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인문학을 위하여

통합인문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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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문학의 진정한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의 붐’에서 확인된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하지만 정작 무엇이 위기인지를 따진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인문학의 위기가 무엇이며, 왜 초래되었는지를 따지는 데서 시작한다.
흔히 인문학이 위기라고들 한다. 인문학 무용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인문학을 실용 학문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인문학과 공학, 인문학과 IT 기술을 융합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주장들의 근저에는 인문학이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대두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인문학’이라는 담론은 한국 사회의 대유행 담론이 되어버렸다. 백화점에서는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거리의 인문학·커피의 인문학·희망의 인문학·시민 인문학 등등 인문학 앞에 온갖 수식어가 나붙었다. 심지어 이 대학 저 대학에서 CEO들을 상대로 한 인문학 과정이 개설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인문학이란, 어떤 학문이라기보다는, 좋게 봐야 고급 교양일 뿐이다. 이처럼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하는 현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은 한국 사회에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사실 인문학은 원래 가난한 학자들이 수행한 학문으로 애당초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늘 ‘위기’였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 것은 아니다. 현재 사람들이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대학 학생들이 이전보다 졸업 후 취업이 덜 되는 것과 큰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대학 학과의 위기’다. 속된 말로 밥벌이의 위기가 아닐까 싶다.
저자

박희병

서울대학교국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국문학연구의외연을사상사연구와예술사연구로까지확장함으로써통합인문학으로서의한국학연구를꾀하고있다.주요저서로『한국고전인물전연구』,『한국전기소설의미학』,『한국의생태사상』,『운화와근대』,『연암을읽는다』,『21세기한국학,어떻게할것인가』(공저),『유교와한국문학의장르』,『저항과아만』,『연암과선귤당의대화』,『나는골목길부처다-이언진평전』,『범애와평등』,『능호관이인상서화평석』,『한국고전소설연구의방법적지평』등이있다.

목차

제1부
분통문답分統問答:현재학문의위기와통합인문학

현재의학문상황과그를둘러싼환경
정량평가의문제/인문학의위기/분과학문체제의문제/과학기술의질주와디지털문명/삶의자연으로부터의소외
통합인문학으로의길
‘이해’의통합인문학/‘비판’의통합인문학/진리규정과통합인문학/방법과존재론으로서의통합인문학

제2부
21세기에국문학연구가가야할길

통합인문학으로서의한국학
1.한국학연구의대체적경과/2.무엇이문제인가/3.‘국학’적공부법의변증법적갱신/4.한국학은왜통합인문학을추구해야하는가/5.통합인문학적한국학은어떻게추구될수있는가/6.폐쇄적전문가주의,상업주의,아마추어리즘을넘어서/7.맺음말

학문,삶,글쓰기

디지털시대의학문하기
1.지금의상황과학문/2.디지털실증주의/3.통섭혹은융복합의문제/4.연구주체의내적성찰/5.맺음말

출판사 서평

한국사회에서인문학의위기를불러온가장큰원인:
정량평가의문제

저자는현재인문학의위기를불러온가장큰원인을〈정량평가의문제〉로본다.학자의연구결과를정리한논문은그질적가치로평가되어야하지만,현재한국의시스템에서는질보다는양이다.그결과,학자는스스로의내면적요구,스스로의지적갈증때문에연구하고논문을쓰기보다는,논문쓰기에적절한자료나대상이나주제를먼저물색하고주어진형식과절차에따라말을메워넣는방식으로논문을쓰고있다.석박사학위를받기위해논문을쓰고,박사학위를받은연구자는대학에취직하기위해논문을쓰고,대학에취직한학자는재임용과승진을위해논문을쓴다.생계를위한글쓰기에다름아니다.
그렇다면,양적으로평가하는것이학문적으로전연도움이안됨에도불구하고이시스템이계속유지되는이유는무엇때문일까?
저자는두가지이유를든다.첫째,교수내지대학의통제혹은관리에그목적이있는데,이는국가주의적기획에서기인한다.둘째양적지표를중시하는한국사회의일반적분위기와의관련되었다고보는데,이는한국의자본주의문화에서기인한다.‘국가’적차원이든‘사회’적차원이든질보다는양을중시하는사고가사회전반에팽배해있다는것이가장큰원인이라는것이다.

