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 추사 집안의 한글 편지와 가족사

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 추사 집안의 한글 편지와 가족사

$17.00
Description
85통의 한글 편지로 살펴본,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글 편지로 보는 추사 김정희 집안의 5대 가족사 이야기 [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이들 부자가 살았던 18~19세기의 조선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완고한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사회, 남존여비가 극심했던 사회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 부자의 편지를 살펴보면, 과연 우리가 생각한 조선 사회가 진짜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책의 필자 정창권 선생도 이러한 의문에서 추사 집안의 한글 편지에 주목하고 현대어 번역과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추사 집안의 한글 편지는 모두 85통이다. 이 편지는 추사 김정희를 비롯하여 선대와 후대 등 모두 5대의 가족이 주고받은 한글 편지라는 점에서, 18~19세기 가족의 생활과 문화, 언어, 의식 등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여러 세대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편지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남아 있는 경우는 추사 집안이 거의 유일하다. 이 편지에는 당시 여성의 역할과 의식뿐 아니라 남성의 집안일 참여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나아가 이들 편지에는 추사의 학문과 예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또 추사의 글과 그림, 글씨 등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추사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성은 집안일을 맡고, 남성은 바깥일에 전념할 뿐 집안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을 거라는 기존의 생각은 추사 집안의 한글 편지 앞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큰 인물이 못 된다”는 고리타분한 말이 여전히 통용되고, “82년생 김지영”이 일하는 엄마들의 눈물을 쏟게 만드는 이 시대에, 조선 시대 남성의 모습은 파격이다. 이 편지들은 당시 남성이 담당했던 집안일이 상당히 많았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자료다.

추사 집안의 한글 편지는 여성사·가족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다. 저자는 85통의 편지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편지와 편지 사이의 행간과 여백을 스토리텔링적인 요소를 가미해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연결하고 메웠다. 발신자, 수신자 소개는 물론 편지를 쓴 시기와 상황을 조사해 시공간적인 배경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해설까지 덧붙여 한 편의 이야기처럼 구성했다. 그래서 85통의 편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추사 집안의 5대 가족사 이야기가 장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편지가 사라진 시대, 편지에 담긴 감수성마저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옛사람의 정겨운 편지 한 줄이 더없이 따뜻하다.
저자

정창권

저자:정창권
고려대학교문화창의학부초빙교수.서울시청,문화체육관광부평가및자문위원.서울시교육청고전인문아카데미(‘고인돌’),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길위의인문학등의강의를진행했다.2010년대한민국학술원우수학술도서,2019년세종도서학술부문,2019년롯데출판문화대상본상,2015~2018년고려대학교석탑강의상등을수상했다.주로역사속의소외계층인여성,장애인,하층민관련인문서와어린이책을집필하고있다.요즘엔깊이있는시선으로인간세계를파헤치는‘깊이의인문학’을시도하고있다.

목차

서문―한글편지로보는추사집안의5대가족사이야기

시작하며―특별하지만평범한,그리고아름다운집안

1부추사집안의한글편지
증조모화순옹주가혜경궁홍씨에게받은편지
조모해평윤씨의편지
외조모한산이씨의편지
어머니기계유씨의편지
아버지김노경의편지
막내동생김상희의편지
증손자김관제의편지

2부추사의한글편지
아내예안이씨에게보낸편지
며느리풍천임씨에게보낸편지

마치며허울뿐인조선의가부장제

추사집안가족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특별하지만평범한,그리고아름다운집안
추사김정희집안의가족사

명필가문
추사김정희집안은조선후기의대표적인벌열가문이었다.추사의증조부김한신이영조의둘째딸화순옹주와혼인하여월성위에봉해지면서추사가문은더욱번성했다.
월성위김한신은글씨를잘쓰고나무나돌,옥등에인장을새기는전각솜씨가뛰어났다.그는영조의부마가된뒤에도몸가짐을더욱조심하고겸손하여많은사람의칭찬을받았다.화순옹주와는열세살때동갑내기로만나부부의연을맺었는데,김한신이39세의젊은나이로갑자기병사하고화순옹주마저곡기를끊고뒤따라죽으니,이는조선왕실최초열녀의탄생이라고한다.지금도충남예산에는정조가세운화순옹주의정려문이남아있다.
추사집안은대대로글씨를잘쓰는집안이었다.증조부김한신을비롯해서조부모김이주와해평윤씨,부모김노경과기계유씨등이모두‘명필’소리를들을만한필재를갖고있었다.추사의아버지김노경은청나라최고의서예가등전밀이선친의비문을부탁할정도로글씨에뛰어났다.김노경이쓴한글편지가현재23통이있는데,한문서체뿐아니라한글서체에서도추사에게많은영향을주었다.추사김정희에모든관심이집중되어그아버지김노경을비롯해동생인김명희와김상희의예술적인성취에대해서는제대로평가를못해온것이사실이다.
추사의어머니기계유씨의집안은영의정을지낸유척기를비롯해서함경감사를지낸유한준,예서에능했던유환지등을배출한벌열가문이자명필가문이었다.그래서인지기계유씨도유려하고역동적이며빠른필세를구사하는한글명필이었다.
추사김정희의뛰어난한문및한글글씨는이러한명필가문의전통을이어받아형성된것이다.

