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 최경창 시선

고죽 최경창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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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왕조가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16세기 중반에 시단(詩壇)에 일군의 시인이 등장하여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들이 바로 이달ㆍ최경창ㆍ백광훈의 삼당파(三唐派) 시인이고, 이들 외에도 고경명ㆍ임제 등이 등장하여 시사(詩詞)로서 일세를 풍미한다. 이달의 애상과 절망, 임제의 격정과 비분강대함, 백광훈의 우수와 비애, 그리고 최경창의 기개와 풍류 같은 시적 특질은 그 이면에 남도인들의 낭만적 정감을 깊숙이 담고 있으며, 기득권을 가진 서울 상층사회의 사람들에 대한 지방인으로서의 불평과 반항을 당시풍(唐詩風)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죽(孤竹)은 그의 호가 가진 내포를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벼랑 위의 눈서리 속에 묻혀 있는 외로운 대나무의 이미지는 견고하고 굽힐 줄 모르는 강인한 정신력의 인간형을 제시한다. 그에게는 이러한 대나무가 추운 겨울 속에 살지만 능히 추위를 오만하게 이기면서 살아가는 바로 그것 때문에 삶의 가치를 지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자신이 그렇게 살아갔으면 하는 삶의 바람직한 형상을 호(號)에 기탁하고 다시 시로 읊었다. 위의 시구는 직설적으로 그의 삶을 드러낸다. 그런데 강인하고 기개에 찬 그의 모습은 오히려 시의 내밀한 세계에 은밀하게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시는 간결하고 산뜻한 리듬과 시어를 구사하고 있고, 의상(意想)에 있어서는 나약함이나 방종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율시나 장시보다는 짧은 절구에 그의 장기를 보이는데 고죽에게 있어 짧은 시는 그의 세계를 표현하는 최상의 형식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삼당파의 특징이기도 하다.
- 〈기개와 풍류의 시인 고죽〉에서
저자

최경창

1539년,전라도영암에서태어났다.자는가운(嘉運)이고호는고죽(孤竹)이니,평안도병마절도사를지낸수인(守仁)의외아들로태어났다.백광훈과함께청련(靑蓮)이후백(李後白)에게글을배웠다.양응정(梁應鼎)의문하에도드나들었다.진사에합격하였을무렵에율곡이이ㆍ구봉송익필ㆍ동고최립등의시인들과무이동에서시를주고받으며놀았으므로,세상사람들이팔문장(八文章)이라고불렀다.또송강정철ㆍ만죽서익등의명사들과삼청동에모여놀았으므로,세상사람들이이십팔숙(二十八宿)이라고불렀다.
문과에급제했고,북도평사(北道評事,정6품)에임명되어군막에부임하였다.여기서홍랑(洪娘)이라는기생을사랑했는데,군막안에까지따라다녔다.봄에최경창이서울로돌아오게되자,홍랑이쌍성까지따라와서헤어졌다.돌아오는길에함관령에이르자,날은저물고비가어둡게내렸다.홍랑이노래한장을지어서최경창에게보내고는,소식이서로끊어졌다.
1575년,최경창의병이깊어졌다.봄부터겨울까지침상과이불을떠나지못하였다.홍랑이그소식을듣고는그날로길을떠났는데,일곱날밤낮이걸려서야서울에이르렀다.그때에는양계(兩界)사람들의서울출입을금한데다마침인순대비의국상을만났으므로,비록국상이지나가긴했지만평상시와같지않았기에,이들의일이사람들의입에오르내리게되었다.그래서최경창은벼슬을내어놓았고,이듬해여름에홍랑도자기고향으로돌아갔다.
1576년,명나라에사신으로다녀왔다.전라도영광군수(종4품)로부임하였다가벼슬을떠나고향으로돌아갔다.이뒤로도대동찰방(종6품)을거쳐종성부사(종3품)가되었지만,품계를뛰어넘은임명과참소때문에그만두게되었다.최경창이당시에재상이었던이산해와처음에는친밀하게지냈는데,그의마음이공평치못한것을알고는교유를끊었다.그래서바깥고을로만떠돌아다니게되었다.삼당시인이남원에서광한루시회로모이고대동강에서부벽루시회로모였다.젊은시절에는주로봉은사에서모여시를지으며놀았다.1583년,성균관직강에임명되어서울고올라오다가,경성객관에서죽었다.

