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프랑스 국가 박사에서 동백림사건의 사형수가 되기까지
한 지식인의 인생 역정
한 지식인의 인생 역정
이 책은 저자의 사적인 회고록이 아니다. 곧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연관 속에서 저자가 느꼈던 것, 사색한 내용을 정리한 게 주 내용이고, 그 사이사이에 자신의 일상사와 신변잡기를 끼워 넣어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자기 성찰적’ 기록이다.
91세의 저자는, 숨 쉬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거의 본인이 살았던 역사를 다시 관조해 보고 싶어 어렵사리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곧 저자에게 있어 이 회고록은, 미래사의 기본은 과거사에 기록되어 있고, 그래서 역사 속에는 의미와 상징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고체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자식 세대, 손자세대, 곧 지금의 한국을 짊어지고 있는 청장년들에게 남기는 ‘기억의 전달’이다.
유년 시절을 식민종주국 일본에서 보낸 저자는 곧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 혼란은 따돌림(이지메)과 차별을 당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착근된 중층인격으로 구조화되었고, 구체적으로는 그의 내면에 조선인이라는 자각과 함께 일본화된, 모순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 말 미군의 도쿄 공습이 일상화되자 저자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귀환했다. 그러나 총독부는 ‘내선일체’라는 허울 아래 창씨개명, 일본어 강제사용, 자원·식량 수탈, 징용·징병, 종군위안부 강제 송출, 각급 학교의 군국화 교육 등 가혹한 식민정책을 폈다. 소년 정하룡은, 총독부가 바라던 그러한 이중적 ‘황국 소년’ 교육에 힘없이 던져진 것이다.
해방과 함께 한반도는 상충하는 이데올로기의 두 국가가 탄생하는 냉전 구조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곧 이러한 상황을 전복하려는 시도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군인은 물론 수많은 남북 시민의 이유 없는 죽음을 낳았다. ‘휴전’이라는 엉거주춤한 형태로 전쟁이 끝났지만, 한반도의 모든 생명체는 육체와 정신의 궁핍과 허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대 지식인들의 허무적 ‘풍조’였던 카뮈의 니힐리즘에 대학생 정하룡이 발을 디딘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니힐리즘은 현상의 해결을 회피하거나 미룰 뿐이었고, 더하여 집권 이승만 정부는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로 온 사회를 옥죄었다. 도피일까, 무지개를 찾아서일까? 저자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을 1년 앞두고 숨 막히는 이승만 독재와 니힐리즘에 기댄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당시 유럽은 2차 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인간을 중심에 세우는 휴머니즘이 만개하여 있었다. 냉전을 뒷받침하던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었고,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이 모두에 앞서 강조되는 실존주의가 풍미하였다. 그 전선에 장 폴 사르트르가 우뚝 서 있었고, 저자도 실존주의를 자기 사고의 중심으로 삼았다.
저자는 프랑스 대학의 입학을 준비하던 시절, 프랑스 혁명의 요체인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배웠고, 관용의 문화를 체득했다. 이렇게 쌓인 그의 인문학적 소양은, 사고는 유연하게, 그러나 행동은 과감하도록 인도했다. 그리고 사고에서 실천으로 이행해야 하는 이 ‘앙가주망’은 저자와 함께한 재불 유학생들의 공유 가치로 착근했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만난 모리스 뒤베르제 교수는 저자의 학문적 방향과 주제를 잡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뒤베르제 교수의 권유와 지도로 김일성의 리더십을 분석한 석사 논문을, 이승만 정권의 정당 체제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시앙스포 시절에 깊이 교유한 프랑스인 교수와 동창들은 후일 저자가 동백림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막강한 동맹군이 되었다. 이는 유럽의 68혁명의 영향이라고 보았다.
회고록에 등장하는, 1950년대 후반의 프랑스 유학생은 대부분 유복한 가정의 서울대 출신이었다. 그들은 남북 분단 하에서 가난에 찌든 조국의 현실에 대해 애잔함을 넘어 어떻게든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데 한 역할이라도 하려고 했다. 선택받은 엘리트의 성찰적 사고였다. 자연 고민과 모색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중립주의, 사민주의의 개념을 포괄하는 ‘중도주의’에 의견을 모았다.