출가외인의시대,독립적인추사집안의여성들
추사집안의여성들은자의식이강하고주체적이었다.추사의조모해평윤씨는남편김이주가있음에도그녀가추사집안의여가장으로서집안의대소사를주도면밀하게처리했다.추사의어머니기계유씨와추사의아내예안이씨도추사집안의안주인으로서집안을잘관리했다.
추사의조모해평윤씨는출가한딸과손자,손녀를데리고큰아들김노영의부임지에따라가살곤했는데,자신이집을비운대신서울집에있는아들이나며느리,손자며느리등에게끊임없이편지를보내각종집안일을주도적으로처리하곤했다.추사의아내예안이씨는제주도로유배를간추사를뒷바라지하면서자신의병을숨기고끝까지집안단속을하는강인한면모를보여주었다.
흔히,조선후기를철저한출가외인시대로알고있으나,추사집안의한글편지를보면이시기출가한딸과친정이밀접한관련을맺고살았음을확인할수있다.자주친정에근친을갔고,친정어머니도시집간딸과그가족의안위를한없이걱정했다.추사의외조모한산이씨가딸기계유씨에게보낸편지를보면,친정부모가사돈댁제사나잔치음식까지신경쓰고마련해서보내주는모습을볼수있다.

황육(소고기)은양지머리로조금얻어보내나여기서도사려고하니매우어려워밖의장에까지가서산것이늘약소하기그지없고,다시마는없다하여못얻어보내니답답하다.실백잣조금보내고,준시(꼬챙이에꿰지않고납작하게말린감)20개,잣을박은곶감한접(100개)수대로보낸다._본서79쪽,추사의외조모한산이씨가모친기계유씨에게

추사집안의한글편지는소실(첩)의역할과지위에대해서도아주구체적으로보여주는데,그들도추사집안의당당한일원으로살았다.김노경의소실안동댁은한글편지를쓸정도의교양을갖춘인물이었는데,서울장동의월성위궁근처에살면서시어머니인해평윤씨와편지왕래를하며집안살림이나제사등집안일에참석했다.시어머니해평윤씨는기계유씨와안동댁을처와첩이라하여구분하지않고한가족으로대했고,훗날추사도서모안동댁과두서누이를깍듯이대접했다.

허울뿐인가부장제,살림하는조선의남자들

가장의어깨에지워진짐
조선후기는완고한주자성리학의자장속에서가부장제가정착되어남자는바깥일,여자는집안일로엄격하게분리된사회라고단순하게인식되기도하지만,국가보다는집안의비중이훨씬크고집안일이너무나많았던전근대사회조선에서그렇게남녀의역할을명확하게구분하는것은불가능한일이었다.당시의식주등일체의생산과소비활동뿐만아니라교육과의료,종교,복지,문화등거의모든사회활동이한집안내에서이루어졌다.조선시대의한집안은오늘날중소기업과맞먹는작은사회였고,집안일도엄연한사회활동이었다.그러므로아무리가부장제가정착된사회라해도남성은늘집안일에신경쓰며적극적으로참여하지않을수없었다.게다가여성의주요역할인음식과의복수발등안살림,임신과출산및육아는혼자서하기엔너무벅차고시간도많이걸리는일이었다.그래서남성은평소학문과예술,관직생활같은대외적인활동뿐아니라각종집안일까지함께처리했다.이렇게조선시대집안일은남녀간협력에의해이루어졌고,어떨때는남성이여성보다훨씬많은집안일을수행하기도했다.지금까지의일반적인식과달리조선후기에남성의집안일은일상적인것이었고,당시남성은그저집안의대표자에불과했지결코가부장적인권력의향유자가아니었다는것을알수있다.
추사집안의남성들은가문관리,노비관리,제사나혼인등의집안행사주관등많은집안일에참여했다.집안일을부부공동의책임이었고,추사는자주아내에게편지를보내집안일을의논했다.