목차

[오언절구(五言絶句)]ㆍ11

흰모시치마ㆍ13
안악으로좌천되는윤자승을보내면서ㆍ14
봉은사스님의두루마리에다ㆍ15
을묘왜변ㆍ16
남산에올라ㆍ17
광탄에서서울로가는이선길과헤어지며ㆍ18
고봉의산속서재ㆍ19
그림을보며ㆍ20
용천관에서ㆍ21
초나라곡조ㆍ22
겨울날의시름을쓰다ㆍ23
교하원님에게게를구하는시를보내다ㆍ24
옛무덤ㆍ25
신평사와다시헤어지며ㆍ26
농가ㆍ27
청송당에쓰다ㆍ28
스님의두루마리에다ㆍ29
중양절ㆍ30
불사약을구한다지만ㆍ31
스님에게부치다ㆍ32
[칠언절구(七言絶句)ㆍ33]
대은암ㆍ35
무릉계곡ㆍ36
사명을받고함경도로가는정철에게ㆍ37
봉은사스님의시축에다ㆍ38
삼십년만에보운스님을만나ㆍ39
무릉계곡에서ㆍ40
성진상좌스님에게부치다ㆍ41
행사스님에게주다ㆍ42
변방싸움터에서ㆍ43
왕소군의원망ㆍ44
헤어지면서ㆍ45
버들개지ㆍ48
낙하에서절구2수ㆍ49
평양에서백광홍의관서별곡을들으며ㆍ50
양조의사당을지나며ㆍ51
천단2수ㆍ53
고죽성ㆍ55
연산가는길에서ㆍ56
대동강누선에시를쓰다ㆍ57
연광정시를이순과입지에게보이다ㆍ58
제목도없이ㆍ59
영월루에서ㆍ60
성진스님께ㆍ61
봉은사에서배타고돌아오며ㆍ62
가을날여관에서ㆍ63
양주성목사에게부치다ㆍ64
강가의다락에서ㆍ65
절간벽에다ㆍ66
수종사에서배타고돌아오며스님에게ㆍ67
부여에서옛날을생각하며ㆍ68
[오언율시(五言律詩)ㆍ69]
옥봉의죽음을슬펴하며ㆍ71
진진사와헤어지며ㆍ73
북으로돌아가는이익지편에박민헌관찰사에게부치다ㆍ74
여양역에서ㆍ75
칠가령에서입춘을맞으며ㆍ76
조천궁ㆍ77
중양절을지내고나서ㆍ79
임금이제목을내려지은시다듬이질ㆍ80
괴산으로부임하는조원을보내며ㆍ81
금성객관에다ㆍ83
황폐한절ㆍ85
봉은사스님의시축에다ㆍ86
말미를얻어서울에올라오다ㆍ87
무이동ㆍ89
쌀을보내준벗에게고마워하며ㆍ90
[칠언율시(七言律詩)ㆍ91]
쌍계사스님의시축에다포은의시에차운하여짓다ㆍ93
서울을떠나고봉관에서자며벽위의시에차운하다ㆍ94
장사로가는이익지를보내며ㆍ95
길주다락에서ㆍ97
경렴당시에차운하다ㆍ98
[오언고시(五言古詩)ㆍ101]
밤알줍기ㆍ103
새벽서리ㆍ104
우박ㆍ106
도연명의확도(穫稻)시에차운하여그뜻을넓혀쓰다ㆍ109
서리내린뒤에새싹이ㆍ111
느낀바있어정철에게ㆍ113
호랑이새끼를얻어ㆍ121
산속ㆍ122
[칠언고시(七言古詩)ㆍ123]
헤어지며ㆍ125
버들가지를꺾어서ㆍ126
[부록ㆍ127]
기개와풍류의시인고죽(孤竹)/安大會ㆍ129
연보ㆍ136
原詩題目찾아보기ㆍ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