중도주의는, 남한의 후진성 탈피와 자유민주주의의 병존, 실질적 자유와 형식적 자유의 모순적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토론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당시 남북의 극단적 이데올로기 대립과 이질화는 민족 공동체의 평화공존을 위한 합리적 사고체계조차 범죄시하는 상황이었다.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의 극단 사이에서 중립, 중간, 중도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를 돌파해보자고 한 첫걸음이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 방문이었고, 평양여행이었다.
1967년 중앙정보부는 프랑스와 독일에 유학하고 귀국하였거나 현지에 남아 활동 중인 사람 2백여 명을 간첩 혐의로 구속, 재판에 넘겼다. 정하룡도 당시 경희대 교수로 재직 중 구속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중앙정보부가 관련자 다수를 프랑스와 독일에서 강제 납치해왔기 때문에 영토 주권을 유린당한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항의로 박 정권은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정하룡에 대해서도 프랑스 정부와 언론, 시민사회의 항의와 탄원, 석방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실존주의의 거성 장 폴 사르트르, 시몬느 보부아르,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랑소아 모리악, 영화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세계적인 사회학자 모리스 뒤베르제, 전 프랑스 총리 에드가르 포르와 레이몽 바르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과 정치인들이 이 대열에 참여했다.
프랑스 지성들의 항의운동으로 저자는 사형에서 감형되어 무기수로, 15년 장기수로 3년 반의 감옥생활을 하고는 1970년 말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석방 후 그의 삶은 학자로서의 꿈을 박탈당한, 경세가로서의 포부와 구상이 좌절된 반쪽짜리 생활인의 삶이었으니, 이 여벌의 삶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었다.
젊은 날의 자아실현을 향한 고난의 행군이건, 그 패배와 좌절 이후 얻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건, 이 회고록은 한편의 장엄한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혈기방장했던 젊은 날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91세 노년의 회상과 슬기로 찬찬히 풀어낸 저자는, 이 로드무비의 주인공이자 조연이고, 연출자이다. 이 로드무비는 이렇게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역사의 의미는 미래에서 결정되지만, 역사의 정신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바로, 절대적으로 ‘지금’입니다. 내일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할까? 그것이 ‘지금’이라는 시대의 의미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91세의 저자는, 숨 쉬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거의 본인이 살았던 역사를 다시 관조해 보고 싶어 어렵사리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곧 저자에게 있어 이 회고록은, 미래사의 기본은 과거사에 기록되어 있고, 그래서 역사 속에는 의미와 상징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고체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자식 세대, 손자세대, 곧 지금의 한국을 짊어지고 있는 청장년들에게 남기는 ‘기억의 전달’이다.
유년 시절을 식민종주국 일본에서 보낸 저자는 곧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 혼란은 따돌림(이지메)과 차별을 당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착근된 중층인격으로 구조화되었고, 구체적으로는 그의 내면에 조선인이라는 자각과 함께 일본화된, 모순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 말 미군의 도쿄 공습이 일상화되자 저자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귀환했다. 그러나 총독부는 ‘내선일체’라는 허울 아래 창씨개명, 일본어 강제사용, 자원·식량 수탈, 징용·징병, 종군위안부 강제 송출, 각급 학교의 군국화 교육 등 가혹한 식민정책을 폈다. 소년 정하룡은, 총독부가 바라던 그러한 이중적 ‘황국 소년’ 교육에 힘없이 던져진 것이다.
해방과 함께 한반도는 상충하는 이데올로기의 두 국가가 탄생하는 냉전 구조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곧 이러한 상황을 전복하려는 시도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군인은 물론 수많은 남북 시민의 이유 없는 죽음을 낳았다. ‘휴전’이라는 엉거주춤한 형태로 전쟁이 끝났지만, 한반도의 모든 생명체는 육체와 정신의 궁핍과 허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대 지식인들의 허무적 ‘풍조’였던 카뮈의 니힐리즘에 대학생 정하룡이 발을 디딘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니힐리즘은 현상의 해결을 회피하거나 미룰 뿐이었고, 더하여 집권 이승만 정부는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로 온 사회를 옥죄었다. 도피일까, 무지개를 찾아서일까? 저자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을 1년 앞두고 숨 막히는 이승만 독재와 니힐리즘에 기댄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당시 유럽은 2차 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인간을 중심에 세우는 휴머니즘이 만개하여 있었다. 냉전을 뒷받침하던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었고,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이 모두에 앞서 강조되는 실존주의가 풍미하였다. 그 전선에 장 폴 사르트르가 우뚝 서 있었고, 저자도 실존주의를 자기 사고의 중심으로 삼았다.
