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소요당 박하담은 1516년(중종 11) 생원시 합격 후 현량과에 피천되었으나, 연속되는 사화로 출사 뜻을 접고 운문산 아래 흐르는 동창천 눌연 위에 소요당을 지어 생을 마쳤다. 자칫 풍류로 여생을 보낸 것 같지만, 산적한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청도가 낳은 명현으로 추앙받아 왔다. 소요당이 보여 준 향음주례와 사창에 대한 관심이 향현사鄕賢祠라는 사당으로 숭배되다가, 1577년(선조 10)에 청도 군수 황응규가 향현사를 이건하면서 선암서원仙巖書院 향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사당이 훼철된 데다가, 종가와 종택 또한 제대로 전승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던 차에, 소요당 박하담 종가가 경북의 종가 시리즈 사업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허물어져 가는 오늘날 종가 문제가 처하여진 사례의 하나로 점검해 보는 의미까지 담으려 했다.
청도 소요당 박하담 종가 (솔바람 맑은 물에 갓끈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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