분통문답(分統問答),그리고통합인문학에대한사고의궤적

「분통문답」은근래에보기힘든형태의글이다.제목만보면조선시대의고전하나를뚝떼어서번역해놓은듯하다.문학서인듯하지만,사상서다.이글은국문학자박희병의저력이십분발휘된,통합인문학에대한40여년의생각이고스란히담긴것이다.
글의형태는조선후기의대표적인실학자홍대용의「의산문답」(?山問答)에서따왔다.평소저자는홍대용의사상과학문세계를연구하고그결과를여러권의책으로펴낸바있다.그러니자신의생각을정리하기위해존경하는인물의글을패러디하는것은어쩌면최고의존경을표하는것이다.
「의산문답」에는‘허자’와‘실옹’이라는가상의인물이등장한다.이글은담헌홍대용이북경을다녀온뒤집필한것으로,홍대용의자연과학과철학에대한입장을잘보여주는일종의사상서다.허자와실옹의대화속에서홍대용의실학적인사고가드러나는데,특히중국이세계의중심이라는중화사상에대한비판은당시로서는매우급진적이기까지하다.
「분통문답」에는분자(分子)와통자(統子)라는가상의인물이등장한다.분자는한창학생을가르치며연구에매진하는중견학자의입장을대변한다.그리고통자는이미사상적으로완성되어가는인물이다.분자와통자는현재한국의학문상황과특히인문학에불어닥친위기,그리고통합인문학에대한설명으로문답을이어간다.두인물의대화를통해저자는자연스럽게통합인문학이란무엇인가에대해이야기하고있다.
저자는이글에등장하는‘분자’이면서동시에‘통자’이기도하다.학문을시작해한창연구에매진하던젊은시절의박희병과통합인문학에대한사유의최종지점을확인한40여년경력의노학자박희병의모습이분자와통자로묘사되었다해도과언이아닐것이다.

이책의2부에는네편의글이실려있다.20세기말인1998년부터비교적최근인2018년에발표된글까지네편을모았다.1998년에집필한「21세기에국문학연구가가야할길」에는비록아직‘통합인문학’이라는용어는등장하지않지만그리로나아가려는저자의사고의궤적이드러나있다.그리고두번째「통합인문학으로서의한국학」에서통합인문학이처음공론화됐다.세번째「학문,삶,글쓰기」에는인문학과삶의관련,인문학의사회적책무에대한저자의생각이피력되어있으며,네번째「디지털시대의학문하기」에는미증유의사태라고할정보기술의질주시대에인문학의과제와책무가무엇인지를통합인문학적견지에서되짚어보고있다.


통합인문학은
분과학문의통합이며,
나와대상의존재론적통합이다.

