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17.12
Description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응시한 화가들을 찾아서!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의 서양미술 순례」와 「청춘의 사진」을 이은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세 번째 미술 에세이다. 이 책은 한국 근대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근대 미술에 대해 얼마나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는 화가들은 주로 독일 표현주의 계열의 화가들이다. 하지만 본문에는 '표현주의'라는 말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그와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묶여야 할 고흐나 카라바조의 예술이 동일한 문제의식 아래 다뤄지고 있다. 즉 다양한 유파와 다양한 시대의 예술을 하나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모두 전쟁, 폭력, 식민주의 등 근대의 그늘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옥과도 같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의 예술적 시선을 통해 저자는 추한 것을 끝까지 응시하고 담아내려는 인간적인 고투,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

서경식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2009년 현재 도쿄케이자이 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6년부터 2008년 3월까지 2년 동안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로 ‘조국’에서의 ‘생활’을 체험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저자이자 서승·서준식의 동생으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그 밖에 지은 책으로『청춘의 사신』,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공저),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교양, 모든 것의 시작』(공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시대를 건너는 법』, 『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등이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1부]
1 통일독일 미술 기행

2 너의 눈을 믿어라!
오토 딕스와 그의 시대

3 증언으로서의 예술
누가 펠릭스 누스바움을 기억하는가

[2부]
4 문을 열어젖히는 자
〈토마스의 불신〉에 관하여

5 고뇌의 원근법
고흐에 관한 대담

6 학살과 예술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천사들

옮긴이 후기

출판사 서평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응시한 화가들을 찾아서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 않다. (……) 뒤러, 그뤼네발트, 카라바조, 고야, 렘브란트, 피카소, 고흐……. 이 거장들은 ‘예쁜’ 작품을 그려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직시해서 그리려 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 그들의 힘으로 우리는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공유하고 있던 통념으로서의 미의식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시대의 미의식을 개척해온 것이다.”
-본문 중에서

● 『나의 서양미술 순례』 이후 18년, 더 깊은 문제의식으로 써내려간 서경식의 미술 에세이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서경식의 서양미술 순례』와 『청춘의 사신』을 이은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세 번째 미술 에세이이다. 이 책은 고전적인 그림들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교양서나 낭만적인 예술 기행이라는 관습화된 에세이를 벗어나 시대와 인간이 충돌하는 장으로서의 예술을 절절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앞의 두 권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의 조국 생활을 통해 다듬어진 문제의식을 한국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쓴 책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권과 다르다. 한국 근대미술에 ‘아름다움’에 대한 치열한 의식이 존재하는가? ‘근대’라는 폭력의 시대와 정면으로 맞선 ‘근대예술’이 우리에게 있는가?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카라바조, 고흐,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 등 길고 긴 우회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물음들을 던진다. 또 그런 치열한 예술 정신 없이는 새로운 공공성(새로운 근대)이라는 화두 자체가 공허하게 지배의 도구로 환원되고 말리라는 시대적 경종이, 그런 물음들 아래로 의미심장하게 울리고 있다.
저자 서경식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는 화가들은 주로 독일 표현주의 계열의 화가들이다. 표현주의란 거칠게 말하면 현상이 아닌 본질에 천착하고, 그것을 강렬한 형상과 색감으로 표현해내는 예술이다. 하지만 본문에는 ‘표현주의’라는 말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2부에서는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그와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묶여야 할 고흐나 카라바조의 예술이 동일한 문제의식 아래 다뤄지고 있다. 바로 ‘현실을 극한까지 응시하고 인식하는 시선과 그것을 강렬하게 표현해내는 힘’이다. 이런 문제의식하에서 다양한 유파와 다양한 시대의 예술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전쟁, 폭력, 식민주의 등 근대의 그늘은 모두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모두 이 지옥과 같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하고 증언한다. 이들은 도덕에 대한 환상이나 구원에 대한 (중세적인) 희망 없이,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전제도 없이, 오직 인간적인 감각에 의지해, 극한의 악을 그려내고 초월한다. 근대란 이렇듯 인간의 ‘악’을 최대치로 보여준 시대이자, 또한 그것을 놀라운 예술적 시선으로 포착해내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준 시대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루는 예술들은 결코 ‘일반적인 의미에서’ 아름답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오히려 추한 것을 끝까지 응시하고 담아내려는 인간적인 고투,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 바이에른 혁명과 바이마르 시대를 거쳐 나치 독일로, 시대의 역행에 온몸으로 맞선 화가들
-에밀 놀데, 에른스트 키르히너, 막스 베크만, 조지 그로스, 존 하트필드, 캐테 콜비츠


첫 번째 장 ‘통일독일 미술기행’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후속편이라 할 만한 글이다. 1980년대 처음 유럽을 여행한 이후 10년이 지나 1990년대에 다시 독일을 찾은 저자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기에) 그때는 갈 수 없었던 구동독 지역을 관심 있게 둘러본다. 우선은 냉전이라는 ‘전쟁’에서 패배한 구동독 사회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고, 거기에 어렴풋이 조선의 미래를 겹쳐보기 위해서였다. 또 슈베린 미술관, 라이프치이 미술관, 드레스덴 미술관 등 중요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들을 둘러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제뷜의 에밀 놀데 미술관에서 본 《그리스도의 생애》 연작에 대한 감상이다.

