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임진왜란 전후로 평민들이 자아에 대해 눈을 뜨면서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 ‘풍월향도’라고 불렀던 이름 그대로, 민요나 부르면서 자기들의 한을 삭여야 했던 상두꾼들이 풍월을 읊었던 것이다. 그때까진 시대를 앞서 살았던 한두 명의 평민들이 한시를 지었지만, 최기남의 서당에서 평민 자제들이 문학을 배운 뒤로는 많은 평민 시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홍세태의 제자인 정래교ㆍ정민교 형제는 정후교와 더불어 삼정(三鄭)으로 널리 알려졌다.
정래교가 지은 시는 호탕하고도 넓어서 시인의 태도가 있었다. 비분강개한 성조의 시가 많아서, 마치 연(燕)ㆍ조(趙)에서 축(筑)을 두들기던 선비들과 위아래를 다투는 듯했다. 대개 그 시의 연원은 도장에게서 나왔으며, 천기(天機)를 얻은 것이 많다. 그 가슴속에 참으로 외물(外物)에 끌림이 있어 시를 좋아하지 않고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성취한 것이 능히 이와 같았던 것이다.
동생 정민교가 지은 시와 문장들은 글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자주 칭찬을 들었다. 양반집 자제들이 다투어 그와 사귀려 들었고, 시정에 묻혔지만 재주와 뜻을 품을 자들이 그를 따랐다. 폐백을 들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또한 수십 명이나 되었다.
판서 윤공(尹公)이 평양감사가 되어 나갈 때에, 그로 하여금 해세(海稅)를 받게 했다. 그러나 마침 흉년이 들었다. 그는 어부들이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울며 비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슬프게 여겼다. 그래서 하나도 따지지 않고,빈 자루만 늘어뜨린 채 돌아왔다. 사사로운 이권은 절대로 구하지 않았으며, 잘못된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서서 다투었다.
정래교가 지은 시는 호탕하고도 넓어서 시인의 태도가 있었다. 비분강개한 성조의 시가 많아서, 마치 연(燕)ㆍ조(趙)에서 축(筑)을 두들기던 선비들과 위아래를 다투는 듯했다. 대개 그 시의 연원은 도장에게서 나왔으며, 천기(天機)를 얻은 것이 많다. 그 가슴속에 참으로 외물(外物)에 끌림이 있어 시를 좋아하지 않고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성취한 것이 능히 이와 같았던 것이다.
동생 정민교가 지은 시와 문장들은 글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자주 칭찬을 들었다. 양반집 자제들이 다투어 그와 사귀려 들었고, 시정에 묻혔지만 재주와 뜻을 품을 자들이 그를 따랐다. 폐백을 들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또한 수십 명이나 되었다.
판서 윤공(尹公)이 평양감사가 되어 나갈 때에, 그로 하여금 해세(海稅)를 받게 했다. 그러나 마침 흉년이 들었다. 그는 어부들이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울며 비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슬프게 여겼다. 그래서 하나도 따지지 않고,빈 자루만 늘어뜨린 채 돌아왔다. 사사로운 이권은 절대로 구하지 않았으며, 잘못된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서서 다투었다.
정내교ㆍ정민교 시선 (개정증보판 2 판)
$1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