이책에서말하는‘통합인문학’의‘통합’이라는개념은‘융합’이나‘융복합’이라는개념과큰차이가있다.물론학문의경계를허물며새로운지적지평을열고자한다는점에서일치하는바가없는것은아니다.하지만둘은인문학에대한인식과그존재론적규정에있어근본적인차이가있다.단적으로말해지금한국에서운위되고있는학문의융합(혹은융복합)은‘실용성’혹은‘자본’과의관련에서자유롭지않다.
또한,통합인문학은다학제적인인문학연구와도큰차이가있다.다학제적인인문학연구는현재인문학의분과학문적한계를돌파하고자하는문제의식은있으나급변하는현재의문명상황에서인문학을어떻게재규정해야하는가에대한고민이나문제의식은갖고있지않다.이때문에실용성담론에빠질우려가있다.이와달리통합인문학은인문학이연구주체와대상에,그리고우리가살고있는이세계와우리의삶에,어떤의미가있는지를묻는데서출발한다.그러므로실용성담론에포획되지않으며,역설적으로실용성을뛰어넘는지점에서실용성과연결된다.
통합인문학은삶을분절적이거나요소적으로이해하는것을지양하고가능한한총체적으로이해하고자하는데,이는존재론적입장과관련이있다.존재는총체적연관속에있으므로,총체적연관을이해하지않고서는존재의본질에온전히다가갈수없다.이처럼통합인문학에서는인식의심화와확대가존재의변화와확장을야기하는데,존재의확장은곧삶의확장을의미한다.이점에서통합인문학에서말하는‘삶’은단지인식과조망의문제이기만한것이아니라‘스스로살아감’의문제이기도하다.삶이대상에만귀속되지않고‘나’에게도귀속된다는뜻이다.지식은앎의문제에그치지않고삶의문제가된다.
그러므로통합인문학에서는진리나윤리가학문의‘밖’이아니라학문의‘안’에있으며,나의외부가아니라나의내부에있다.그리하여학자로하여금그내면을점점더풍성하게만들고,인격적으로더욱더향상된인간으로나아가게하며,그정신과의식을점점더높은방향으로이끈다.이렇게되면학자는다시본연의책무와자리를되찾게되고,학문은다시세상을맑게하고세상이나아갈길을비추는빛이될수있을것이다.


인문학의진정한위기

저자는,인문학의위기가단순히자본의논리에포획된현인문대학의위기는아니라고본다.그러면어떤것이인문학의위기를가져왔을까?저자는크게세가지원인을이야기하고있다.

〈1〉분과학문체제의문제
분과학문은‘전문성’이라는장점이있지만,완고한자기만의프레임과경계를갖고있다.그리고이프레임과경계속에서학문적상상력이작동되고글쓰기가이루어진다.경계밖으로나가려고하지도않을뿐더러,만약에나간다면정상으로간주되지않는다.분과학문체제내에서만연구와글쓰기가이루어지다보니그야말로천편일률적인논문만쏟아진다.
물론분과학문은‘전문성’이라는장점이있다.학문연구에서‘전문성’은집터를닦는것과같은,반드시갖추어야할요소다.다만완고한현재의분과학문체제를좀완화해다른학문과통합적으로사유할수있도록환경을조성해야한다.현재각대학에서자행되고있는,융복합을빌미로한‘학과통폐합’은사실분과학문을없애는것과같다.이경우분과학문의소멸은새로운학문의탄생이아니라학문자체의소멸을의미한다.
〈2〉지식은‘읽다’,정보는‘보다’
지식이‘읽다’라는동사와주로관련이있다면,정보는‘보다’라는동사와주로관련이있다.디지털문명의주요한특징가운데하나가지식의정보화인데,정보화된지식은고전적의미의지식과는성격이같지않다.고전적의미의지식은단지정보로서만존재하는것이아니라내삶의지표로서존재한다.양명학에서‘지행일치’(知行一致)를주장했을때‘지’(知)가바로이것이다.이경우지식은내삶의실천,내삶이나아가야할방향을알려준다.하지만정보는다르다.정보에는우선삶과의통일적연관이요청되지않는다.필요한정보를취할뿐이다.인문학은인간의사유가활발하게이루어지고,그리하여사유하는삶이높이평가될때존중받고그필요성이인정된다.그러므로지금의디지털발전이인문학에결코유리한상황은아니다.
〈3〉자연으로부터소외된삶
인문학은인간과그삶에관한학문이다.인문학은삶의한과정으로서자연을대하므로,자연과학에서법칙과물리(物理)가실현되는세계로바라보는자연과는다르다.자연과학에서자연은분석과탐구의대상,지배의대상이기는하나교감의대상,존중의대상일수는없다.자연에대한감수성의향상은인간의내면을한층풍부하게만들고인간을더욱인간답게만드는데이바지한다.그러니삶에대한학문인인문학이자연에충분히관심을보이지않는것은그본령에서멀어진것이라할것이다.자연을도외시하는학문은온전한인문학이라하기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