“이건 정말 독특하다. 이상하다고 말해도 좋다. 무너진 형태와 격렬한 색채로 진절머리 날 만큼 농후한 감정이 표현되어 있다.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석에서 직접 분출하는 듯한 감정이 방 전체에 충만해 있다.”(40쪽)

이 그림에 대해 나치의 이데올로그 알프레드 로젠베트크는 “경건한 종교 감정을 모독하는 흑인 같고 야만스럽고 신앙심이 없는” 거짓 종교화라고 공격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놀데는 격렬하게 항의했다.

“놀데를 반나치 투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는 적극적인 투사도 아니었고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는 나치즘의 동조자이자 나치당의 다원이었다. 그러나 이 완고한 노()화가는 시대의 강풍을 맞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북방의 농민다운 끈기를 발휘했다. 그것은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휘청거리면서도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저 가로수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럼으로써 놀데는 나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정치적 희비극에도 불구하고 예술 세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52쪽)

킬 미술관에 전시된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목욕하는 나부〉와 〈군인으로서의 자화상〉에 대한 감상 역시 중요하다. 후자에는 군복을 입은 작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뜻을 암시하듯 손과 손목이 없다. 키르히너는 다리파라는 전위예술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1차 세계대전 때 강제징병 되었다가 심신이 쇠약해져 스위스로 이주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을 악랄하게 모독한 나치에 항의의 편지를 보내고 피해망상증에 빠져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가 1936년 자신의 작품들을 불태우고 권총으로 자살한다.

뤼베크를 거쳐 구동독 지역으로 들어선 여정에서, 저자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날 언론 보도를 통해 장벽 틈새를 비집고 서독으로 넘어온 동독 시민들이 서독 측으로부터 배급 받은 돈으로 앞 다투어 바나나를 사먹는 모습을 보았던 일을 떠올리며 사회주의의 이상이 무너진 씁쓸한 현실을 소회하기도 한다.

“바나나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사회주의는 정신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능가할 삶의 기쁨을 대중들에게 제공했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은 권력을 이용해 대중들에게 내핍을 강제했을 뿐이다. 과도기적인 상황이라 여겼던 그 내핍이 장기화되고 관습화되어 마침내는 권력을 쥔 특권층만이 바나나를 먹고 트라비를 탔던 것이다. 그렇게 사회주의는 부패하고 자멸해갔다”(66쪽)

슈베린에서 플랑드르파의 작품들, 식민주의를 발판으로 태동한 자본주의의 욕망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정물화들을 확인한 저자는 다시 베를린으로 향한다. 바이에른 혁명의 기운이 가득했던 독일에서 반전과 반나치를 내걸고 활동한 막스 베크만, 캐테 콜비츠, 조지 그로스, 존 하트필드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감한다. 바이에른 혁명기와 바이마르 문화, 그리고 나치의 집권에 이르기까지, 마치 지금 우리 시대를 보는 듯한 독일 역사의 장면들이 화가들의 삶 혹은 작품들과 함께 생생하게 펼쳐진다.

● 종교도 이념도 아닌 예술의 힘으로 -오토 딕스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글은 오토 딕스를 다룬 장이다. 1, 2차 세계대전의 격랑을 헤치며 작품 활동을 한 화가 오토 딕스에 관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다시 독일을 찾은 저자는 오토 딕스의 작품들뿐 아니라 그 작품이 탄생한 공간들과 주변 인물들을 취재해 화가와 화가의 시대에 대한 흥미롭고도 입체적인 해설을 시도한다.
오토 딕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저자가 ‘기적’이라고도 표현한 〈전쟁제단화〉이다.

“전통적인 제단화라면 중앙의 대화면에는 인류의 원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그려져야만 한다. 하지만 딕스의 전쟁제단화에서는 그 자리에 예수가 아니라, 포탄을 맞고 철책에 걸린 채 부패해가는 병사의 시체가 그려져 있다. 이 제단화에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그것도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존재구나,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전쟁을 반복하면서 질릴 줄 모르는 인간, 그리고 그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이렇게까지 철저히 꿰뚫어보고, 남김없이 그린 것 또한 인간이다. 말 그대로 ‘신 없는 시대의 제단화’이다.”(116쪽)

다음으로 오토 딕스의 자유로운 성향과 유머 감각을 잘 보여주는 〈늙은 연인들〉에 대한 해설이다.

“그때까지 내 미의식으로 보자면 추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작품이 독특한 설득력을 가지고 육박해왔던 것이다. 이상할 정도의 인력이었다. 게다가 유머까지 넘치는 작품이라니! [……] 노인에겐 성욕이 없다라는 사이비 도덕관이나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아름답다라는 위선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형태로 철저히 파괴한다. [……] 다른 한편에서 딕스는 인간의 본능이나 욕망에 대해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확실히 ‘추한’ 그림이지만 ‘추하다’고 단정 짓거나 외면할 수 없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매력이라 고쳐 말해도 좋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의 미추를 둘러싼 감성이 협소하고 평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124~125쪽)

또 전장에서의 체험을 고스란히 그려낸 동판화 연작 《전쟁》의 한 컷 한 컷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무』와 한 장면 한 장면 대입해보기도 한다