저자는 프랑스 대학의 입학을 준비하던 시절, 프랑스 혁명의 요체인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배웠고, 관용의 문화를 체득했다. 이렇게 쌓인 그의 인문학적 소양은, 사고는 유연하게, 그러나 행동은 과감하도록 인도했다. 그리고 사고에서 실천으로 이행해야 하는 이 ‘앙가주망’은 저자와 함께한 재불 유학생들의 공유 가치로 착근했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만난 모리스 뒤베르제 교수는 저자의 학문적 방향과 주제를 잡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뒤베르제 교수의 권유와 지도로 김일성의 리더십을 분석한 석사 논문을, 이승만 정권의 정당 체제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시앙스포 시절에 깊이 교유한 프랑스인 교수와 동창들은 후일 저자가 동백림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막강한 동맹군이 되었다. 이는 유럽의 68혁명의 영향이라고 보았다.
회고록에 등장하는, 1950년대 후반의 프랑스 유학생은 대부분 유복한 가정의 서울대 출신이었다. 그들은 남북 분단 하에서 가난에 찌든 조국의 현실에 대해 애잔함을 넘어 어떻게든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데 한 역할이라도 하려고 했다. 선택받은 엘리트의 성찰적 사고였다. 자연 고민과 모색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중립주의, 사민주의의 개념을 포괄하는 ‘중도주의’에 의견을 모았다.
중도주의는, 남한의 후진성 탈피와 자유민주주의의 병존, 실질적 자유와 형식적 자유의 모순적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토론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당시 남북의 극단적 이데올로기 대립과 이질화는 민족 공동체의 평화공존을 위한 합리적 사고체계조차 범죄시하는 상황이었다.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의 극단 사이에서 중립, 중간, 중도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를 돌파해보자고 한 첫걸음이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 방문이었고, 평양여행이었다.
1967년 중앙정보부는 프랑스와 독일에 유학하고 귀국하였거나 현지에 남아 활동 중인 사람 2백여 명을 간첩 혐의로 구속, 재판에 넘겼다. 정하룡도 당시 경희대 교수로 재직 중 구속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중앙정보부가 관련자 다수를 프랑스와 독일에서 강제 납치해왔기 때문에 영토 주권을 유린당한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항의로 박 정권은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정하룡에 대해서도 프랑스 정부와 언론, 시민사회의 항의와 탄원, 석방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실존주의의 거성 장 폴 사르트르, 시몬느 보부아르,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랑소아 모리악, 영화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세계적인 사회학자 모리스 뒤베르제, 전 프랑스 총리 에드가르 포르와 레이몽 바르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과 정치인들이 이 대열에 참여했다.
프랑스 지성들의 항의운동으로 저자는 사형에서 감형되어 무기수로, 15년 장기수로 3년 반의 감옥생활을 하고는 1970년 말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석방 후 그의 삶은 학자로서의 꿈을 박탈당한, 경세가로서의 포부와 구상이 좌절된 반쪽짜리 생활인의 삶이었으니, 이 여벌의 삶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었다.
젊은 날의 자아실현을 향한 고난의 행군이건, 그 패배와 좌절 이후 얻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건, 이 회고록은 한편의 장엄한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혈기방장했던 젊은 날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91세 노년의 회상과 슬기로 찬찬히 풀어낸 저자는, 이 로드무비의 주인공이자 조연이고, 연출자이다. 이 로드무비는 이렇게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역사의 의미는 미래에서 결정되지만, 역사의 정신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바로, 절대적으로 ‘지금’입니다. 내일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할까? 그것이 ‘지금’이라는 시대의 의미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20세기 : 정하룡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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