나는제사(8월8일조모해평윤씨의제사)가가까워오니새로이할머니생각이끝이없사오며,제사때가될수록주부가없이지내니민망하고또민망하옵니다.당신은편히있어이런생각도아니하시고계신일이도리어우습사옵니다._본서189쪽,추사가아내예안이씨에게

추사집안의남성들은자기가족과주변의일가친척뿐아니라결혼한누님이나처가사람들도일일이챙겼다.추사는집안의종손으로서더욱가문관리에신경썼는데,특히그는여덟살무렵큰아버지김노영의양자가되었기때문에생가(生家)의형제들만이아니라양가(養家)의다섯누님들까지일일이챙겼다.
추사집안의남성들은가문관리뿐아니라집안여성의임신과출산,육아에도각별히신경을썼다.김노경이고금도에유배되어있을때셋째며느리죽산박씨가임신했다고하자,셋째며느리가노산(老産)이니각별히조심을시키라는당부편지를보낸다.

때론안살림도관여하다
조선시대에의복과음식수발등은모두여성의몫이었다.그렇다고추사집안남성들이안살림에문외한이거나전혀참여하지않았던것은아니었다.그들도여성들못지않게의복과음식에대해잘알았고,옷감이나반찬거리등재료를뒷바라지했으며,또상황에따라선직접살림을하기도했다.

일전에창녕(둘째아들김명희)의생일에만두를하여먹으니,메밀은먹물을들여놓은것같고침채(김치)가없어변변히되지않았으니,앞으로인편에메밀가루를조금얻어보내고메밀국수만드는법을기별하면다시만들어보겠지만잘될지모르겠다.
갓과우거지를작년에도많이보내어겨울을났거니와올해도조금넉넉히얻어보내어라.석이버섯도쓸만큼얻어보내고,교관(셋째아들김상희)올라가는데후춧가루를기별하였더니보냈느냐?_본서133쪽,김노경이며느리에게

추사의아버지김노경이고금도유배지에서둘째아들의생일을맞아만두를해먹었는데,메밀가루와김치가없어제대로되지않았다고전하며,앞으로메밀가루를보내주고또메밀국수만드는법을알려주면다시한번도전해보겠다고한다.물론유배지라는장소적인제한도있고또여기서요리는데리고있는노비들이하고자신은곁에서지시만했을수도있겠지만,아무튼우리가상상하는조선시대양반사대부의모습과는다르다.
평소의복과옷감에대해잘알고있던추사의아버지김노경은며느리들에게의복을어떻게지어서보낼지상세히알려주곤했다.마찬가지추사도아버지처럼의복에대해잘알고있었을뿐아니라,아내가부탁한옷감을대신구해주기도했다.

기별하신것은얻어어찌하오리이까?여기에두고분부를기다리라하시면기다리고있사오리이다.쪽[藍]이없어다흰것이라하니여기서쪽물을들이면좋을듯하옵니다마는누구더러들이라하겠사옵니까?기다릴수밖에없사옵니다.……혼수말은자세히듣고,당홍(唐紅)3승은작년에도들여오지아니하고올해도아니들여왔다하니이런낭패가없사옵니다.당홍3승을앞집에서작년에도낭패를하여겨우다른데서들여와썼다하옵니다.
_본서178쪽,추사가아내예안이씨에게

이책의특징

_이책은크게2부로구성되어있다.1부는추사집안가족구성원의한글편지45통을,2부는추사가쓴한글편지40통을다루었다.그리고‘시작하며’에서추사집안에대한개괄적인설명을,‘마치며’에서추사집안여성의역할과의식및남성의집안일참여양상을종합적으로정리하여추사집안의한글편지가갖는역사적의미를명확히밝혔다.
_한글편지의현대어번역은원문을따라가며직역위주로하되독자가이해하기쉽도록약간의수정을더했다.주로어려운고어를현대어로바꾸고,조사가빠져내용이모호한경우조사를문맥에맞게채워넣었으며,필요이상의존칭어는생략했다.또편지마다핵심어를뽑아필자가제목을붙였다.만약해석이불가능한경우는억지로번역하기보다는‘미상’이라표시하고그대로두었다.
_이책에서인용하는한글편지는번역된편지글뒤에번호가매겨져있는데,이번호는황문환·임치균외,『조선시대한글편지판독집』(역락,2013)에서부여한번호를따랐다.아울러국립중앙박물관과개인이소장하고있는추사집안의한글편지의원본을참고도판으로함께수록하여실물을볼수있도록구성하였다.
_추사집안가계도와추사집안가족연보를별도로수록하여,5대에이르는추사집안의규모를한눈에파악할수있도록하였다.
_편지글을소개하는사이사이에김노경의고금도유배,추사의전반생,추사의제주도유배,아내예안이씨애서문,추사의말년등생애의주요지점을별도로정리하여수록함으로써편지의시공간적배경을이해하는데도움이되도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