다_77
그림에쓰다_78
연경으로가는좌윤정공을배웅하다_79
송사재의면앙정에삼십운을쓰다_81
단양가는길에서_87
길에서_88
보령가는길에서_89
낙화암_90
진잠에서국화를보다_91
진잠의단풍_92
회인가는길에서_93
청안에서동년박견룡을만나다_95
호당에서읊다_96
은대에숙직하면서동료의시에차운하다_97
도소주를마시다_98
판관고사렴만시_99
단구자이숭경진사가정원의과일을선사하여고마워하다_100
풍악으로돌아가는학상을배웅하다_101
학상비구에게드리다_102
풍악으로노닐러가는흡사에게드리다_103
휴정스님의시에차운하다_104
낙산사스님에게드리다_105
남쪽으로돌아가는조생에게지어주다_106
술마셨다고파직당한김종호에게_107
학한쌍을기르다_108
피리를배우던종이달아났기에_109
가생_110
책을읽고느낌이있어_111
송평사에게지어주다_112
옥상인께드리다_114
변스님에게드리다_116
정로를추억하며변스님편에부쳐서보여주다_117
우연히읊다_118
광릉으로돌아가는이정립을배웅하며_119
딸아이가꽃가지고노는모습을보고장난삼아짓다_120
단자_121
천연스님에게드리다_122
사위이영년에게보이다_123
천연스님에게《근사록》을드리다_124
느낌이있어짓다_125
노래를부른기생에게_126
중산대부혜강의〈절교론〉을읽고느낌이있어짓다_127
을축년시월에경연이중지되었다는소식을듣고느낌이있어짓다_129
회정상인의시권에서돌아가신중부눌재의시를보고느낌이있어삼가차운하다_130
파직되어남쪽고향으로돌아가는판관허진동을배웅하며_131
느낌이있어짓다_133
임금께숙배한뒤에입으로읊다_135
용산강가의집에서되는대로짓다_136
봄날의흥겨움_137
사은숙배한뒤에느낌이있어짓다_138
숲속의사당_139
호남으로돌아가는행사산인을배웅하다_140
숙배한뒤에영평으로돌아오다_141
살곳을정하다_142
종현산_144
보장산_145
불정산_146
돌위에이름이새겨져있어_147
초당에쓰다_148
벗에게답하다_149
감사가찰방을시켜수행하게하다_150
새해아침_151
김생에게지어주다_152
황지천에게삼가답하다_153
돌아오는길에야철쭉이한창이길래_154
용화산가는길에서_155
우연히읊다_156
능인의시축에쓰다_157
느낌이있어짓다_158
평구찰방에게지어주다_159
인삼을캐다_160
이가부러졌기에장난삼아짓다_161
산으로돌아오다_162
이장영이경차관으로찾아오다_163
조밥_164
감흥_165
나는거문고를탈줄모르지만_167
동지전날_168
천연이풍수지리를알아서_169
백옥봉만시_170
이양정벽에쓰다_171

〈오언율시〉

찰방김청이술을들고찾아와고마워하다_175
동지박이정만시_176
청풍현감으로가는남시보를배웅하다_178
아산으로가는안민학을배웅하다_180
쌍봉사로돌아가는설간상인을배웅하다_181
퇴계선생만시_183
이일재만시_184
단발령_186
명나라사신구희직의〈배기자묘〉시에차운하다_187
영평시냇가돌위에쓰다_189
산인에게지어주다_190
홍생에게지어주다_191

〈칠언율시〉

느낌이있어짓다_195
황경문의시에차운하다_196
이율곡만시_197
산마을민가에묵다_198
한강에서용산으로되돌아가다_199
연사의시에차운하여보내다_200
영평에서여러가지를읊다_202
우두정에머물러자다_203
경주부윤으로나가는허엽을배웅하다_204
연보_209
原詩題目찾아보기_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