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제현(1287~1367)은 개경(開京)에서 검교정승 문정공 이진(李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의연한 기상과 뛰어난 풍모를 지녔고, 학문에 열중하여 1301년(15세)에 성균시와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당시 고시관이었던 권부(權溥)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1303년(17세), 권무봉선고판관, 연경궁녹사로 벼슬길에 올라 1357년(71세) 정승 자리를 그만두고 치사할 때까지 54년 동안 일곱 임금을 섬기면서 조정의 벼슬을 두루 거쳤고, 정승의 자리에 네 번이나 오른 국가의 동량이었다.
1342년(56세)에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있으면서 《역옹패설》을 지었다. 그는 사학(史學)에도 남달리 뛰어났다. 1346년(60세)에, 충목왕에게 전문을 올려 서연 강설을 사직하고 《효행록》(孝行錄)을 엮었다. 또 왕명에 따라 민지가 찬수한 《편년강목》(編年綱目) 중 빠진 것을 다시 찬정하였으며, 충렬ㆍ충선ㆍ충숙왕 삼대에 관한 실록을 찬수하도록 명을 받았다. 1357년(71세)에 치사하고 돌아온 이제현은 그의 사저에서 국사를 편찬하게 되니, 사관(史官)과 삼관(三館)이 모두 그곳에 모여 협력하였다. 《금경록》(金鏡錄)도 이때 편찬된 것이다.
-류풍연 ‘이제현, 삼천 년의 제일대가’ 중에서
1342년(56세)에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있으면서 《역옹패설》을 지었다. 그는 사학(史學)에도 남달리 뛰어났다. 1346년(60세)에, 충목왕에게 전문을 올려 서연 강설을 사직하고 《효행록》(孝行錄)을 엮었다. 또 왕명에 따라 민지가 찬수한 《편년강목》(編年綱目) 중 빠진 것을 다시 찬정하였으며, 충렬ㆍ충선ㆍ충숙왕 삼대에 관한 실록을 찬수하도록 명을 받았다. 1357년(71세)에 치사하고 돌아온 이제현은 그의 사저에서 국사를 편찬하게 되니, 사관(史官)과 삼관(三館)이 모두 그곳에 모여 협력하였다. 《금경록》(金鏡錄)도 이때 편찬된 것이다.
-류풍연 ‘이제현, 삼천 년의 제일대가’ 중에서
익재 이제현 시선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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