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내교ㆍ정민교 시선 (개정증보판 2 판)

정내교ㆍ정민교 시선 (개정증보판 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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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임진왜란 전후로 평민들이 자아에 대해 눈을 뜨면서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 ‘풍월향도’라고 불렀던 이름 그대로, 민요나 부르면서 자기들의 한을 삭여야 했던 상두꾼들이 풍월을 읊었던 것이다. 그때까진 시대를 앞서 살았던 한두 명의 평민들이 한시를 지었지만, 최기남의 서당에서 평민 자제들이 문학을 배운 뒤로는 많은 평민 시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홍세태의 제자인 정래교ㆍ정민교 형제는 정후교와 더불어 삼정(三鄭)으로 널리 알려졌다.
정래교가 지은 시는 호탕하고도 넓어서 시인의 태도가 있었다. 비분강개한 성조의 시가 많아서, 마치 연(燕)ㆍ조(趙)에서 축(筑)을 두들기던 선비들과 위아래를 다투는 듯했다. 대개 그 시의 연원은 도장에게서 나왔으며, 천기(天機)를 얻은 것이 많다. 그 가슴속에 참으로 외물(外物)에 끌림이 있어 시를 좋아하지 않고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성취한 것이 능히 이와 같았던 것이다.
동생 정민교가 지은 시와 문장들은 글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자주 칭찬을 들었다. 양반집 자제들이 다투어 그와 사귀려 들었고, 시정에 묻혔지만 재주와 뜻을 품을 자들이 그를 따랐다. 폐백을 들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또한 수십 명이나 되었다.
판서 윤공(尹公)이 평양감사가 되어 나갈 때에, 그로 하여금 해세(海稅)를 받게 했다. 그러나 마침 흉년이 들었다. 그는 어부들이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울며 비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슬프게 여겼다. 그래서 하나도 따지지 않고,빈 자루만 늘어뜨린 채 돌아왔다. 사사로운 이권은 절대로 구하지 않았으며, 잘못된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서서 다투었다.
저자

정내교,정민교

정윤경(鄭潤卿)이있었으니,이름은來僑(내교:1681-1757)이다.당시의학사대부들이그와가깝게사귀며,집으로데려와그자제들을가르치게했다.그의사람됨이말끔해서마치여윈학같았다.그의얼굴을바라보면,그가시인이라는것을알수있었다.
그러나매우가난해서집에는바람벽만썰렁하니둘려있었다.시사(詩社)의여러벗들은술이생길때마다반드시그를불렀다.그는실컷들이마셔자기주량을다채웠다.흐더분히취한뒤에라야비로소운을냈는데,높직이걸터앉아남보다먼저읊었다.

목차

머리말

[정내교시선]
ㆍ청량리_13
ㆍ강마을_14
ㆍ봉은사_15
ㆍ유하선생방아타령에화답하여_16
ㆍ벗을찾아보고돌아오는길에_18
ㆍ시를아무리배운들_19
ㆍ유하선생과헤어지며_20
ㆍ남쪽으로떠나시는아버님을과천까지모시고갔다가_21
ㆍ소까지팔게될까봐_22
ㆍ두아우에게_23
ㆍ물정에너무어두워라_25
ㆍ정후교를일본으로보내며_26
ㆍ감목관이되어울산으로떠나는유하선생께_27
ㆍ성환주막에서_28
ㆍ푸닥거리_30
ㆍ늙은소_32
ㆍ농가의한탄_33
ㆍ삼연선생을곡하며_35
ㆍ벼타작_36
ㆍ갈원촌에서_37
ㆍ쌀값이나이야기하게되다니_38
ㆍ입춘날아우가오길기다리며_39
ㆍ입춘날누이에게_40
ㆍ석가봉과지장봉_41
ㆍ관가문이얼마나높던지_42
ㆍ푸줏간고기를싼값에가져오라니_43
ㆍ아우에게_44
ㆍ은천이씨의별장_45
ㆍ화분에심겨진국화_47
ㆍ농부이야길들으며_48
ㆍ번화한한양거리_49
ㆍ아직열흘도안됐는데_51
ㆍ어디엔들즐거움이있으랴_52
ㆍ청풍당입춘대길_54
ㆍ서울구석에서머리숙이고살기가_55
ㆍ먼저죽은아우를그리워하며_57
ㆍ그누가욕심도잊은사람이던가_58
ㆍ눈보라_59
ㆍ배가고파말을팔고서_61

[정민교시선]
ㆍ여러선배께_65
ㆍ형님이농사짓는다니까흉년이들어_66
ㆍ새벽에임진나루를건너며_67
ㆍ안릉을떠나조산리선촌을향하며_68
ㆍ우산에세금을걷으러왔다가_69
ㆍ세금내기가억울하다기에_70
ㆍ갓난아기까지도군대에충원하다니_71
ㆍ순찰사께드리다_74
ㆍ형님께_75
ㆍ삼년상을마치고어버이묘를떠나며_77
ㆍ가촌을지나며_78
ㆍ나를기다렸다가_79
ㆍ딸아이_80
ㆍ순찰사께드리다_81
ㆍ작은형님과헤어지고돌아오다가_82

[부록]
ㆍ정내교ㆍ정민교형제의사회시에대하여_85
ㆍ정내교의《완암집》〈서〉_98
ㆍ정민교전_101
ㆍ原詩題目찾아보기_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